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가 보여준 여러 단면들
여름휴가가 보여준 여러 단면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09.06 09:43
  • 수정 2023.09.06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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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쉼은 누군가의 노동으로 이뤄진다
즐길 거리의 부재, 다양한 문화가 제공돼야

리포트_휴가를 갑시다

직장 생활 도파민 분비 최고의 순간을 꼽으라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이 휴가 전날 퇴근길일 것이다. 엉덩이는 의자에 붙어 있으나 영혼은 어딘가로 떠나 있다. 순식간에 조였던 볼트가 그날따라 아주 천천히 조인다. 이날의 퇴근은 어깨가 가볍다. 특히 여름휴가는 더 그렇다. 이제는 연차와 공휴일, 대체 공휴일 등을 잘 섞으면 긴 휴가를 갈 수 있을 확률이 이전보단 올랐지만, 뭐니 뭐니 해도 길고 달콤한 휴식의 대명사는 여름휴가다. 다들 여름휴가를 기다리는 이유다. 그런데 누군가에겐 가질 수 없는 여름이다. 아니면 긴 휴가에도 불청객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의 어떤 휴가로 다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휴가의 다양한 모습과 우리의 쉼에 대해 살펴봤다. 자동차 공장에 다니는 30대 A,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30대 B, 20대 건설노동자 김산, 50대 콜센터노동자 연승훈, 4명의 이야기가 창이 됐다.

2022년 늦은 여름 동해 바다 ⓒ 참여와혁신 박완순 기자 wspark@laborplus.co.kr

이번 여름휴가,
어떻게 보냈습니까?

자동차 공장 노동자 A “올해 여름은 집에서 쉬었습니다. 여름이면 여자 친구와 짧게라도 여행을 떠났는데, 이번엔 날이 안 맞아서 여행은 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내년 여름휴가 때는 올해 제대로 즐기지 못한 여행을 다녀오고 싶습니다. 그런데 휴가철 물가보다도 숙박 비용이 너무 비쌉니다. 여행을 가더라도 숙박 비용이 문젭니다. 성수기에는 왜 그렇게 올려 받는 걸까요.”

건설노동자 김산 “이번 여름에는 휴가를 가진 않았습니다. 민주노총 통일선봉대 일정에 참여했습니다. 작년에는 토일 휴가를 갔었나. 잘 기억은 안 나는데 그랬던 것 같아요. 토요일에 일 끝내고 저녁에 가까운 데 어디 친구들이랑 놀라가서 술 한 잔 먹고 일요일에 놀고 그랬던 것 같네요. 일용직이니까 따로 연차 휴가가 있진 않아요. 몸이 안 좋다, 특별한 개인 업무를 봐야 한다고 하면 일당 포기하고 그날은 안 나가는 거죠. 물론 팀에 쉰다고 이야기는 해요.”

공공기관 노동자 B “베트남 다낭으로 4박 5일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연차를 써서 다녀왔어요. 해외를 다녀오고 싶었던 것도 있는데, 무엇보다도 비용 고민이 컸어요. 알아봤는데, 다낭에서는 한국 평균 물가의 절반 수준으로 품질 높은 음식, 숙박,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더라고요. 연차는 비교적 자유롭게 쓰는 편입니다. 눈치를 주진 않아요. 그래도 업무량을 고려하면 최대 연차 5일이라고 생각해요. 더 길게 가면 업무가 밀리기도 하고 동료가 해야 할 상황도 생기니까요.”

콜센터노동자 연승훈 “이번에는 멀리는 안 가고 어머니를 만나 뵙고 오고, 집에서 쉬면서 보내고 여자 친구도 만나고 했습니다. 그냥 쉬었죠. 잘 쉬었습니다. 휴가를 이틀 썼어요. 금요일(8월 11일)하고 월요일(8월 14일), 화요일이 빨간 날이었으니까 금토일월화 5일 쉬었어요. 보통 콜센터노동자들은 여름에 주말 끼고 자기 휴가 이틀 정도 붙여서 4일에서 최대 5일 정도 쉬어요. 상담은 계속 들어오고 인원은 한정돼 있으니까 길게 쉴 순 없고요. 팀원들이랑 조율해서 쓰는 거죠.”

우리의 휴가는 이어져야 하고
동시에 이어지면 안 되고

① 쉬어야 쉰다

A는 공장이 멈춰야 쉰다. 공장이 쉬어야 무더위를 피해 긴 여름휴가를 다녀올 수 있다. 큰 공장의 경우 이런 식의 시스템으로 돌아간다. 365일 생산을 멈추지 않을 것 같던 공장도 잠시 쉬고 정비에 들어간다. 라인을 점검하고 수리할 곳을 수리한다. 그 때 공장 노동자들은 대부분 쉰다. 공장이 멈추니 할 일이 크게 없기 때문이다. A 역시 올해에도 그랬다. 공장은 다소 조용해진다. 주차장도 한산해진다. 공장 밖으로 조금 나가면 즐비한 음식점 입구에 A4용지가 붙어있다. ‘잠시 쉽니다.’ 엄청난 유동 인구를 유발하는 공장의 경우 주변 상권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건설노동자 김산은 형틀목수다. 거푸집을 설계도면대로 만드는 일이다. 그의 못질, 망치질이 멈추는 날이 있다. 타워크레인노동자가 휴가를 떠나는 날이다. 김산은 “이번에 8월 둘째 주가 타워 휴가였어요. 그럼 저희도 쉬죠. 거의 전체 공정이 멈춘다고 보면 됩니다. 타워크레인이 자재를 인양해주고 곳곳에 배치해줘야 저희가 일을 할 수 있어요. 그래서 타워크레인이 일주일 휴가를 가면 어쩔 수 없이 현장이 쉬는 거죠”라고 설명했다. 바쁜 현장(공사기간이 빠듯한)은 타워크레인노동자들이 휴가 가기 전에 미리 곳곳에 자재를 일부 인양해놓는다. 2~3일이라도 타워크레인 없이 일할 수 있게 말이다. 정 멈추면 안 되는 현장의 경우에는 이동식 타워크레인이라도 따로 불러서 일을 한다는 게 김산의 설명이다. 김산은 타워크레인노동자들이 휴가를 떠날 때면 쉬어서 좋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다고 했다. “유급휴가가 아니니까. 쉬는 만큼 돈을 못 버는 거죠. 게다가 여름에는 장마도 있으니까 일 못하는 날이 꽤 있어서 많이 벌진 않잖아요. 그래도 한여름에 힘드니까 쉬는 건 또 좋기도 하고요.”

② 연결되지 않을 권리

B는 쉴 때 푹 쉬었으면 한다고 했다. 이번 여름휴가 말고는 휴가 때 업무 전화를 받았다. “휴가 때 연락 오는 경우가 가장 스트레스”라는 게 B의 설명이다.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려 했는데,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휴가 때 일을 들고 오기도 한다. 휴가를 썼는데 일이 밀릴 때도 있다. 이런 경우는 빈번하다. 해외에서도 있는 일이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가 괜히 나온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B는 “개개인의 업무량이 한 사람에게 몰리지 않도록 회사에서 신경 썼으면 하고, 일손이 부족하면 추가 채용을 했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자동차 공장 노동자 A도 마찬가지다. 휴가 중 직장 동료로부터 오는 연락으로 휴가를 제대로 즐기지 못할 때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했다. 보전반에 일하는 A는 휴가 중 직장 동료로부터 가끔 연락이 올 때가 있다. “이거 어떻게 한다고 했지?” 울리는 전화를 안 받아본 적도 있다. 그래도 전화는 꺼지지 않았다.

③ 누군가 쉴 때 누군가는 일한다

우리는 흔히 여름휴가를 떠올리면 ‘7말 8초’를 생각한다. 실제로도 많은 이들이 이때 쉰다. ‘여름휴가 다녀왔어요?’, ‘휴가 계획이 어떻게 돼요?’는 여름 안부 인사일 만큼 여름휴가는 보편적이다.

그럼에도 누군가에게 보편적인 것은 특수하다. 콜센터노동자들에게 7말 8초, 여름휴가의 성수기는 노동량(콜수)이 올라가는 날이다. 많은 이들이 휴가를 떠나다보니 이동량이 많아져 자동차 사고가 다른 때보다 많기 때문이다. 일이 몰리는데 쉽게 떠날 수 없다. 연승훈은 “남들 쉴 때 못 쉬어서 아쉽다는 사람들도 있는데요. 대부분은 바쁠 때니까 이때 다같이 일하고 휴가를 가자고 하며 으쌰으쌰해요”라고 말했다. 여름은 휴가 말고도 콜센터로 전화가 오는 날이 많다. 비가 너무 와서 교통 사고도 많이 나기 때문이다.

A는 자동차 공장 보전반에서 일하면서 자동차 공장 도장 로봇도 점검한다. 그래서 공장이 멈추는 대정비 기간에 휴가를 쓰기도 하지만, 특근을 달고 회사로 나가기도 한다. 그때가 공장 정비를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라인이 멈추고 라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쉴 때, 도장 로봇이 로봇팔을 휘두르지 않을 때 설비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한다.

이렇게 누군가 쉴 때 누군가는 일한다. 생각보다 주변을 돌아보면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이다. 여름휴가 때 오랜만에 새벽까지 깨 있을 때, 출출해서 편의점을 갈 수 있는 것도 편의점 아르바이트노동자가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배달 음식을 시킬 수도 있다. 배달노동자들이 일하기 때문이다. 버스를 타고 여행지로 떠날 수 있는 건 그 때 일하는 버스노동자 때문이다.

한편으론 기후위기가 일하는 패턴을 바꾸면서 쉬는 패턴도 바꾸고 있다. 연승훈은 “요새 폭우 때문에 지하 주차장 침수도 있고, 길가에도 범람해서 침수가 일어나잖아요. 그래서 일이 더 많아졌죠. 휴가를 갔다가도 다시 돌아오는 일도 있어요. 도저히 남은 사람들로 상담을 소화하지 못하니까요”라고 설명했다. 그나마 예상됐던 장마기간, 7말 8초를 피해 콜센터노동자들이 여름휴가를 계획했다면 기후위기는 새로운 변수인 셈이다.

노동조합,
휴가를 만들고 진화시키다

휴가에 노동조합의 역할이 크다. 김산은 “일용직이라 여름휴가는커녕, 유급휴가도 없었는데 3년 전부터 임단협 체결해서 건설노조 조합원들에게는 1일 유급휴가가 생겼어요. 쉬어도 1공수가 보장되는 거죠”라고 말했다.

사무금융노조 KB손보CNS지부 지부장인 연승훈도 “연차 휴가 외에 체력단련휴가를 5일을 회사와 교섭을 통해 만들었어요. 자유롭게 연차에 붙여서 써도 되고요. 아니면 그 휴가를 써도 되고요. 다만 체력단련휴가는 안 쓴다고 연차수당으로 지급되는 건 아니에요”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회사와 교섭을 통해서 노동조합은 노동자들의 휴가 권리를 지키고, 확대하고 있다. 잘 쉬어야 잘 일할 수 있다는 생각이기도 하다. 휴가에 관한 기본적인 활동도 해나간다. B는 노동조합이 자유로운 연차 사용을 홍보하고 있고, 회사 임원들에게도 직원들이 연차를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회사 문화를 만들길 이야기하고 있다고 했다.

쉰다는 것에 대하여

휴가가 잘 주어지고 잘 쓸 수 있는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것이 중요하다. 연결되지 않을 권리도 지켜지면서 제대로 충전할 수 있는 휴가는 다시 일을 할 수 있게 하는 원동력이라는 게 4명의 공통적인 이야기였다. 여기에 하나 더 쉴 때 할 수 있는 것들이 많이 생겨나고 지원됐으면 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김산은 “긴 휴가는 못가지만 짧은 휴가라도 가요. 여름휴가는 아니가 팀 형님들이랑 같이 계곡을 다녀왔어요. 가서 술이에요. 주변 좋은 것도 보고. 다른 것도 할 수 있잖아요. 저도 술 마시는데, 그렇더라고요”라고 했다. 쉬는 것도 경험이고 교육이다. 주변에 다양한 즐길 거리들이 만들어지고, 다양한 문화 활동거리가 시민들에게 제공됐을 때 다양한 휴식을 위해 찾아 떠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