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책 만들며 근기법 안 지켜” 방치된 출판 노동자들
“전태일 책 만들며 근기법 안 지켜” 방치된 출판 노동자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3.06.20 16:48
  • 수정 2023.06.20 16:4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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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체불·부당노동행위·직장 내 괴롭힘·불공정 채용 등 “어느 하나 안 빠져”
언론노조·류호정 의원, 출판 분야 근로감독 즉각 시행 요구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과 언론노조, 언론노조 출판노동조합협의회 등이 20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출판 업계 근로감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참여와혁신 강한님 기자 hnkang@laborplus.co.kr

노동관계법을 무시해왔던 출판 산업의 ‘법 위반’을 관행으로 남겨둬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고용노동부가 5대 불법과 부조리로 규정한 포괄임금 오남용, 임금체불, 부당노동행위, 직장 내 괴롭힘, 불공정채용 등은 모두 출판 산업의 특징이기에 근로감독을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류호정 정의당 국회의원과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위원장 윤창현, 이하 언론노조), 언론노조 출판노동조합협의회(의장 안명희) 등은 20일 오전 11시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열악한 노동환경, 불법이 난무하는 지금의 출판 노동시장에 대한 책임은 온전히 정부에 있다”며 “근로감독, 필요하다면 특별근로감독으로 불법과 부조리를 엄단하고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기자회견 참가자들은 “출판 산업은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70%를 차지하고, 외주 제작은 40%에 육박한다. 다단계 하도급 중간착취, 예술인고용보험 미적용 사례가 빈번하고 양극화도 심각하다. 노동법을 회피하기 위한 출판사의 꼼수에서 비롯된 결과”라며 “출판 산업에서 노동자의 권리는 없다. 휴일이나 연장근로에 대한 보상도 없고, 계약서 미작성에 대한 실질적인 불이익도 없다. 갑질과 미지급을 비롯한 작업비 체불에도 노동자를 보호할 제도는 미비하다”고 설명했다.

출판노동조합협의회가 지난달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출판 외주노동자 61.8%의 연봉은 2,400만 원 이하로 저임금 구조를 가진 것으로 드러났다. 예술인고용보험도 응답자의 59%가 미가입한 상태였다. 예술인고용보험 가입 여부를 ‘모른다’는 응답도 39%였다. 설문조사엔 출판 재직 노동자 413명과 출판 외주노동자 102명이 참여했다.

안명희 출판노동조합협의회 의장은 “우리나라 출판 시장은 세계 규모 10위권에 든다고 하지만 그 이면은 형편없다. 전태일 책을 만들며 근로기준법을 보장받지 못하고, 책을 너무도 사랑하는데 불안정한 노동환경에 견딜 수 없어 출판계를 떠난다”며 “저임금에 임금체불까지 있어 최소한의 생계도 보장받지 못하지만 해고 앞에선 권리를 말하기 어렵다. 출판사 대표들이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정부와 국회가 무관심한 상황에서 출판 노동자들은 병들어가고 있다. 대단한 법과 제도를 만들자는 게 아니라, 기본만 갖추고 있는 법만 지켜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재순 언론노조 좋은책신사고지부 사무국장은 홍범준 좋은책신사고 대표의 폭언, 징계 남용, 업무 배제 등을 알리며 출판 업계의 직장 내 괴롭힘과 노조 탄압을 정부가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좋은책신사고는 ‘쎈’과 ‘우공비’ 등 문제집을 제작하는 출판사로 유명하다.

정재순 사무국장은 “홍범준 대표의 직장 내 괴롭힘이 인정돼도 다시 2차 가해 조치를 저지르고, 매출 하락의 책임을 직원들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해 직원들이 불안을 호소하고 있다”며 “노동부 방문 일정이 잡히면 갑자기 있지도 않은 회의 일정을 잡고, 국감 증인으로 채택됐지만 불응했다. 직원들이 지부를 창설하고 수차례 교섭을 요구했지만 노동위원회 자리에서도 출판사가 무슨 언론노조에 가입하냐고 고성과 난동을 부리며 단체교섭권을 전면으로 거부하고 있다. 부조리들에 대한 실질적이고 적극적인 조치가 취해졌으면 한다”고 발언했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도 “출판 노동자들의 현실은 그야말로 갑질과 착취 속 신음하는 하루하루라고 묘사해도 지나치지 않다. 근로감독 요구는 수십 년간 방치돼 왔던 출판 노동자들의 헌법적 기본권을 이제는 보장하라는 것이고, 기본을 하라는 것”이라며 “엄정한 법 집행이란 미명 아래 노동자들을 때려잡는 데 골몰하지 말고 출판 노동자들의 기본권 확립을 위한 근로감독을 즉시 실행에 옮겨줄 것을 촉구한다”고 고용노동부에 전했다.

이에 류호정 의원도 “출판 업계는 노동법 위반 무법천지다. 출판 업계의 노동관계법 위반을 묵인한다면 노동부가 심각한 범죄행위에 공범임을 자백하는 것”이라며 “윤석열 정부 노동개악의 선봉대가 아닌 노동자를 위한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때다. 노동부가 출판 업계 근로감독을 통해 기초고용질서를 바로 잡고, 노동인권 보장을 위해 나설 것을 다시 한번 요구한다”고 말했다.

한편 기자회견에서 언론노조는 사용자협의회와의 교섭을 통해 출판 노동자들의 처우개선을 노력할 것이라 밝혔다. 언론노조엔 7개 출판사에 재직하는 노동자들과 서울·경기지역 출판 노동자 등 총 330여 명이 조합원으로 가입돼 있다. 이 중 4개 지부에서 임금협약 체결을 위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 언론노조는 “출판 노동자들의 공정한 노동이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며, 이를 위해 고용노동부는 출판 분야에 대한 근로감독을 즉시 이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언론노조와 출판노조협의회는 출판 산업 근로감독과 더불어 △프리랜서로 분류되는 출판 외주노동자를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인정할 것 △출판 노동자에 대한 최저 생계를 보장할 것 등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