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적’ 업종별 FTA 노사공동 대응체제 구축 시급
‘한시적’ 업종별 FTA 노사공동 대응체제 구축 시급
  • 승인 2004.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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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급제안

노사, 공익전문가 FTA 태스크포스팅 꾸리자
산업 및 고용에 미칠 피해실태 조사 서둘러야


한일 FTA가 산업과 노동에 몰고 올 피해가 생각보다 훨씬 크다는 우려가 점차 커지고 있다. 자유무역협정에 관해 노동계는 일관되게 부정적 견해를 피력해 왔고, 최근 들어 업계에서도 재검토나 유보, 협상 시한 연장 등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일 FTA가 산업과 노동에 몰고 올 피해에 있어서는 노사의 이해가 일치하는 영역이 있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완전히 일치한다고 봐도 무방하다”는 한 연구자의 진단처럼 FTA가 몰고 올 경쟁력 약화와 산업기반 붕괴, 이로 인한 고용 감소는 도미노처럼 연쇄적 반응이 될 가능성이 크다.

 

노동계, 재계 ‘소걸음’ 대응
하지만 노동계와 재계의 대응은 제 각각이다. 재계는 FTA 체결 실무 협상이 속속 진행되면서 피해가 예상보다 커질 것으로 전망되자 긴급히 경제 4단체 회동을 통해 지난 3월 ‘FTA 민간대책 위원회’ 발족식을 갖고 업종별 단체, 학계 및 연구기관 FTA 전문가를 위촉해 업종별 대책반 운영을 시작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은 상반기 투쟁계획 1순위에 ‘한일 FTA 반대 투쟁’을 올렸고 특히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되는 주력산업 사업장이 많은 민주노총은 올 상반기에 ‘WTO DDA/FTA 대책반’을 구성했다.
민주노총은 10월 말 6차 협상지로 예정되어 있는 도쿄 원정투쟁, 11월 총파업을 포함한 총력투쟁, 2005년 상반기 총력 투쟁을 위한 태세를 갖출 예정에 있다. 그러나 노동계의 대응은 아직 원론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한시바삐 FTA 체결에 따른 산업과 고용에 미칠 파장 등에 대한 연구와 실태조사를 서둘러야 한다. 본지 설문 결과에 따르면 일선 현장의 노동조합 간부 중 FTA 협상 진행 내용을 잘 알고 있다고 답변한 사람은 절반에도 못 미쳤다.

특히 이번 조사에서 많은 노조간부들이 “국내 산업기반이 붕괴될 정도로 심각한 상황임에도 노사 상급단체가 무대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FTA 피해에 대한 연구 실태조사와 함께 협상 내용을 공개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의견을 제출했다.

 

이에 대해 한국노총권오만 사무총장은 “정부당국과 정치권이 한일자유무역협정이 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충분히 검토하고 각계의 의견수렴과 국민적 공감대를 모아가는 것이 중요한데도 비공개로 협상을 추진하고 있다”며 “우선 이를 즉각 중단하도록 요구하고 협상공개와 참여를 요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따로국밥, 알고 보니 내용물 같다?
대응은 따로따로지만 재계와 노동계는 서로 기대하는 바가 조금씩 있다. 재계는 노동계의 반대 목소리가 협상 시한을 늦추거나 정부의 폐쇄적 협상 진행에 브레이크를 걸 것으로 은근히 기대하고 있다.

 

큰 피해가 예상되는 업계의 한 임원은 “솔직히 이럴 때 노동계가 나서서 정부에 강력한 문제제기를 해주면 전체 산업에도 고마운 일 아니냐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고 귀띔한다.

노동계도 지금대로라면 재계가 한일 FTA를 전면적으로 찬성하고 나서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을 하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서로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눈치 보기로 시간을 끌 처지가 아니라는 게 전문가들 진단이다.

산업연구원 조철 박사는 “자유무역협정이 전 세계적 추세로 자리 잡고 있는 마당에 노사의 공동대응 없이는 험난한 파도를 넘을 수 없다”며 “이제라도 업종 노사의 공동 조사 작업과 대비책 마련을 서둘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산업발전·고용전략 세울 시점
이 같은 단기적인 대책과 함께 이번 기회에 산업계와 노동계가 생산성과 고용을 위한 근본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높아가고 있다. 그동안 노조운동은 경영참가와 임금 등 생산관리와 관련된 선명한 이슈에만 머물 뿐 실질적인 생산관리를 추구하지 않았다.

 

이렇다보니 회사의 생산전략 수립에 관한 협상에서 노동조합의 발언권이 약화되고 생산의 결정과정, 임금과 생산기준 마련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었다.

물론 기업측은 일방적인 경영으로 노가 참여할 여지를 제공해 주지 않았다는 비판을 많이 받아 왔다. 근로조건 및 고용자체를 위협할 수 있는 상시적인 위기 상황임을 서로 공감, 노조 지도부와 경영자가 생산성과 고용안정의 전략수립을 위해 경영협의 틀을 조성해야 한다.

 

따라서 무역자유화→주력산업의 수익성 악화→ 산업공동화의 가속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막기 위해서는 노동조합이 산업정책과 생산관리에 대한 적극적 전략 수립에 나설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의 조건준 정책국장은 “자동차, 철강 등 주력산업이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점은 이미 노사 모두가 공유하고 있다”면서 “정부와 업계는 노동조합에게 산업 의제에 대한 열린 공간을 대대적으로 열어주고 노동조합은 근시안적 이익쟁취를 넘어서 산업정책과 그에 기초한 고용 전략을 새롭게 짜야할 때”라고 주장했다.

 

노사, 공익전문가 TF팀 꾸리자
다행히 한일 FTA 체결이 몰고 올 파장에 대한 노사의 인식은 크게 다르지 않다. 본지의 설문 결과<관련기사 14면>에 따르면 한일 FTA 체결의 찬반 여부에서는 노사의 입장이 다소 엇갈리는 반면 반대 이유에서는 노사의 인식 공유가 뚜렷했다. FTA 체결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보인 응답자들은 노사 공히 ‘대일 산업의존도 심화’(노동계 65.7%, 경영계 60%)와 ‘일본의 비관세장벽 철폐의 어려움’ (노동계 31.5%, 경영계 40%)을 꼽았다.

 

특히 상반기 노사관계를 뜨겁게 달궜던 제조업 공동화가 한일 FTA 체결 이후 더욱 가속화 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두드러졌다.
노사 공동의 위기의식 공유는 공동 대응의 가능성과 필요성을 한층 높인다.

 

한국노동교육원 황기돈 사무총장은 “더 늦기 전에 산업과 업종, 지역 수준에서 노사,공익 전문가가 공동 협의와 조사 활동을 벌이고 이 내용이 협상에 반영될 수 있도록 구체적 활동을 벌여나가야 한다”며 “생산성 향상을 통해 장기적 산업 경쟁력에 대비하는 노동조합의 전략적 선택도 시급하다”고 제안했다.

 

해외사례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미국 노사의 멀티 플레이

 

통상 문제에 관한 해외 노사의 공동 대응의 예는 전미철강노조(USWA)와 철강협회의 철강 산업 보호를 위한 노력이 있다.

2003년 말 부시행정부가 미국 국제무역위원회의 요구에 따라 철강관세 철회를 검토하기 시작하자, 20개 주의 43개 철강회사 대표들과 철강산업협회, 철강노조, 기타 무역협회 등은 공동의 대책 기구를 구성, 철강이 미국의 주요 생산품임을 강조하고 자국 산업과 노동자들의 고용을 지키기 위해 관세를 유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활동은 대국민 홍보와 정치권 설득에서부터 정부와의 협의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었다.

 

철강노조와 업종협회가 공동의 행보를 취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 한차례 위기를 노사공동의 생산관리로 넘어선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70년대 호황을 누리던 미국 철강산업은 80년대 중반부터 가동률 감소, 대규모의 손실에 뒤이은 파산, 공장 폐쇄, 대량 해고 등으로 생산 설비의 25%, 고용의 60%가 감소했다. 전미철강노조는 1986년 전국 철강협약(National Steel Agreement)에 따른 ‘협력적 파트너십 모델’을 주창해 산업의 위기를 노사 공동의 생산성 향상 및 효율화 노력으로 넘을 것을 제안했다.

 

이 모델은 ▲ 작업조직의 유연성 증대 ▲성과에 기반한 보상체제 확대 ▲고용 보장을 대가로 한 생산성 향상 ▲현장작업자ㆍ노조의 전례 없는 참여 ▲기업의 모든 조직 수준에서 정보의 공유 등이었다.

한림대학교 사회학과 박준식 교수는 “당시 미국 철강산업의 상황은 현재 우리나라의 주력 제조업들이 처한 상황과 비슷하다”며 “노조의 적극적 생산관리 정책과 산업 수준의 연대 확장이 위기에 처한 우리 노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