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대노총 금융노동자들이 공동 투쟁에 나선 까닭은?
양대노총 금융노동자들이 공동 투쟁에 나선 까닭은?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3.11.13 11:43
  • 수정 2023.11.1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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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정부 관치금융 분쇄, 금융 공공성 강화 등 요구
‘과도한 개입’, ‘근시안적 금융정책’ 지적
​​​​​​​4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 총력투쟁’ 결의대회
4월 12일 오후 서울 용산구 대통령실 앞에서 열린 ‘양대노총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 총력투쟁’ 결의대회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미국 스타트업의 곳간처럼 여겨졌던 실리콘밸리은행(SVB)이 올해 3월 10일 파산했다. 윤석열 정부가 ‘시중은행 과점 체제를 완전 경쟁 체제’로 바꾸겠다며 모범사례로 내세운 소규모 특화은행이었다. 제도 개혁 근거로 삼았던 모범사례가 사라졌지만, 금융당국은 여전히 은행권 완전 경쟁을 촉진한다는 기조다.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주재하는 ‘은행권 경영·영업 관행·제도개선 TF’는 위와 같은 기조의 ‘은행권 개선 방안’을 지난 7월 5일 발표했다. △은행권 경쟁 촉진과 구조개선 △성과급‧퇴직금 등 보수체계 개편 △손실흡수능력 제고 △비이자이익 비중 확대 △고정금리 비중 확대 등 금리체계 개선 △사회공헌 활성화 내용이 담겼다. 그러나 TF는 금융권 협회, 연구기관, 민간전문가만으로 구성됐을 뿐 노동계는 배제됐다. 일선에서 직접 일하는 노동자들의 의견은 반영될 수 없는 구조였다.

“대통령발 관치금융”
금융산업 위기에 공동투쟁 전개

TF 가동으로 본격적인 윤곽을 드러낸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은 노동계로부터 빈축을 샀다. 경쟁 촉진이란 명목으로 신규 업체 난립을 허용한다면, 특히나 규제산업의 특성을 가진 금융산업의 질서를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동의 대가를 ‘돈 잔치’로 격하하며 임금체계에 개입하려는 모습에 ‘관치금융’이라는 비판도 이어졌다.

금융 노동계의 양축인 한국노총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이하 금융노조)과 민주노총 전국사무금융서비스노동조합(이하 사무금융노조)은 그간의 연대 수준을 격상해 양대노총 금융노동자 공동투쟁본부(이하 금융 공투본)를 꾸리고 대응에 나섰다. 금융 공투본은 지난 4월 1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발대식을 열고 “윤 정부는 서민의 삶을 지킬 정책 대안은 내놓지도 않은 채 소수의 재벌과 빅테크를 위한 규제 완화, 부자만을 위한 감세 정책, 수구세력만을 위한 이념 몰이 등 혐오와 분열의 파티를 벌였다”고 지적했다. 금융당국의 계획을 ‘대통령발 관치금융’으로 규정한 금융 공투본은 △윤석열 정부의 관치금융 분쇄 △금융 공공성 강화 △금융 정책 실패 책임자 퇴진을 위해 투쟁을 전개할 것임을 밝혔다.

5월 16일 윤석열 정부 취임 1년을 맞아 개최한 ‘현장에서 바라보는 금융정책의 문제’ 기자간담회에서 금융 공투본은 현 정부의 금융정책이 ‘대통령발 관치금융’인 이유에 대해 보다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금융 공투본은 “SVB 파산 이후에도 금융당국은 여전히 본인들만 옳다는 착각에 빠져 금융위기를 가속화하는 정책들만 내놓고 있다. 그들이 추진하는 규제 개혁은 ‘동일기능 동일규제’ 원칙을 훼손하며 빅테크·핀테크사의 금융업 진출 허용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며 “금산분리 완화가 가져올 문제점, 특히 금융소비자에게 전가될 피해에 대해 론스타 사태에서 그랬듯 결국 아무도 책임지지 않을 것”이라고 짚었다.

대통령의 돈 잔치 발언에 대해선 묵묵히 일해 온 금융노동자를 매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금융 공투본은 “물가폭등, 특히 공공요금 인상에 대한 국민 불만을 금리 상승기에 이익이 증가한 금융회사로 돌린 것까지는 참을 만했지만, 매일 국민들을 대면하며 금융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노동자들까지 ‘돈 잔치’를 벌이는 파렴치한으로 몬 것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금융노조와 사무금융노조 각각 재단을 설립해 수년간 취약 계층을 지원해 온 활동마저 깎아내리는 ‘금융권 때리기’에 분노를 표하기도 했다. 금융 공투본은 “정부와 금융당국은 금융 노사가 협력해 사회에 기여해 온 노력은 외면한 채 금융권 때리기에만 급급했고, 금융회사 임원뿐만 아니라 직원들의 성과급·퇴직금 문제에까지 개입하는 위헌적 언행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5월 31일 금융 공투본은 TF를 주재하는 김소영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했다. 금융 공투본은 김소영 부위원장이 가족이 운영하는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시행령을 개정했다고 주장하며 금융정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인사혁신처의 백지신탁 판단을 거부하며 행정심판을 청구했던 김소영 부위원장은 비판이 일자 며칠 뒤 돌연 중앙상선 주식을 백지신탁 하기로 했다.

현장 금융노동자,
윤 정부 금융정책에 낙제점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금융정책에 대해선 현장 금융노동자들도 낙제점을 줬다. 금융 공투본은 지난 7월 17일부터 8월 23일까지 은행업, 증권업, 보험업, 카드업, 공공 및 기타 유관기관에서 일하고 있는 조합원 1,800여 명을 대상으로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에 대한 공동설문조사를 실시했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89.7%가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 전반에 대해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100점으로 환산 시 17.5점에 그치는 수준이다. 부정 평가 이유로는 ‘과도한 개입’과 ‘근시안적인 금융정책 및 체계 구성’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대해서는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이 90%에 육박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9월 14일 공동설문조사 결과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설문조사는 윤석열 정부의 금융정책이 얼마나 현장과 괴리해 있는지 보여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규제가 완화된다면 안전성이 중요하고 경제와 민생에 영향이 큰 금융산업의 공공성을 담보할 수 있냐는 근본적인 의문을 던지지 않을 수 없다”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에 노동계의 목소리를 귀 기울이라고 요구했다.

앞으로 금융 공투본은 조합원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정부 투쟁에 힘을 싣겠다는 입장이다. 주요 투쟁 목표는 △관치금융 중단 △금산분리 완화 철회 △점포 폐쇄 중단 및 신규채용 확대 △공공기관 단체교섭권 보장 및 노정교섭 복원 등이다. 올해 남은 기간에는 조합원 숏츠 영상 공모전, 국회 토론회, 금융노동 포럼 등을 공동주최해 대내외적으로 요구안을 알릴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