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BK시스템지부, 첫 단협 체결까지의 이야기
IBK시스템지부, 첫 단협 체결까지의 이야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6.14 08:00
  • 수정 2023.06.14 14: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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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통을 해결하기 위해 만든 노동조합
조합원들과 산별노조의 힘으로 투쟁 마무리
작년 5월 31일 IBK시스템지부 전 조합원 참여 집회 ⓒ 금융노조

금융IT 서비스 전문기업인 IBK시스템은 IBK기업은행의 자회사로 1991년 설립됐다. 지난 4월 3일 IBK시스템 노사가 창사 이래 첫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2021년 6월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후 1년 9개월이 지나서 접점을 만든 것이다. 노사관계는 녹록지 않았다. 지난 5월 19일 명동성당이 바로 보이는 금융노조 IBK시스템지부 사무실에서 유정기 IBK시스템지부 위원장, 정혜란 IBK시스템지부 사무국장을 만나 노동조합 창립부터 첫 단체협약 체결까지의 시간을 돌아봤다.

회사와 이야기하고 싶어 만든 노조

IBK시스템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진 이유는 직원들이 회사와 제대로 이야기할 ‘창구’가 없었기 때문이다. 유정기 위원장은 창립 당시를 “직원들이 회사에 불만이 많았다. 그런데 소통은 제대로 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직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할까 고민했는데, 노동조합이면 되겠구나 싶었다”라고 떠올렸다. 유정기 위원장은 회사 동기 8명과 2021년 6월 8일 설립 총회를 열고 2021년 6월 10일 노동조합을 설립했다. 정혜란 사무국장도 설립 총회 멤버로 유정기 위원장의 동기다. 정혜란 사무국장은 “노동조합을 통해서라면 눈치 보지 않고 회사에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을 것 같아서 설립에 함께했다”고 이야기했다. 노동조합 설립까지는 쉬웠고, 장밋빛 전망을 세웠다는 게 유정기 위원장의 이야기다. 그러나 IBK시스템지부의 시간은 쉽게 흐르지 않았다.

임금협약을 맺기까지 시간이 꽤나 걸렸다. 노동조합 설립 이유였던 회사와의 소통에는 직원들의 임금 수준 불만족이 있었다. 금융IT업계 내에서 다른 회사들과 비교했을 때 임금 수준이 낮았다. 개발 업무의 특성상 야근도 빈번했다. 노동 강도와 적정 수준의 보상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생각에 직원들의 불만은 계속 쌓였다. 유정기 위원장은 “기획재정부가 예산 지침을 통해 IBK시스템의 급여를 관리하는 건 아니지만, 모회사인 IBK기업은행이 기획재정부 지침을 따르면서 자회사들에게도 영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러한 배경으로 IBK시스템 노사는 임금 수준을 결정하는 데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대립을 이어가던 중 총파업을 걸고 2022년 말 교섭 끝에 10.4% 인상에 노사가 합의했다.

첫 단체협약 체결도 어려웠다. 조합원 자격, 회사의 금융산업 사용자협의회 가입, 직원 복리후생 부분 등에서 쟁점이 발생했다. 조합원 자격 부분에서는 이번 합의로 신규 직원은 자동으로 노동조합에 가입된다. 다만 자유로운 탈퇴도 가능하게 열어뒀다. 금융산별 노사관계에서 금융노조의 파트너로 금융산업 사용자협의회에 IBK시스템이 들어오는 것은 하반기에 재논의하기로 했다. 회사 내규 차원에서 복리후생비를 증액해 직원들의 근무조건을 개선하기로 노사가 마음을 모았다. 또한 육아휴직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 관련해서도 제도를 개선했다.

투쟁을 이어갈 수 있는 힘
조합원들과 산별노조

IBK시스템지부가 임금 교섭과 단체협약 교섭을 해나가는 데 두 가지 큰 어려움이 있었다. 하나는 기관장 교체 시기였다는 점, 하나는 신생 노동조합이었다는 점이 각각 외부적·내부적 요소로 작용했다. 새 정부 들어서 기관장 선임이 늦어지며 자회사인 IBK시스템의 사장 선임도 늦어졌다. 회사 측이 합의에 적극적으로 나서기 힘든 상황이기도 했다. 신생 노동조합 차원에서 유정기 위원장은 “투쟁을 하면서 노동조합의 무게감을 알게 됐다”며 “조합원들을 조직하고, 함께 투쟁에 대해 소통하는 것이 모두 처음이라 어려운 부분도 있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럼에도 IBK시스템지부가 임금협약과 단체협약을 체결하면서 투쟁을 마무리할 수 있었던 데는 ‘조합원들의 힘’과 ‘산별노조의 힘’이 있었다는 게 유정기 위원장의 생각이다. 작년 5월 3일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조합원 94.59%가 투표에 참여했고, 찬성률이 97.46%에 달했던 것이 단적인 예다. 다만 투쟁이 장기화되면서 조합원들이 힘에 부칠 것을 고려해 지부는 투쟁 수위를 조절했고, 작년 7월 18일에는 다음 투쟁을 위한 쉼표로 ‘한여름 밤의 버스킹’이라는 문화제를 진행하기도 했다. 여기에 금융노조 소속 지부들이 연대를 해줬고, 산별노조인 금융노조의 역할로 국정감사에서 금융IT회사 노동자들의 처우 이야기가 나오면서 임금 교섭의 출구가 생기기 시작했다.

노사 신뢰 속에 소통하는 기업

IBK시스템지부는 노동조합 설립 이후 길었던 투쟁의 시간이 앞으로 노동조합 활동을 해나가는 데 큰 경험이었다는 생각이다. 유정기 위원장은 “처음 소통을 화두로 노동조합을 만들었던 것처럼 노사 신뢰를 쌓아가며 소통할 수 있는, 그 결과물이 조합원들에게 돌아가는 노동조합을 만들어나갈 것”이라며 “지난 기간 동안 투쟁에 몰두해 있어 놓쳤던 조합원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할 것”이라고 전했다. 또 “금융IT기업들이 늘어나면서 노동조합 조직화가 필요할 텐데, 노동조합을 만들고 싶어 하는 누군가는 있으니 지부나 산별노조에서 그 사람들을 만나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참여와혁신 디자인팀 디자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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