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오만도 기업노조, 금속노조 복귀··· “새 역사 쓰겠다”
발레오만도 기업노조, 금속노조 복귀··· “새 역사 쓰겠다”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08.01 12:26
  • 수정 2023.08.09 11: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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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파괴 표본’ 발레오만도 기업노조 13년 만에 금속노조 통합
산업전환 대비 없는 공장, 커지는 불안··· “현장 요구 더 커질 것”
[인터뷰] 신시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지회장-박문환 발레오경주노조 위원장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옛 발레오만도) 기업노조, 발레오경주노동조합이 산별노조 조직형태변경 투표를 거쳐 금속노조로 전환을 결정했다. 사측이 이명박 정부의 지원, 노무법인 창조컨설팅 자문을 받아 금속노조를 파괴한 지 13년 만이다. 

이명박 정권 아래 대구 상신브레이크, 구미 KEC, 아산 유성기업, 안산 SJM, 만도까지 이어진 ‘직장폐쇄를 통한 노조 무력화’의 첫 신호탄이기도 했던 발레오 노동자들은 13년 만에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새로운 역사를 쓰겠다”는 신시연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 지회장과 박문환 발레오경주노동조합 위원장을 조직형태변경 투표 결과가 발표된 지난 7월 25일 만났다. 

*발레오전장시스템코리아 경주공장은 자동차 스타터 모터와 전류를 공급하는 교류 발전기(알테네이터) 모터가 주요 생산품이다. 

(왼쪽부터) 박문환 발레오경주노조 위원장, 신시연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왼쪽부터) 박문환 발레오경주노조 위원장, 신시연 금속노조 경주지부 발레오만도지회 지회장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현장 불만, 미래 불확실성 커지는데
직원수↓··· 조직력 한계 봉착

- 발레오경주노조가 금속노조로 통합을 결정한 배경은? 

박문환 : 현장의 불만은 커져가는데 조직력의 한계는 명확히 느꼈기 때문이다. 회사는 매출 5,000억 원 도달 시 노조파괴 이전 수준으로 단체협약 원상회복을 약속했지만, 지키지 않았다. 노조파괴 이후 크게 오른 노동강도도 꾸준히 문제였다. 더는 참을 수 없다는 현장의 분노가 커졌다. 

반면 직원 수는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 발레오 공장 생산직 367명 중 앞으로 매해 40명씩 퇴직하게 된다. 2030년엔 생산직이 100명 아래로 떨어진다. 이런 상황에서 금속노조와 기업노조 둘로 현장이 나뉘어 있으면 결국 조합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다고 판단했다. 특히 지난해 초 위원장직을 맡으면서 어떻게 하면 통합다운 통합을 해볼지 본격적으로 고민해 왔다. 고민의 결과는 지난해부터 공동교섭, 공동투쟁으로 이어졌다. 조직 통합에 대한 조합원들의 마음도 점점 열렸다.

신시연 : 박문환 위원장과 내가 비슷한 시기에 당선됐다. 금속노조가 과반노조지만 당시 180명 정도인 기업노조를 빼고 단체행동을 해선 효과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당선되자마자 기업노조에 노사협의회부터 같이 하자고 제안했다. 박문환 위원장이 흔쾌히 동의했다. 지난해 노사협의회를 세 번 같이 해보니 단체교섭도 함께할 수 있단 확신이 생겼다. 그렇게 지난 2년간 큰 이견 없이 두 번의 단체교섭을 치렀다. 

박문환 : 어떻게 조합원들이 노조파괴 이후 빼앗긴 실질적인 혜택을 돌려받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며 달려왔다. 신시연 집행부와 방향성도 맞았고 서로 접촉면을 점점 넓히다 보니 오늘의 결과가 나온 것 같다.

- 2010년 노조파괴 이후 금속노조는 무력화됐지만 2020년 다수노조가 되고, 올해 기업노조와 통합하기까지 그 동력은 어디에 있었다고 보나? 

신시연 : 투쟁 동력이 계속 살아 있었다고 볼 수는 없다. 2010년 2월 직장폐쇄 이후 회사는 같은 해 6월 조직형태변경(금속노조 탈퇴), 기업노조를 설립했다. 그리고 금속노조 소속 조합원 29명이 징계·해고됐다. 공장 안에 7~8명 정도만 금속노조를 지켰고 밖에서 복직 투쟁을 했다. 그러다 법원은 29명에게 회사가 내린 징계가 부당하다는 판정을 내렸고, 2017년 9월 해고노동자 13명이 공장에 복귀했다. 당시 불이익을 견디다 못해 기업노조에서 넘어온 조합원들까지 합쳐서 금속노조는 60여 명 규모였다. 2017년 해고노동자의 복직이 씨앗이 돼 본격적으로 금속노조를 키우기 위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었던 거다.

- 노조파괴 이후 현장은 어떻게 바뀌었나? 

신시연 : 우선 노동강도가 크게 올랐다. 2010년 조립 라인별 시간당 생산량은 165개에서 많아야 180개였다. 그런데 지금은 280개, 300개까지 생산한다. 

박문환 : 약간의 기계 개선도 있었지만 현장 노동자들이 110%, 120%씩 무리하면서 생산 속도를 맞추고 있다고 보면 된다. 

신시연 : 노동자들이 무리한 배경엔 성과급이 있었다. 우선 일의 속도를 못 맞추면 노동자를 라인에서 뺀다. 그리고 a, b, c, d 등급으로 나눠서 연말 성과급을 차등 지급했다. 낮은 등급을 받으면 연말 성과급이 마이너스인 경우도 생기니 현장은 어떻게 됐겠나. 업무 시작 전에 출근하고 업무 마감 종이 쳐도 집에 안 가고 생산량을 맞췄다. 이걸 우리는 ‘무료 서비스 노동’이라고 표현한다. 

박문환 : 이렇게 노동강도는 올랐는데 노조파괴 이후 연봉은 평균 1,500만 원 정도 깎였다. 월 100만 원 이상 노조파괴 이전과 차이가 난 거다. 

두 차례 공동 교섭···
조직 통합 마음도 열려

- 지난해부터 두 차례 공동 단체교섭, 단체행동을 했다. 어떤 성과가 있었나? 

신시연 : 이번 집행부를 맡으면서 목표는 크게 세 가지였다. 금속노조 강화, 단체협약 원상회복, 주간 2교대제 쟁취다. 우리 공장은 아직 주야 맞교대제인데 경주 지역 자동차 부품사들은 2013년부터 주간 2교대제를 한다. 10년이나 늦은 거다. 현재 생산직 평균 나이가 55세다. 이들이 30년 이상 주야 맞교대제를 했는데 얼마나 무리를 해왔겠나. 지난해 단체교섭에서 당장은 아니더라도 주간 2교대제 시작 시기를 못 박기 위해 파업이 길어졌다. 그러다 막판에 회사가 그간 해온 교섭안을 뒤로 하고 2008년 단체협약을 원상회복하겠다고 먼저 제안했다. 2010년 노조파괴 당시 단체협약이 2008년에 맺은 것이었다. 또 주간 2교대제는 2024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했다. 애초 두 가지 목표가 달성됐으니 파업은 3일 만에 종료했다.

- 올해 파업은 5일간 이어졌는데. 

신시연 : 올해는 2공장 매각 건이 있었다. 노조는 2공장 매각에 따른 직원 보상을 요구했고 회사가 거부하면서 파업이 길어졌다. 그러다 마지막에 회사가 매각을 철회하겠다고 밝혀서 파업도 일단락이 됐다. 

- 2공장 매각에 대한 불씨는 남은 상황인가? 

박문환 : 불씨는 여전히 남아 있다. 언제든 노동조합이 약해지면 매각을 준비할 거라고 본다. 1공장은 승용차, 2공장은 상용차 부품을 만든다. 2공장은 40년 된 기계가 있을 정도로 노후화된 데다가 다품종 소량 생산이 이뤄지고 있다. 만드는 부품 수만 몇백 가지라고 들었다. 회사 입장에선 2공장 수익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임금 수준이 낮은 인도네시아 등으로 매각하려는 거다.

전동화 대비 없는 공장···
마른수건 짜기 속 노동자 미래는?

- 발레오 경주공장은 엔진 부품을 생산한다. 엔진이 필요 없는 전동화 영향으로 공장의 미래가 불확실한 상황인데. 

신시연 : 회사가 뭘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전기차로 전환되면 엔진 부품이 필요 없으니까. 현대차도 엔진 개발을 안 한다. 발레오는 경주 공장에 더는 투자하지 않는다. 대신 국내 공장에 새로운 법인을 만들어서 외국인투자촉진법 등 혜택을 새롭게 받으면서 미래차 관련 부품을 생산하는 거다. 지난해 발레오는 대구에 5,600만 달러(약 738억 원)를 투자해 자율주행차 부품 공장을 짓기로 했다. 경주공장에선 최대한 끝까지 버티다가 끝내려는 것 같다. 

박문환 : 지금 만드는 제품의 계약기간이 2027년까지다. 그 뒤로 만들 제품이 없다. 회사 경영진이 새로운 제품 수주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볼 땐 그렇게 느껴지지 않는다. 발레오 자본은 1999년 만도기계 경주공장을 1,650억 원에 인수한 뒤 기술 사용료, 경영 자문료 등으로 5,000~6,000억 원은 가져갔다. 경주공장은 가만히 두다가 나중에 땅만 팔아도 충분히 손해 안 보는 장사를 한 거라고 판단하지 않겠나. 그 사이에 직원들의 불안만 점점 커지는 거다. 

- 발레오 경주공장의 미래에 대해 노조가 회사에 요구하는 바는? 

신시연 : 노조는 자본이 뺏어간 것을 되찾기 위해 투쟁했고 통합까지 했다. 그러나 자본은 여전히 기술 사용료, 경영 자문료, 주주 배당 등으로 너무 많은 이윤을 챙겨가고 있다. 이건 우리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과도하게 착취당하고 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발레오 자본은 더 이상 자기들 주머니만 챙기지 말고 노동자들에 대한 정당하고 합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과도한 생산량 요구와 원가 절감을 중단하고 인간존중, 투명경영으로 신뢰를 얻기를 바라며 미래 먹거리에 대한 희망을 제시하길 촉구한다. 

- 덧붙일 말은?

신시연 : 사필귀정이다. 자본이 노조를 파괴해도 결국 노조는 하나가 됐다. 13년 전 자본이 노조파괴를 통해 임금을 빼앗아 가고 단체협약도 축소시켰지만 노조 몫을 다시 찾았다. 우리와 비슷한 일을 겪은 노조와 노동자들에 승리의 기운을 줬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회사는 산업전환기에 대비한 투자 없이 마른수건 짜듯 버티겠다고 한다. 현장에선 이런 회사를 신뢰할 수 없다. 발레오 그룹도 잘 판단해야 한다. 오너가 없다 보니 전문 경영인이 본인 임기에만 성과를 내기 위해 무리한 긴축 경영 등으로 현장의 불신만 키우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 현장에선 더 강해진 조직력을 바탕으로 더 높은 요구가 나올 거라고 본다. 회사가 조삼모사를 반복하지 않길 바란다. 

박문환 : 노조가 통합됐지만 현장에는 몇 개 조직이 있다. 노조의 진정한 통합을 위해서는 현장 조직들이 적극적으로 협조하고 말로만이 아닌 노동자는 하나라는 대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본다. 또 다른 조직으로 갈라진다면 결국 우리 살을 갉아먹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현장에서 서로가 서로를 보듬어 나가며 노조를 탓하기보다 믿는 것, 그것이 내가 바라는 통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