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노동에 제값 치러야 이용자도 합당한 서비스 받는다”
“돌봄노동에 제값 치러야 이용자도 합당한 서비스 받는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8.08 01:45
  • 수정 2023.08.08 0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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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은 일자리·서비스 질 개선 동기 부족해···공공이 나서야”
[인터뷰]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보건복지부가 사회서비스 고도화 추진 방향을 지난 6월 제시했다. 사회서비스 질을 높이고 양을 확충해 보편 복지를 실현해나간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윤석열 정부는 민간 시장에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제공하도록 규제 개선, 품질 관리, 경쟁 여건 조성 등 민간에 지원하는 시장 관리자 역할에 집중하겠다고 했다.

지난 문재인 정부와는 상반된 정책 방향이다. 지난 정부는 당시 민간 시장 중심의 사회서비스 공급구조를 재편해 공공의 역할을 늘려가겠다는 기조를 내세웠다. 목적은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었다. 정부·지자체가 직접 사회서비스공단(현 사회서비스원)을 설립해 서비스 공급 인프라를 확충하고, 종사자 처우 개선을 통한 서비스 질 향상을 꾀했다.

노동·시민사회단체는 윤석열 정부 정책을 더 크게 비판했다. 이미 민간이 주도해온 사회서비스 분야에서는 ‘양질의 서비스 공급 부족’이라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또 급속한 인구구조 변화에 따라 ‘돌봄 공백’ 우려가 커지는 가운데 이에 대응하려면 공공의 책임이 더 강화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대안으로 제시된 사회서비스원이 2019년부터 출범돼 운영되고 있지만, 현 정부의 기조에 따라 그 역할은 축소되고 있다.

왜 사회서비스원을 통한 공공의 책임 강화를 요구하는 것일까? 서울시사회서비스원 설계 작업부터 참여해온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겸 서울여자대학교 사회복지학과 교수를 만나 관련된 이야기를 들어봤다.

* 인터뷰는 지난 7월 24일 서울 종로구 참여연대 1층에서 진행했다.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김진석 참여연대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돌봄은 경험 쌓여야 전문성 형성되는 대인서비스
“양질의 서비스는 고용안정 전제돼야 가능”

사회서비스의 핵심은 ‘돌봄’이다. 보건복지부도 아동, 노인, 장애인 등을 대상으로 한 돌봄서비스를 협의의 사회서비스 개념으로 정의했다. 정부는 보육서비스, 노인장기요양, 장애인활동지원 등 서비스를 지원하는 정책을 펼쳐왔다.

시장에서는 어떻게 거래되고 있을까? 거래는 ‘바우처’를 통해 이뤄진다. 바우처란 사회서비스 이용권으로, 이용자가 서비스 제공기관에게 제시해 일정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그 사회서비스의 수량 또는 그에 상응하는 금액이 기재된 증표다. 정부는 이용자에게 정부지원금을 현금 또는 현물로 주지 않고, 이용자가 제공기관으로부터 받은 서비스에 대한 대가를 바우처를 통해 제공기관에 지불하게 한다. 이용자는 시장에서 제공기관을 선택하고 바우처와 함께 경우에 따라 본인부담금도 추가 지불해 서비스를 받는다.

이때 다수의 이용자들은 서비스 신청 및 이용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는다. 제한된 시장 정보로 인해 이용자 특성에 맞는 양질의 서비스를 찾기 어렵고, 서비스를 제공받기 시작해도 언제 제공자(돌봄노동자)가 그만두게 돼 서비스가 중단될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김진석 위원장은 시장에 형성된 ‘돌봄 일자리의 낮은 질’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대부분 돌봄노동자들은 최저임금 수준을 받는 시급제로 고용된다. 고용이 불안정하며 경력을 인정받기 힘들다. 돌봄노동자들은 제공하는 서비스를 개선하면 자기 경력에 도움이 되고 추가적인 수입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이들을 고용한 제공기관 대부분도 정부지원금에 포함되지 않는 교육비를 별도로 들여 돌봄노동자를 훈련하겠다는 의욕이 없다.

김진석 위원장은 “사회서비스는 기본적으로 대인서비스다. 여기서 돌봄노동자의 전문성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경험이 축적되면서 만들어진다. 그런데 고용이 불안한 상황에서 노동자들은 자기 커리어를 개발하고 역량을 키울 동인이 없다”며 “이런 구조 속에서는 질적으로 좋은 서비스가 사실상 나오기 힘들다”고 했다.

이어 “결국 이용자들이 피해를 입는 상황이다. 특히 노인장기요양이나 장애인활동지원 등 서비스 이용자 입장에서는 언제 새로운 사람이 올지 모르는 상황에서 돌봄노동자와 적극적으로 관계를 맺기도 힘들다”면서 “시장에 남아있는 돌봄노동자들도 나름대로 불이익을 감수하며 일하고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어린이집 등 보육 분야는 상대적으로 보조금 정책이 추가로 형성돼 있어 월급제 고용이 더 많다. 그러나 보육노동자들도 경력이 쌓일수록 임금이 올라야 하지만, 인건비 부담을 느끼는 사용자들에 의해 경력을 스스로 깎는 이면 계약을 체결하는 경우도 많다고 김진석 위원장은 전했다.

민간 기관 많은 현실 고려해 제안된 ‘사회서비스원’
목표는 ‘서비스 질 향상’···”민간은 동기 부족해”

양질의 사회서비스가 공급되려면 돌봄노동자의 일자리 개선이 수반돼야 한다. 하지만 민간 시장에 정착된 돌봄 일자리 구조를 인위적으로 바꾸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자 공공에서 직접 사회서비스 기관을 세워 일자리 질을 개선하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이후 공단 형태의 기관 설립이 문재인 정부 공약으로 논의됐고, 현재는 지자체가 예산을 투입해 일부 사회서비스를 제공 또는 위탁 운영하는 ‘사회서비스원’이 경상북도를 제외한 16개 시·도에 설립돼 있다.

김진석 위원장은 사회서비스원이 외국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특한 제도라고 밝혔다. 스웨덴 등 유럽에는 지방자치단체가 직접 노동자를 고용하고 사회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사실상 고용이 안정된 공무원 신분의 돌봄노동자가 많다. 노조를 통한 임금 협상을 할 수 있고 기본적인 교육훈련 제도도 갖춰져 있어 청년들의 돌봄 일자리 유입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미 민간 기관의 사회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높았고, 공무원을 대폭 늘리는 것에 반감이 있는 여론까지 고려하면 일부 유럽의 시스템을 모방하기 어려운 현실이었다. 따라서 공공이 운영하는 기관을 설립해 질 좋은 일자리와 서비스를 제공하고 민간 시장의 문제도 차츰 개선하자는 취지에서 사회서비스원이 나온 것이라고 김진석 위원장은 설명했다.

이 같은 취지에 따라 지자체 최초로 서울시사회서비스원(이하 서사원)은 정규직·월급제로 돌봄노동자를 고용했다. 김진석 위원장은 “서사원의 정책은 큰 성과”라고 평가하며 “이로써 조직이 감당할 수 있는 적정 서비스 총량을 산정하고, 민간에서는 하기 힘든 2인 1조 팀제 운영 등이 가능해졌다”고 했다.

김진석 위원장은 “노인 요양의 경우, 고령의 여성 돌봄노동자가 욕창 등 방지를 위해 노인을 들어 올리는 경우가 많다. 만약 해당 노인이 90kg 이상의 남성이라면 여성노동자는 나이에 맞지 않는 힘을 들여야 한다. 이들이 근골격계 질환을 하나씩 가진 이유”라면서, “그런데 팀제로 운영되면 어르신 한 명 돌봄에 노동자 두 명이 투입될 수 있다. 노동자의 부담도 줄고 이용자도 만족스런 서비스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민간 기관에서는 서사원과 같은 고용형태로 바꿀 동기가 부족하다”고 짚었다. 김진석 위원장은 “민간 기관도 사실상 바우처 제도를 통해 국고를 지원받아 운영하고 있다. 이들 기관의 수익은 이용자 수를 많이 확보할수록 증가한다”며 “거기서 인건비와 운영비 등을 제해야 하니, 자기 수익을 아끼면서까지 이용자 한 명에 제공하는 서비스를 높이려는 유인은 부족하다. 그나마 제공기관의 자격요건을 법으로 정하고 심사하고 있어 최소한의 (서비스 제공) 기준은 지키는데 더 좋은 서비스를 추구할 동기는 사실상 없다”고 했다.

공공돌봄 사업 수익성 낮아 문제?
“돌봄노동에 제값 치러 국민 편익 증진해야”

서울시와 서울시의회가 서사원 예산을 대폭 삭감한 이후, 서사원은 정규직·월급제 신규 고용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서사원의 수익성이 낮고, 민간 시장과 비교해 돌봄노동자 처우가 높다는 등이 예산 삭감 이유로 지적되면서 서사원 자체적으로 경영 혁신을 하겠다는 방침이다.

김진석 위원장은 이를 두고 “사회서비스원 설립 배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이뤄진 결정”이라고 비판했다. 김진석 위원장은 “돌봄노동자 두 명이 이용자 한 명한테 서비스 제공하러 간다고 해서 두 명의 바우처 수가가 나오는 게 아니다. 수가는 서비스를 받는 사람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에 이용자 한 명의 수가를 두 명이 나누게 된다. 그러면 적자가 날 수밖에 없다”면서 “서울시가 적자 부분을 보충하면서 이익을 본 건 이용자다. 민간에서는 수익성을 고려해 절대 두 명을 보낼 수가 없다. 사회서비스원은 수익을 내기 위함이 아니라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적 환경을 조성하고자 마련된 조직이라는 이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 “서울시가 돌봄노동자를 월급제로 고용하는 예산을 투입해서 나온 아웃풋이 이 정도(2인 1조 시스템 등)”라며 “월급제 정책이 시행되기 전에는 돌봄노동자의 노동을 갈아 넣어서 서비스를 제공한 것이고, 그마저도 이용자들은 자신들의 권리인 합당한 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몇십 년을 지나온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진석 위원장은 우리 사회가 그동안 돌봄노동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았고, 제대로 된 대가를 치러오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미 바우처 제도를 통해 사회서비스는 정부 예산으로 제공되고 있는데, 여기에 고용안정을 위해 투입되는 예산이 많다는 이유로 삭감되면 앞으로도 일반 국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양질의 사회서비스를 제공받기는 더욱 힘들 것이라고 했다.

끝으로 김진석 위원장은 양질의 사회서비스가 제공됨으로써 생기는 외부효과를 고려하면 비용 대비 편익의 크기는 훨씬 더 클 수 있다고 밝혔다. 김진석 위원장은 “서비스 제공의 효과는 단순히 즉자적으로 보이는 욕구가 해결되는 것을 넘어설 수 있다”며 “예를 들면 보육서비스를 지원받는 부모는 직장생활이나 자기 계발에 투자할 수 있는 시간을 얻을 수 있다. 그러면서도 일이 끝나면 아이를 집에 데려가 키울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사회서비스 제공의 총량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자원 배분의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