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전환법, 위기의 노동을 구출할 수 있을까?
산업전환법, 위기의 노동을 구출할 수 있을까?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3.11.13 11:43
  • 수정 2023.11.13 1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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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안정 지원, 사회적 대화 등 기본원칙 담겨
양질의 일자리 창출과 이해당사자의 참여는 보완해야
지난 10월 6일 산업전환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이하 산업전환법)’이 통과됐다. 탈탄소 전환과 디지털 전환이라는 산업전환의 파고가 다가오는 시기에서 기술 지원을 위한 법제도가 아닌 노동을 위한 산업전환 관련 법제도의 첫 등장이다.

시대가 요구하는 산업전환
노동의 위기는 대처해야

탈탄소에 의해서든, 디지털 전환에 의해서든 산업전환은 불가역적인 시대 흐름이다. 다른 나라를 비롯해 최근 우리 사회에 나타난 전례 없는 폭염과 폭우로 인한 많은 시민들의 피해라는 실생활 속 재난의 증가는 이전처럼 고탄소 배출 시대는 유효하지 않다고 경고를 보내고 있다. 지구 온도 상승을 2050년까지 섭씨 1.5~2도로 제한해야 한다는 국제사회의 합의는 이를 방증한다. 탄소 배출을 획기적으로 줄이기 위해 탄소를 기반(석유, 석탄 등)으로 형성된 산업, 탄소 배출 상품을 제조하는 산업을 탈탄소 기반 산업으로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이다.

생성형 AI, 소위 Chat-GPT로 대변되는 인공지능 산업의 급성장과 코로나19 시기를 전후로 비대면 경제활동에 필요한 디지털 산업의 발달, 플랫폼경제의 활성화는 삶의 많은 양식을 바꿨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차원의 디지털 기술 발달이 산업의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수 있다는 점은 전 산업에 걸쳐 디지털 전환 선언이 이어지는 이유다.

문제는 산업전환과 노동의 위기가 같이 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탈탄소의 주요 대상인 발전산업 분야의 산업전환은 석탄화력발전소 폐쇄와 친환경에너지 발전소 신설이 필수적이다. 이 과정에서 닫히는 석탄화력발전소 사업장에 소속된 노동자들의 일자리 역시 사라진다. 석탄화력발전 비중이 가장 높은 우리나라의 경우 석탄화력발전 공기업 5사에 일하는 노동자(정규직, 비정규직 모두)는 2021년 기준 2만여 명 정도로, 산업통상자원부 연구용역 결과에 따르면 친환경에너지로 전환의 중간 단계인 LNG발전소로 전환할 경우 절반 이상이 유휴인력이 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만여 명 정도가 실업의 위기에 처하는 것이다. 중간 단계인 LNG발전소도 장기적으로 폐쇄한다고 했을 때 실업 규모는 더욱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마찬가지로 디지털 전환도 일자리의 감소를 예고하고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의 조사에 따르면 전 세계에서 2027년까지 8,300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이라 나타났다. 은행 영업점 폐쇄가 일례이다. 인터넷 뱅킹 등 은행산업 기술 변화에 따라 비대면 금융활동이 증가하고, 이에 따라 대면 거래의 중심지였던 은행 영업점들은 최근 많이 감소했다. 2017년 이후 2022년까지 문을 닫은 은행 영업점은 1,112개다. 2017년 340개의 영업점이 문을 닫은 뒤 2018년 74개, 2019년 94개로 감소폭이 작아졌다가 코로나19 시기에 들어서면서 2020년 216개, 2021년 209개, 2022년 206개 등으로 다시 감소폭이 커졌다. 코로나19로 비대면 금융활동이 커질 수밖에 없었고 디지털 전환도 상당 부분 함께 진행됐다. 단체협약 등으로 인해 점포 폐쇄에 따른 당장의 실업은 동반하지는 않았지만, 일자리의 안정성은 담보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산업전환이 가야 할 길이라면 노동의 위기, 노동자 삶의 위기도 필연적이다. 그러나 산업의 한 측면인 기술 혁신만이 아니라 노동 역시 전환이 가능하다면 위기로부터 발생하는 문제를 해소할 수 있다.

산업전환법, 국회 통과
고용안정 지원으로 노동의 위기 대처

이런 고민 끝에 지난 10월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산업전환법이 통과됐다. 총 3장 17조로 구성된 산업전환법의 1조 목적을 살펴보면 “이 법은 탄소중립 사회로의 이행 및 디지털전환 등 산업구조의 변화에 따라 나타나는 기존 산업의 침체 및 실업 등 일자리 위험에 대응하여 선제적으로 근로자의 고용안정, 일자리 이동 및 노동전환을 지원함으로써 산업전환으로 인한 고용불안을 최소화하고 지속가능하고 포용적인 경제성장에 이바지하는 것”이라 나왔다. 산업전환 시기 지원을 통해 일자리 위기를 최대한으로 줄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만들기 위한 법이라는 의미다.

산업전환법의 주요 내용은 △고용안정 지원의 범위 △사회적 대화를 통한 고용안정 지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역할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기본계획 수립 △고용안정 지원에 필요한 교육훈련 등이다. 고용안정 지원의 범위는 생각보다 광범위하다. 산업전환에 따른 직·간접적 피해가 예상되는 노동자, 기업, 지역을 지원하고 특히 취약계층 지원에 신경을 써야 한다고 나왔다.

산업전환 이해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를 기본원칙으로 삼은 것도 중요한 부분이다. 아울러 이해당사자들의 사회적 대화로 합의된 사항에 대해서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책에 반영키로 했다. 그렇다면 사회적 대화는 어디에서 진행될까. 산업전환법 안에는 명시돼 있지 않지만 부대의견으로 고용정책심의회 산하 전문위원회를 구성하기로 남겼다. 전문위원회 참여 주체는 노사 대표, 전문가, 공무원으로 구성하고 노사는 동수로 참여하기로 부대의견에 남겼다.

산업전환법, 우려의 시선들①
시혜적 정책 수준?

이렇게 만들어진 산업전환법은 노동의 위기를 제도적으로 지원한다는 내용을 담은 첫 법률로 의미가 있다. 그간 산업전환 관련 법률은 기술의 혁신에만 집중돼 있었다. 아울러 이번 산업전환법을 마중물로 산업전환 시 다양한 노동의 위기를 대처할 정책을 중앙정부와 지방정부 차원에서 만들 수 있다는 희망도 생겼다.

그러나 우려의 시선도 있다. 우려로 꼽히는 것들은 산업전환법이 만들어지기까지 10개월 간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쟁점으로 다뤄지기도 했다. 우선 법안의 이름을 무엇으로 하냐가 쟁점이었다. 당시 국회에서는 산업전환에 따른 노동의 위기를 지원할 법안으로 세 가지가 발의된 상태였다. 이수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21년 9월 대표발의한 ‘산업구조 전환에 따른 노동전환 지원에 관한 법률안’, 강은미 정의당 의원이 2021년 12월 대표발의한 ‘정의로운 일자리 전환 기본법안’,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2022년 6월 대표발의한 ‘산업전환시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 등이었다.

이수진 의원이 대표발의한 안은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노동정책을 수립하고, 노동자의 고용안정과 양질의 일자리로의 원활한 노동전환을 지원한다는 목적이 명기돼 있는 만큼 현재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전환법보다는 적극적 의미의 정책목표를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통과된 법은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인 만큼 지원에 초점이 맞춰진 경향이 크나, 이수진 의원 대표발의안은 노동전환을 법안명에 명시함으로 고용노동정책의 수립을 중심으로 봤다.

강은미 의원의 대표발의안은 ‘정의로운 전환’을 법안명에 명시하면서 산업전환 위기에 당면한 사람들에게 시혜적 정책으로 기능하는 게 아니라 당면한 사람들이 주체로 전환 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근소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던 세 가지 법률안을 두고 하나의 안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법안명에 대한 쟁점이 있었던 것이다.

이번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은 환경노동위원회 대안으로 비슷한 맥락의 세 법률안에서 공통점들을 찾아 통합한 것인데, 임이자 의원안의 명칭을 준용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 9월 27일 한국노동사회연구소가 기획한 ‘기후위기와 노조 대응’ 포럼에서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당시 산업전환법이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하고 본회의 상정 전) “법의 제목을 보면 산업이 바뀌는 데 따라서 고용안정을 지원한다는 게 포인트다. 산업전환 과정에서 노동자 참여를 보장한다거나 새로운 일자리르 창출한다는 등의 개념은 목적이나 내용에 포함돼 있지 않다”며 “법안 전체에서 정의로운 전환, 공정한 전환이라는 단어가 한 글자도 없다”고 지적했다.

산업전환법, 우려의 시선들②
이해당사자 참여와 양질의 일자리

산업전환 이해당사자의 참여 문제의 명시도 쟁점이었다.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산업전환법이 통과될 당시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반대표를 던졌다. 이해당사자의 참여가 제대로 명시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은주 의원은 본회의에서도 반대토론에 나섰는데, “이 법안은 산업전환에 따른 고용안정 기본계획을 세울 때 당사자들의 의견이 반영될 문 자체를 좁혀놓고 있다”며 “고용위기에 놓인 노동자들을 정책결정의 주체로 인정해 정의로운 전환으로 노동자의 당연한 권리를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하자”고 밝혔다.

다만 산업전환법에서 여지로 볼 수 있는 점은 제3조 기본원칙에 ‘사회적 대화’를 기반으로 고용안정 지원이 추진돼야 한다고 나왔다는 것,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시키며 부대의견으로 고용정책기본법 제10조에 따라 고용정책심의회 산하 전문위원회를 개설하고, 고용노동부가 해당 전문위원회를 노사 동수로 구성한다는 시행령을 6개월 내 제정하도록 노력한다고 남겨놨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지적은 이곳저곳에서 나오고 있다. 대표적으로 민주노총은 “법적 구속력도 없는 부대의견에 전문위원회 구성 시 노사 동수 의견을 달아 놓은들 노조를 탄압·배제하는 데 혈안이 된 정권에서 그것이 이행될 리 없다”고 비판했다. 법률안에 명시되지 않은 만큼 노동의 참여가 불확실하다는 것이고, 정부의 입맛에 따라 바뀔 수 있다는 우려다.

한편으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그곳으로 전환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것에 대한 내용이 포함돼 있지 않다는 문제 의식도 있다. 산업전환으로 발생하는 실업을 대처할 수 있는 가장 적극적인 방법은 해당 노동자들을 노동시장 밖으로 내보내지 않고 새로운 일자리에서 계속 일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 생긴 일자리의 수준이 이전보다 안 좋다면 일자리를 옮길 유인도 안 될뿐더러 산업전환이 사회양극화의 주범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고민 속에서 산업전환을 해야 한다는 국제노동기구(ILO)의 제언도 있다. ILO는 2015년 정의로운 전환 가이드라인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만드는 것을 중요하게 봤고, 모든 단계에서 주요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사회적 대화를 통한 의사결정이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덧붙여 지역을 중심에 두고 산업전환을 상상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많다. 예컨대 석탄화력발전소와 철강업체 등 고탄소 배출 산업이 지역 중심 경제 축을 이루고 있는 충남은 산업전환으로 인해 지역민의 일자리는 물론 지역 경제가 흔들릴 가능성이 있다. 이처럼 산업전환이 빚어내는 노동의 위기는 여러 가지가 얽혀있다. 이를 슬기롭게 다루기 위해 국회를 통과한 산업전환법을 바탕으로 보다 구체적인 제도와 정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