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 손님을 다 맞다보면 기가 세질 수밖에 없어요”
“별 손님을 다 맞다보면 기가 세질 수밖에 없어요”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7.19 09:15
  • 수정 2023.07.19 09: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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셔터가 내려가도 은행 불은 안 꺼진다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인지, 서류 강화인지···”

대학 졸업 후 꿈꾸던 은행에 바로 취직했다. 대면 서비스 업무인 걸 잘 알고 있었지만, 처음은 힘들었다. 첫 1년 동안은 일이 끝나면 집에 들어와 말할 힘도 없었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침대 위에 누울 수밖에 없었다. 점점 적응하면서 실적도 올리고, 여러 업무를 경험하며 이래서 내가 은행원을 꿈꿨지 했다. 그렇게 만 4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지점 통폐합도 겪어보고, 코로나19도 겪어보고, 은행 돈잔치한다는 뉴스도 들었다. 지난 6월 30일 익명을 요청한 시중은행의 은행원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5대 은행의 간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5대 은행의 간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은행원의 하루는 어떻게 돌아가나?

보통 오전 8시에서 8시 15분 사이에 지점으로 출근한다. 퇴근은 별 일 없으면 오후 6시에 퇴근한다.

- 근로계약상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아닌지?

오전 9시부터는 손님을 맞아야 한다. 그전에 영업 준비를 하는 거다. ATM 시재를 확인하고, 금고에 있는 돈을 꺼내와 ATM에 맞추고, 수표 교환할 거 있으면 하고, 전날 정리해뒀던 서류를 본점에 보낸다. 그리고 오전 9시 셔터를 올린다. 이걸 오전 9시부터 하면 창구에 손님 맞을 직원이 줄어드니 고객들의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 그래서 일찍 출근해서 이러한 모든 준비들을 해야만 한다.

- 그럼 오전 9시부터 오후 4시까지 고객 응대를 하고 퇴근 전까지는 어떤 일을 하는가? 고객들은 ‘은행 왜 이렇게 빨리 닫나’라고 말을 하기도 한다.

오후 4시까지만 손님을 맞는 게 아니다. 은행 셔터를 내리기 전에 들어온 손님들까지 모두 상담하고 창구가 마무리된다. 이후에는 각자 시재 맞추고 통장 확인하고, 세금 정산하고 금고 마감을 한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그날의 실적 집계를 한다. 별 문제가 없으면 저녁 6시에 퇴근을 한다. 그런데 대부계는 더 바쁘다. 손님이 직접 오기보다는 문의 전화가 많이 온다. 신규 대출, 대출 연장 등등. 답을 하기 위해서 본점에, 공사에 전화해서 물어보고 고객에게 답변하고 그 사이에 책상 위에 서류는 쌓여간다. 저녁 6시부터 야근이다. 밀린 서류 정리하고 전산에 승인을 올리는 거다. 그러면 밤 10시쯤이 되는 경우도 있다.

- 8시에 와서 일하는 것, 야근하는 것에 대해 수당은 받나?

대부계 야근 때는 받았다. 그때는 PC가 켜져 있으니까, 일한 시간으로 산정되는 거다. 그런데 아침에 일찍 와서 개점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을 하는 시간은 PC를 끈 상태, 즉 오프라인 상태에서 일하는 거라 보상은 없다.

- 점심시간에 식사는 제대로 하나?

업무에 따라 다르지만 대부계에 있었을 때는 점심을 거를 때가 종종 있었다. 지금 수신계에서는 그래도 먹는 편이다. 작년에 금리가 급격하게 올랐을 때 예금 금리도 올라 은행에 고객들이 한꺼번에 몰릴 때가 있었는데, 그때는 식사를 간단하게 떼우고계속 일을 해야만 했다. 옆에 있는 직원들도 마찬가지였다.

- 대면 업무다 보니 많은 일을 겪었겠다.

많은 일을 겪는다. 처음에 일했을 때 어떤 고객분은 매일 5번씩 찾아와서 비밀번호를 바꾸고 갔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려서다. 술에 취해 오는 손님들도 있다. ATM에 대변을 보는 고객도 있고, 은행원들 월급을 물어보는 손님도 있다. 별 일을 다 겪다 보니 기본적으로 동료들이 기가 세졌다. 기가 세지지 않으면 정신적으로 피폐해진다.

- 은행 점포 통폐합으로 인한 현장의 어려움은 무엇인가?

예전에 통폐합이 된 적 있었다. 지점 통폐합을 하면 이전 지점에서 거래하던 고객들이 찾아와 초반에는 정말 힘들다. 그러다 손님들 발길이 점점 끊긴다. 멀리까지 오기 힘드니까 가까운 다른 은행을 찾는 거다. 다만, 수신계는 그렇게 하면서 어느 정도 괜찮아지는데, 대부계는 정말 과부하 걸린다. 고객 입장에서는 대출을 했는데, 그 대출을 다른 은행으로 옮길 수도 없으니 통합 지점으로 계속 오는 거다. 손님도 직원도 같이 힘들어진다.

- 금융소비자보호법 시행으로 현장은 오히려 혼란스럽다던데, 어떤가?

금융소비자 보호 강화인지 서류 강화인지 잘 모르겠다. 매뉴얼을 숙지하면 어느 날 갑자기 매뉴얼이 바뀐다. 시행일에 임박해서 공지가 되면 은행직원도 당황하고 고객도 당황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자필 서명이 없었던 항목에 ‘설명을 들었음’이라 쓰고 자필 서명하는 게 추가된다. 그러면 최근에 받았던 양식은 다 없애고 다시 작성해야 한다. 양식의 빈번한 변경은 직원들에게 업무 부담이다. 영업점을 방문한 고객들에게도 큰 혼선을 줄 수밖에 없다. 거기다 미스터리쇼핑(외부업체 조사원이 고객으로 가장해 평가하는 것)도 늘어 더욱 힘들다.

- 고객들은 어떤 반응인가?

고객들도 예전에는 안 썼는데, 왜 써야 하냐며 짜증을 내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러한 불만들을 고스란히 듣고 고객들에게 설명해야 하는 것도 영업점 직원들의 몫이다.

- 서류에 서명을 많이 한다고 소비자 보호나 민원 해결이 되는 건 아니지 않나?

자필 서명은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도 필요하고, 직원들을 위해서도 중요하다. 나중에 분쟁이 생겼을 때 단서가 되기 때문이다. 다만 자필 서명은 했지만, 고객들이 설명을 못 들었다고 주장하면 직원들이 설명의무 위반으로 처벌 받는 경우도 있다. 그러면 서명을 받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하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그럼에도 금융소비자 보호를 위해서 서명을 받고 설명을 잘하는 것이 중요한데, 관련 서식이 계속 바뀌는 것은 직원들에게 큰 어려움이다.

- 코로나19 때는 어떻게 일했나?

코로나에 걸렸는데, 첫 날은 그냥 출근해 마스크 쓰고 일했다. 그때 대부계에 있었는데, 가계대출 담당자가 저 포함 2명이었다. 다른 분이 휴가를 가서 업무를 볼 사람이 없었다. 서류는 쌓이는데 이걸 본점에 보내지 못하면 감점이다. 코로나 걸렸는데 마음 편히 아프지도 못하고 업무적으로는 평가 감점까지 당하는 거다.

- 코로나19 시기에 영업시간 단축을 했다가 다시 되돌렸다. 일터의 분위기는 어땠는가?

출퇴근 시간은 똑같았다. 오전 8시까지 출근해서 손님 맞기 전에 준비 똑같이 했고, 지점 셔터 오후 3시 반에 내리면 똑같이 남은 업무를 보고 오후 6시에 퇴근했다. 손님이 많이 몰렸으니까 업무 강도 자체는 전과 비슷했다. 물론 손님 받는 마지막 시간이 30분 당겨져서 그건 편했다. 오후 4시에 손님 맞아서 오후 5시에 상담 끝났다면, 그 정도는 아니게 됐으니까. 지금은 익숙해져서 괜찮지만, 영업시간이 돌아온 직후에는 적응하기 힘들었다.

- 정부의 은행 돈잔치 발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직원들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일단 은행은 공기업도 아니고 공공기관도 아니다. 이윤을 내야 하는 주식회사다. 그리고 은행은 여러 일을 한다. 외환 거래도 하고 수출입도 하고, 하나은행 경우 외국환 실적이 다른 은행에 비해 크다. 오히려 예대마진은 줄기도 한다. 대출금리도 올라가고 예금금리도 같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과거에도 금리의 높고 낮음에 따라 성과급 큰 차이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물론 임원들의 성과급은 클지 몰라도.. 직원들은 전혀 아니다. 정부가 프레임을 씌웠다는 것이 직원들의 생각이다.

- 금융노조에게 하고 싶은 말은?

주4일제 도입에 힘써줬으면 한다. 삼성도 한 달에 한 번은 주4일제를 시행한다고 하고, 다른 기업들도 주4일제나 주4.5일제를 도입한 사례들이 있다고 들었다. 근로시간 단축을 비롯해서 노동 환경을 바꾸는 데 좀 더 진취적으로 접근해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