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늦게 핀다고 서러운 것은 아니여”
“꽃이 늦게 핀다고 서러운 것은 아니여”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3.03 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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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노래하는 이유는 삶의 희망 때문
노래에는 희로애락이, 그래서 삶이 있다
소리꾼 장사익
ⓒ 행복을 뿌리는 판

1996년 한양대 강당. 가수 정태춘이 주도했던 음반사전검열철폐 운동이 대법원의 위헌판결로 비로소 종착점에 다다른 것을 기념해 열린 ‘자유 콘서트’에 피아니스트 한 명과 소리꾼 한 명이 무대에 오른다. 첫 음을 잡아주는 피아노 소리. 뚱땅! 소리꾼은 목청을 가다듬고 소리를 낸다.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 장사익 1집 <하늘 가는 길> 中 ‘찔레꽃’ -

소리를 내지르는 소리꾼의 핏줄 가득 오른 목을 보며 관중들은 흠칫, 그 소리에 전율을 느낀다. 피아니스트 임동창과 소리꾼 장사익의 등장은 그렇게 기자의 머리에 각인됐다. 그 후 10여년이 흐른 지금 소리꾼 장사익은 환갑을 앞두고 2008년 발표한 6집 <꽃구경> 공연과 함께 뉴욕 공연을 준비 중이다. 비가 내리던 2월 초 어느 날, 인왕산이 바라보이는 홍지동 자택에서 10여 년 전 그토록 기자에게 전율을 선사했던 그 소리꾼을 만나 삶과 죽음, 노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죽음에서 만나는 삶의 희망

소리꾼 장사익은 유독 죽음에 관심이 많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처음 발표한 음반 제목은 <하늘 가는 길>이며, 현재까지 발표한 6장의 앨범 중 무려 9곡이 죽음에 관한 노래다.

간다 가
내가 돌아간다 왔던 길
내가 다시 돌아를 간다

하늘로 간다네 하늘로 간다네
버스타고 갈까 바람타고 갈까 구름타고 갈까

하늘로 가는 길 정말 신나네요

- 장사익 1집 <하늘 가는 길> 中 ‘하늘 가는 길’ -


이유는 뭘까? 그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우리는 알아. 종착역이 어디인지. 우리도 죽으러 가는 거야. 그런데 우리는 그걸 모른 체 하는 겨. 우리가 깜깜한 밤에, 암흑 같은 밤에 산 속에서 조그만 불빛만 봐도 그냥 거기를 향해서 가잖아. 그건 희망이거든. 죽음을 알면, 그렇게 힘들고 어렵고 두려운 죽음을 알면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우리 삶이 얼마나 가치가 있겠느냐. 그렇게 모든 게 붙어있어 양면이. 이거를 아무리 힘들어도 이쪽을 생각하면 가치가 있는 것이고.”

시인 천상병은 삶을 ‘소풍’이라 하지 않았던가. 죽음에서 만나는 삶은 희망이고 설렘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꾼 장사익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니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 모른다.

노래를 부른다
허리가 굽은 그가
탁자를 타닥 치며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희망가를 부른다

- 장사익 1집 <하늘 가는 길> 중 ‘국밥집에서’ -

그의 삶도 그렇다. 나이 마흔 다섯에 노래를 시작해,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쓰러지는 꿈을 갖고 있는 환갑의 소리꾼이 걸어온 삶도 희망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나이 마흔 여섯에 노래를, 이거 말도 안 되는 거여. 마흔 다섯이면 끝날 나인데 그때 노래를 시작했단 말여. 그전에는 헷갈리고 그 뒤부터는 꽃피운단 말여. 잉? 나는 한번만 할 줄 알았는데 여까지 온단 말이지. 지금은 죽을 때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있고 그런 것이란 말이지. 세상에 어떤 끈, 희망의 끈, 긍정적인 생각, 이런 것을 가지고 가면 언젠가 꽃을 피우지 않겠는가. 세상은 봄, 여름, 가을, 겨울 다 꽃이 피어. 빨리 핀다고 해서 그게 일 년 내내 피는 것도 아니고 늦게 핀다고 해서 서러운 것도 아니고. 마찬가지 인생에 있어서도 열심히 희망을 노래하면 괴롭고 힘들었어도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이것이 마치 죽음과 삶의 어떤 룰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지 않을까.”

소리꾼 장사익은 유독 죽음에 관심이 많다.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처음 발표한 음반 제목은 <하늘 가는 길>이며, 현재까지 발표한 6장의 앨범 중 무려 9곡이 죽음에 관한 노래다. 이유는 뭘까? 그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을 찾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시인 천상병은 삶을 ‘소풍’이라 하지 않았던가.

죽음에서 만나는 삶은 희망이고 설렘이다. 그렇기 때문에 소리꾼 장사익도 희망을 놓지 않는다. 아니 죽음이 아니라 오히려 희망에 더 집착하는 것일지 모른다. 그의 삶도 그렇다. 나이 마흔 다섯에 노래를 시작해, 노래를 부르며 무대에서 쓰러지는 꿈을 갖고 있는 환갑의 소리꾼이 걸어온 삶도 희망이 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노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는 것

나 무엇이 될까하니
그리운 그대 꿈속까지 찾아가
사랑하는 그대 귀 씻어주는
빛 고은 솔바람 소리

- 장사익 2집 <기침> 중 ‘나 무엇이 될까하니’ -

뜬금없이 그의 노래 색깔이 궁금해졌다. 분명 밝은 색은 아닐 터. 혹자는 회색 속에 숨어있는 밝은 초록이라고 했다.

“(껄껄껄 웃으며)그건 생각 안 해봤는디… 음… 결국 노래는 인생의 희로애락을 담는 것이여. 또 희로애락 속에는 여러 색깔이 있겠지. 빨주노초파남보 같이. 하나씩 볼 적에는 무지개 색깔이 아무 것도 아니여. 근데 그게 다 모여서 무지개 색깔을 이룬다 말이여. 내 노래에도 분명히 희로애락이 다 들어가 있어. 노래는 희로애락을 담는 거란 말이여. 근데 우리 둘이 있는데 아버지, 어머니가 돌아가셨어, 아님 애인이 도망갔어. 커~. 내가 술 먹고 울고 막 그러는데 옆에서 위로해준다고 빨게 벗고 춤춰 봐. 위로가 안 되는 거여. 같이 술 먹고 울고 ‘그래 맞어’ 그래야 이게 씻어내 주는 거야. 진도 씻김굿이 바로 마음을 씻어주는 것이여. 내 노래는 죽음과 삶이 플러스, 마이너스가 돼서 결국 제로로 만들거든. 결국은 우리 마음상태를 하얗게 백지상태로, 빈 공간으로 만들어 준단 말여. 그래서 거기서 다시 새로운 그림을 그릴 수 있는 겨.”

노래 색깔은 모른다지만 그 노래의 결과는 청자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고 그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노래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현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단호하게 노래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옛날 민요 같은 거는 가락은 비슷해. 자장 자장 하면서 애기 이름도 부르고, 아버지 욕도 하고, 시어머니 욕도 하고, 노동할 때도 ‘내 팔자야’하며 나 혼자 욕할 수도 있고. 삶이 우러나오는 노래였는데 지금은 음악들이 거의 다 전문가, 음악가들만 맨드는 음악으로만 통용되고 있는데 그 음악가가 과연 인생을, 세상의 보편적인 인생을, 삶을, 자연을 담아낼 수 있는가. 바로 이런 것이여. 그래서 공감하는 것이 적지 않은가 싶어. 공연장이 아니라 엄마, 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노래 부르고, 아들내미 장가갈 때 노래 부르고. 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뿐이 없어. 아부지, 엄마가 좋아하는 노래를, 상주지만 내가 부르면 그게 효도지. 아들내미 장가들 때 얼매나 기분 좋아. 그럼 내가 노래 부르는 겨. 긍께 희로애락을 표현하는 거여. 슬플 때는 슬픔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고, 즐거우면 즐거움의 노래를 부를 수가 있고. 슬픈 것은 더 슬프게 해서 씻어내 주고, 즐거우면 더 즐겁게 해서 승화시키고. 생활이어야 돼. 노래가 생활화된 음악. 이것이 바로 노래하는 사람이여.”

“시를 백번만 읽어봐. 그게 노래여”

뜬금없이 그의 노래 색깔이 궁금해졌다. 분명 밝은 색은 아닐 터. 혹자는 회색 속에 숨어있는 밝은 초록이라고 했다. 노래 색깔은 모른다지만 그 노래의 결과는 청자의 마음을 하얗게 만들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그의 이야기이고 그의 바람이다. 그렇다면 노래란 도대체 무엇일까. 그리고 현대의 음악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그는 단호하게 노래는 생활이어야 한다고 말한다.

소리꾼 장사익의 노래는 대부분 기존의 시를 이용한 노래다. 그래서 그는 작곡이란 소리에 펄쩍 뛴다. 단지 자신은 시인들의 시를 뺏는 것뿐이라고 한다.

“시집을 많이 봐. 시인들은 이 세상을 되게 깊게 봐, 넓게 보고. 또 아름다운 시어가 있고. 그분들의 그것을 내가 뺏는 거여. 좋은 시만 찾으면 노래는 뭐. 시의 운율이 있잖혀. ‘낙엽이~ 뚝 뚝 당신처럼~’ 이렇게 그걸 한 백번만 읽어봐, 노래가 돼. 고조장단, 거기다 감정만 넣고 길게 하고 액센트 넣고. ‘당신을 찾아 나는 떠나네, 당신을 찾아 나는 떠나네’ 수 십 번 읊조리다보면 노래가 되는 거여. 아주 원시적으로 콩나물에 의존하지 않고. 제 가락이 되게 단순하고 반복되고 쉽지. 완전 카피지. 창작이 아니라. 작곡이라고 하면 못써. 분명 카피지 뭐. 하하하.”

눈 내린 밤길 달려가
그대 없는 빈 방을 지키는
성애 낀 유리창에
그리운 그대 이름만
남겨 놓고 돌아서는 내 발자국
너무 무거워

- 장사익 4집 <꿈꾸는 세상> 中 ‘사랑니 뽑던 날’ -

그렇다면 그가 뺏는 것은 시만이 아니다. 트로트 가요 또한 그가 ‘뺏는’ 것 중 하나다. 그런데 트로트 가요를 그렇게 부르는 ‘가수’가 또 있을까. 김추자의 1970년대 희트곡 ‘님은 먼 곳에’를 비롯해 이미자의 ‘동백아가씨’, ‘열아홉 순정’ 등을 자신만의 음악으로 승화시켜 전혀 다른 노래를 들려준다. 느림의 미학으로.

“사람들은 기계음악, 춤추고 하는 음악이 흥겹다고 생각하는데 실은 느림 속에 고조장단이 다 들어가 있어. 주었다가 뺏다가 막 변화무쌍하단 말여. 꽉 차 있어. 내가 모을 수 있을 때 까지 다 한 호흡으로 불러버려. 그럼 사람들도 같이 와. 바로 그런 차이가 있어.”

환갑에도 오는 4월 18일 미국 뉴욕시티 센터에서 열릴 <Voyage to Heaven> 공연 준비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소리꾼 장사익. 도전이 끝이 없다는 기자의 말에 “그들과 어떻게 소통할지 아주 흥미진진해. 재밌잖혀” 하며 해맑게 웃는 얼굴에서 그가 그리는 죽음과 삶, 노래의 상관관계가 희망으로 요약된다. 그렇다. 진정 죽음과 삶이 양면이고, 희망과 절망이 또 다른 양면이란 것을 아는 ‘가수’는 바로 소리꾼 장사익이다.

소리꾼 장사익은?
1949년, 충남 홍성의 시골마을에서 출생한 장사익은 장구재비였던 아버지 밑에서 노래를 배웠다. 농사가 싫어 무작정 서울로 올라와, 25년 동안 14개의 직업을 전전하다 나이 45세에 피아니스트 임동창의 권유로 처음 ‘가수’로 무대에 섰다. 1995년 1집 <하늘가는 길> 발표 이후 현재까지 그의 노래는 관객과 평단의 극찬을 받으며 공연은 매진사례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