“이게···맞나?” ‘섬 공무원’들의 희노애락 섬 적응기
“이게···맞나?” ‘섬 공무원’들의 희노애락 섬 적응기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5.08 06:19
  • 수정 2023.05.08 06: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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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미, 지네와 한 방 쓰기, 육지와의 단절에 포기하고 싶다가도
‘섬이라’ 공무원 생활도 나름 재밌어···이탈은 관사 개선·수당으로 막자

[리포트] 섬이 ‘공무원 양성소’가 아니려면

인터뷰는 4월 20일 신안군공무원노동조합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왼쪽부터 김유리, 박수정, 유용현, 김지환 씨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서울에서 목포까지 KTX로 2시간 30분. 목포시청 왼편 압해대교를 건너면 1004개의 섬을 가져 ‘천사섬’이라고도 불리는 신안군에 갈 수 있다. 인구 4만 3천여 명으로 작은 지역이지만 육지와 바다를 합하면 서울시의 22배 정도로 넓다고 한다. 농업과 어업의 비율도 비슷한 편이다. 무화과와 대파, 섬초 등이 주로 재배되고, 김, 홍어, 민어, 천일염도 유명하다.

농부와 어부만 있는 건 아니다. 압해읍 초입에 자리한 신안군청을 비롯해 14개의 면과 2개의 읍, 낙도 출장소에서 신안군 소속 공무원 820여 명이 지낸다. 신안군 수산직 공무원 김유리 씨도 장산면이라는 섬의 면사무소에서 첫 업무를 시작했다.

고흥 ‘깡촌’에서 나고 자랐다던 김유리 씨지만 섬에서의 공직생활은 놀랄 일 천지였다. 일단 퇴근하면 갈 곳이 없었다. 마땅히 할 만한 게 없어 돌아간 낡은 관사에서 주말을 기다렸다. “떡볶이랑 마라탕이 너무 먹고 싶었다”고 너스레를 떨던 김유리 씨지만 웃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신안군 섬 공무원들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된 섬에 위치한 신안군청으로의 발령을 기대하며 버틴다. 반대로 신안군청에서 일하는 공무원들은 2~3년에 한 번씩 돌아오는 인사발령이 두렵다.

반복되는 섬 발령에 김유리 씨의 동기 중 약 20%가 그만두거나 다른 지자체로 전출을 신청해 나갔다. 가정을 꾸리면 더 문제였다. 아이를 섬으로 데려오자니 밤에 아프면 방도가 없어 걱정이다. 학교에 입학했는데 다른 섬으로 발령이 나면 전학을 보내야 한다. 공무원을 뽑아놔도 이탈하는 상황은 신안군 입장에서도 큰 고민거리다. 신안군 공무원 김유리, 김지환, 유용현, 박수정 씨가 자세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퇴근하면 뭐 하세요?” “걸어요”

“첫 직장을 가지고 처음 듣는 섬에 딱 간 거였어요. 철부선(짐 배)도 처음 타 봤고. 내렸는데 내비게이션이 말을 안 듣더라고요. 원래 깡촌에 살아서 별 걱정은 없었는데, 좀 놀랐어요. 사람도 별로 없고 새벽에 가로등도 안 켜지고, 말 그대로 퇴근하면 진짜 아무것도 못 해요. 직원들이랑 밥 먹고, 걷거나 그냥 흩어져서 짱박혀 있고.”

24살에 신안군 공무원이 된 김유리 씨는 육지에선 흔한 편의점과 카페가 없을 것은 예상했지만 관사와 식당이 그만큼 열악했을 줄은 몰랐다고 했다. 면사무소 식당에서 중식을 먹고 남은 것으로 저녁과 아침을 먹었다. 그 때 김유리 씨는 “이게 맞는 걸까”하는 생각이 스쳤다고 했다. 장산면엔 하나로마트가 하나 있었는데 오후 6시에 문을 닫았다. 공무원의 퇴근시간도 오후 6시니 매번 장을 볼 짬은 나지 않았다.

저녁을 먹고 들어간 관사는 어땠냐는 물음엔 “추웠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김유리 씨는 장산면으로 가기 전 선배들로부터 난방 텐트와 전기장판을 꼭 챙기라는 말을 들었으나 한귀로 흘렸다. “요즘 세상에, 학교 기숙사도 그 정도는 아니”라 생각했던 탓이다. ‘사사삭’ 소리로 잠을 깨웠던 지네와 더운 여름 피어오르던 곰팡이의 기억도 여러 번 강조했다. 김유리 씨의 관사에 침대가 들어선 건 나중의 일이다. 침대가 방에 들어온 순간 김유리 씨는 월급을 탄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도 장산면 관사는 괜찮은 편이었다. 더 먼 섬으로 발령받은 동기들은 관사가 모자라 몇 명씩 방을 같이 쓰기도 했다.

‘반쪽짜리 주말’도 육지라면 소중해

육지에서 제일 먼 흑산도가 첫 발령지였던 김지환 씨는 멀미나 낡은 관사는 참을 수 있었지만 ‘반쪽짜리 주말’이 힘들었다고 했다. 신안군 공무원들에겐 대대로 내려오는 전설이 있다. 흑산도를 한 바퀴 걸어서 돌면 다음 인사발령에서 섬을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김지환 씨가 그걸 정말 해본 건 아니지만 섬을 빨리 떠나고 싶은 바람은 간절했다.

주말이라도 본가가 있는 목포로 나가고 싶었다. 김지환 씨가 금요일에 목포로 나가면 일요일 오전, 늦어도 오후 2~3시엔 다시 흑산도로 돌아와야 한다. 흑산도에서 목포까지는 빠른 쾌속선을 타더라도 2시간이 소요된다. 기다리는 시간까지 포함하면 쾌속선 기준 왕복 5시간은 잡아야 한다. 철부선을 타면 편도로만 4시간이 넘게 걸린다.

온전히 육지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날은 토요일뿐이다. 김지환 씨도 흑산도 발령 중 먼 지역으로 놀러가지 못했다. 못 먹었던 음식을 먹고, 부모님이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다보면 배를 타야 하는 시간은 어김없이 돌아왔다. 김지환 씨는 목포에 본가가 있어 이동 시간이 그나마 적다. 목포보다 먼 곳이 거주지인 공무원은 주말의 대부분을 배와 버스, 기차에서 보낸다.

“흑산도가 멀어서 선박 결항이 잦아요. 배가 안 뜨는 날이 엄청 많거든요. 한 달에 한 번도 못 나간 적도 있었어요. 저는 배가 안 뜨는 주면 그 주가 계속 우울한 거예요. 제발 이번 주에는 (배가 뜰 수 있길).”

‘반쪽짜리 주말’이라도 보내지 못하게 된다면 모두가 우울해 했다. 신안군의 배들은 1년에 평균 115일 정도 기상 악화로 통제된다. 공무원들은 태풍 정보를 알려주는 어플리케이션을 수시로 들여다본다. 김유리 씨도 “이 어플 하나에 주말이 왔다 갔다 하니까 ‘배가 안 뜬다 어떡하냐’ 하면서 수요일부터 사람들이 예민해져 있다”며 “주말에 주의보가 떠버리면 들어가야 하는 시간에 못 들어가니까 주말에 여행이나 친구와의 약속은 잘 안 갔던 것 같다. 그래도 토요일이라도 주의보가 해제되면 (왕복) 4시간이 걸리더라도 육지로 나가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도 나름 재밌는 섬 생활

김유리 씨와 김지환 씨는 시간이 지나니 섬에서의 생활도 차츰 적응됐다고 했다. 특히 직원들과의 끈끈함과 신안군 주민들의 애정 어린 관심이 도움이 됐다. 퇴근한 신안군 공무원들은 동료들과 배드민턴을 치거나 신안군 청년회 등 주민들과 모임을 하기도 한다.

수산직인 김유리 씨는 업무 측면에서 섬이라 좋았던 점도 있었다고 했다. “애매한 데 있었으면 재미없었을 거예요. 섬이다보니 어민들이랑 소통하는 것도 재밌어요. 장산에서 버티면서도 어민들이 ‘젊은 나이에 섬에서 무슨 고생이냐’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그런 것도 위로가 됐었어요. 으샤으샤 해 주신 거죠. 공무원이 바뀌면 새로 설명을 해 주면서 적응할 수 있게 해 주시더라고요.”

박수정 씨도 동의하며 “우리는 외딴섬까지도 가서 근무를 하고 있고, 그 지역 주민의 애로사항을 들으며 우리 영토인 섬을 지켜가고 있다”며 “그래도 섬을 지켜간다는 조그만 자부심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섬 발령, 퇴직·전출 유인인 건 사실

앞서 저연차 공무원인 김유리·김지환 씨의 말을 듣던 유용현 씨는 고개를 푹 숙였다. 유용현 씨는 신안군청의 인사담당자다. 섬에 갈 사람과 연륙 지역으로 올 사람을 고민하는 일을 한다. 육지 지자체로 재시험을 치자는 생각으로 책을 싸들고 섬에 들어갔던 유용현 씨도 열악한 관사나 반쪽짜리 주말의 고충을 잘 알고 있다. 주말에 꼭 가야 하는 곳이 있었지만 배가 뜨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밤바다를 하염없이 쳐다봤던 적도 있었다. 인사발령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이 좋을 리 없다.

“인사에선 섬으로 발령 내는 사람들의 성별이나 나이가 아무래도 (고민이에요). 학교나 어린이집까지는 섬에 있지만 혹시나 아이가 아프게 된다거나 하는 문제들 때문에요. 밤에 운영하는 병원은 거의 없으니까요. 저희는 신안군청 아니면 섬, 이렇게 돼 버리니까. 신안군청에 있는 사람들도 섬에 있는 사람들도 서로가 조금씩 미안한 마음을 한 편으로 가지고 있어요.”

신안군 공무원들에게 섬 발령은 단절을 의미한다. 주변인과 시간을 보내지 못하거나 주말 이동 시간이 길어지는 것은 상대적으로 작은 불편함이고, 삶에 필요한 조치를 제 때 취하지 못할 수도 있다. 두 아이를 섬과 육지에서 번갈아 키운 박수정 씨도 “내 의지로 아무 때라도 갈 수 있는 것하고, 배가 없어서 못 가는 것과는 다르다”고 말했다.

그는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에서 처음 섬에 들어간 젊은 친구들은 다른 취미 활동도 할 수 없고, 사람들 만나는 것도 안 되니 나가고 싶어 한다”며 “결혼을 해서 아이가 생기면 가족과 떨어져 있어야 하고 아이들이 어느 정도 크면 학교 문제도 있어 섬을 떠나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6만 원으론 ‘공무원 양성소’ 못 벗어나

그러나 가정이 없다는 이유로 저연차 공무원을 섬으로 발령 내면 퇴직(의원면직)이나 전출 요청 건수가 치솟았다. 유용현 씨는 “의원면직 사유를 보면 타 기관 임용시험에 합격했거나, 시험을 준비하기 위한 경우가 대부분이었다”며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역적 특성에 대한 부담이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시험에 합격했지만 섬으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직서를 쓰고 다른 지자체로의 수험 생활을 시작하는 경우도 부지기수였다.

신안군의 공무원 전출 제한은 5년, 공무원이 어느 정도 업무에 숙련되는 시기다. 입사하지 얼마 되지 않은 공무원이 퇴직해 신규 공무원을 다시 채용하는 것도 지치지만, 주도적으로 업무를 해야 할 5년차 공무원이 대거 전출을 가버리면 지자체 차원의 적극 행정 등도 어려워진다. 신안군에 붙은 ‘공무원 양성소’라는 별명은 전출 빈도를 반증한다.

물론 섬 공무원들의 노동조건은 점차 나아지는 추세다. 가건물로 지어진 관사에 살다 태풍이 불어 지붕이 날아갔다는 선배들의 말은 무용담으로 남아 있다.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은 공무원 이탈에 더 신경을 기울인다. 1인이 1실을 쓸 수 있도록 관사를 넓히고, 김유리 씨처럼 관사에 곰팡이가 핀다는 제보엔 침대를 놓기도 한다. 혹여나 여건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조례를 통해 월세 지원책도 마련했다. 교통비도 지원하고 있다. 신안군은 승진도 다른 지자체와 비교해 빠른 편이다.

“그렇게까지 해도 그만둔다”는 게 최성은 신안군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의 걱정이다. 최성은 위원장은 섬마다 제각각인 관사의 편차를 없애고, 특수지근무수당을 올릴 수 있는 법적 근거가 필요하다고 주장해왔다. 관사 개선은 지자체 차원에서 가능하지만 특수지근무수당은 규정으로 묶여 있어 정부의 개정 의지가 중요하다. 지금 신안군의 특수지근무수당은 6만 원이다. 6만 원 받고 섬에 가느니 다시 공부해서 섬이 아닌 지자체로 가는 게 장기적으로 낫겠다고 생각하는 공무원들이 아직 많다.

최성은 위원장은 “직원들이 계속 밤에 공부해서 다른 지자체로 간다. 우리 군에서 5년 정도 지나고 나면 8급 중간 연차 정도 되는데, 8급들이 나가면 다시 처음부터 채용해 교육해야 하는 일이 반복된다”며 “특수지근무수당을 지자체 여건에 맞춰 줄 수 있도록 공무원 수당 규정에 단서 조항이라도 넣어 줬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신안군을 떠나는 공무원을) 잡고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