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소 인사팀 직원의 구조조정기
조선소 인사팀 직원의 구조조정기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11.10 12:07
  • 수정 2024.04.05 21: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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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퇴직 대수롭지 않은 사회, 괜찮은 걸까
[인터뷰] 영화 〈해야 할 일〉 박홍준 감독
박홍준 〈해야 할 일〉 영화감독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바닷가에서 오두막집을 짓고. 사~는, 어릴 적 내 친구. (···) 누가 뭐래도 나의 친구는 바다가 고향이란다.” 직장 동료들과 ‘영일만 친구’를 신나게 부르던 입사 4년 차 강준희 대리는 인사팀으로 발령 난 뒤 희망퇴직자 명단을 작성하게 된다. 어느덧 웃음이 사라진 그의 일터에선 생계를 잃게 된 노동자들이 튼 ‘민중의 노래’(김호철 작)가 흐른다.

영화 〈해야 할 일〉은 조선소 인사팀 직원이 구조조정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일을 그렸다. 조선소에 구조조정 칼바람이 불던 2016년 전후로 박홍준 감독이 “원치 않아도 해야 했던” 당시 상황을 재구성해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28회 부산국제영화제(BIFF) ‘한국영화의 오늘-비전’ 부문에 초청돼 ‘올해의 배우상’과 ‘한국영화감독조합 플러스엠상’을 수상했다. 2024년 봄 개봉을 목표로 〈해야 할 일〉을 재편집 중인 박홍준 감독을 만났다.

- 독자에게 인사 부탁한다.

영화 만드는 사람이다. 영화 전공자도 아니고, 대학에 다닐 때까지만 해도 영화를 만들려 했던 건 아니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열심히 놀다가 서른 다 되어서 부산에 있는 중견 조선소로 어렵게 취업했다. 부산에 연고가 없어서 주말에 할 일을 찾아보던 중 부산국제영화제 전용관인 영화의전당을 알게 됐다. 주말이면 시민 대상 아카데미를 운영했는데, 저는 각본 수업을 들었다. 각본을 쓰고 나니 영화를 만들고 싶어졌고 단편영화를 제작했다. 주말마다 친해진 친구들과 2~3년 정도 품앗이처럼 연출도 하고 촬영도 하면서 보냈다. 영화 만드는 작업에 즐거움을 느끼다 보니 점점 회사보다 영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 경험을 바탕으로 영화를 제작했는데,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입사 다음 해인 2016년부터 조선업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기 시작했다. 당시 조선업 전반적으로 워낙 상황이 안 좋았다. 소위 빅3조선사로 불리는 당시 현대중공업·삼성중공업·대우조선해양 모두 구조조정을 엄청나게 단행했고, 정부는 조섭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지원했다. 원래 조선업은 업종 내 이직이 꽤 잦은데, 업계가 워낙 안 좋다 보니 달리 갈 곳도 없는 상태였다. 다들 딴 업종으로 떠났고 제가 다녔던 회사도 계속 순환휴직, 복지축소 등을 진행했다. 흔한 말로 젊고 일 잘하는 사람들이 많이 떠났던 거로 기억한다. 생산직의 경우 조선업은 어느 순간부터 정규직 채용을 안 하거나, 규모를 굉장히 줄였다. 대부분의 생산직은 협력사 소속이었고, 협력사와 계약하지 않는 방식으로 생산 인력을 감축했다.

영화 〈해야 할 일〉 ⓒ명필름

- 인사팀 직원으로 일할 당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무엇인가.

회사 분위기 자체가 오랜 시간 기억에 남아있다. 입사하고 4년여간 인사팀에서 했던 일은 대체로 구조조정 업무였다. 구조조정 업무는 인사팀도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이 아니다. 당시 막내라서 업무를 지원하거나 지켜보는 정도였는데, 팀원들이 하루하루 지쳐가더라. ‘고정비를 얼마 줄여라’, ‘사람은 이 정도 내보내라’ 같은 지시가 떨어지면 다들 돈 들어갈 구멍을 살펴보며 비용 계산을 했다. 시간외 수당, 주말 출근 수당, 장기근속 수당 등 지급할 돈을 일단 유보시켜놓은 상태에서 계속 인건비를 줄이는 식이었다. 하면 할수록 정신적으로 힘든 일이었고, 회사 분위기도 굉장히 안 좋아졌다. 또 순환휴직자의 빈자리를 남아있는 사람들이 메꾸느라 모두 힘들어했다. 반대로 사람이 부족해 휴직 대상자가 회사에 나와 일한 적도 있었다.

- 결국엔 회사를 그만뒀는데, 구조조정 업무가 큰 계기였는지?

영화를 해야겠다는 결심이 가장 크게 작용했지만, 구조조정 업무를 하면서 더는 회사를 더 다닐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4년 넘게 인사팀에서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직해도 인사 업무를 했을 것이다. 해본 게 구조조정뿐이라서 ‘이건 아닌데’ 싶었다.

“이렇게 까지 해야 하는가 싶어서요.”
“회사 대출로 집 샀다며. 발목에 온갖 족쇄를 채우고 무슨 말이 많아.”


- 작품의 제목을 〈해야 할 일〉이라고 지었다.

각본을 쓰기 전부터 제목을 정했다. 원치 않아도 해야 했던 경험을 토대로 각본을 썼기 때문에 ‘해야 할 일’이라는 제목이 떠오른 것 같다.

영화 〈해야 할 일〉 ⓒ명필름
영화 〈해야 할 일〉 ⓒ명필름

- 영화 시작과 함께 주인공이 동료들과 ‘영일만 친구’를 부르는 장면이 나온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바닷바람을 마셔가며 일 해온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 부장도 있는데, 그 정도 직급이면 한 조선소에서 30년 넘게 일했기 때문에 ‘영일만 친구’ 같은 노래를 좋아할 것 같았다. 어찌 됐든 조선업은 나라를 이끈 국가 기간산업 중 하나라서 조선소에서 일하는 분들은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다. ‘국민을 먹여 살린 주역 중에 한 명’이라는 그들의 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노래가 아닐까 싶었다.

- 첫 번째 장편 연출작 소재로 구조조정을 택한 이유가 궁금하다.

살면서 사회와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사실 많지 않은데, 영화의 시대적 배경이자 인사팀 신입직원으로 일했던 2016년 무렵이 제겐 그랬다. 박근혜 정권 퇴진 집회 등 밖에서는 조금이라도 나은 사회를 만들어 보겠다며 사람들이 거리로 나오는데 저는 그렇지 못한 삶을 살고 있었다. ‘나는 지금 뭐 하는 걸까’라는 고민을 많이 했던 그때의 감정을 언젠가는 각본으로 쓰고 싶었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에선 어느 한 쪽을 악인으로 묘사하지 않으려고 신경 썼다. 한쪽의 입장에 서버리는 순간 더 큰 시스템을 보지 못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구조적 문제를 더 잘 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인사팀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다뤄보면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밖에서 보면 인사팀은 갑의 위치에 있고, 해고당한 노동자들은 을이라고 여기기 쉽다. 그런데 인사팀 직원들도 사실은 을이다. 물론 사정이 조금 나을 수야 있지만, 그들도 나름의 고민을 안고 있다. 만약 인력 감축 업무를 거부하면 다른 팀으로 배치되어 해고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 인사팀 출신의 변명일 수도 있지만, 시스템의 문제지 사람의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그 시스템을 거부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인사팀 직원이 악인으로만 비춰지지 않길 바랐다.

박홍준 〈해야 할 일〉 영화감독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그동안은 왜 열심히 안 했습니까?”
“우리에게 제대로 할 기회를 줘 본적이나 있습니까. 나 같은 전기장이를 엉뚱한 부서에 보내질 않나. 한 번 찍혔다고 뺑뺑이나 돌리니까 회사가 이 모양 이 꼴 아니야.”

- 인사팀과 희망퇴직 대상자 간에 고성이 오가는 장면이 있다. 희망퇴직 대상자가 “우리한테 제대로 일할 기회를 줘본 적이나 있느냐”고 인사팀에게 따져 묻는 부분인데, 매우 현실적으로 그려냈다는 느낌을 받았다.

실제로 회사에서 일하던 중 현장에서 보기도 했고, 각본을 쓰기 위해 자료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일반적인 케이스 중 하나란 것을 알았다. 굴지의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하면서 벌이는 행태를 보면, 정말 상관없는 엉뚱한 부서로 직원을 보낸 뒤 알아서 나가게 만들거나 수치를 주는 경우가 많더라.

- 희망퇴직자 명단을 만드는 과정에서 주인공은 내적 갈등을 겪는다. 감독을 투영한 인물인데 실제로는 어땠나.

외로워지더라. 구조조정 시즌이면 회사 사람을 만나기 정말 힘들어진다. 입사 동기가 많은 신입사원이라 모임이 많았는데 가지 못했다. 회사에서 큰 이슈이니 만나면 다들 구조조정에 대해서 물어 본다. 알더라도 말할 수 없고, 실수로라도 말하면 안 되니까 아예 회사 사람들과 만나는 자리를 멀리했다.

감정의 기복도 컸다. 앞서 얘기했듯 옆에서 업무를 지원하는 수준이었는데도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었다. 순간순간 ‘현타’가 자주 왔던 것 같다. 가령 면담하고 나오시는 분들 눈이 시뻘게져 있다. 면담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퇴직을 권유받은 거니까. 그들 입장에서는 당장 앞이 막막했을 것이고, 회사로부터 필요 없는 사람이라고 통보 당한 것이기 때문에 배신감과 분노를 느꼈을 것 같다.

영화 〈해야 할 일〉 ⓒ명필름

- 다니던 회사는 구조조정을 단행한 뒤 좋아졌나.

사실 구조조정의 효과가 단기간에 나오는 건 아닌데, 조선업 자체에 지금 일할 사람이 많이 부족한 현재가 그 결과인 것 같다. 조선소들이 조정들을 인력을 감축한 탓인데, 노동자들로부터 신뢰를 잃은 것 같다. 좋을 때야 회사의 구성원이지만 조금만 상황이 안 좋으면 밖으로 내쳐지지 않나. 회사도 나름 전략을 모색했겠지만, 정말 경영 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방법이었는지 의문이다.

직장에 다닐 때 종종 느꼈는데, 회사가 일하는 사람들의 의견을 구하지 않고 의사결정을 한다. 결국 일하는 주체는 사람들인데, 그들의 의견을 어느 정도 따라가면 함께 좀 더 나은 일터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했다.

- 영화를 통해서 관객에게 던지고 싶었던 메시지는?

어떤 특정한 메시지를 던지기보다, 이 영화가 힘께 고민해 볼 기회이길 원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서 희망퇴직은 아무렇지 않게 시행된다. 사회적으로도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가령 금융권 희망퇴직 뉴스를 보면 ‘몇억씩 가져가서 좋겠다’는 댓글이 달리는데, 퇴직당하는 사람은 앞이 막막할 것이다. 젊은 사람은 어떻게든 일자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자식들 한창 학교 보낼 40~50대는 회사를 나가면 어디 갈 데 없는 경우가 많다. 목에 칼이 들어오는 순간인 텐데, 사람들이 어느 순간부터 희망퇴직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느낌이 들었다. 과연 이토록 당연하게 여겨도 괜찮은 걸까. 스스로 질문을 많이 했다. 이 영화를 보신 관객들과 함께 고민해 보는 시간을 갖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