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항만, 하역노동자에겐 불안
스마트항만, 하역노동자에겐 불안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11.13 07:54
  • 수정 2023.11.13 07:54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급격한 항만 하역 변화, 충분한 직능교육과 현장 목소리 수렴 필요”
[인터뷰] 김상식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김상식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하역노동이 변하고 있다. 지난 10월 27일 준공을 완료한 부산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는 시운전 기간을 거쳐 내년에 정식 개장할 전망이다.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 준공을 시작으로 한국에서도 이른바 ‘스마트항만’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이제 시작 단계인 스마트항만에 대한 산업계의 기대는 커 보인다. 내연기관 장비를 대폭 줄인 저탄소 하역 작업을 비롯해 물량 적재 해소, 생산성 향상, 산업재해 감축 등을 달성할 수 있을 거로 내다본다. 정부도 마찬가지다. 해양수산부는 지난 1월 ‘스마트항만 기술산업 육성 및 시장 확대 전략’을 수립·확정하기도 했다.

여러 긍정적 전망이 나오지만, 하역노동자는 고용불안을 겪고 있다. 네덜란드 로테르담, 미국 캘리포니아 등 세계 각국에 들어선 스마트항만의 공통특징은 무엇보다 자동화다.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도 선박의 접안부터 항만 출입까지 노동자 없는 하역이 이뤄질 계획이다.

지난 10월 24일 만난 김상식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은 “노동자들이 불안을 느끼는 건 사실”이라며 “항만 하역 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수 없다면 충분한 직무전환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마트항만,
커지는 하역노동자 고충

- 한국 정부는 스마트항만 개장을 주요 과제로 밝혔다. 첨단 기술 도입 등으로 인한 항만 산업의 변화는 노동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나.

제조업 분야에서 이미 상당 부분 공정 자동화가 이루어진 것처럼 인공지능의 발달로 항만 물류 역시 변화를 맞이하는 중이다. 인력에만 의존하던 전통적인 항만물류산업은 노동자가 기계를 이용하는 현재를 넘어 자동화 시대로 가고 있다.

당장 내년 부산 신항 서컨테이너부두 2-5단계 개장을 시작으로 항만하역산업은 스마트항만 시대에 본격 돌입한다. 배에서 컨테이너를 내리는 하역 작업부터 이송, 적재 등 사람이 기력(汽力)을 이용해 수행하던 기존의 하역 작업이 원격·자동 조종과 모니터링 시스템 등을 기반으로 자동화할 것이다. 일례로 컨테이너야드(CY)*에서 크레인 한 대를 움직이려면 노동자 4~5명이 필요했지만, 이제는 1명이 통제실에서 원격 운전 방식으로 크레인을 조종한다.
*항만에서 컨테이너를 보관하고 인수·인도하는 야적장

- 결국 노동조합은 일자리 감소에 직면할 듯하다.

스마트항만으로 대표되는 항만 하역 기술의 발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은 모두가 인지하지만, 자동화는 결국 인건비 감축으로 이어진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서 빠른 전환은 힘들겠으나 부산 신항에 이어 인천 신항, 광양항에 스마트항만이 예정대로 도입될 것이다. 일자리 감소는 분명하리라고 본다. 생계와 직결되기 때문에 항만 하역노동자 모두가 걱정을 안고 있다.

고용불안 문제를 항운노련에선 어떻게 대응하고 있나.

일단 부산 신항의 경우 항만 운영사가 기존 업무를 북항에서 신항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 다뤄야 할 고용유지, 이주 비용 등을 두고 노사가 협의 중이다.

특히 중요한 건 직무전환 교육이다. 크레인·트랙터 조종이나 신호수 업무가 사라지기 때문에 기존 노동자들은 결국 직무전환을 해야 한다. 스마트항만으로의 급격한 변화에 앞서 충분한 직능교육과 현장 목소리의 수렴 등이 선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현재 항운노련은 스마트 항만 장비 운용과 같은 항만 하역노동자의 신규 직종으로 직무전환을 위해 인력양성 방안 마련, 교육훈련 개발 계획 등에 관한 연구를 해양수산부를 비롯해 유관기관과 논의·진행하고 있다.

기후재난과 노후장비
하역 현장에 여전한 안전 문제

- 자동화와 더불어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후위기도 산업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하역노동자들이 현장에서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하역 작업은 선박의 입출항 시간, 도매시장의 경매 시간, 화물열차의 정차 시간 등 물류 시스템과 스케줄에 맞춰 이뤄진다. 또 야외에서 인력과 장비가 혼재된 채로 작업해야 해서 폭염·폭우 등 악천후는 물론, 매연과 소음 등의 유해 요인에 그대로 노출된 채 하역노동자들은 일한다.

고용노동부에서 35℃ 이상의 무더위 시간대를 피하는 옥외작업 중지를 권고하고 있지만, 앞서 말한 물류 시스템 속에서 작업하기 때문에 이행되기 어려운 현실이다. 작업을 중단하면 국내 물류 유통뿐 아니라 수출·입에도 차질을 빚게 된다. 화물이 세계 각국으로 물처럼 흐르는 이면에는 더위를 무릅쓰고라도 작업을 해온 조합원들의 희생이 있다.

올해 국회에선 폭염 때 작업 중지 의무화를 골자로 하는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이상기온으로 인한 폭염 등이 갈수록 더 심해질 것이기 때문에 관련법 개정과 물류 분야 적용에 관한 충분한 노사 간 논의가 필요하다.

- 항만 하역노동자의 안전과 관련해 내구연한 없는 노후 하역장비도 고질적인 문제로 꼽힌다.

고중량, 장척의 화물을 취급하는 항만 하역 작업은 인력과 기계 동력을 혼합한 작업 특성으로 인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명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노후화된 하역장비는 인명사고를 키우는 요인 중 하나다. 인명사고가 발생한 항만의 크레인 중 운용 기간을 20년 넘긴 게 절반 이상이다.

건설용 타워크레인의 경우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내구연한을 20년으로 정하고, 기한이 지나면 정밀진단을 통해 3년 단위로 연장하도록 돼 있다. 반면, 항만 노후 크레인은 규제가 전무하다. 내구연한이 지난 하역장비의 노후화로 인한 인명피해를 미연에 방지하려면 항만 하역장비의 내구연한 기준을 제도화해야 한다.

사회적으로 노동자의 안전이 중요한 가치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난해 중대재해처벌법과 항만 안전사고 및 재해예방을 위한 항만안전 특별법이 시행된 만큼, 안전을 우선으로 하는 입법과 정부 정책이 현장에 정착되어야 한다.

ⓒ 참여와혁신 백승윤 기자 sybaik@laborplus.co.kr
김상식 전국항운노동조합연맹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물류 현장 책임지는 하역노동자,
불안정한 법적 지위 개선 필요해

- 현장 조합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무엇인가.

항운노련 조합원들이 많이 하는 이야기 중 하나가 하역노동자의 법적 지위 문제다. 하역노동자들은 사용자와 직접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는다. 직업안정법 33조에 의거해 고용노동부 장관의 허가를 받은 항운노동조합이 근로자공급을 하고 있다. 과거부터 계절적 변동성과 무역거래량 등 물류의 파동성으로 인해 사용자가 노동자를 상시고용하기에는 작업의 수급관계가 안정되어 있지 않다는 이유로 지금까지 노동조합이 근로자공급을 해왔다.

이와 같은 불완전한 노사관계로 인해 한 명의 노동자가 다수의 사용자와 관계를 맺는다. 한 달에 A회사, B회사, C회사의 작업을 하는 식이다. 특정 회사와 근로계약을 맺고 일하는 게 아니어서 단체교섭에도 어려움을 겪는다. 또 항운노련 조합원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상 근로자에는 해당하지만, 근로기준법의 근로자로는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관계 법령을 조속히 개정해 하역노동자들이 근로기준법상 근로자 지위를 보장받는 등 제도적인 보호 장치가 마련돼야 한다.

- 하역노동자들은 연안·농수산시장·철도 등 다양한 물류 현장에서 일하고 있지만 노동환경이 매우 열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장별 문제점과 대응 방안이 궁금하다.

우선 수산물 하역노동자들은 전국 각지의 어항에 입지하고 있는 수산물 위판장에서 하역 작업을 한다. 수산물 하역 작업은 대부분 사람의 힘으로 진행된다. 수산물은 다루기도 어려울 뿐 아니라 신선도를 위해 신속히 하역해야 한다. 매우 힘든 작업이지만 수산물 위판장의 개설자이자 교섭 당사자라 할 수 있는 수협이 수년째 임금교섭을 회피하고 있어 하역노동자들은 저임금에 시달린다. 수협중앙회가 회원 조합을 대표해 중앙 차원의 교섭창구를 마련해야 한다.

또 전국 도매시장에서 하역 작업을 하는 시장 하역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은 주70~80시간에 이른다. 김장철 같은 성수기에는 주90시간 노동에 시달린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는데 무엇보다 도매시장의 경매 시스템에 맞춰 일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의 경우, 품목에 따라 과일류는 새벽 2시와 아침 8시, 채소류는 저녁 8시에서 11시 사이에 주6일 경매를 진행한다. 국내 농수산물은 경매 이후 중도매인에게 상품이 분산된 후 마트·시장 등으로 공급되는 구조다. 농수산물이 산지에서 시장으로 이송된 뒤 신속하게 하역 작업을 해야 경매를 적시에 끝낼 수 있고, 그래야 소비자들이 신선한 농수산물을 구매할 수 있다.

이러한 도매시장 물류 시스템에 맞춰 일하기 때문에 시장 하역노동자는 주 6일 심야 과노동에 시달린다. 시장 하역 노동환경이 열악하다 보니 국내 농산물시장이나 수산물시장에서 60세 이하 하역노동자를 찾기 힘들다. 대부분 60~70대고 그마저도 구하기 어렵다. 시장 하역노동자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해 현재 서울 가락동 농수산물도매시장에서는 주5일제를 논의하고 있다. 남들 쉬는 토요일, 일요일에 쉬게 되면 가족과 함께 주말을 보낼 수 있게 된다. 아울러 야간·새벽에 이뤄지는 경매를 주간 경매로 바꾸는 방안까지 모색할 필요가 있다.

- 올해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철도 하역노동의 생존권 문제도 과제로 언급했다.

철도 하역노동자는 벌크시멘트 화차의 감소로 인해 생존권을 크게 위협받고 있다. 현재 벌크시멘트 화차 수는 폐차 수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벌크시멘트 화차는 약 1,800량으로 66개의 시멘트 운송열차가 운행하며 연간 1,000만 톤가량을 수송했다. 그중 2027년까지 1,637량이 기대수명인 30년을 맞아 폐차될 예정이다. 반면 신규 화차 제작 계획은 2025년까지 1,200량에 불과하다. 통상 화차 제작에서 도입까지 2년 정도가 소요되기 때문에 폐차와 신규 화차 도입 시기까지 간극이 발생하게 된다.

벌크시멘트 열차의 감소로 철도 하역노동자들의 작업량은 전년 대비 절반도 채 되지 않을 정도로 줄었다. 작업량 감소로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며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대량수송이 가능한 철도는 탄소중립시대에 주요 운송수단임에도 불구하고 육송에 비해 정책적 지원이 매우 열악하다. 항운노련은 조합원의 생존과 국가 기반시설인 철도의 물류 활성화를 위해 중장기적인 관점으로 철도공사 등 유관기관과 협의해 나갈 계획이다.

항운노련 2만 조합원은 지금 이 시간에도 열악한 작업환경 속에서도 대한민국의 물류를 위해 헌신하고 있다. 항운노련은 급변하는 물류산업 속에서 하역노동자의 생존권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