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잡으려면?
금융노조, 집토끼와 산토끼 모두 잡으려면?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3.11.13 11:43
  • 수정 2023.11.13 12: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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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전환으로 시중은행 중심 조합원수 감소
외연 확대와 내부 조직 강화 통한 발전방안 고민
지난 10월 17일 금융노조 발전방안 토론회가 열렸다. ⓒ 참여와혁신 정다솜 기자 dsjeong@laborplus.co.kr

금융노조의 조합원 수가 감소하고 있다. 특히 금융노조에서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시중은행 조합원 수가 급격하게 줄었다. 디지털화에 따른 시중은행의 점포 축소, 인원 감축 영향이 크다. 산업전환으로 인한 구조적 변화인 만큼 집토끼 지키기로는 금융노조의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수 없는 상황이다.

단순히 조직 외연을 확대하자는 산토끼 잡기만으로도 안 된다. 내부 조직혁신 없이는 산토끼를 감당하지 못하거나, 오히려 집토끼가 떠날 수도 있다. 금융노조는 과거 비정규직 조직화에 실패한 경험이 있다. 금융노조가 ‘조직혁신과 조직확대를 위한 제언’이라는 부제목으로 10월 17일 ‘금융노조 발전방안 토론회’를 개최한 배경이다.

박홍배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노조의 지부 개수는 증가하고 있지만 전체 조합원 수는 감소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미조직 금융사업장과 타 업종 사업장의 조합원을 담을 수 있는 큰 그릇을 만드는 조직혁신 없이는 조직이 점차 쪼그라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 같은 고민이 최근 조직확대 사업을 더 적극적으로 추진하는 한편 이번 토론회를 개최하게 된 이유”라고 밝혔다.

구조적 변화 따라 시중은행 비중 줄어
“전체 조합원 수 감소 추세 계속될 것”

금융노조의 현실은 숫자로 드러난다. 2019년 37개 지부에서 2022년 39개 지부로 산하 조직은 늘었다. 반면 같은 기간 조합원 수는 9만 6,597명에서 9만 1,619명으로 4,978명이 감소했다. 특히 90%대를 유지해 온 시중은행 조합원 비중은 지난해 기준 87%로 줄었다.

하익준 경제학 박사(전 금융노조 정책실장)는 “금융노조의 조직 역량은 장기간 하락, 약화 추세”라며 “원인은 제도, 정책, 기술의 변화가 은행의 인력과 지점이 감소하는 방향으로 비즈니스 모델이 변화된 것에 기인한다”고 설명했다.

금융산업은 빠르게 디지털화되고 있다. 은행 창구 거래 비중은 2001년 42.2%에서 2022년 5.4%까지 줄었다. 이에 따라 시중은행 점포수는 2011년 4,304개에서 2021년 2,930개로 감소했다.

하익준 박사는 “2000년대 이후 은행산업에서 기술 변화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진행됐다. 특히 모바일 뱅킹 발전 속도는 폭발적”이라며 “이런 추세가 지속될 경우 향후 은행의 인력과 지점의 증가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조합원 및 조직률 상승을 기대하기도 어렵다”고 밝혔다.

조혜경 금융경제연구소 소장도 “시중은행의 비용 절감 중심 수익 창출 모델이 바뀌지 않는 한 시중은행 비중 하락과 그로 인한 전체 조합원 수 감소 추세는 계속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지속 가능성 위해 외연 확대는 ‘필수’

이런 현실에서 금융노조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외연 확대는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우상범 한국노총 중앙연구원 연구위원은 “조합원 감소는 조합비 감소와 사용자에 대한 교섭력 하락으로 이어진다. 이는 금융노조 운영에 큰 장애 요인이 될 수 있다”며 “조직화 전략은 금융노조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한 선택 사항이 아닌 필수 사항”이라고 밝혔다.

우상범 연구위원은 금융노조의 조직화 전략으로 “시중은행 중심의 금융노조 운영 방침과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 없다”며 △비금융권(저축은행·신용보증 등)과 비정규직(콜센터 등) 조직화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 △조직확대 사업 위한 특별회비 부과 등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정식 국제사무직IT서비스노조 한국협의회(UNI-KLC) 사무총장은 “(금융노동자를 조직하는) 외국의 산별노조들도 핀테크 노동자 조직화는 아직 초기단계다. 금융권 노동자들의 보수적이고 안정을 추구하는 독특한 문화도 그 이유가 될 수 있다”면서 “그러나 전통적인 금융권은 이미 체험했듯이 화살보다 빠르게 점포 폐쇄와 디지털화 급행열차를 타고 있다. 금융노조 구성원에 새로운 직업군으로 부상하는 디지털 노동자와 핀테크 노동자를 흡수하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라고 이야기했다.

조혜경 소장은 “외연 확대 대상과 방향에 관한 논의부터 시작해야 한다. 미조직 신산업 분야 조직화 또는 기존 조직과 통합 등 다양한 선택지를 검토해야 한다”며 “특히 노동자와 사용자 범위를 확대하는 노조법 2·3조 개정안 통과 시 서비스 산업 신규 조직화의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내부 조직 강화도 놓칠 수 없어
정책 역량 등 산별노조 역할 강화 필요

물론 외연 확장과 동시에 내부 조직 강화도 중요하다. 우상범 연구위원은 “디지털화에 따른 지점 폐쇄는 가속화될 것이고, 그에 따른 인력 구조조정은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며 “금융노조가 조합원들의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해 이탈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했다.

진창근 한국씨티은행지부 위원장은 시중은행 조직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창근 위원장은 “대형 시중은행지부는 지부 내 다수의 계파가 존재하며 다수 팀이 선거에 출마해 특정 계파의 연임이 쉽지 않다. 또 국책은행 같은 정부발 집단적 위기 체감이 어렵고 안정적인 영업 상태로 상당 기간 생존권 투쟁 돌입 가능성도 거의 없다”며 “이런 요인들로 중소형 지부 대비 조직화의 어려움이 있다”고 설명했다.

산별노조로서 정책 역량 강화도 필요하다는 주장도 나왔다. 조혜경 소장은 “은행산업 고용은 다른 산업에 비해 규제정책 민감도가 매우 높아 방향 수립 과정부터 전략적 개입이 필수적”이라며 “이를 위해 노조 차원의 정책 역량 강화와 더불어 노사정 협의제도를 복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상범 연구위원은 “IT 기술 변화에 따른 장·단기 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따른 액션플랜을 면밀히 구상해야 한다”며 “조합원 고용안정을 위한 정책으로 가장 시급하게 정년연장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희원 부산은행지부 위원장은 “금융노조가 개별 지부의 고민에 힌트를 제공하는 역할을 해주길 바란다. 특히 시중은행의 속도를 따라가기도 버거운 지방은행은 조합원들이 더 불안해한다. 산별노조의 연구 역량을 나눠주는 도움이 절실하다”며 “특히 앞으로 조합원 수가 어느 속도로, 어느 시점부터 급격히 감소할지 예측부터 전제돼야 대처 방안을 더 실효성 있게 고민해 볼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아울러 산별노조로서 역할 강화를 위해서는 노정 교섭의 실질화를 고민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박요한 한국수출입은행지부 위원장은 “금융정책과 산업정책에 대응하고 정부의 일방적 정책 시달에 따른 조합원 피해 및 애로사항 논의 창구 마련을 위한 시작점으로 금융노조 주도의 양대노총 산하 금융공공기관협의체를 운영해야 한다”면서 “중앙은행의 금융노조 복귀를 통해 대정부 교섭력 확대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산별노조 비전 공유 과정도 챙겨야

외연 확대를 받아들이기 위해 금융노조 내부에 산별노조로서 비전이 공유돼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우상범 연구위원은 “산별노조의 위상 재정립과 정기적으로 조직화에 대한 상호 설득과 이해가 절실하다. 이는 2005년 금융노조의 비정규직 조직화 실패의 한 요인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신익동 신협중앙회지부 위원장은 “금융노조의 비전 및 전략 목표를 조합원들에게 제공하는 프로세스와 채널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금융노조의 재정 확충 방향에 대해 제언한 안배영 경제학 박사(전 금융노조 부위원장)도 “산별노조 강화 방안을 깊이 고민하고 개선점을 찾아낸다고 해도 이를 실천하는 단계에서 조직 구조적인 의사 충돌과 재정적인 한계에 봉착하게 된다. 사업본부 간 업무 조정과 역할 분담의 문제, 예산의 부족에 따른 사업의 포기 등 실제 적용이 쉽지 않기에 집행부의 의지가 매우 중요하다”며 “재정 확충의 방향도 지부의 재정 상황과 맞물려 있으므로 본조와 지부 간 상호이해, 사업 방향에 대한 공감대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이미 알고 있거나 생각하고 있지만 실천하지 못하는 것들, 반드시 해야 할 중요한 사업을 경쟁심과 이기심으로 반대하다 보니 의사결정이 안 되는 점, 구태를 답습하며 버리지 못하는 것들이 없는지 면밀히 살펴보고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홍배 위원장은 “알고도 안 하는 것도 있고 알고도 못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계속 토론을 해왔다. 예를 들어 도급 콜센터 노동자에 대한 중앙노사위원회의 합의도 있었지만, 콜센터 노동자 조직화에 대해 토론회를 거치고 한국노총 전국연대노조와 연대 방안도 마련하기 위해 노력 중이다. 이번 토론회에서 나온 여러 내용을 다시 공부하면 금융노조의 조직화 전략도 답이 나올 것이라 생각한다”며 토론회 참석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추원서 전 금융노조 위원장은 “금융노조 위원장직을 맡았을 때 정책기능 강화, 산별 체제 전환, 노조 정치세력화 강화, 사회공헌 등을 통해 지지받는 노동운동을 하는 것이 목표였다”며 “금융노조를 떠나서 보니 후배들이 이 네 방향에서 꾸준히 노력해 온 것 같다. 이젠 네 가지 목표가 어느 정도 내실화됐는지, 현재의 방향대로 가도 문제는 없는지 점검할 필요가 있다. 잘 연구해서 금융노조가 앞으로 어떻게 노동운동을 이끌고 발전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하고 대응책을 내놓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