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상담 대부분···상담 창구 늘려 접근성 높여야”
“성희롱 상담 대부분···상담 창구 늘려 접근성 높여야”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3.11.14 10:23
  • 수정 2023.11.14 13: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청 진정 진술서 작성 등 도우려면 충분한 상담시간 필요”
[인터뷰]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실장

고용노동부는 내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며 민간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지원을 중단하고 관련 예산을 올해 12억 1,500만 원에서 내년 5억 5,100만 원으로 54.7% 감축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민간단체가 고용평등상담 창구를 운영하는 방식에서 고용노동부 산하 지방노동관서에 상담 창구를 두는 방식으로 전환하면서 기존 19개의 창구를 8개로 줄이겠다는 내용이다.

고용평등상담실은 직장 내 성희롱, 고용상 성차별 등의 피해노동자 대상으로 대응방안 등 정보를 제공해 신속한 권리구제를 지원하고 관련 분쟁을 예방하며 피해노동자가 정상적인 직장생활을 이어갈 수 있도록 심리 정서치유 프로그램을 연계·지원하는 활동을 수행한다. 고용노동부는 여성·노동단체 등 민간단체의 상담 역량을 활용한다는 취지에서 2000년부터 24년간 민간 고용평등상담실에 예산을 지원했다. 그 결과 전국의 고용평등상담실은 2000년 10곳에서 올해 기준 19곳까지 늘어났다.

전국의 고용평등상담실 상담 건수를 보면 2005년 5,906건에서 2022년 1만 3,198건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적으로 상담 건수가 늘어나는 추세를 보이는 만큼 상담 창구는 확대돼야 한다는 게 상담실을 운영하는 민간단체들의 공통된 입장이다. 2000년부터 정부 예산을 지원받아 상담실을 운영해온 서울여성노동자회의 최수영 고용평등상담실 실장을 만나 상담활동과 관련된 이야기와 고용노동부의 상담실 지원 예산 축소 계획에 관한 입장 등을 들어봤다.

* 인터뷰는 지난 10월 18일 서울 마포구 서울여성노동자회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실장 ⓒ 서울여성노동자회
최수영 서울여성노동자회 고용평등상담실 실장 ⓒ 서울여성노동자회

- 서울여성노동자회와 고용평등상담실에 관해 간단히 소개해달라.

서울여성노동자회는 1987년 3월 21일에 창립했다. 37년간 ‘성평등 노동’ 실현에 대한 깃발을 들고 활동해왔다. 창립 당시 조직명은 ‘한국여성노동자회’였고 지역별로 조직이 구성되면서 92년 구심점을 되는 한국여성노동자협의회(現한국여성노동자회)가 출범했다. 이때부터 명칭을 서울여성노동자회(이하 서울여노)로 바꿨다.

87년 창립 당시에도 왜 독자적인 여성노동단체가 필요한가에 대한 의문이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 대한 답은 우리 사회의 성차별 등 여성노동 문제는 보려고 노력해야 보인다는 거였다. 이에 따라 여성노동자 저임금, 직장 내 성희롱 피해 등 문제를 발굴하고 이슈화하며 법·제도 개선 및 정책 제안 등의 활동을 해왔다. 또 여성노동자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사회에 이들의 목소리를 알리는 ‘스피커’ 역할을 해온 경험 등을 바탕으로 1995년 ‘평등의전화’라는 여성노동 전문 상담 창구를 개설했다. 이후 서울여노가 정부에 이러한 상담실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제안했고, 제안이 받아들여져 2000년부터 정부 지원 사업에 따라 민간 고용평등상담실도 함께 운영해왔다. 그때부터 ‘평등의전화’와 ‘고용평등상담실’을 병기하고 있다.

- 고용평등상담실에서 주로 어떤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나?

기본적으로 노동상담을 진행한다. 근로기준법,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등에 기초해서 법령 정보 안내나 해석을 해드린다. 내담자가 일터에서의 고충을 말하면 당사자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불합리한 상황이라고 판단되면 관련 대응방법 등을 안내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이 경우는 노동부에 진정할 수 있고 해당 절차는 어떻게 진행된다 등 정보를 제공한다. 경우에 따라 변호사, 공인노무사 등 법률 전문가 상담을 연계해준다. 이를 통해 내담자는 소송을 준비해야 할 사안이라면 승소 확률은 어느 정도이고 소송을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을 상담받을 수 있다.

심리상담은 노동부의 심리정서치유 프로그램 사업과 연계해 지원한다. 2018년부터 노동부는 직장 내 성희롱 피해노동자 대상으로 최대 10회 해당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서울여노가 무료 심리상담을 시범 운영해보고 토론회를 통해 정부에 관련 프로그램 필요성을 설명한 이후 이 사업이 시작됐다.

직장 내 성희롱 상담 60~70%
피해노동자 심리회복 위해 사건 대응 도와

- 고용평등 관련해 주로 어떤 상담이 이뤄지는가?

서울여노는 1년에 1,000여 건 상담을 진행한다. 그중 60~70%는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이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1)가 나오기 직전인 2017년부터 성희롱 상담이 서울·경기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때 저는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에서 임금체불, 육아휴직 상담 등을 훨씬 많이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대부분의 지역에서 성희롱 상담이 제일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 직장 내 성희롱 상담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직장 내 성희롱 피해가 있었다고 내담자가 밝히면 제일 먼저 확인하는 건 회사에 신고했냐는 사실이다. 대표, 중간관리자, 직속 상사 등 누가 피해 사실을 알고 있는지에 따라 회사가 인지했는지 여부가 달라진다. 보통 중간관리자 정도면 회사가 인지했다고 볼 수 있는데 남녀고용평등법상 회사는 직장 내 성희롱 발생을 인지할 경우 지체 없이 성희롱 건을 조사해야 하므로 이 부분 확인이 가장 먼저 필요하다. 이 밖에도 성희롱 관련 취업규칙 내용이 있는지, 성희롱 예방 교육은 받았는지 등도 확인한다.

보통 1회 상담시간은 1시간 이내다. 1시간이 넘어가면 내담자나 상담자나 했던 말을 반복하게 되기 때문에 상담 활동가들이 직접 마련한 상담 매뉴얼 등을 통해 일정한 계획에 따라 전화 상담 또는 내방 상담을 진행한다.

성희롱 피해노동자들은 심리적 회복이 되지 않으면 문제가 발생한 회사에 그대로 다니거나 이직해 다음 회사에 들어가기도 힘들어한다. 대개 성범죄 피해자가 됐다는 죄책감이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는 피해노동자들께 지금 (성희롱 피해 건에 대한) 마침표를 찍지 않으면 다음으로 넘어가기 힘들고, 지금은 잊고 넘어가도 언젠가는 다시 돌아와서 마침표를 찍어야 할 수 있다고 말씀드린다. 그냥 재수가 없다면서 떠나는 게 제일 좋을 수도 있다. 그런데 보통은 (피해 사실로부터) 떠나기 힘들다. 여기서 마침표라는 건 회사의 징계 조치나 노동부에 진정해서 얻은 결과 등 피해노동자 본인이 여기까지 하겠다고 마음을 먹고 실행을 한다면 그 이후에 마음이 풀리는 지점을 말한다.

우리에게 전화하신 건 피해노동자도 뭔가 하고 싶다는 마음에서라고 생각한다. 그냥 사건을 덮고 가는 게 괜찮으신 분들이 상담 전화를 하신 건 아닐 거다. 본인 스스로 걸리는 지점이 있다는 것이고 저희는 그런 걸리는 지점을 없애도록 최대한 도와드린다.

- 상담 활동을 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경험이 있었나?

최근에 내담자와 긴밀하게 협조해 직장 내 성희롱 사건에 대응하는 사례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내담자와 같이 뭘 좀 해보겠다고 전화하시는 분들이 되게 강인한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다. 왜 성희롱 사건 대응을 끝까지 하고 싶냐고 물어봤을 때 대체로 내담자들이 하는 대답은 ‘다른 사람도 이런 일을 겪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말이었다. 개별적으로 만나거나 심층 면접 조사를 할 때도 자주 나오는 답변이다. 그래서 이런 분들을 만나면 오히려 제가 억울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이 사람이 이런 일만 겪지 않았으면 시간을 허비하지 않고 열심히 일했을 텐데’라는 생각에서다.

한번은 내담자 한 분이 10회의 심리상담이 거의 끝날 무렵에 ‘오늘은 안 울고 상담했어요’라고 저한테 웃으며 말을 건넨 적이 있다. 너무 감사했다. 이렇게 주저앉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분들은 추후 서울여노가 어떤 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면 많이 도와주신다. 그럴 때 경외감을 느끼기도 한다.

19곳→8곳 상담 창구 줄면
접근성 저하, 상담시간 감소 등 우려

- 최근 고용노동부가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예산 지원 중단 및 운영방식 변화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며 우려되는 점이 있다면 무엇인가?

노동부 계획은 현재 19곳의 고용평등상담실을 지원하지 않고 전국 8개 지청에 고용평등상담 창구를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면 실질적으로 노동자들의 상담 창구 접근성은 줄어들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노동부는 필요 시 전담 상담 인력이 출장을 가겠다고도 밝혔는데, 지금도 경남 지역에는 창원시의 마산창원여성노동자회의 고용평등상담실 하나밖에 없어 경남 내에서도 이동거리가 길어 상담 접근성이 낮은 문제가 있다.

그리고 상담 이후 노동청에 진정할 경우 당사자가 진술을 잘 할 수 있도록 저희가 힘을 많이 쏟는다. 내방 상담을 오시게 하고 2~3시간을 투자해 진술서 초안을 만들기도 한다. 그런데 행정기관에 채용된 사람이 상담 이후 이런 도움까지 구체적으로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도 고용노동부 대표전화 1350으로 전화 상담을 받으려고 했다가 연결이 안 돼서 저희에게 오시는 경우도 많다. 창구가 줄어들면 내담자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상담받기 어려워질 수 있다.

또 노동부는 사업 평가 결과에 따라 직접 고용평등상담 창구를 운영하겠다는 것인데 그 평가는 어디서 어떻게 진행됐는지 확인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까지도 저희는 상담실이 더 많이 확대될 수 있도록 방법을 강구하고 온라인 상담 활성화를 위한 여건을 마련할 것을 노동부에 요구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런 계획이 나온 건지 이해되지 않는다.

- 서울여성노동자회의 향후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

고용평등상담실 운영 지원 예산 삭감 계획에 대한 문제 제기는 지속적으로 할 예정이다. 한편으로는 37년간 서울여노가 해온 평등의전화 등의 활동은 그대로 이어갈 것이다. 사실 고용평등상담실에서 면접 과정에서 성차별을 받았다는 등의 고용상 성차별 상담을 많이 못했다. 피해당사자가 취직하는 입장이어서 혹시 불이익이 생길까 봐 문제를 제기하기 못하는 이유도 있고 암묵적으로 생기는 불이익은 확인할 방법이 부족해 이슈로 끌고 가지 못하는 측면도 있다. 이와 같은 성차별 사례 등을 발굴해 대응하고 성평등한 조직문화 실현을 위해 활발히 논의하고 활동할 것이다.

1) 2018년 1월 서지현 검사는 검찰 내 성추행 피해 사실을 폭로하며 국내 사회에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Me Too) 운동을 촉발시킨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