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하고 잔인하다. 그, 희망이.
잔인하고 잔인하다. 그, 희망이.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2.05 20:00
  • 수정 0000.00.0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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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지은 jesung@laborplus.co.kr

겨울이 끝나가고 있나 봅니다. 차디찬 바람이 한 풀 꺾이고 봄의 기운이 벌써 느껴지니 말입니다.

참, 시간은 빠르기도 합니다. 지나가지 않을 것 같던 아픈 과거도, 지나가지 말았으면 하고 생각했던 기억도 당장 내 앞에 닥친 현실 앞에서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요즈음 하루하루, 전쟁터 같습니다. 죽고, 죽이고. 싸우고 비난하며 절규하고 비탄에 빠지고. 대한민국은 요즘 온전히 ‘견디고 있는 하루’를 살고 있습니다.

그래도 희망을 가져야 하지 않겠느냐,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들의 절망을 말해볼까 합니다.

황무지, 같은 삶

미국의 작가 TS. 엘리엇은 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황폐화된 도시를 바라보며 「황무지」라는 장편의 시를 발표합니다. 여기서 ‘잔인한 4월’이라는 유명한 문구가 등장하죠.

4월은 가장 잔인한 달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키워내고
추억과 욕정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TS. 엘리엇 「황무지 1부_ 죽은자의 매장 中」

수많은 사람이 죽고, 폐허가 된 도시 속에서 ‘삶’이라는 것이 의미를 잃습니다. 가치가 사라진 삶, 끝없는 절망 속에서, 과연 그 봄이 다시 피어나는 것이 아름다울 수 있었을까요. 꽃이 피는 것이, 살아남은 자들이 그래도, 다시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겨울보다 잔인했겠지요.

그 아비규환의 현장을 딛고, 그것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갈가리 찢긴 상처를 딛고 또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거리를 걷고, 웃으며 밥을 먹고 싸움을 하고 중상모략에 도둑질이 일어나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잊어가는 세상.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재생되는 봄이 어찌 잔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폐허와 같은 마음

‘그래도 가져야 하는’ 희망이 자꾸만 멀어져 가고 있습니다. ‘과연 무엇으로’ 말입니까. 열심히 살아도 느는 것은 빚과, 상처와 한숨밖에 없을 것이라는 절망 속에 내일의 삶이 저당잡히고, 힘들다, 힘들다, 더 힘들거다 하고 쏟아지는 뉴스는 없는 사람을 더 비참하게 만듭니다.

용산 참사가 일어난 지 꼭 스무 하루가 지났습니다. 그들이 묻힌 땅에서, 그 가족들과 같은 처지에 놓인 철거민들은 혹독한 겨울보다 더 잔인한 봄을 맞겠지요. 그들에게, 더 할 나위 없이 잔인한 봄이, 살아갈 길 막막한 지난한 삶이 펼쳐져 있습니다.

전국민을 경악케 했던 한 살인마의 손에 한 대학생의, 어머니의, 아내의 꿈이 스러져 버렸습니다. 그리고, 유족들은 일파만파로 쏟아지는 범죄자에 대한 세간의 관심 속에서 그 어느 때보다 잔인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 상실감은, 이제 다시 피어날 수 없는 꽃은 시간 속에서 다시 잊혀져 가겠지요.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이어오던 대리기사,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지던 한 20대 여성이, 쪽방촌에서 홀로 살아가던 독거노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다시 잘 살기 위해서는 없는 사람도, 더 없는 사람을 위해 희생하고 더 졸라맬 것도 없는 허리띠를 조이고, 다시, 살라 합니다.

메마르고, 메마르고. 메마르고

봄이 되어,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은 척박하고 메마른 땅에서도 온 힘을 다해 피어날 수 있을 만큼의 양분은 갖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잔인하고 잔인한 삶 속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말하려면 척박한 황무지에 물을 주고, 다시 피어날 힘을 주어야 하겠지요.

2년을 더 그렇게 버텨보라는 비정규직 법 개정이, 막무가내식 구조조정이, 더 나빠질 것이라는 무사안일한 전망이, 나쁜 일자리라도 주는 게 어디냐는 무책임한 발언이, 소수자의 탐욕이, 전쟁같은 폐허를 만들고 있는데.

누가, 잔인한 4월에 꽃을 피우라 하나요.성마르게 희망을 강요하기 전에 그들의 눈물을 먼저 닦아 줄 일입니다. 부랴부랴 덮기 전에 상처가 아물 수 있게 다독여야 합니다.

대한민국의 봄이, 배신과 탐욕의 계절로 절망과 함께 찾아오지 않도록 말입니다.

  성지은의 <뚜벅또박>
  뚜벅뚜벅, 걸어가듯 글을 쓰고. 또박또박, 내가 마주한 시간을 되짚으며 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