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 마음대로 노동시간 들쭉날쭉’ 시간선택제공무원의 비애
‘상사 마음대로 노동시간 들쭉날쭉’ 시간선택제공무원의 비애
  • 김광수 기자
  • 승인 2023.08.04 14:37
  • 수정 2023.08.05 10: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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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생존권과 직결되는 노동시간, 임용권자 임의로 변경 가능
임용권자 권한 과대해···‘갑질’로 이어지기도
2022년 9월 16일 시간선택제공무원노조가 국회 앞에서 노동시간 선택권 보장을 요구하며 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

김대현(41) 씨는 2018년부터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서 운전직(운전서기보) 공무원으로 일해왔다. 그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의 서울 전역에 퍼져 있는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지역사무소에서 서울과학수사연구소로 부검 샘플 등을 차량으로 운반하는 업무를 한다. 김대현 씨는 “운전직으로 입직한 후 계속 샘플 운반 및 차량 유지·보수 업무를 전담해 왔다. 나름대로 이 일에 만족하면서 지내왔다”고 이야기했다. 하지만 “얼마 전 상사가 바뀌었다. 그 후 해당 상사와 업무 분담 관련 마찰이 생겼다. 상사는 운전이나 차량 유지·보수와 관련 없는 일을 계속 내게 맡기려 했다”며 “내 소관 업무가 아니라 거부했다. 그러자 상사가 원래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규정상 허락해야 하는 유연근무를 문제삼는 등 여러 가지 ‘갑질’을 시작했다. 상사와의 갈등이 계속되자 불안 증세가 생겼다. 증세는 점점 심해졌다”고 토로했다. 결국 김대현 씨는 의사에게 관련 병이 발발해 집중적인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을 받았다. 김대현 씨는 의사의 진단서를 지난 7월 18일 기관에 제출하며 지난 7월 25일부터 60일간 병가를 신청했다. 그러자 상사는 돌연 주 35시간인 그의 노동시간을 주 20시간으로 변경하려 했다.

김대현 씨는 당황스러웠다. 상사가 노동시간을 변경하면 병가 중 김대현 씨의 급여가 대폭 삭감되기 때문이었다. 공무원인 김대현 씨는 정당한 절차를 거쳐 병가를 승인받을 때 최대 60일까지 기존에 받던 급여의 100%를 받으며 치료를 받을 수 있다. 공공노동자의 원활한 치료를 위해 만들어진 규정이다. 하지만 주 35시간이던 김대현 씨의 노동시간이 주 20시간으로 줄어든 상태로 병가가 시작되면 김대현 씨는 병가 동안 기존에 받던 급여의 약 57%밖에 받지 못하게 된다. 병가를 마치고 회복된 상태로 복귀해도 그는 평상시 받던 급여의 57%를 받으며 일을 해야만 한다.

김대현 씨의 상사는 노동시간 변경을 요청하는 공문을 국립과학수사연구원 본원에 보내며 “상기 공무원(김대현 씨)은 치료를 필요로 하는 자로 안정적인 외래진료 등 원활한 치료가 필요하므로 치료에 전념하도록 돕기 위해 노동시간을 줄인다”고 적시했다. 이에 관해 김대현 씨는 “만약 내가 병가를 다녀온 후에도 차도가 없고 불안 증세가 계속돼 일을 하는 것에 지장이 있다면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다. 이 경우엔 나조차도 그것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병가를 신청하자마자 노동시간을 줄이는 것은 나로서는 단지 병가 동안 내 급여를 줄이려는 의도로 볼 수밖에 없다”며 “줄어든 급여로 병가 기간에도 생계에 대해 걱정해야 할 텐데 그것이 어떻게 치료에 전념하는 것으로 연결될 수 있겠나”고 말했다. 김대현 씨는 상사의 갑작스러운 노동시간 변경에 대해 “자신의 지시에 불응한 것에 대한 ‘괘씸죄’”라고 추측했다.

임용권자가 임의로 노동시간 변경
생존권과 연결된 노동시간에 협의권조차 없어

김대현 씨는 자신의 노동시간을 상사가 임의로 변경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불합리한 규정이라고 이야기했다. 일반 공무원은 자신이 원할 때만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다. 공공노동자가 아닌 민간노동자를 규율하는 근로기준법도 노동시간은 “노동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위치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근로기준법은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소정노동시간을 명시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처럼 노동시간은 노동자의 보수와 밀접한 관련이 있고, 노동자의 생존권과 직결되는 사안이기 때문에 당사자와 합의·협의는 꼭 필요한 절차 중 하나다.

그런데도 김대현 씨의 상사가 그의 노동시간을 임의로 변경할 수 있었던 이유는 김대현 씨가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이기 때문이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는 “능력과 노동 의욕은 있으나 종일 노동이 곤란한 인재들에게 적합한 일자리”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2014년 도입됐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의 노동시간은 현행법상 “임용권자 또는 임용제청권자가 주 15~35시간 범위에서 지정”할 수 있다. 따라서 김대현 씨처럼 상사가 일방적으로 노동시간을 절반 가까이 줄여도 법적으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는 없다. 김대현 씨도 인사 담당 공무원과 기관 소장 등과 면담을 진행하며 일방적인 노동시간 변경의 부당함을 주장했으나 ‘법 규정이 그래서 어쩔 수 없다’는 원론적인 답변만 받았다.

제도 도입 당시엔 “자유로운 시간 선택 가능”
“실제론 9년간 12번 바뀜 당해”

정성혜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에게 ‘시간협의권’이 주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성혜 위원장은 “처음에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를 만들 때, 정부와 지자체에서 노동자 본인이 자유롭게 시간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인 것처럼 홍보했다”고 말했다. 실제 행정안전부(당시 안전행정부)에서 2013년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제도를 만들 때 보낸 보도자료엔 ‘본인이 원하는 시간만큼 선택하여 노동할 수 있도록 시간선택제 공무원 제도를 도입한다’고 명시돼 있다.

2013년 9월 행정안전부(당시 안전행정부)가 배포한 보도자료. “본인이 원하는 시간만큼 선택하여 근무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

정성혜 위원장은 “하지만 실제로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으로 입직해서 보니 우리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에겐 아무런 시간협의권이 없었다. ‘시간 선택당함’의 연속이었다. 언제 내 노동시간과 보수가 절반으로 줄어들지 몰라 매일 불안해하는 게 우리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의 삶”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나도 2015년 중앙행정기관에 임용된 이후 12번 노동시간이 변경됐다. 그때마다 임금이 큰 폭으로 요동쳤다. 생활은 불안정해졌고, 계획했던 미래는 매번 변경해야만 했다. 공무원 신분임에도 생계 곤란을 겪지 않기 위해 겸직 허락을 받고 부업을 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김대현 씨는 “시간선택제 채용 공무원이 만들어진 처음 취지는 좋다고 생각한다. 입직 당시 나는 5살, 7살 자녀가 있었다. 아이들을 돌보며 일해야 했다. 그래서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입직했다. 당시엔 상대적으로 적은 시간 일하면서 직장을 다닌다는 것이 꽤 만족스러웠다”고 말했다.

이어 “하지만 임의로 시간을 변경당해 보니 이 제도에 문제점이 많다는 것을 실감했다. 시간을 당사자 간 ‘합의’하지는 못 해도 ‘협의’는 할 수 있는 수준까지는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나처럼 억울하게 보복성으로 시간이 줄어드는 경우에도 ‘협의하지 않았다’며 항의라도 해볼 수 있지 않겠냐”고 이야기했다.

전환공무원과 채용공무원 있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만 시간협의권 부재

현재 시간선택제공무원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김대현 씨처럼 시간선택제 공무원으로 공직사회에 들어온 이들은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이라 불린다. 반면, 전일제 공무원으로 노동하다 공무원 본인의 필요에 따라 시간선택제 근무를 신청해 노동하는 공무원은 시간선택제 전환 공무원이라고 한다.

시간선택제 전환공무원은 자신의 선택으로 다시 전일제로 돌아갈 수 있다. 따라서 불합리한 대우를 당하는 일이 거의 없다. 반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임용권자가 임의로 노동시간을 정한다. 그뿐만 아니라 승진·보수 등이 노동시간에 비례해 산정되는 탓에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에 대한 임용권자의 권한이 매우 크다. 이에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은 상시적 고용불안과 생계 위협 등의 문제를 겪는다. 심지어 노동시간이 갑자기 줄어들어도 공무원인 탓에 원칙적으로 영리업무 겸직 또한 금지된다.

ⓒ 전국시간선택제공무원노동조합

정성혜 위원장은 “일방적인 노동시간 변경으로 당사자가 퇴사하는 경우가 많다. 다양한 문제점들이 많이 노정돼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의 퇴사가 늘었다. 정부나 지자체에서도 문제가 많은 것을 인식했는지 더 이상 채용도 안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전체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 중 근무 임용 포기(퇴사 포함)를 선택한 이들은 전체 시간선택제 공무원의 36%다. 지방직은 2019년에, 국가직은 2020년에 채용을 멈췄다. 현재 전국적으로 3,610명(국가직 1,511명·지방직 2,099명, 2022년 12월 31일 기준)의 시간선택제 공무원만이 일하고 있다.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은 주로 주 20시간제, 혹은 주 35시간제로 노동한다. 주 20시간 노동자들은 파트너 한 명과 짝을 이뤄 오전 노동자와 오후 노동자로 노동하는 경우가 많다. 주 35시간 노동자들은 전일제 노동자들보다 매일 1시간씩 적게 일한다. 많은 경우,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은 주 20시간 노동과 주 35시간 노동 중 하나를 선택해 일한다.

정성혜 위원장은 “기관 사정에 맡게 하나의 노동시간을 택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육아휴직, 채용 등으로 기관의 인력 운용에 변경 사항이 생기면 제일 먼저 우리의 노동시간을 조정하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일반직공무원과 채용경로, 시험 과목 동일
40시간까지 노동시간 선택 범위 늘려야

정성혜 위원장은 “일부 관리자들은 ‘채용 경로가 다르니 일부 차별해도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오해다. 지방직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은 전일제 공무원처럼 공개경쟁채용을 통해 동일한 과목을 응시한 후 입직한다. 국가직은 경력 채용을 하거나 자격증 소지자를 채용한다. 정당하게, 전일제 공무원과 동일한 경로로 입직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설사 채용 경로가 다르다고 해도 그런 이유로 불합리한 차별이나 부당한 대우를 하는 것이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이 가장 원하고 있는 것은 ‘시간선택권 협의조항’의 신설이다. 이들은 적어도 자신의 생존권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노동시간의 변경에 자신이 협의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 정성혜 위원장은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들 또한 겸직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적은 시간 일해야 하는 사유가 해소된 노동자의 경우, 전일제 등으로 전환하는 것도 고려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방자치단체 243개 대상으로 조사해 본 결과 180개 지방자치단체 인사부서 중 79개(43.9%)의 기관에서 주 40시간까지 노동시간 선택 범위를 늘리는 것에 동의하고 있다. 35시간 노동하는 시간선택제 채용공무원의 경우 사실상 전일제 공무원과 거의 같은 분량의 업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일단 적어도 자신의 노동시간 변경에 의사표시 정도 할 수 있는 ‘시간선택권 협의조항’ 신설은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