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마른 시대, 문경지교를 그리다
메마른 시대, 문경지교를 그리다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2.05 2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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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석모 smpark@laborplus.co.kr

최근 ‘워낭소리’(감독 이충렬, 제작 스튜디오 느림보)라는 영화가 ‘적벽대전2 : 최후의 결전’, ‘잉크하트 : 어둠의 부활’ 등 블록버스터 영화를 제치고 예매율 1위라는 돌풍을 일으키고 있답니다. 최근엔 10만 관객을 넘어섰다죠. 다큐멘터리 영화로선 최초랍니다.

‘워낭소리’는 말이나 소의 귀에서 턱 밑으로 늘여 매단 방울에서 울리는 소리를 뜻합니다. 혹 어렸을 적 시골에서 자란 분이라면 그 소리를 기억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여든의 노부부와 30년 넘게 동고동락한 마흔 살 배기 늙은 소와의 우정과 삶을 그린 영화라는군요.

30년이 넘었으니 말은 안 통해도 눈빛만 봐도 서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있었을 겁니다. 소가 먹고 죽을까봐 논에 농약도 치지 않는다는 할아버지는 꼴을 베러 매일 산에 오릅니다. 아픈 다리를 이끌면서 말이죠. 소도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아는지 제대로 서지도 못하지만 등에 땔감 한 짐을 지고 할아버지를 따른답니다.

그런 이심전심의 마음이 진짜 우정이 아닐까 합니다. 이런 굳은 우정을 표현하는 많은 말들이 있죠. 거문고의 달인 백아(伯牙)는 자신의 음악을 알아주는 유일한 친구인 종자기(鍾子期)가 병들어 죽자 애지중지하던 거문고 줄을 끊고 다시는 거문고를 연주하지 않았답니다. 이 고사에서 지음(知音), 백아절현(伯牙絶絃) 등이 유래됐습니다.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에서 관포지교(管鮑之交)란 말이 나왔고, 유비(劉備)와 제갈량(諸葛亮)의 만남은 물과 고기의 만남에 빗대어 수어지교(水魚之交)라고 일컬어집니다. 또 두 사람의 마음이 같아 그 예리함으로 금석(金石)도 자를 수 있다는 <역경(易經)>의 문장에서 단금지교(斷金之交)라는 말이 유래했습니다. 나이를 가리지 않고 사람을 사귀는 경우를 가리켜 망년지우(忘年之友)라 하기도 하죠.

한때의 분함을 참고 부끄러움을 드러내다

그중에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이 있습니다. 조(趙)나라의 장군 염파(廉頗)와 인상여(藺相如)의 고사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염파와 인상여는 전국 시대 조(趙)나라 혜문왕(惠文王)의 신하들입니다.

인상여가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으로부터 화씨지벽(和氏之璧)을 지키고, 혜문왕을 욕보이려는 소양왕에게 오히려 망신을 준 공로로 상대부(上大夫)를 거쳐 상경(上卿)에까지 올랐습니다. 그러다보니 인상여의 지위가 조나라의 명장 염파보다 더 높아졌습니다.

이를 시기한 염파는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인상여를 만나기만 하면 망신을 준다고 공언하고 다녔습니다. 이 말을 전해들은 인상여는 염파와 마주치지 않도록 조심했습니다. 심지어는 외출을 나가다가 멀리서 오는 염파를 보고 옆집으로 도망치기도 했을 정도였죠.

문객(門客)들이 들고 일어나자 인상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답니다. “(염파보다 무서운) 진왕이지만 나는 궁정에서 당당하게 논전(論戰)했다. 그런 내가 어째서 염파 장군을 무서워하겠는가? 강한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감히 넘보지 못하는 것은 염파장군과 내가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두 사람이 싸우면 어느 한 쪽이 상처를 입는다. 내가 이러는 것은 개인의 싸움보다는 국가의 문제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 말을 들은 염파는 인상여의 넓은 도량에 감격하게 됩니다. 염파는 그길로 인상여를 찾아가 사죄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죽음을 함께해도 변치 않을 친교를 맺게 되죠. 이 고사에서 문경지교(刎頸之交)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대의를 위해 한때의 분함을 참은 인상여나 자신의 부끄러움을 깨끗하게 인정하고 사죄하는 염파 모두 목숨을 함께하는 사귐에 어울리는 그릇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우정이 있는가하면 소인(小人)들의 사귐은 이(利)를 탐한다 했습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우정을 헌신짝 버리듯 하는 세태 속에서 한 줄기 향기가 흘러나오는 문경지교를 그리워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까요?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와 소의 30년 우정은 문경지교에 필적하는 사귐이 아닐까 합니다. 이번 주말에는 ‘워낭소리’를 보러 오랜만에 극장에 가볼 참입니다. 그동안 적조했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말이죠.

박석모의 우공이산
시련도 많고 좌절도 많지만, 희망이 있기에 오늘 다시 발걸음을 옮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