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영건설 현장 건설노동자들, “11월부터 임금 못 받았다”
태영건설 현장 건설노동자들, “11월부터 임금 못 받았다”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1.09 10:19
  • 수정 2024.01.09 10: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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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도급 업체서 태영건설 재무 위기로 어음 현금화 난항 겪으며 임금 체불돼
태영건설, 어음 형태 대금 지급 계약 조건에 따른 것
8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청년주택 건설 현장 입구에서 열린 ‘임금체불 어음남발 태영건설 규탄 기자회견’의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부실징후기업’을 통보받아 지난해 12월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한 태영건설이 하도급 업체에 현금이 아닌 어음으로 공사대금을 지급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아울러 태영건설 시공 현장에서 일하는 건설노동자들은 태영건설의 재무 위기로 금융기관이 어음 현금화를 거절하며 11월분 임금이 체불되고 있다고 밝혔다.
* 재무적으로 곤경에 처해 있는 기업에 회생 가능성이 있는 경우, 파산·법정관리 등 강제적 절차 대신 채무 조건을 조정해 회생을 도모하는 절차.

민주노총 건설산업연맹 건설노조 서울경기북부건설지부 강북지대는 8일 오후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청년주택 건설 현장 입구에서 ‘임금체불 어음남발 태영건설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강북지대는 “태영건설이 하도급 업체에 공사대금을 어음으로 지급하면서 하도급 업체가 이를 현금화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그에 따라 태영건설의 시공 현장 전체에서 임금이 체불됐다”고 주장했다.

강북지대에 따르면 태영건설은 서울시 성동구 용답동, 중랑구 상봉동, 중랑구 묵동 등 3곳의 청년주택 신축공사 현장에서 하도급 업체에 지급해야 할 공사비를 어음으로 지급해 왔다. 이에 하도급 업체들은 어음을 현금화해 노동자들의 임금을 지급해야 했다.

건설노조 토목건축분과위원회 조합원들은 서울·경기·인천 지역 임금 및 단체협약 보충협약에 따라 한 달치 임금을 다음 달 15일에 받아 왔다. 그러나 하도급업체가 본래 현금으로 지급되는 공사대금을 어음으로 받으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만기 이전에 어음을 현금화하려면 금융기관에 ‘할인료’를 지불하고 어음의 액면가보다 낮은 금액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각 하도급 업체에선 이 손실분을 최소화하기 위해 현장 조합원들과 별도 합의를 거쳐 임금 지급일을 약 보름 늦춰 다음 달 말일로 바꿨다.

그럼에도 박철민 강북지대 철근팀 팀장에 따르면 현재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는 용답동 현장에선 지난해 11월분 임금(지급 예정일 12월 31일)부터, 상봉동 현장에선 지난해 8월분 임금(지급 예정일 9월 30일)부터 임금 지급이 미뤄졌다.

박철민 팀장은 이어 “지난해 10월분 임금까지는 말일 지급이라도 잘 지켜졌지만, 11월분 임금은 3개 현장 모두에서 체불됐다”고 밝혔다. 태영건설이 지난해 12월 28일 워크아웃을 신청해 어음의 위험성이 높아지면서 금융기관이 어음 현금화를 연달아 거절한 탓이다.

만일 오는 11일 태영건설의 워크아웃 개시가 최종 결정된다면 모회사인 TY홀딩스에서 자금을 투입하는 등 여러 자구안을 통해 태영건설에도 어음을 갚을 능력이 생긴다. 그러나 워크아웃이 무산돼 태영건설이 파산이나 법정관리 등의 절차를 밟는다면 어음을 갚지 못하게 될 가능성이 있다. 강북지대는 이같은 이유로 금융기관에서 어음 현금화를 연달아 거절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용준 강북지대 형틀팀 팀장은 “용답 현장 하도급사 청산건설에선 이날 기자회견에 앞서 오전 11시경 조합원 21명의 체불임금 총액 6,000만 원가량을 지급했지만, 이마저도 태영건설에서 지급된 공사대금 어음을 현금화한 게 아니라 자체적으로 자금을 융통해 마련한 금액”이라고 밝혔다.

박철민 팀장은 “상봉동은 고정 인원만 46명, 필요할 때마다 유동적으로 추가 투입되는 인원은 15명이다. 이들의 체불임금을 모두 합치면 2억여 원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또 박철민 팀장에 따르면 묵동 현장의 비조합원 노동자를 통해 확인한 바 이곳에서도 12월 말에 지급 예정이었던 11월분 임금이 지급되지 않고 있다.

박철민 팀장은 “IMF 당시 두 달, 세 달까지도 ‘쓰메끼리’를 당해 봤지만, 건설현장에서 어음으로 대금을 지급한다는 말은 처음 듣는다”고 호소했다. ‘쓰메끼리’는 발주처에서 지급한 공사 대금이 원도급을 거쳐 하도급으로 배분되는 과정에서 적게는 보름, 많게는 몇 달간 건설노동자 임금 지급이 유보되는 일을 말한다.

한편 강북지대는 “건설노조가 왕성하게 활동했을 때는 ‘쓰메끼리’(임금 지급 유보)가 길어야 30일을 넘기지 않았지만, 윤석열 정부의 건설노조 탄압 이후 이 기간도 길어지고 있다”고 비판했다. 즉 이들은 건설 현장에 만연한 임금 체불 문제에 정부도 책임이 있다고 강조하며 태영건설과 정부에 체불임금 지급과 건설노동자 생존권 보장을 촉구했다.

한편 태영건설 측은 “2022년 계약 체결 당시부터 외상매출채권담보대출* 형태로 대금을 지급하는 것이 계약 조건이었다”고 밝혔다. 태영건설 관계자는 또한 하도급업체가 어음 현금화에 어려움을 겪어 현장에서 임금체불이 이뤄졌다는 주장에 대해선 “당사에선 계약 조건에 따라 하도급 업체에 대금 지급을 완료했다”고 말했다.
*어음의 일종. 이 사안에선 하도급업체가 채권을 담보로 금융기관에서 대출을 실행하면 태영건설이 나중에 대출금을 갚는 형태로 거래가 이뤄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