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혼여성 비중 높은 마트노동자 임금, 왜 낮을까?
기혼여성 비중 높은 마트노동자 임금, 왜 낮을까?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6.05 17:02
  • 수정 2023.06.05 17: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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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대형마트, 주부와 노동자 역할 동시 수행하면 처우 더 낮아”
“한국은 업무 표준화, 탈숙련화 전략으로 저임금 고착”

[리포트] 기혼여성 파트타임노동자 저임금 형성 메커니즘 토론회

“일본에서는 마트노동자가 가족을 돌보는 책임을 안 질수록 제대로 처우를 보장받는 경향이 있어왔다. 한국의 초기 노무관리 방식도 이와 유사했다. 아울러 한국은 업무 표준화와 탈숙련화로 마트노동자 저임금 구조를 고착화했다.” (김영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김영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가 지난달 16일 마련한 ‘기혼여성 파트타임노동자 저임금 형성 메커니즘 – 일본 대형마트 산업을 중심으로’ 여성노동건강권 월례토론회에서 이같이 말했다. 토론회는 온라인 줌(ZOOM) 미팅으로 진행됐다.

무임금 노동 수행하는 ‘주부’
기혼여성 노동의 저평가로 이어지다?

김영 교수는 한국과 일본의 대형마트에 다수의 기혼 여성들이 파트타이머 내지 무기계약직으로 근무하는 현실에 착안해 일본 대형마트 노동시장을 90년대 후반부터 연구해왔다. 토론회 강연을 맡은 김영 교수는 주부들이 임금노동시장에 진출하면서 주부와 노동자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고 말했다.

주부는 배우자와 자녀를 돌보고 여러 집안일을 수행한다. 가사노동이지만 경제적 보상이 없어 노동의 저평가가 계속돼왔다. 성 역할 분담에 따라 주로 여성이 주부를 담당했고, 이는 여성의 사회적 진출이 시작돼도 쉽게 바뀌지 않았다. 따라서 노동시장에 나온 기혼여성의 일차적 책임은 주부로서 역할 수행이라는 인식이 사회에 존재해왔다는 것이다.

김영 교수는 일본 대형마트에서는 주부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일하는 것과 그렇지 않은 상태 즉 남성생계부양자로서 일하는 것의 처우가 차이 났다고 밝혔다. 예를 들면 일본의 경우 기혼여성 비정규 노동자는 기본 근무시간대가 10~18시, 토요일과 일요일 중 하루만 근무하는 조건이다. 10시 이전이나 18시 이후는 배우자 출퇴근 또는 자녀의 등·하교 시간으로 주부 역할을 할 시간이라는 걸 기업과 사회가 암묵적으로 동의한다. 따라서 이 시간에 마트에서 일한다면 시간당 추가 수당을 부여받는다. 주로 기혼여성이 많은 일자리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었다.

김영 교수는 “기업의 인사관리자들은 ‘주부의 감각으로 매장을 운영하려고 주부를 채용한다. 여성 소비자가 많다 보니 여성이 일하기 좋은 직장을 만드는 게 우리에게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계약을 반복갱신하게 하고 임금을 평균보다 낮게 책정하는 차별 대우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사회보험료, 세금 납부 피하려고
저임금 노동 종사, 저소득 유지

기업이나 국가가 시행하는 제도가 기혼여성의 저임금 구조 고착화에 일정 부분 기여했다는 분석도 있었다. 김영 교수는 “불과 2010년 정도까지 배우자수당이 존재했다. 배우자 소득이 사회보험료 납부 기준으로 130만 엔, 소득세 납부 기준으로 103만 엔보다 낮은 경우 월 1만 엔을 지원하는 제도”라며 “이런 제도가 기혼여성들이 저임금 노동에 계속 종사하도록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고 했다. 또 “보험료나 세금 납부를 피하기 위해 ‘일하고도 안 한 것으로 처리해 달라’며 자발적으로 무임금 노동을 하는 경우도 있었다”며 “제도가 어떻게 노동시장을 컨트롤하고 노동자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다. 

일본에서도 해당 제도가 기혼여성들의 취업을 저해하고 일부러 근무시간을 줄이도록 유도해 인력 부족 현상을 낳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있어왔다. 이와 관련해 올해 초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사회보험료가 발생한다는 이유로 취업을 주저하는 ‘130만 엔의 벽’ 문제에 대해 제도 개선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다.
 
숙련 향상 어려운 업무 표준화
“유리천장은커녕 바닥에 붙잡혀 있다”

김영 교수는 마트노동자가 기혼여성 중심의 저임금 구조인 것은 한·일 양국이 비슷하다고 했다. 특히 한국의 대형마트는 업무의 표준화와 시스템 합리화를 통해 생산성 증가를 추구하며, 노동자의 숙련을 형성하려 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 그러면서 기업은 업무의 통제를 용이하게 하고, 노동자에게 저숙련 상태를 유지하게 해 관리자 등으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김영 교수는 “성별·고용형태별 분절의 합리화와 인격적 통제에 기초한 억압적 노무관리가 있다고 본다”면서, “업무 표준화와 탈숙련화 전략은 여성노동자들을 유리천장은커녕 직무 상승 사다리가 존재하지 않는 ‘끈적이 바닥(sticky floor)’에 붙잡혀 있게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김영 교수는 여성과 남성이 가족과 사회를 함께 돌본다는 인식이 확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시장에서 가족 돌봄과 임금노동을 동시에 수행하는 기혼여성 등이 차별받지 않으려면 이 런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는 것이다.

김영 교수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혼자 살더라도 아이를 기르면서 일할 수 있는 사회가 구축돼야 한다”며 “이것이 진정한 평등과 민주주의를 실현하기 위한 기준”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