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객에 의해 이동·대기시간 늘어나도 보상 없다”
“고객에 의해 이동·대기시간 늘어나도 보상 없다”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9.08 13:42
  • 수정 2023.09.08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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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객 요구로 서비스 제공시간 등 노동시간 늘어나는 특고·플랫폼노동자
“특고·플랫폼노동자, 노동시간에 대한 합당한 보상받아야”

[리포트] 서비스노동자가 말하는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시간

서비스는 생산과 소비가 동시에 일어나는 무형의 산물이다. 따라서 고객에 직접적인 서비스 제공을 한 건에 대한 보상이 주어지는 고용형태가 일부 서비스업에 정착돼 있다. 건당 수수료 등 보수를 받는 특수고용노동자(이하 특고)들이 그 예다. 

하지만 서비스 생산·제공을 위해 필수적 또는 부수적으로 수행하는 노동시간이 존재하는데 이에 대한 보상은 부족하다고 서비스노동자들은 말한다. 여기서 말하는 노동시간에는 이동하거나 대기하는 시간,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 고객의 약속 취소에 따른 헛걸음 시간 등이 있다.1)

사람을 상대로 일하는 서비스업에서는 고객과 상호작용하는 노동력이 핵심이다. 고객 만족도 향상이 서비스업의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는 측면에서 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는 등의 노력이 서비스노동자에게 요구된다.2) 그러나 보이지 않는 노력은 측정되기 어렵고, 노력이 성과로 이어진다고 해도 인과관계를 설명하기 힘든 면이 있다. 

서비스노동자들은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수행되는 여러 노동이나 노력을 들이는 시간이 상당하지만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들이 밝히는 보상으로 연결되지 않는 노동시간은 무엇이 있을까?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는 배달노동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도로 위에서 오토바이로 이동하고 있는 배달노동자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고객의 요구에 따라 늘어나는
일과 일 사이의 이동 및 대기시간

정해진 장소 없이 직접 고객을 찾아가는 서비스노동자들은 대부분 특고나 플랫폼노동자인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대리운전·배달·방문점검·학습지 등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서비스 제공을 위해 일과 일 사이의 이동 또는 대기하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동시간 및 대기시간에 대한 보상은 따로 없다. 건당 보수를 받는 특성상 더 많은 일을 하고 보상을 받으려면 이동·대기시간이 짧을수록 좋다.

하지만 고객에 의해 서비스 제공시간이 바뀌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에 따라 이동·대기시간도 연장되는 등 예측 불가능해진다. 대리운전기사는 고객의 콜을 받고 출발지에 도착해도 고객의 사정으로 출발이 지연되는 경우가 있다.

김주환 전국대리운전노동조합 위원장은 “(고객이) 술 한 잔을 더 하고 가겠다는 등 말을 하기도 한다. 그런 경우 콜을 연결해준 업체와 상의해 콜을 취소하기도 하지만, 업체와 제대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으면 한 시간 넘게 고객을 기다리다가 대리운전을 하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퀵서비스기사도 유사한 상황을 마주한다. 물건을 받는 고객이 물건을 받는 장소를 바꾸거나 위치 설명을 부정확하게 해 장소를 헤매느라 시간을 지체하는 경우다. 또 물건 배달을 요청하는 고객이 준비가 안 돼 있어서 대기해야 하거나 물건이 빠진 게 있어 다시 와달라는 요청에 따라 돌아가는 경우도 퀵서비스기사의 대기 또는 이동시간을 길어지게 한다.

음식 배달 라이더나 대형마트 온라인배송기사도 배달해야 할 상품 준비가 늦어져서 본의 아니게 대기시간이 길어지는 상황을 겪는다. 배달노동자 A씨는 “콜을 받고 음식점에 갔지만 (음식) 준비가 안 돼 있으면 초조하다. 배달이 늦어지게 되면 종종 고객이 우리에게 불만을 쏟아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배달노동자들은 고객이 민원을 통해 공식적으로 항의라도 하게 되면 노동자 평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이는 향후 일감 배정 등에 있어 불이익을 받을 수 있어 우려된다고 했다. 

고객이 약속을 취소하기도 한다. 렌털 가전제품을 점검하는 방문점검원이나 학습지교사는 고객 집에 방문하기 몇 시간 전 또는 직전에 고객에게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 통보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밝혔다. 사전 통보가 없어 고객이 부재한 사실을 직접 확인하고 서비스 제공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는, 즉 헛걸음을 하는 상황도 발생한다. 일종의 노쇼(No-Show)가 일어난 것이다.

대기시간이나 이동시간이 서비스를 집중적으로 제공하는 시간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례를 보면 서비스노동자가 업무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시간도 아니다. 일감을 배정해주는 회사의 공식적인 통제만 없을 뿐 고객에 의해 통제받고 있는 시간이다. 따라서 이런 사례를 노동시간으로 인정하고 그에 맞는 보상이 필요하다고 노동자들은 주장한다.

고객과 관계 유지를 위한 시간,
업무 준비시간 등도 보상과 연결 안 돼

고객과 직접 접촉하는 서비스노동의 경우 고객과 관계 유지를 위한 시간이 별도로 투여되기도 한다. 고객과 긍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면 향후 매출 유지·향상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고객 응대 과정에서 일어나는 감정노동을 떠올리기 쉬운데, 여기서는 실제로 노동시간을 추가로 투여하는 경우를 말한다.

학습지교사들은 수업시간 이외 시간에 고객과 상담하는 경우가 많다. 대개는 회원 탈퇴를 막거나 기존 회원의 신규 과목 등록 또는 신규 회원 유치 등을 위해서다. 고객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객인 학부모나 학생의 요구를 거부하기 힘들어 상담하기도 한다. 학습지교사 B씨는 “학부모들이 우리를 일종의 과외선생님으로 생각하기도 한다”며 오랜 시간 아이들을 관리해 줬으면 하는 기대를 받는다고 말했다.

방문점검원들에게는 기존 고객이 새로운 렌털 가전제품을 판매할 영업 대상이다. 이들은 기존 고객으로부터 제품 수리 등 요청을 받으면 설치·수리기사와 고객을 연결해주기도 하지만 간단한 수리는 직접 처리하기도 한다. 또 기계 조작이 서툰 어르신이 도움을 요청하는 경우 등 콜센터로 접수하기 애매한 사안도 방문점검원이 직접 문제 해결에 나선다. 학습지교사와 마찬가지로 고객과 관계를 고려하면 쉽게 거절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고객 한 명을 대응·관리하는 시간이 길어지면 상대적으로 다른 고객에 대한 관리가 소홀해질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고객은 기대치보다 낮은 서비스를 받은 데 불만을 품고 이탈할 가능성도 생긴다. 따라서 학습지교사, 방문점검원 등은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수시로 고객과 소통하며 고객의 기분을 배려하는 감정노동을 수행한다.

서비스 제공에 앞서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도 소요된다. 대형마트 온라인배송기사는 우선 상품이 출하되면 제대로 나왔는지 확인하는 검수 작업을 해야 한다. 또 배송하기 쉽게 재분류하고 바구니나 봉투 등으로 재포장하고 나서야 차에 상품을 싣고 배송을 시작한다.

방문점검원은 렌털 정수기 등 점검에 앞서 창고에서 필터를 챙기는 시간이 필요하다. 신제품에 대한 정보와 홍보 전략 등을 전달받는 교육, 관리자가 방문점검원 업무 현황을 파악하는 회의 등에도 주기적으로 참석해야 한다.

방과후강사는 수업 준비시간이 필요하다. 수업에 필요한 준비물을 마련하거나 다음 수업 진도를 위해 학생들이 해온 과제를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등의 업무를 수행한다. 그러나 다수의 방과후강사들은 수업하는 시간에 대한 보수인 시간당 강사료를 받고 있어 수업 준비시간에 대한 보상은 따로 책정되지 않는다.

노동자마다 고객과 관계 유지를 위해 투여하는 시간이나 업무를 준비하는 시간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해당 시간은 어느 정도의 서비스 질적 수준을 유지하려면 노동자가 노력을 들여야 하는 시간이다. 표준화하기 어렵고 성과로 나타나는지를 파악하기 힘들다는 이유로 노력에 대한 보상이 전혀 없다면 서비스노동 가치에 대한 평가 절하는 계속될 수밖에 없다고 노동자들은 지적하고 있다.

수업 중인 학습지교사
수업 중인 학습지교사

“노동법상 노동자성 인정받거나
합당한 보상 뒤따르거나”

근로기준법상 노동자 경우 대기시간. 이동시간. 상담시간, 준비시간 등을 노동시간으로 인정받고 보상받을 길이 법 규정으로 존재한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작업을 위해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 아래에 있는 대기시간 등은 노동시간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실질적으로 사용자의 지휘 아래에서 자유로운 개인 시간 사용 여부에 따라 대기시간과 휴게시간을 구분한다.

하지만 특고나 플랫폼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 보호받을 길이 없다. 대부분 과업 한 건을 처리할 때마다 보수를 받기 때문에 특정 사용자와 관계에서 종속성이 강하지 않다는 것이 대표적인 이유다. 이에 따라 대다수의 특고나 플랫폼노동자들은 실질적으로 원청의 업무 지시나 관리를 받고 경우에 따라 실적 압박을 받는 등 종속적인 특성을 강조하며 “우리도 노동법상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해오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백남주 서비스연맹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특고(·플랫폼노동자)들이 노동자성을 인정받아 노동법상 보호를 받고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면 좋겠으나, 당장에는 직종별 노동과정을 분석해 건당 보수 체제에서 이들의 보상과 관계없는 노동을 최대한 줄여나가는 것이 필요하다”면서, “현재 구조상 공짜노동이 어쩔 수 없이 발생한다면 이에 대한 합당한 보상이 뒤따를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밝혔다

수당이나 대응 매뉴얼 등
다양한 방안 논의 필요

일부 특고나 플랫폼노동자들은 노조법상 노동자성을 인정받고 실제로 교섭을 통해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단체협약으로 서비스노동자가 헛걸음을 할 경우 보상을 지급하기로 한 사례가 있다. LG전자 렌털 정수기 등을 판매하는 하이케어솔루션은 지난해 금속노조 LG케어솔루션지회와 체결한 단체협약을 통해 고객 사정에 따라 점검 약속이 취소될 경우 유류비 등 방문점검원의 헛걸음에 대한 보상을 지원하기로 합의했다. 

뉴욕시는 택시기사가 차량호출서비스 앱에 접속해 승객을 기다리는 시간, 배달기사가 배달 플랫폼을 통해 콜을 받기 위해 대기하는 시간 등을 노동시간으로 간주하고 이에 대한 보상체계를 마련하기도 했다.

이처럼 단체협약을 통해 수당을 정하거나 서비스노동에 대한 깊은 논의를 통해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있는 노동시간에 대한 보상 제도를 마련하는 등 방안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서비스업 종사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지금 노동자, 노동조합을 비롯해 기업, 정부 등 다양한 주체들이 현장의 실태를 파악하고 개선할 수 있는 문제부터 풀어가야 할 것이다.

1) 백남주(2023),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시간과 보상에 관한 연구
2) 지난 8월 10일 서비스연맹과 강성희 진보당 의원이 주최한 ‘서비스노동의 저평가 원인과 가치인정방안 모색 토론회’ 자료집에서 발췌한 내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