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심과 정성은 반드시 돌아온다
진심과 정성은 반드시 돌아온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2.04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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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만에 다시 만난 판매왕에게 묻다
내 일자리 지키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할지 생각할 때
4년 연속 판매왕 오른 기아자동차 망우지점 정송주 부장

기아자동차는 지난 1월 14일 서울 잠실의 롯데호텔에서 ‘2009년 KIA TOP 100 DAY’ 행사를 개최했다. 이 행사는 지난해 100대 이상의 자동차를 판 영업사원들을 초청해 포상을 실시하는 것이다. 이날 행사에서는 4년 연속 판매왕에 오른 망우지점 정송주(39) 부장에게 시선이 쏠렸다.

2년 전에도 <참여와혁신>은 정 부장을 소개한 적이 있다(<참여와혁신> 2007년 4월호). 하지만 그 때는 자동차산업이 정말 ‘잘 나가던’ 시절이었다. 다시 2년 만에 그를 만났다. 위기라는 말을 무색케 하는 그의 실적의 비결을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말솜씨 없는 영업 달인

전세계 자동차업체들이 중병을 앓고 있다는 2008년 정송주 부장은 모두 317대의 자동차를 판매했다. 한 달 평균 26.4대를 팔았으니 휴일을 제외하면 하루에 한 대 이상을 판 셈이다. 더구나 정 부장의 실적은 지난해 국내 자동차업계를 통틀어 최고의 실적이다.

더 눈길을 끄는 것은 정 부장의 이력이다. 2005년 235대를 팔아 처음 판매왕에 오른 이후, 2006년 264대, 2007년 248대를 팔았고 올해까지 4년 연속 판매왕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가 영업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지금까지 판매한 차량만 해도 1700대를 훌쩍 넘는다. 2005년 이후를 따지면 평균 하루 한 대 꼴.

‘차가 안 팔려 죽을 지경’이라는 시국에 이렇게 화려한 판매실적을 올릴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일까. 정 부장의 첫 인상은 선입견을 무너뜨린다. 영업의 ‘달인’이니 흔히 ‘유창한 말솜씨’를 기대하지만 그는 달변과는 거리가 멀다.

그런데 달변은 아니지만 그의 이야기에는 진심과 정성이 담겨 있다. 그것이 고객의 마음을 끄는 힘이다. “제가 아무리 열심히 한다고 해도 매일 차를 살 고객을 찾을 수는 없습니다. 저한테 차를 산 고객들은 제가 찾은 고객보다 다른 고객이 소개해서 찾아온 고객들이 많습니다. 지난해 경기가 어려웠잖아요? 오히려 어려울 때 소개를 많이 받습니다. 저한테 차를 산 고객들이 경기가 좋을 때는 안 그래도 차 잘 파는데 굳이 소개해주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반대로 경기가 어려우면 정 차장(부장으로 승진했지만 고객들에게 그는 아직 정 차장으로 통한다)이 힘들 텐데 하면서 주변에 저를 소개해서 새로운 고객들을 데려오는 거죠.”

한 사람을 대하더라도 진심과 정성을 다해 ‘배려’하는 정 부장의 마음씀씀이는 다시 정 부장에게 새로운 고객으로 되돌아왔다. 이렇게 그가 관리하는 고객들은 지금까지 7천여 명에 이른다. 그중 4천여 명은 정기적으로 E메일이나 뉴스레터를 발송하는 고객이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판매왕에 오른 비결을 묻는 질문에 정 부장은 “지난해에는 모닝과 로체 이노베이션, 포르테와 쏘울 등 디자인과 품질이 훌륭한 신차들이 출시돼 좋은 실적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덕분에 개인적으로 잡았던 판매목표 300대도 수월하게 달성할 수 있었죠”라며 공을 회사와 차에 돌리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 고객에게 지인들을 소개받으려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를 상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일례로 그는 고객이 찾으면 그곳이 어디든 달려간다. 전화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마주보고 설명해야 직성이 풀린다. 그래서 그는 웬만한 택시기사보다 서울 시내 지리에 ‘빠삭’하다. 덕분에 아는 사람 하나 없는 서울 망우동에서 영업을 시작했고, 연고판매를 하지 않았어도 판매왕에 오를 수 있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세상 알기 위해 전직

4년째 판매왕 자리를 지키고 있는 정 부장이지만 처음부터 ‘잘 나갔던’ 것은 아니다. 처음엔 3개월 동안 단 한 대도 팔지 못해 사무실에서 놀림을 받기 일쑤였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노력한 결과 오늘의 위치에 오를 수 있었다. 그동안 정 부장의 직책은 평사원에서 주임, 대리, 과장, 차장을 거쳐 10년 만에 부장에까지 이르렀다.

그가 처음부터 자동차 영업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정 부장은 전남 강진 출신으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1994년 기아자동차 화성공장에 생산직으로 입사했다. 그리고 5년여 동안 라인을 탔다. 그러다가 1999년에 영업직으로 전직을 신청해 자동차 영업을 시작했다.

기아자동차의 부도로부터 시작된 IMF 외환위기는 당시 기아자동차 임직원들에게 뼈를 깎는 고통을 요구했다. 그런 자구책의 일환으로 전직을 시행했고, 자신의 꿈을 위해 더 넓은 세상을 원했던 정 부장은 곧바로 전직을 신청했다.

“생산직으로 일하다 보면 생각의 범위가 공장 울타리를 넘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좁은 공장 안에 생각이 갇히게 되는 거죠. 당시 제가 꿈꾸던 태권도장을 운영하려면 세상을 많이 알아야겠다고 생각했고, 언제든 기회가 되면 생산직이 아닌 다른 일에 도전하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IMF 때 전직할 수 있는 기회가 돼 전직을 신청한 겁니다.”

생산직으로 근무할 때도 정 부장은 묻고 배우기를 즐겼다. 자신의 직접적인 업무는 아니지만 보전반을 찾아가 기계 작동 원리를 배운 것도 그때였다. 기계 작동 원리를 알면 자신이 맡은 업무도 더 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전직을 했는데, 당시 전직을 했던 이들 중 많은 이들이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고 정 부장은 전한다. “IMF 당시 생산직 중 400여 명이 전직을 신청했습니다. 그중 지금까지 영업 현장에 남아있는 이들이 저를 포함해 200여 명 정도 됩니다. 매년 판매우수자 명단을 보면 당시 전직했던 이들이 많이 포함돼 있습니다. 전직할 당시 대부분 뚜렷한 목표의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거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처음부터 안 좋은 건 없다

정 부장은 이렇게 영업을 시작했다. 영업 현장을 발로 뛴 지도 벌써 10여 년. 그동안 보고 느낀 기아자동차의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장·단점을 구별할 줄 알았으면 지금 이 자리에 있었을까요?”라고 반문한다.

정 부장은 성격상 아무리 불합리한 것처럼 보여도 일단 받아들인다고 덧붙였다. 비판을 하더라도 머릿속으로만 생각해서 비판하는 것과 직접 해보고 나서 구체적인 데이터와 근거를 가지고 하는 비판은 다르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판매관리 프로그램인 ‘심스’를 예로 들었다. 기아자동차에서 개발한 판매관리 프로그램이지만 영업직들에게 그다지 인기가 없단다. 개별적으로 고객관리를 하는 데 불편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많은 영업직들은 사설 프로그램을 구입해 쓴다. 하지만 정 부장은 ‘심스’ 마니아다.

“저한테 차를 샀는데 이사를 가서 연락이 끊긴 고객이 다른 지역에서 기아자동차 서비스센터에서 정비를 한다고 가정해 볼게요. 처음 차를 팔 때 차대번호 같은 기본적인 사항들을 ‘심스’에 등록해 두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그 고객이 다른 지역에서 정비를 받으면 그 사항이 그대로 ‘심스’에 기록됩니다. 그러면 그 화면이 제게도 떠서 저는 이 고객에 대한 정보를 다시 관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사설 프로그램은 개별적인 고객관리에는 편리할지 모르지만 회사 시스템과 연동되지 않아서 위와 같은 고객들까지 관리할 수는 없단다. 이처럼 정 부장은 “처음부터 안 좋은 건 없다”는 생각으로 모든 걸 대한다. 그러니 단점도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보이는 것이다.

“단점이라기보다는 한 가지 바람이 있어요. 신차를 출시할 때 처음부터 영업 현장의 의견을 반영했으면 한다는 겁니다. 영업은 고객과 가장 가까이 있는 업무잖아요? 그러니 고객의 의견과 취향을 가장 잘 알고 있습니다. 처음 신차를 계획할 때 영업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되면 고객의 선호에 가장 알맞은 차를 만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유연하게 생각해야

이번에는 질문을 바꿨다. 기아자동차가 최근 위기를 겪는 원인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한참을 고민한 끝에 정 부장이 지적하는 문제는 ‘유연성 문제’다.

“제가 생산직으로 있을 때도 그랬지만, 인력은 유연하게 배치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잘 나가는 차종을 생산하는 라인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돌아가는데 판매가 부진한 차종을 생산하는 라인에는 인력이 남습니다. 같은 기아자동차 안에서 한 쪽은 바쁘고 다른 한 쪽은 한가한 거죠. 이럴 때 인력을 재배치하면 더 효율적인 운영을 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아무래도 노사간에 민감한 문제인지라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던 듯하다. 하지만 일단 말이 나오자 거침없이 쏟아낸다. 평소에도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의미일 게다.

“자신의 기득권만 유지하려고 하면 앞으로 나가지 못합니다. 소통을 많이 해야 하고, 어려울 땐 양보도 해야 합니다. 지금 자동차산업이 어렵다고들 하잖아요? 이 위기를 극복하려면 모두가 기득권을 조금씩 양보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조금 더 유연하게 생각해야죠.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기업이 젊어져야 할 것 같습니다. 기아자동차 생산직 평균 연령이 40대를 넘어서고 영업직은 그보다 더 높지요. 젊은 사람들이 많이 들어와야 합니다. 50 넘어서 렌치 든다고 생각해 보세요. 젊은 사람들보다 더 잘 할 수 있겠습니까?

물은 고이지 않고 흘러가야 합니다. 회사에서 나이든 사람들이 나갈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무턱대고 나가라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그 나이에 어울리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는 겁니다. 회사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창업을 지원하고 교육도 해야 합니다. 노동조합에서도 회사가 한다고 하면 무조건 반대할 게 아니라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게 함께 교육해야 합니다. 결국 교육이 안 이뤄지면 조합원만 손해를 보는 것이죠.

기아자동차 전 구성원들이 어려울 때일수록 주변을 둘러봤으면 합니다. 그 속에서 나는 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런 고민만으로도 회사가 위기를 헤쳐 나가는 에너지가 될 수 있습니다.”

정 부장은 “현실과 꿈은 괴리가 있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꿈과 현실이 일치하면 그것은 꿈이 아니겠죠. 하지만 큰 꿈을 꾸면 그 꿈에 100% 도달하지는 못하더라도 70~80%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계획을 세워 꾸준히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 기아자동차

판매왕의 성공비결

◆ 부지런히 발로 뛰어라 예전에는 10발자국 가서 고객을 만났다면 시장이 어려울 때는 15발자국 가서 고객을 만난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 정직하게 영업하라 경기가 좋을 때는 옥석이 구분되지 않지만 어려울 때는 정직하게 영업하는 사람이 살아남는다. 정직한 태도는 평소에 습관으로 드러난다.

◆ 머릿속으로 생각만 하지 말고 실천하라 생각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