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전력망 확충, 답은 ‘공공성 확대’
국가 전력망 확충, 답은 ‘공공성 확대’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1.24 12:13
  • 수정 2024.01.24 12: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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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소중립 중요성·전력 소비 커지며 신속한 전력망 확충 필요성 제기
전문가들, “빠른 사업 추진 필요하지만 민간 참여는 정답 아냐”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가 전력망 민영화 문제와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가 전력망 민영화 문제와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리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지속적인 전력 소비량 상승, 기후 위기로 인한 탄소중립 추세 등에 대응하기 위해 신속하게 국가기간 전력망을 확충하는 데 전력산업의 공공성 확대가 필수적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시 영등포구 국회 의원회관 제2소회의실에서 ‘국가 전력망 민영화 문제와 대안 모색’ 토론회가 열렸다. 이 토론회는 김성환·김회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 참여연대, 녹색연합, 에너지정의행동, 전국전력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최철호, 이하 전력연맹)이 공동으로 주최했다.

‘전력망’이란 발전소에서 전기 에너지를 생산하고, 송전·변전·배전을 거쳐 전기를 수송한 뒤 전기 에너지를 소비하는 과정을 가능케 하는 설비를 통틀어 뜻하는 말이다. 최근 기후 위기로 인해 탄소중립적인 재생에너지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국가기간 전력망을 신속하게 확충할 필요성이 제기된 바 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2월 더불어민주당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설비 확충 특별법안’을, 국민의힘에서 ‘국가기간 전력망 확충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두 법안 모두 전기사업법상 ‘송전사업자’가 전력망 개발 사업을 시행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고, 전기사업법 제7조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장관 혹은 시·도지사의 허가를 받으면 민간인이라도 송전사업자가 될 수 있다.

최철호 전력연맹 위원장은 개회사에서 “전력망 확충은 재생에너지를 확대해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달성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고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업”이라며 “투자 여력 부족을 이유로 민간 참여를 추진할 게 아니라, 공공이 이를 주도해 신속하게 전력망이 건설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생에너지 확대하면 설비 확충 필요성 증가···
전력망 구조부터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이날 토론회에서 사전 발제를 맡은 이상학 한국전력공사 건설혁신실 실장에 따르면 1991년부터 2022년까지 30여 년간 전력 수요는 377%, 발전 설비는 535% 늘어났지만 송전 설비는 153%밖에 확충되지 않았다.

이상학 실장은 “지금까지는 이 정도의 설비로도 효율적인 운영이 가능했지만, 재생에너지 발전이 기존 발전을 대체하게 되면 전력망 구조에 대대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풍력이나 태양열을 이용한 발전은 기상상황에 따라 에너지 생산량이 달라지기 때문에 안정적으로 전력 수요를 채우기 위해선 설비를 대대적으로 확충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나아가 장길수 고려대학교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현재 구조에서 설비를 확충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전력 생산 구조 자체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화석연료나 원자력을 사용하는 기존의 에너지원은 대규모 생산 설비를 필요로 하기에 지대와 기후, 인구분포를 고려해 수요지에서 먼 곳에 발전소가 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재생에너지는 발전 지점이 얼마든지 분산될 수 있어 수요지 근처에서도 충분히 생산이 가능하다는 게 장길수 교수의 설명이다.

장길수 교수는 “한국의 좁은 국토를 고려할 때, 기존에 전력망이 운영되던 방식으로 설비를 확충하려 하면 건설 면에서나 각 지역의 설비 수용 면에서나 부담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해상 발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수요지에서 전기를 직접 생산해 소비할 수 있게 하는 등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전력망 확충 빨리 이뤄져야 하지만
전문가들, “민간 참여는 해답 아니다”

이날 토론의 발언자들은 전력망 확충이 신속하게 추진돼야 한다는 데에는 동의했지만, 이를 위해 민간이 사업에 참여해야 한다는 데는 회의적인 견해를 보였다.

이헌석 에너지정의행동 정책위원은 “전력망 설비 확충이 지금 당장 필요한 데 비해 재정이 부족한 것은 사실이지만, 이는 민간의 사업 참여가 아니라 공적 투자와 전기요금 현실화로 해결해야 할 문제”라고 꼬집었다.

정세은 참여연대 부집행위원장(충남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은 국가 전력망 사업에 민간 자본이 참여한다면 한전이 시설의 소유권이나 운영권 중 하나는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정세은 부집행위원장은 “정부에선 당장 재정이 부족하다면서 민간 자본을 투입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시설 소유권이 없으면 지속적인 임대료 지출이 발생하고, 운영권이 없으면 한전이 시설 이용에 드는 비용을 통제할 수 없어 장기적으로는 재정 소모가 더욱 커진다”고 설명했다.

또한 황인철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팀장은 “에너지는 필수재인 만큼 공적 영역에서 관리돼야 하며, 최근에는 에너지의 생태성 역시 중요한 가치”라고 지적했다. 황인철 팀장은 또한 “국가 전력망 확충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이유로 공공성·민주성·생태성을 소홀히 한다면 지난 2008년부터 현재까지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밀양 송전탑 사건이 되풀이될 것”이라고 말했다.

성시경 단국대 공공정책학 교수는 “정부에서는 한전의 재정난 등을 이유로 민간사업자의 전력망 사업 참여를 주장하는데, 전기요금의 3.7%를 징수해 조성한 전력산업기반기금을 활용한다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며, 에너지에 대한 국가의 책임과 공공성을 더욱 확실히 하기 위해서라도 민간이 아닌 국가의 투자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짚었다.

장길수 교수 역시 “전력망 설비를 민간사업자가 더 빠르게 시공·건설할 수 있다면 이를 위탁할 수는 있겠지만, 사업의 실질적인 운영과 유지보수는 한전이 전담하는 것이 효율성·공공성 면에서 더 합리적”이라 강조했다.

최철호 위원장은 토론을 마무리하며 “지속 가능한 전력산업을 만들기 위해선 정부에서 일방적으로 공기업을 움직이는 지금의 체계에서 벗어나, 거버넌스를 형성해 에너지 정책에 대한 폭넓은 논의를 이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력연맹은 이날 토론회를 시작으로 다양한 영역에서 꾸준히 정책 활동을 전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