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기업 변화의 힘이다
문화가 기업 변화의 힘이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7.11 10:20
  • 수정 2023.07.11 11: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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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터혁신 현장, 영창실리콘을 찾아가다
“변화의 속도를 결정하는 건 직원들”

보기 드물게 서울에 제조 공장까지 가진 기업을 찾아갔다. 특수전선을 만드는 기업으로 가산디지털단지역에서 내려 조금만 걷다보면 나오는 영창실리콘이라는 곳이다. 1986년 세워진 이 기업은 2세 경영으로 대표이사가 바뀌어 정착해가는 시기였고, 새로운 제품을 생산하고 있는 변화의 시기이기도 했다. 기업에게 불확실성은 리스크다. 그래서 불확실함을 예측 가능함으로 바꾸는 것이 숙제다. 변화는 불확실성을 불가피하게 동반한다. 영창실리콘은 변화에서 오는 불확실성을 일터혁신을 통해 기회의 동력으로 바꿨다. 박은홍 대표이사를 지난 5월 23일에 만나 인터뷰하고 취재를 통해 그 과정을 정리해봤다.

영창실리콘 로비에 들어서면 회사 로고와 생산품들이 전시돼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영창실리콘은 내열 실리콘 전선, 특수 내열 산업용 전선을 개발하고 시장에 선보이며 성장해왔다. 현재는 모빌리티 산업 전환에 발맞춰 2차 전지용 케이블을 양산하고 있다. 기존 매출 규모는 160~170억 원 정도였다. 2차 전지용 케이블로 사업 전환을 하며 2021년 232억 원, 2022년 288억 원으로 매출 규모가 크게 증가했다. 2차 전지용 케이블 사업 전환을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2017년부터 고객사와 관련 논의 및 개발을 진행했다. 2019년에 양산을 시작해 2020년 총 매출의 15%, 2021년 총 매출의 39%, 2022년 총 매출의 51%로 비중을 늘려갔다. 고용 규모도 평균 70여 명 수준에서 2차 전지용 케이블 사업 전환과 매출 증대에 맞춰 80여 명으로 늘렸다. 사업 전환이 성공적으로 흐르고 있는 셈이다.

2차 전지 케이블로 사업 전환
노동시간, 업무 피로도 증가해

전환 과정에서 문제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2차 전지용 케이블로 생산품을 전환하면서 작업 방식은 차이가 나지 않았지만 업무량 및 업무강도가 늘었다. 기존 제품의 규격은 작았으나, 2차 전지용 케이블은 규격이 훨씬 커져 원자재 및 제품 증량이 증가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생산량도 늘어나는 과정에서 현장 작업자의 초과근무가 발생하고, 업무 피로도가 증가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발전재단의 노동전환 일터혁신 컨설팅을 받았다. 컨설팅을 통해 신규 현장 작업 인원 확보, 설비투자를 통해 효율성을 높여 초과근무를 줄이고 업무 피로도도 개선했다. 동시에 장시간 노동 문제는 사무직군에서도 발생했는데, 시차출퇴근을 통한 유연근무와 함께 임금체계를 손봐 회사 전반적으로 있었던 장시간 노동 문제를 해결했다.

일터혁신으로 문제 해결
현장이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게

노사발전재단을 통한 일터혁신은 회사 인사 관련 체계의 혁신이었다. 박은홍 대표이사는 기업 운영 체계의 한 축인 인사를 변화시키는 혁신 이전에 조직문화를 바꾸는 데도 노력을 기울였다. 2019년에 대표이사로 취임하면서 2세 경영인으로 기업에 대한 고민, 기업 먹거리에 대한 고민들을 해왔기 때문이다. 기업 먹거리, 즉 새로운 사업으로의 전환은 대표이사 취임 전부터 골몰해오던 것이었다. 새로운 경영인의 등장과 새로운 먹거리에 대한 필요성이 만나면서 영창실리콘이 변해야 한다는 것은 기업의 숙명이 됐다. 다만 박은홍 대표이사가 조직문화 변화에 바람을 불어넣은 것은 무늬만 변화가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박은홍 대표이사는 “경영진이 변화의 방향을 제시할 순 있어도, 변화를 받아들이고 속도를 내는 것은 현장”이라 이야기했다.

문화력을 키우자
‘외국인 직원 한국어 교육’을 했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해 진행한 여러 혁신 활동 중 ‘외국인 직원을 위한 한국어 교실’ 운영은 영창실리콘이 조직문화의 힘을 키우는 데 많은 공을 들이고 있다는 사례다. 많은 중소·중견 제조기업들이 겪고 있듯이 영창실리콘도 현장 작업자 인력 충원 문제를 겪고 있었다. 많이 활용하는 방법이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는 것이다. 영창실리콘에서도 현장 작업자 50여 명 중 16명이 외국인 직원이다. 상당 부분을 외국인 직원들이 일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박은홍 대표이사는 갈수록 인력난이 심해지고 외국인 노동자들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면 내국인 작업자들과 같은 환경과 문화 속에서 일할 수 있도록 적응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외국인 직원들이 한국에서 일하면서 겪는 가장 큰 문제인 의사소통 문제를 해결해줘야 적응이 빠를 것이라 생각해 한국어 교실을 열었다. 출근 시간 전 40분 정도 하고 싶은 사람들만 나와서 한국어 수업을 듣게 했다. 평가에 반영된다고 하면 본래 목적이 사라지니 평가에도 반영되지 않으니 피곤하지 않게 알아서 수강하라고 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16명 모두 수업을 들었다. 수업 진행은 박은홍 대표이사가 직접 한다. 외국인 직원들이 경력을 쌓고 작업 반장 역할을 해야 할 경우가 분명히 생기고, 내국인 노동자를 지휘하고 경영진과 소통해야 할 일이 생기기 때문에 한국어 수업은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셈이다.

또 소통이 원활이 되면 작업 효율성도 높아지고, 외국인 직원들도 숙련을 쌓기 편해진다. 기업의 성과로 귀결되는 것이다. 흥미로운 지점은 비자를 재발급 받기 위해 고향으로 갔다가 다시 한국으로 왔을 때 영창실리콘을 찾는다. 좋은 기억을 가지고 떠났기 때문에 다시 오는 것인데, 영창실리콘 입장에서도 신입 직원이 들어와 일을 다시 가르치는 것보다 낫다.

박은홍 영창실리콘 대표이사와 지난 5월 인터뷰를 진행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박은홍 대표이사는 ‘문화력’이라고 일컬었다. 직원들이 기업에 적응하고, 특색 있는 정체성을 가진 회사에 다닌다는 느낌을 전달하기 위한 문화력이다. 기업이 틀거리뿐 아니라 콘텐츠에 고민을 해야 하는 이유다. 외국인 직원을 위한 한국어 교실을 통해 외국인 직원들뿐 아니라 모든 직원에게 영창실리콘은 직원들의 적응과 지원을 위해 직접 노력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이다. 그러한 메시지는 기업 내부의 신뢰를 돈독하게 한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면 전 직원이 변화에 동참할 수 있다. 이외에도 직원들이 직접 운영하는 음악 방송도 기업 내 프로그램으로 진행하고, 책방, 퇴근 후 쉽게 즐길 수 있는 바(bar)도 운영한다.

익숙한 것으로부터 결별은
내부 저항을 마주치기 마련

영창실리콘 일터혁신의 성과는 앞서 확인했다시피 매출 규모와 고용 규모의 증대로 나타났다. 박은홍 대표이사에 따르면 직원 한 명당 생산성도 높아졌다. 회사 문화나 직원들의 태도도 달라진 것으로 보인다. 영창실리콘 사내 설문조사에 의하면 직원들의 업무 만족도와 애사심이 개선된 것으로도 나왔다. 아울러 경영진들의 의식도 달라지고 있다. 박은홍 대표이사는 “회사는 직원을 단순히 경영활동의 소모품으로 인식하는 것이 아닌 직원 각자가 주체성을 가지고 의미 있게 업무를 주관할 수 있도록 기회를 부여하는 조력자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한편으로 일터혁신을 통한 사업 전환 과정에서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박은홍 대표이사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헤어져야 하니까 내부적인 저항이 따른다”고 설명했다. 비효율적이지만 습관화돼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낭비지만 개인한테는 편한 업무행태를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특히 이런 것들은 객관적으로 파악하기 힘들기 때문에 일터혁신 컨설팅 같은 외부의 시선을 빌리는데, 여기서 내부의 저항이 발생할 수 있다. 결국 인정과 수용성의 문제인데, 박은홍 대표이사는 “수용을 위해선 자발적 참여가 전제돼야 하고, 더디지만 필요성을 인지하는 초기단계부터 정성을 들였다”고 당시를 기억했다. 이를 통해 현장 작업자들의 업무 프로세스를 개선했다. 이동 동선도 바꿨는데, 기계설비 때문에 돌아갔던 경로에서 설비 레이아웃을 변경해 동선상 낭비되는 시간을 없앴다. 예전부터 계속 돌아간 게 몸에 붙었으니 비효율적이라도 바꾸지 못했던 것들이다.

일터혁신으로 구축한 신뢰
기업 성장과 성숙에 도움

기술혁신의 구현과 완성을 위해 기업은 일터혁신 방안을 동시에 고려해야 한다. 기술이 변화하는 만큼 변화를 받아들이고 주도하는 주체(일터의 구성원)의 변화인 조직혁신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기술혁신이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기 위해서는 일터혁신과 결합돼야 한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 대학 비즈니스혁신센터 분석에 따르면 기업의 혁신성과에 R&D와 ICT 투자를 통한 기술혁신이 25%를 기여하는데 비해 경영, 조직, 작업과 관련된 일터혁신의 기여도는 75%에 이른다. 일터혁신이 기술혁신의 레버리지로 작용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창실리콘 역시 사업 전환이라는 기술혁신의 과정에서 문화력을 고민했던 것은 기술혁신의 성공적인 안착을 위해서였을 것이다. 박은홍 대표이사는 노사발전재단의 노동전환 일터혁신, 자체로 진행한 조직문화 혁신이라는 일터혁신 과정에서 노사가 함께 공유한 키워드는 신뢰를 기반으로 한 성장과 성숙이라고 했다. 일터혁신으로 구축한 신뢰를 통해 새로운 단계로 성장하고 성숙해나간다는 의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