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J대한통운, 택배노조와 교섭해야” 2심도 인정
“CJ대한통운, 택배노조와 교섭해야” 2심도 인정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4.01.24 19:34
  • 수정 2024.01.24 19: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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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등법원, 1심에 이어 CJ대한통운의 택배노조에 대한 교섭 거부는 부당
노동계 “원청 사용자성 인정한 판결 환영”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경총 “산업 현실 반영 못한 판결”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원청 CJ대한통운이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의 사용자이며, 민주노총 서비스연맹 택배노조의 단체교섭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왔다. 노조법 2·3조 개정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 민주노총은 2심 선고 직후 기자회견을 열고 “지극히 상식적인 판결”이라며 “CJ대한통운은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에 즉각 응하고 국회는 노조법 2·3조 개정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서울고등법원 행정6-3부(홍성욱·황의동·위광하 부장판사)는 24일 CJ대한통운이 전국택배노동조합(위원장 진경호, 택배노조)의 교섭을 거부한 것은 부당노동행위라는 2021년 6월 중앙노동위원회의 판단이 정당하다고 판결한 원심을 인정했다. 이로써 CJ대한통운이 중앙노동위원회 위원장을 상대로 낸 부당노동행위 구제재심판정취소 소송에서 CJ대한통운의 항소는 기각됐다.

원심은 CJ대한통운이 택배노동자와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않아도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며 CJ대한통운이 교섭할 의무가 있다고 판결했고 2심도 이를 인정했다. 이 같은 판결은 특수·간접고용노동자와 형식적 근로계약 관계에 있지 않은 원청도 교섭 상대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 노조법상 사용자 범위를 법원이 넓게 해석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노동계 “판결 환영,
노조법 2·3조 개정 취지와 부합”

운동본부와 민주노총은 2심 선고 직후 서울 서초구 서울고등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환영의 뜻을 표하며 판결에 따라 CJ대한통운이 택배노조의 교섭 요구에 대해 성실하게 응해야 한다고 했다.

기자회견에서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은 “택배노조는 2017년부터 7년여간 원청 택배사에 교섭을 요구했다”며 “그럴 때마다 원청 택배사는 택배기사들이 자신들과 계약관계가 아니니 형식적 계약주체인 대리점 소장과 교섭하라고 주장해 왔다”고 밝혔다.

이어 “택배기사들이 일하는 터미널에 화장실이 부족해도 대리점은 이를 개선할 책임도 능력도 없다. 작업환경에 대한 작은 사안도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상황이다. 노동시간을 줄이는 문제, 분류인력 투입 문제 등을 개선도 (원청이 나서지 않으면) 엄두도 내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이런 현실을 반영해 노조는 원청 택배사에 단체교섭을 요구해왔고 1심과 항소심에서 노조의 주장이 옳았다는 판결이 나왔다. CJ대한통운은 상고를 통해 시간을 끌기보다 고등법원 판결을 수용해 즉시 택배노조와 교섭을 진행할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또 22대 국회 1호 민생법안으로 노조법 2·3조 개정 재추진을 강력히 요구한다”고 말했다.

앞서 택배노조는 2020년 3월 CJ대한통운에 교섭을 요구하며 ▲서브터미널(상품 인도장)에서 택배상품 인수·인도 시간 단축 ▲서브터미널 작업환경 개선(택배기사 1인당 1주차장 보장, 우천시 상품 보호 시설 설치) ▲주 5일제 실시 ▲급지 수수료 인상·개선 ▲도난·파손·오염 등 택배사고에 관한 배상금 감액 등을 요구안으로 제시했다.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번 판결이 노조법 2·3조 개정안 취지와 부합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개정안에는 근로계약 체결 당사자가 아니더라도 노동조건을 실질적·구체적으로 지배·결정하는 지위에 있다면 노조법상 사용자로 본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개정안은 지난해 11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지만 12월 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이후 다시 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됐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판결을 통해) 원청이 직접적인 사용자라고 주장한 노동자들의 주장이 옳았고 이를 거부한 윤석열 대통령은 틀렸다는 것이 증명됐다”며 “민주노총은 22대 국회 개원 즉시 노조법 2·3조 개정을 요구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병행해 하청·간접고용·특수고용 노동자들이 원청을 대상으로 직접 교섭에 나설 수 있도록 투쟁을 조직하겠다”고 밝혔다.

김혜진 운동본부 공동집행위원장은 “이 판결은 노동자들을 통해 이윤을 얻으면서도 사용자로서 책임을 회피해왔던 모든 진짜 사장에게 교섭에 나서라고 말하는 것”이라며 “운동본부는 택배노조 등 투쟁하는 노동자들과 권한이 있는 자가 책임지라는 상식을 세우려는 시민들과 함께 노조법 2·3조 개정안을 다시 만들고 관철시켜 나갈 것”이라고 전했다.

한국노총도 논평을 통해 이번 판결에 대해 “여당의 반대와 대통령 거부권으로 막힌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의 정당성을 또다시 입증한 판결”이라며 “정부와 여당은 원청 사용자가 실질적 사용자로서의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노조법 2·3조 개정에 협조하라”고 말했다.

CJ대한통운 “기존 판례 반하는 판결, 상고할 것”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 “택배산업 현실 외면한 판결”
경총 “하청노조 교섭 요구 등으로 현장 몸살 앓을 것”

한편 CJ대한통운은 2심 선고에 반발하며 대법원에 상고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CJ대한통운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반한 무리한 법리 해석과 택배 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판결에 동의하기 어렵다”며 “판결문이 송부되는 대로 면밀하게 검토한 뒤 상고할 계획”이라고 했다. 여기서 말하는 기존 대법원 판례는 노조법상 사용자를 ‘근로자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을 맺은 자’로 한정한 바 있다.

CJ대한통운대리점연합도 “택배산업의 현실을 외면해버린 판결에 유감”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대리점연합은 “택배기사의 다양한 운영 방식과 근무 여건, 집화 형태 등을 결정하는 실질 사용자는 우리”라며 “1심에서는 계약 당사자가 아닌 자가 단체교섭의 상대방인지 여부에 관한 법리 다툼이 이어지며 대리점은 실질적으로 배제됐었다”고 밝혔다.

또 “판결 결과에 따라 원청 택배사가 단체교섭에 응해 택배기사의 작업시간, 작업 방식, 수수료율에 관한 계약 조건 등을 협의하게 된다면 대리점의 독립적 경영권을 침해하게 되고 택배사는 하도급법 및 파견법을 위반하게 된다”면서 “이번 판결은 신뢰와 상생으로 거듭나고 있는 택배 현장에서 갈등을 다시금 촉발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 대법원에서 택배산업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고 대리점의 경영권이 훼손되지 않도록 합리적으로 판단하여 주시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말했다.

한국경영자총연합회(이하 경총)는 CJ대한통운과 같이 기존 대법원 입장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판결이라고 이번 판결을 평가했다. 경총은 “법원은 명시적·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없는 원청기업은 하청노조의 단체교섭 상대방이 아니라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며 “단체교섭에서는 임금·근로조건이 의무적 교섭 대상이므로 근로계약 관계에 있는 자가 교섭 상대방이 되는 게 당연하다”고 했다.

이어 “이번 판결에 따라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의 취지가 몰각될 뿐만 아니라 산업현장은 하청노조의 원청기업에 대한 교섭 요구와 파업, 실질적 지배력 유무에 대한 소송으로 몸살을 앓게 될 것”이라며 “법원은 이제라도 기존 대법원 판결을 존중하고 산업현장의 현실을 살펴 단체교섭 상대방은 근로계약 관계가 전제돼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마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과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24일 서울 서초구 법원삼거리에서 열린 ‘원청 CJ대한통운의 노조법상 사용자성 여부에 관한 서울고등법원 2심 판결 선고 기자회견’을 마친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오른쪽)과 진경호 택배노조 위원장이 포옹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