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낯설어지는 책 읽기
점점 낯설어지는 책 읽기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10.02 16:12
  • 수정 2023.10.02 16: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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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책 읽는 사람들···정부는 독서문화 지원 줄여
여러 도서관이 우리 곁에 있어야···그중 하나 ‘한국노총 도서관’

이러다가 책이 사라지는 사회가 오는 것 아니냐고 누군가가 말했다. 너무나 잘 발달된 소셜미디어가 때론 인문학을 때론 사회과학을 때론 희극을 때론 자기계발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짧고, 요약 중심이어 휘발성이 높다고들 하지만 더 이상 화장실을 갈 때 책이나 잡지를 들고 가지 않는다. 대신 핸드폰이 손에 들려있다.

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책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통계를 보면 최근 5년간 신간 발행 종수는 평균 6만 4,000권대를 유지하고 있다. 2022년에는 2021년에 비해 5.4% 줄어들어 신간 발행 종수가 6만 1,181종이긴 했다. 그래도 책은 꾸준히 나온다. 서점에 가서 신간 매대를 둘러보면 주기적으로 신간 매대의 얼굴이 바뀌는 걸 알 수 있다.

어쩌면 책이 사라지는 게 아니라 책을 읽는 사람이 사라지고 있을 수 있다.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진행한 국민독서실태조사를 보면 만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지난 1년간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1권 이상 읽거나 들은 사람의 비율)’은 47.5%였다. 성인 2명 중 1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거나 듣지 않은 셈이다. ‘연간 종합 독서량’(지난 1년간 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모두 포함해 읽거나 들은 권수)는 4.5권으로 이전 조사보다 3권 줄어들었다. 이와 함께 이전 국민독서실태조사들을 종합해봤을 때 독서율, 독서량은 줄어들고 있다.

성인일수록 책 덜 읽어
이유는 ‘일하느라 바빠서’

흥미로운 점은 성인과 초·중·고교생의 심한 격차다.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초·중·고교생의 연간 종합 독서율은 91.4%, 거의 모든 초·중·고교생은 1년에 1권 이상 책을 읽는다. 교과서, 학습참고서, 수험서 등은 제외한 수치다. 초·중·고교생의 연간 종합 독서량은 34.4권으로 한 달에 2~3권 정도 책을 읽는다는 초·중·고교생이 두 달 동안 읽은 5~6권을 성인들은 1년 동안 읽을까 말까다.

책 읽는 성인이 줄어들고 있는 이유는 뭘까. 2021년 국민독서실태조사 결과를 보면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26.5%)’, ‘책 이외의 매체/콘텐츠 이용(26.2%)’ 등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혔다. 일하느라 바빠서, 일하느라 지쳐서 책 읽기에 할애할 시간이 없다고 유추해볼 수 있다. 거기에 소셜미디어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에는 재미난 영상들이 넘쳐난다. 짧게 짧게 볼 수 있는 쇼츠(Shorts)는 물론 ‘1분 안에 정리해드립니다’류의 요약 영상도 많다. 엄지 손가락으로 핸드폰 스크린을 위로 쓸어 올리는 건 책장을 넘기는 것보다 쉽고 중독적이다.

책을 읽지 않는 것에 대해 비등비등한 비중으로 가장 큰 두 가지 이유가 있지만 ‘일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가 사실상의 이유이지 않을까 싶다. 책 읽는 건 생각보다 집중력과 인내심을 필요로 하는 느릿느릿한 행위다. 일 때문에 시간이 없는데, 혹은 지쳤는데 책을 집을 심적, 육체적 여력이 없을 것이고 그나마 여력이 좀 덜 드는 영상 보기를 택한다. 게다가 쇼츠와 같은 아주 짧은 영상은 몇 초 안에 이목을 끌어야 하기 때문에 자극적이다. 짧은 시간에 쉽고 반복적인 자극은 앞서 말했듯이 중독을 일으킨다. 지친 심적, 육체적 상태라면 중독의 시너지가 발생한다. 그래서 장시간 혹은 고된 일 때문에 영상으로 사람들이 이동하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래도 독서가 좋아

그러나 일하는 사람, 많은 성인이 독서의 끈을 놓는 건 아니다. 일하다 보면 일을 더 잘하고 싶은 마음에, 혹은 이직하고 싶은 마음에, 전직하고 싶은 마음에 책을 읽고 공부를 한다. 역량 개발의 근본 도구로 책을 활용한다. 자기계발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책을 여전히 잡는다. 한편으론 영상물이 범람하는 시대에 책 읽기 모임이 빛을 발하고 있다. 북클럽 트레바리는 2015년 회원 80명으로 시작해 2022년 2만 명의 회원들이 활동하고 있다. 트레바리 회원들은 19만 원에서 40만 원을 내고, 4개월 동안 독서클럽에 참여해 한 달에 한 번 모여 3시간 동안 자기가 읽은 책에 대해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클럽마다 15~20명 정도 참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하는 사람, 노동자들은 예전에도 독서의 끈을 놓지 않았다. 일에 찌든 삶이 아니라 취미와 문화로서 즐길 수 있는 교양생활의 한 축이었다. 또 다른 한 축은 노동운동 발전의 촉매제로 독서다. 지금은 너무나 평범하지만 불온서적이라 불렸던 사회과학 서적, 인문학 서적을 노동자들이 모여서 읽고 토론하며 더 나은 세상을 꿈꾸고 계획을 모색했다. 독서모임은 노동운동 조직의 출발이기도 했다. 지금도 이런 기풍이 이어져 노동조합 안에 학습 모임을 꾸리고 책 읽기를 한다.

노동자들은 독서의 끈을 놓지 않기 위해 책을 개인이 사기도 하고 빌리기도 한다. 기업 내 도서관이 있거나 책이 작은 규모로 비치된 곳도 있다. 가까이 존재하는 공공 도서관, 학교 도서관도 있다. 노동조합에도 있다. 작은 규모로 갖춰놓은 곳도 있는데, 전문적으로 관리하는 노동조합도 있다. 한국노총 도서관이 그런 공간 중 하나다.

한국노총 도서관의 내부 모습, 여의도 한국노총 6층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동전문도서관, 한국노총 도서관
책 읽기, 노동운동에 큰 도움

한국노총 도서관 업무를 현재 담당하고 있는 임욱영 한국노총 정책1본부 국장은 “80년대 중후반 전문 사서 분이 한국노총 도서관의 기틀을 마련했다고 알고 있다. 과도기를 거쳐서 한국노총이 2005년 여의도에 자리 잡으면서 제가 입사했다. 그때부터 도서관 전산화를 시작해 지금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며 “한국노총 도서관은 한국에서 유일무이한, 노동 및 사회관계 자료들을 폭넓게 보유한 노동전문도서관”이라고 설명했다. 총연맹 차원에서 도서관을 차려 서적을 체계적으로 관리하는 곳은 한국노총뿐이다. 현재 장서는 3만여 권이다. 주로 한국노총 및 산하조직에서 발간한 자료와 사회과학 및 인문학 서적이다.

노동자와 노동운동의 책 읽기를 돕는 공간으로 한국노총 도서관은 긍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임욱영 국장은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상황들 속에서 서로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마음, 즉 사람에 대한 이해가 노동운동의 기본이라고 생각하는데, 이를 위해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독서가 아닐까한다”며 “책을 통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사실, 생각하지 못한 가치, 가지 못한 곳과 할 수 없는 많은 것을 상상하며 배울 수 있기 때문이고 함께 읽고 함께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세상을 꿈꿀 수 있기 때문”이라고 노동운동과 독서가 만나는 긍정적인 지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런 노동운동과 독서가 만나는 공간이 한국노총 도서관이기도 하다. 나아가 임욱영 국장은 “한국노총 도서관이 한국의 역사, 한국의 노동조합, 한국의 노동운동을 연구하고 배울 때 꼭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전문도서관이 됐으면 한다”면서 “도서관과 박물관의 역할을 함께하는 노동전문도서관으로 정말 많은 이용자들이 함께 노동의 역사를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장소로 변화해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독서문화 증진 지원 줄인 정부
사회의 독서 회복탄력성 ‘0’으로 가나

책 읽기의 중요성은 쓰면 지면 낭비일 정도로 많이들 알고 있다. 한편으론 책을 안 읽는다고 많은 이들이 우려한다. 책 읽기의 끈을 놓지 않는 성인들이 안 희귀한, 독서가 충만한 사회는 어떻게 다가갈 수 있을까. 한국노총 도서관이라는 노동전문도서관을 맡아본 입장에서 임욱영 국장은 “공공도서관을 많이 짓고, 정규직 사서를 지금보다 몇 배 이상 고용해야 하고, 아이들이 자라나는 학교에는 도서관과 사서 선생님이 필수라는 게 명시돼야 한다”며 “지역 특성에 맞는 작은도서관, 전문도서관이 많아져 지역 주민과 시민들이 자유롭게 자주 이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도서관과 사서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것과 더불어 독서를 다양한 형태로 접할 수 있는 경험이 필요하다. 지자체 도서관을 중심으로 한 독서모임, 이동식 도서관 등이다.

그런데 이번 정부의 정책은 거꾸로 가는 듯하다. 최근 발표된 2024년도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산안을 보면 1년 동안 60억 원 규모로 운용해오던 ‘국민독서문화 증진지원’ 사업이 사라졌다. 해당 사업은 영유아에게 책을 지원하는 ‘북스타트’, 이동식 도서관인 ‘책 체험버스’, 독서모임을 지원하는 ‘독서동아리 활동’, ‘책의 해’ 행사 등을 지원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독서를 경험하기 어려운 사회로 가려는 것이다. 청소년들에게 도서교환권을 지원하는 ‘청소년 북토큰 지원(2023년 34억 원)’, ‘책 읽은 사회 문화기반 조성(2023년 15억 원)’ 등도 사라졌다. 작은 도서관을 지원하는 사업도 말이다. 대신 ‘디지털 도서물류 지원(12억 원)’, ‘소외계층 전자책 접근성 제고(14억 원)’, ‘중소출판사 성장도약 지원(30억 원)’ 등이 새로 생겼다. ‘출판 수출 및 인력양성 지원’도 77억 원 규모로 이전보다 커지긴 했으나, 독서문화 증진을 직접적으로 지원하는 사업들이 사라졌다. 이 소식을 접한 사람들은 ‘읽을 권리’의 보편성을 보장하지 못하는 정부 정책이라고 우려했다. 책 읽는 사람이 사라진다고 책 읽기를 지원하는 예산을 깎아서야 되겠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왔다. 책을 읽지 않는 사회에서 창의성과 민주주의를 담보할 수 있겠냐는 질책도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읽을 권리가 누구에게나 보장돼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독서의 끈을 놓았다 다시 돌아갈 수 있으려면 다양한 독서 관련 경험을 쉽게 해야 하는데, 책 읽기 지원이 사라지면 경험은 어렵다. 사회의 독서 회복탄력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인문사회과학출판인협의회, 전국동네책방네트웤, 책과사회연구소,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국서점조합연합회, 한국작가회의, 한국출판인회의는 2024년 정부의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 전액이 삭감되자 성명을 냈다.

“앞으로도 우리는 정보-지식의 기반 시설과 내용을 확충하여 모든 시민이 평등한 지식 접근의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 돈 없는 시민도 원하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정보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시민 각자가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읽기의 문화를 널리 그리고 깊게 발전시켜 생각하는 사회, 깨어있는 사회, 성찰하는 사회, 시민이 기만당하지 않는 사회, 아무도 시민을 바보로 만들 수 없는 사회, 시민의 판단력이 살아 숨 쉬는 사회, 평등하고 정의로운 민주시민사회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고자 한다. 국민 누구나 책을 가까이 하고 향유하는 독서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정부 독서 진흥정책이 더욱 강화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내년도 독서 예산을 전폐에 가깝게 삭감한 처사는 부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