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에 맡긴 ‘간병’, 개선 필요해
민간에 맡긴 ‘간병’, 개선 필요해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09.29 17:21
  • 수정 2023.09.29 17: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직업소개소 통해 간병인 소개받은 소비자는 서비스 불만족
간병노동자도 노동조건 개선 요구 있어

[리포트] 초고령사회 앞둔 지금, 필요한 간병 제도는?

나이가 들수록 사람의 신체 기능은 저하되고 면역력은 떨어진다. 질병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그에 따라 의료나 간병 등 돌봄이 필요해진다. 장기간 치료나 요양을 해야 할 경우엔 비용 부담도 늘어난다. 국가는 이러한 상황을 사회적 위험으로 간주하고 개인의 부담을 사회적으로 나눠 부담하기 위해 건강보험, 노인장기요양보험 등을 운영하고 있다.

간병에 한정해 보면, 가정에서 간병이 필요한 경우 장기요양등급을 받으면 요양보호사가 제공하는 재가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등급 외 판정을 받더라도 지자체에 따라 돌봄서비스를 지원받을 수 있다. 병원에서 간병을 받아야 할 경우 2015년부터 도입된 간호·간병통합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보호자나 간병노동자가 상주하지 않고 간호사와 간호조무사가 24시간 전문 간호(간병)를 제공하는 서비스다. 건강보험을 적용받아 대개 하루 평균 2만 원 내외로 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하지만 일정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하거나 지자체 정책 미비로 제도적 지원을 받지 못하는 경우는 여전히 존재한다. 간호·간병통합서비스는 지난해 기준 전체 24만 3,766개 병상 중 7만 363개에 제공돼 28.9%로 운영률이 저조하다. 인력이나 여건상 한계로 서비스 대상 환자는 중증보다 경증 질환자가 대부분이다. 이로써 다수의 중증 질환자 경우 보호자 등 가족이 간병을 맡거나 민간 시장에서 간병서비스를 찾으며 시간·경제적 부담을 짊어진다.

민간 시장에서 거래되는 간병서비스
환자·보호자·노동자 만족하기 어려운 현실

간병노동자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고 국내에서 간병노동자 규모를 파악하는 공식 통계가 없다. 다만 고용형태별 인원 비율을 추정한 2010년 보건복지부의 연구용역을 받아 작성된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간병서비스 제도화방안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간병 소개업체 알선 70.3%, 병원 계약직 12.8%, 간접고용 11.4%, 병원 정규직 2.7% 등으로 나타났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은 “이 조사가 가정에서 근무하는 가사사용인을 포함하고 있지 않다는 한계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보건복지자원연구원에 따르면 현재 간병노동자는 병원 또는 이용자 가정에서 환자를 돌보는 일을 담당하는 인력으로, 근로계약을 체결한 경우는 드물다. 대부분 직업소개소 등을 통해 일자리를 구하고 있으며 노동법 및 사회보장법 등의 적용대상에서 제외되어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용형태로 구분하면 특수고용노동자이나 산재보험법, 산업안전보건법 등 적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 이 같은 간병노동자의 취약한 고용 지위는 서비스 질에도 영향을 미친다. 간병노동자가 겪는 장시간 노동, 저임금, 산재 노출, 서비스 과정에서 각종 의료사고의 책임 소재 불명확성 등의 문제로 인해 양질의 서비스를 기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이 보건복지자원연구원의 설명이다.

실제로 간병서비스 이용자들의 불만도 드러났다. 한국소비자원에 따르면 3년간(2019년~2021년)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간병인 관련 상담은 총 236건으로, 간병 개시 전 협의한 내용과 다른 간병요금 또는 추가요금을 소비자에게 요구하는 ‘요금 불만’이 39.4%(93건), ‘불성실 간병’ 20%(47건), ‘환자 부상’ 12.3%(29건)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또한 지난해 4월 한국소비자원이 전국 400병상 이상 병원급 의료기관과 연계돼 환자에게 간병인을 알선하는 중개업체 128곳을 대상으로 실시한 ‘간병인 중개서비스 이용 실태조사’를 통해 계약 시 피간병인(소비자)에게 계약서를 작성·교부하는지 조사한 결과 88.3%(113곳)가 ‘작성하지 않음’으로 응답해 대부분 서면이 아닌 구두로 이뤄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한국소비자원은 “현재 간병인에 대한 특별한 자격요건이나 간병 업무의 범위에 대한 표준화된 가이드가 없어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을 경우 불분명한 계약내용으로 인한 소비자 피해가 우려된다”고 했다.

서울대학교병원 내에서 간병 중개 일을 하고 있는 문명순 희망간병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서울대학교병원 내에서 간병 중개 일을 하고 있는 문명순 희망간병분회 분회장 ⓒ 참여와혁신 임혜진 기자 hjim@laborplus.co.kr

간병 제도화 필요성 느낀 노동자들
‘희망간병분회’ 조직해 서비스 질 개선 꾀해  

소비자와 노동자 양쪽에서 만족하기 어려운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 간병 관련 제도화에 대한 요구는 계속돼오고 있다. 이 가운데 간병노동자들이 직접 제도 공백을 메꾸기 위해 나선 사례가 있는데 2004년 보건복지자원연구원 산하에 조직된 ‘희망간병’이다. 희망간병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희망간병분회가 직접 간병노동자에게 무료로 일자리를 소개하는 직업소개소로 현재는 서울대병원, 강원대병원, 충북대병원, 경북대병원, 대구 동산병원 등 5개 병원 입원 환자 대상으로 간병노동자를 중개하고 있다.

희망간병의 간병요금은 중증도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보통 하루에 12만 원 내외다. 유료 업체와 달리 알선 수수료가 없고 중간에 추가 요금을 요구하는 일도 없다.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이 지난 3월 실시한 의료현장 사례조사에 따르면 하루 기준 간병요금은 10만 원에서 최대 17만 원 수준으로 나타난 바 있다.

그 대신 간병 요청이 들어오면 거부하지 않는다. 수입을 더 올리거나 편한 일을 골라서 하는 경우 등을 방지하기 위해서다. 또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갖춘 간병노동자를 중개하고 일정한 교육을 받게 해 최소한의 질이 보장된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한다. 일부 민간기관에서 발급하는 간병사 자격증이 있지만 현재 간병에 대한 별도의 자격을 요하는 법적 기준은 없다. 따라서 누구나 간병할 수 있고 그만큼 서비스 질을 보장받을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인 현실이다.

변성민 의료연대본부 조직국장은 공공 간병을 추구하며 소비자와 노동자 모두를 위해 희망간병이 시작됐는데 여전히 간병노동자의 노동환경은 열악한 한계가 있다고 밝혔다. 변성민 조직국장은 “보통 12만 원으로 25일 정도 일한다고 하면 270만 원 정도가 한 달 수입이다. 하루 24시간 일하면서 받은 금액이 이 정도라면 간병노동자 입장에서는 저임금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소비자 입장에서도 월 270만 원은 굉장히 부담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 어떤 형태로든 필요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서울대병원에서 간병노동자 중개 일을 담당하고 있는 문명순 희망간병분회 분회장은 “간병노동자들도 (다른 시설 등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하면 하루에 4시간, 8시간 일할 수 있다. 하지만 대부분 시급으로 일해야 할 텐데 그러면 손에 쥐는 게 적어서 그쪽으로 못 간다”며 “60대 이상 여성 간병노동자들이 집안 가장으로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경우가 많다. 힘든 걸 알면서도 내 몸을 더 부려 일하고 몇만 원이라도 더 받고 싶은 게 없는 사람들의 실정”이라고 토로했다.

간병 교육에 대한 필요성도 이야기했다. 문명순 분회장은 “저는 병원에 봉사활동 왔다가 간병 일을 알게 돼 시작했다. 그때 일주일 교육만 받고서 일할 수 있었는데 저는 못 하겠다고 생각해서 한 달여간 어떤 병실에 들어가 일을 배웠다. 휠체어 타는 방법, 시트 가는 방법, 욕창이 안 생기게 목욕시키고 머리 감기는 등의 대처법 등을 그렇게 배웠다”며 “간병이라는 게 간호사나 의사들이 못하는 것들도 무지 많구나 하는 걸 그때 알았다”고 밝혔다.

이어 “지금도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다 해도 여기 와서 다시 교육받아야 한다. 몇 년 경력이 있다고 해도 환자마다 필요한 간병이 다르기 때문이다. 경험을 많이 한 제가 주로 교육을 한다. 힘들지만 그렇게 하는 이유는 우리 조합원들이 정당한 대우를 못 받을까 봐, 일 못 한다는 소리 들을까 봐서”라며 환자들이 안정적으로 간병받기 위해서라도 일정한 교육 지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서비스 관리·감독, 산재보험 적용 등 
정부 역할 강화하는 논의 나오고 있어

간병서비스 개선 방향에 대한 논의는 다양하다. 우선 간호·간병통합서비스의 전면 확대 주장이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간호인력 증원과 건강보험 재정 지원 등이 필요하다. 또 간병료를 급여화하자는 제안도 있다. 지난달 이종성 국민의힘 의원은 의료법·국민건강보험법·의료급여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간병인에 대한 관리·감독 방안에 대한 법적 근거 마련(의료법) △간병을 요양급여 대상(건강보험법)과 의료급여 대상(의료급여법)에 포함하는 내용 등이 있다. 간병의 질을 높이면서 일반 국민의 간병비 부담을 줄여야 한다는 취지다. 이 역시 관련 예산 편성이 얼마나 가능할지가 관건이다.

한편 간병 분야에도 외국인 인력 수급을 확대하자는 주장이 있다. 늘어나는 간병 수요에 대비하려면 내국인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이유다. 현재 외국인은 방문취업동포(H-2) 또는 재외동포(F-4) 비자를 소지한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간병 분야 취업이 가능하다. 국내에 취업한 간병 이주노동자 중에서는 언어 소통이 가능한 중국동포의 비중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보건의료노조 ‘산별 미래전략 수립을 위한 정책대회’에서 김해진 광주시립요양·정신병원지부 지부장은 “외국인 간병인들은 언어와 문화 차이로 제대로 된 케어를 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언어 소통이 안 돼 기본적인 일상생활(칫솔질, 정서적 지지 등) 지원은 고스란히 직원 몫이 됐다. 간호인력 부족으로 업무도 힘든데 간병 업무까지 더해져 노동강도는 심화되고 이직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대한요양병원협회에서는 외국인 간병노동자에 대한 언어 교육 지원이 수반돼야 한다는 주장이 있었고, 간호·간병통합서비스 확대 논의 과정에서는 간호인력과 간병인력의 업무 분장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시된 바 있다.

아울러 외국인 인력을 늘리기 전 국내 노동시장 문제부터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문명순 분회장은 “간병노동자만 일을 잘 못했다고 지적받는 게 있다. 하지만 보호자 쪽에서 부당한 지시 등을 하는 경우도 많다. 다른 사람들이 나쁘게 매도되는 걸 바라지는 않지만 일하는 환경부터 바뀌는 게 먼저 필요하다고 본다”면서, “간병노동자들도 많이 다친다. 이들도 산재 적용을 받고 노동자성 인정도 받으면 좋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