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체불 청년노동자들, “근로감독관이 ‘고소 취하’ 종용해”
임금 체불 청년노동자들, “근로감독관이 ‘고소 취하’ 종용해”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3.11.24 14:33
  • 수정 2023.11.24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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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감독관 ‘고소 취하’ 종용으로 임금 체불 피해자 25명 구제 기회 잃어
청년노동자들 “직무 유기 근로감독관 징계, 더 적극적인 근로감독 행정” 요구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 우원식·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키친엑스 임금 체불자 모임, 청년유니온이 공동 주최한 '키친엑스 등 청년노동자 임금체불문제 해결 촉구 기자회견'에서 나현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이 사회를 보고 있다. ⓒ 우원식 의원실

일부 근로감독관들이 노동자들의 임금 체불 피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공유주방 업체 ‘키친엑스’에서 약 6개월간 임금을 체불당한 청년들이 23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지방고용노동청·중부지방고용노동청의 담당 근로감독관이 사업주에 대한 고소 취하를 종용했다”고 주장했다. 30여 명의 피해자들이 체불당한 임금은 2억 1,500만 원에 달한다.

기자회견은 더불어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이하 을지로위원회), 우원식·이동주 더불어민주당 의원, 키친엑스 임금 체불자 모임, 청년유니온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이들은 “직무 유기로 의심되는 근로감독관을 엄벌하고, 더 적극적인 근로감독 행정 체계를 마련하라”고 고용노동부에 요구했다.

키친엑스 임금체불 피해자 진정훈 씨는 “근로감독관이 ‘고소를 취하해야 대지급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해 피해자 30여 명 중 25명이 고소를 취하했다”고 밝혔다. 대지급금은 임금 체불이 발생할 시 국가가 일정 범위에서 대신 지불하는 금액을 말한다. 피해자들은 사업주에 대한 처벌과 체불 임금 지급을 모두 원했는데, 근로감독관의 종용으로 대지급금이라도 받기 위해 사업주 처벌과 일부 미지급금을 포기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고용노동부 홈페이지에 명시된 대지급금 지원 요건에는 고소 취하에 관한 내용이 없다.

사회를 맡은 나현우 청년유니온 사무처장은 “소를 취하한 피해자들은 이제 권리구제를 받을 가능성 자체를 잃어버렸다”고 설명했다. 사건이 종결돼 대지급금 범위를 넘어선 체불 금액을 청구하거나 사업주 처벌을 요구하기 어렵게 됐다는 것이다.

청년유니온은 키친엑스의 사례 외에도 근로감독관들의 직무 유기 사례가 비일비재하다고 지적했다. 하은성 청년유니온 자문 노무사는 “근로기준법 적용 여부 등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거나, 법리에 어두운 진정인을 다그쳐 조서 내용을 바꾸는 사례도 있었다”고 밝혔다.

또 하은성 노무사는 한 근로감독관이 조사·검증 절차 없이 일사부재리(이미 판결이 확정된 사건에 대해 두 번 심리·재판하지 않는다는 원칙)를 자의적으로 적용해 사건을 종결시켰다고도 밝혔다. 그는 “(일사부재리 원칙을 자의적으로 적용한) 해당 감독관의 징계를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이동주 민주당 의원은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9월 ‘임금 체불을 중대범죄로 다루겠다’고 밝혔다”면서, “그런데 현장의 임금 체불 근절은커녕 피해자 보호마저 제대로 못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우원식 민주당 의원은 “억울한 임금 체불을 당했음에도 근로감독관의 직무 유기 등으로 보호받지 못한 노동자들이 피해 내용을 신고할 수 있는 제보 센터를 운영해, 실태를 파악하고 적극 대응하겠다”고도 밝혔다.

한편, 키친엑스 임금 체불 사건을 일부 관할했던 서울지방고용노동청 관계자는 사실관계와 해당 근로감독관의 징계 여부를 묻자 “개별 근로감독관들의 징계 여부나 근무 실태를 모두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법무부와 협업을 통해 꾸준히 대응하며 임금 체불 총액을 줄여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10월 자료를 통해 집중지도기간 운영으로 체불임금 1,062억 원을 청산하고 피해자 1만 7,923명을 구제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