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9.03.03 1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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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간 제한 문제 입장 따라 시각차 커
왜곡된 노동시장 풀어야 한다는 지적도
비정규괴담 답을 찾자 ②-1 비정규직, 무엇이 문제인가?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리나라 취업자 중에서 비정규 노동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노동계에서 추산하고 있는 비정규 노동자는 850만 명을 넘어서 전체 취업자 중 절반을 넘긴지 오래고, 정부 통계로도 500만을 훌쩍 넘는다. 모두가 비정규직이 문제라고 이야기하면서도 비정규 노동자가 줄지 않고 있는 것이다.

문제 하나. 고용불안과 차별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위해서는 그 문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 도대체 비정규직 문제가 무엇인가?

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전비연) 박정상 집행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의 핵심은 고용이 불안하다는 것과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비정규직은 안정된 직장이 아니라 언제든지 해고될 수 있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 또 정규직과는 달리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으면서도, 거기에 더해 사업장 내에서 각종 차별을 받는다. 지금 이 두 가지가 가장 심각하다”는 설명이다.

강남성모병원 비정규직 조합원 이영미 씨도 고용불안이 가장 큰 문제라고 진단한다.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가 단순한 급여문제는 아니다. 오히려 강남성모병원처럼 비용이 더 들더라도 노동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해 비정규직을 쓰는 경우도 있다”면서 이렇게 고용된 비정규 노동자는 언제라도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일에 집중할 수도 없다고 이야기한다.

대부분의 기업에서 비정규직을 쓰는 이유는 ‘싼’ 비용으로 ‘쉽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사용기간이 제한돼 있는 만큼 비정규 노동자들은 연차 누적에 따른 혜택이 거의 없다. 비정규 노동자들이 한 직장에서 쌓을 수 있는 연차는 고작해야 2년을 넘지 못한다. 이들의 경력은 쌓이지 않고 2년을 주기로 새롭게 시작된다.

이영미 씨는 “보통 기업들 보면 10년 근속사원이니 20년 근속사원이니 하면서 표창패나 감사패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 조합원들은 그런 걸 볼 때마다 가장 부럽다고들 한다”며 비정규 노동자들의 바람을 전한다.

박정상 집행위원장은 “직접고용 비정규직도 문제지만 최근에는 간접고용 비정규직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다”며 “이들은 노동조합을 결성하면 바로 해고되기 십상이고, 원청에서도 노동조합이 결성되면 업체와 계약을 해지해 버리기 때문에 더욱 열악한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강남성모병원 문제는 간접고용 비정규직의 문제가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라는 점도 아울러 지적하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문제 둘. 비정규직법의 기간 제한

당장 현실적인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비정규직법 문제를 지적하는 이도 있다. 한국노총 비정규직 담당 부위원장을 겸임하고 있는 한국노총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한비연) 이상원 의장은 “노동부가 비정규직법 개정을 강행하려 하면서 올해 7월에 사용기간이 만료되는 기간제 노동자와 파견직 노동자 100만 명이 해고될 거라는 설을 유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상원 의장은 이와 관련 “100~300인 사업장이 문제인데 이들 사업장의 비정규직 노동자를 모두 해고한다 해도 25만 명 정도다. 왜곡이 너무 심하다”며 “정부가 오히려 해고를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한다.

반면 노동부 차별개선과 박희준 사무관은 “7월이 되면 기업은 기간이 만료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를 정규직으로 고용하거나 계약을 해지하는 길밖에 없다. 지금 이 시기에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하는 것이 바람직한가?”라고 반문한다.

그는 이어 “기간을 2년으로 제한하면 숙련과 업무 질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면서 “통계적으로도 기간이 늘어날수록 정규직 전환 비율이 높아진다.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제한해 이력서만 돌고 돌게 할 것이 아니라, 기간을 연장하는 동시에 직업 소개와 직업능력 훈련, 정규직화 기업에 대한 인센티브 부여 등을 통해 기회를 넓혀 주자는 것이 기간 연장의 취지”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 이형준 노동정책본부장도 “현재 기간을 제한하고 있는 비정규직법은 문제라고 본다”면서 “기간 제한은 폐지해야 한다. 또 노동계가 주장하는 것처럼 사용사유를 제한하는 것도 문제를 해결하는 옳은 방법이 아니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제 셋. 노동시장의 구조와 시각

다른 한편 노동시장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장을 맡고 있는 중앙대 이병훈 교수는 “비정규직의 문제는 단순히 기간을 제한하거나 연장하는 문제가 아니다”고 전제한 뒤 “비정규직 문제는 분절되고 양극화된 노동시장의 왜곡된 모습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문제이며, 따라서 노동시장의 개혁 문제로 바라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병훈 교수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으로 나뉘어 있다”면서 “이런 이분법적 틀과 관행을 개선해야 효율성과 형평성을 갖춘 바람직한 노동시장의 모습이 될 수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또 “주체들 간의 일자리에 대한 시각차가 존재한다. 노동계는 정규직은 건드리지 않은 채 비정규직을 끌어올리는 것으로 생각하는 반면, 경영계는 정규직의 경직성 때문에 비정규직을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는 점을 지적한다.

노동시장에 대해 지적하지만 다른 시각도 있다. 이형준 본부장은 “비정규직은 시장에서 고용의 한 형태로 증가하고 있는 추세”라면서 “하지만 비정규직은 시장에서 뭔가 차별 받는 일자리라는 부정적 인식이 지배하고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진단한다.

박희준 사무관의 시선은 또 다른 곳을 향해 있다. “우리나라에서 비정규직 문제는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와 밀접하게 관련된다”는 것. 그는 “OECD도 정규직 노동시장의 경직성을 지적하고 있다. 이 문제를 푸는 것이 비정규직 문제를 풀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비정규직에 대한 시각은 이처럼 바라보는 이의 눈높이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가지고 있다. 눈높이가 같아도 서로 다른 방향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도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이렇듯 눈높이와 방향이 다르기 때문에 비정규직에 대해 지적하는 문제도 다르다. 그렇다면 이들은 각자 지적하는 문제들에 대해서 어떤 해결방안을 가지고 있을까?

비정규직, 어떤 형태가 있나?

1. 직접고용 비정규직
노동자를 고용한 고용사업주와 일을 시키는 사용사업주가 일치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기간제 근로계약을 체결할 때 언제까지 일하기로 약정한 경우를 말한다. 현행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에서는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기간을 2년 이하로 규정하고 있다. 만일 2년을 초과해 근무하면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 즉 무기계약으로 전환한 것으로 간주된다(고용의제). 기간제 노동자는 ‘기간제’보다 ‘계약직’으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

단시간 1주 동안 기준 근로시간이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를 일컫는다. 각종 파트타임 노동자들이 이에 해당한다.

무기계약직 정규직처럼 사용기간을 별도로 정하지 않은 경우를 말한다. 사용기간 만료에 따른 계약해지의 위험에서 벗어났으나, 임금, 복지 등의 제반 처우는 정규직과 차별을 두는 경우가 이에 해당한다. 은행이 별도의 직군을 새로 만들어 기간제 노동자를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 것을 두고 정규직화가 아닌 ‘중규직화’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

2. 간접고용 비정규직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가 일치하지 않는 경우를 말한다. 이 경우 계약은 고용사업주와 사용사업주 사이의 계약, 고용사업주와 노동자 사이의 계약 등 2단계로 이뤄진다.

파견 인력 공급을 목적으로 하는 파견업체가 고용사업주가 되며, 사용사업주의 사업장에서 일하는 경우다. 이때 파견업체는 채용·해고 등 고용과 관련된 권한과 책임을 가지며, 업무의 지시와 배치, 감독 등 사용에 대한 권한은 사용사업주가 가진다.

파견기간은 1년이며 최대 2년까지 연장할 수 있다. 파견을 사용할 수 있는 업무는 엄격하게 제한되며, 특히 자동차 조립라인 같은 직접 생산공정에는 사용할 수 없다. 파견기간이나 대상 업무를 위반하는 경우 사용사업주에게 파견직 노동자를 직접 고용해야 할 의무가 주어진다(고용의무).

도급 파견과 유사한 형태이나 일의 완성이 목적이다. 예를 들어 자동차 공장에서 도장 업무를 별도의 업체에 맡기거나, 여러 개의 조립라인 중 하나의 라인을 별도의 업체에게 맡기는 형태다.

파견과 도급을 엄밀하게 구분하는 것이 어려워 법정까지 가는 경우가 많다. 사내협력업체 등 도급계약을 맺은 수급업체(하청) 노동자에 대해 도급을 준 원청 사업주가 업무를 지시하거나 감독하는 것은 도급이 아닌 파견으로 판단한다(위장도급). 이 경우 해당 업무가 파견 대상 업무가 아니면 불법파견에 해당돼, 원청 사업주에게 하청 노동자를 직접 고용할 의무가 주어진다. 법원에 계류 중인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시비가 이에 해당된다.

외주화(아웃소싱) 기업 업무의 일부를 경영 효과 및 효율의 극대화를 위한 방안으로 제3자에게 위탁해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전산정보 처리나 콜센터를 외주화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며, 식당이나 경비, 청소 등 비핵심업무를 외주화 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3. 특수고용직
노동자 개인이 사업자등록을 해 법적으로는 사업자로 인정되는 경우다. 하지만 실제로는 특정 업체에 소속돼 일하는 경우가 많아 이들의 ‘노동자성’ 인정 여부를 놓고 논란이 진행 중이다. 대표적으로 보험설계사, 지입 화물차주, 덤프트럭 기사, 학습지 교사, 골프장 캐디 등이 해당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