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억압자는 억압자에게 배운다
피억압자는 억압자에게 배운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2.06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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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 추모현장에서의 보도통제
선의는 이해하지만 MB는 닮지 않았으면
정우성 wsjung@laborplus.co.kr

지난 1월 31일 청계광장 옆 예금보험공사 앞에서는 2차 용산참사 범국민 추모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이날 추모집회를 불법집회로 규정하고 행사 시작 시간인 오후 4시 이전부터 청계광장을 경찰버스를 이용해 차단했다. 이에 유족과 대책위, 참가자들은 오후 4시 30분 경 예금보험공사 앞 도로를 이용해 집회를 시작했다.

주말에 열린 추모집회고 검찰의 수사가 편파 수사로 흐르고 있다는 여러 정황이 포착되고 있는 상황이기에 많은 기자들이 취재에 나섰다. 그러나 기자들이 취재수첩을 꺼내고 카메라를 참가자들에게 들이대는 순간, 이를 제지하는 손이 있었다.

“어디 기자시죠?”
“OOOO인데요”
“기자시면 저쪽으로 가셔서 기자 확인을 해주세요”
“네?”


이들이 기자들을 이끌고 간 곳에는 이미 여러 기자들이 명함이나 기자증을 보여주고 회색바탕에 숫자가 적혀있는 끈을 받고 있었다. 이 끈을 팔뚝에 묶어야지만 취재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유를 물어보니 당시 현장에서 끈을 나눠주던 김 모씨는 “보수언론이 철거민 피해자들을 테러리스트라며 왜곡보도를 일삼고 있다”며 “경찰의 불법 채증도 막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보수언론(물론 다들 아시겠지만 조중동)은 취재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에 일부 기자들은 보도통제라면 반발했지만 본 기자를 포함한 대다수의 기자들은 띠를 받기 위해 기자증을 제출하고 명함을 전달했다.

여기서 더 황당한 사실은 이 띠를 나눠주던 사람들이 유족도, 전철련 소속도, 대책위 소속도 아니었다는 것이다. 용산참사 대책위 관계자는 기자를 만나 그들이 “네티즌”이라며 “도와주기 위해 왔다는데 뭐라고 할 수는 없지만 저런 행동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욕하면서 따라 해서야

분명 그 띠를 나눠줬던 네티즌들의 심정은 이해된다. 보수언론이 전철련을 비롯한 철거민들에게 가한 언어 폭력이 도를 지나친 면이 있다는 사실에 공감한다. 또한 경찰이 기자를 사칭해 참가자들을 불법 채증했던 사례도 여럿 있었으니 이 또한 이해된다.

그러나 그렇다고 대중집회에 대해 관계자들도 아닌 사람들이 기자들의 신분을 일일이 확인하며 보도통제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보수언론이 미우면 그들의 취재요구에 협조하지 않으면 된다. 그렇다고 그들의 취재 자유까지 빼앗을 수는 없다. 얼마 전에 있었던 경인운하 설명회 자리에 환경단체와 진보매체 기자의 출입을 방해한 보수성향의 경인운하협의회 회원들과 이들이 다른 점은 없는 것이다.

파올로 프레이리는 그의 저서 <페다고지-피억압자를 위한 교육>에서 “피억압자는 자신의 내부에 깊숙이 자리잡은 이중성으로 고통을 겪는다. 그들은 자유가 없으면 진정으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진정한 존재를 바라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을 두려워한다”고 말하고 있다.

즉 피억압자는 그동안 억압 받아온 자신의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지 않으면 억압자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거나, 억압자가 없어도 자신 스스로를 억압하게 된다는 것이다.

MB정부가 YTN 구본홍 사장 선임, KBS 정연주 사장 해임 등 위로부터의 억압을 통한 보도통제를 시도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도 어쩌면 억압자의 행동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지 않나 고민해보아야 한다.

그것은 당시 참석자 중 일부의 행위라거나, 막대한 자본을 통한 이데올로기 장악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는 이야기를 십분 이해할 수 있지만 피억압자는 억압자를 뛰어넘어야 해방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우성의 양자택이(兩者擇二)   하나의 정답은 없습니다.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