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운수노조 산별 전환하려면 ‘공동의 경험’ 중요”
“공공운수노조 산별 전환하려면 ‘공동의 경험’ 중요”
  • 백승윤 기자,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05 08:09
  • 수정 2024.02.05 08: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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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핵심 의제는 ‘공공성 강화’, ‘노동권 확대’
[인터뷰] 엄길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
엄길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공공운수노조 조합원들이 공동으로 투쟁한 경험을 쌓지 않으면 산별노조 완성도 어렵다고 본다. 올해부터 공동투쟁이 가능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민주노총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산별 조직,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이하 공공운수노조) 4기 임원 선거로 당선된 엄길용 위원장이 지난 1월부터 임기를 시작했다.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강조한 엄길용 위원장은 공동투쟁을 통해 공공운수노조의 대산별노조 전환을 이루겠다고 밝혔다. 임기 중 가장 공들일 과제로 현장과 소통을 강조했다. 집행부와 현장 조합원간 간 간극을 줄여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참여와혁신>이 지난 1월 16일 엄길용 위원장을 만났다.

총선은 끝 아닌 시작
‘윤석열 아닌 누구라도 상관없다’ 식은 안 돼

- 다가오는 4월 총선에서 어떤 목표와 의제를 설정하고 있나.

공공 부문이 정부 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받기 때문에 총선은 매우 중요하다. 이번 총선에선 공공운수노조의 요구 사항을 각 정당이 공식화하도록 할 계획이다. 기존에 진행했던 정책협약뿐 아니라, 총선 이후 요구 사항을 관철하는 것까지 내다보는 사업을 추진하고자 한다.

총선 의제는 ‘공공성’과 ‘노동권’을 중심에 둘 수밖에 없다. 공공, 운수, 사회서비스 부문 노동조합인 이상 어떤 집행부가 들어서더라도 가장 핵심적인 의제가 될 것이다. 지금은 각 조직에서 총선 관련 의제를 취합하는 단계에 있고, 이를 중심으로 세부적인 입법 과제를 설정할 것이다.

- 공공운수노조의 변치 않는 요구인 ‘공공성 강화’란 무엇인가.

국민 생활의 대부분을 국가가 책임지게 하는 것이다. 가령 국가가 무상의료나 대중교통 요금 감면에 예산을 편성하고 확대해 나가면 국민 모두에게 골고루 혜택이 돌아간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사회의 모든 것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확장하고, 국민이 그 혜택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게 바로 공공성 강화다.

- 윤석열 정부는 공공성 확대만이 능사는 아니며, 민간 부문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얘기다. 정부가 공공성을 축소하는 이유는 예산 감축 때문이고, 그 배경엔 법인세 인하 등 재벌·부자 감세가 있다. 재벌과 부유층에겐 특혜를 주면서 국가가 책임질 영역에선 ‘예산이 없다’는 이유로 지출을 줄인다.

민간 부문을 확대하겠다는 것 역시 결국은 민영화를 통해 국가의 역할을 민간에 넘겨서 수익을 창출하게 한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그러면 국민은 더 많은 부담을 질 수밖에 없는데, 윤석열 정부는 공공성을 축소하는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일례로 철도, 의료, 돌봄 등은 공공에서 책임져야 하는 게 분명한 영역인데도 자꾸 외주·위탁·민영화를 추진한다. 공공운수노조는 당연히 그에 반대하는 투쟁을 해야 한다.

- 민주노총은 이번 총선에서 진보4당과 연대를 강화한다는 총선 방침을 세웠다.

가맹조직이라고 해서 다른 총선 방침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다. 민주노총에서 정한 방침대로 함께할 것이다. 아울러 총선에 출마하고자 하는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을 지지하고 지원하는 일에도 신경 쓸 예정이다.

- 일각에선 진보정당과 민주당 간 연대 얘기도 나온다.

‘윤석열이 아니라면 누구라도 상관없다’는 방식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민주노조운동을 지향하고, 그런 맥락에서 연대할 수 있는 범주가 있을 것이다. 그 범주와 원칙을 지키지 않고 아무나와 손잡으면 안 된다고 본다.

끊임없는 소통과 지역본부 강화로
현장-집행부 간 ‘거리 좁히기’

- 후보 시절 슬로건인 ‘따뜻한 소통, 힘 있는 행동’은 어떤 의미인가.

지금의 현실을 진단해 보면, 노동조합 집행부와 조합원 사이에 간극이 있다. 현장과 충분한 소통이 이뤄지지 않아서다. 대표적인 예가 총파업이다. 중앙에서 아무리 세밀하게 계획하더라도 개별 사업장에서까지 제대로 총파업이 집행된 적은 매우 적다. 조직력이 현장에까지 미치지 못하면 집행부에서 계획한 투쟁의 의미도 퇴색한다. 구호만 난무하는 집회로 끝날 뿐이다

이번 공공운수노조 임원 선거의 낮은 투표율(결선투표율 50.25%)도 단적인 지표다. 간부들은 투표율을 높이고자 현장 조합원을 독려하지만 정작 투표율은 낮다. 공약이나 정책을 세세하게 보는 조합원이 적고 후보들을 잘 알지도 못한다. 노동조합이 조합원 개개인에게 의미 있게 다가가고 변화를 줬더라면 선거에 대한 조합원의 관심은 높았을 텐데, 그런 점이 부족하지 않았나 싶다.

달리 말해 공공운수노조나 민주노총이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를 조합원들이 피부로 느끼지 못한다고 볼 수 있다. 중앙에서 내는 계획이 조합원에게 전해지지 않는 건 아니다. 선전물 등으로 전달되지만 조합원들은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생각한다. 집행부가 그동안 많은 역량을 쌓아 왔음에도 조합원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접근 방식의 문제라고 본다. 집행부가 어디에 무게중심을 두고 활동했는지,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해왔는지 재평가할 필요가 있다.

- 공약 중 하나인 ‘조직 지원 시스템 혁신’*이 현장과 집행부 간 간극을 줄이는 사업인 듯하다.

그렇다. 특히 지역본부 강화를 위해 정책과 교섭에서 역량을 가진 중앙이 지역 조직을 지원하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지역본부는 현장과 접점이 많은 조직이다. 또 중소·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의 조직·투쟁·교섭을 진행하기도 하는데, 그들의 대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본부 강화가 꼭 필요하다. 공공운수노조 조합원의 40%가량이 비정규직이지만, 실질적인 발언권은 그 규모에 미치지 못한다. 각급 단위에서 회의가 열릴 때 큰 사업장에 있는 정규직은 타임오프나 교육비 지원 등을 활용해서 참여할 수 있지만, 비정규직은 휴가를 내고 참석해야 하는 등 여건이 어렵다.

그런데 현장·비정규직과 접점이 넓은 지역본부는 인적·물적 자원이 충분치 않아 벅찬 실정이다. 정책이나 교섭 면에서 역량을 갖춘 중앙의 지원이 필요한 이유다. 다만 위원장의 의지만으로는 힘들기에 각급 단위와 충분한 소통을 통해 진행해야 할 것이다. 그렇게 모인 의견들을 바탕으로 내년에 정책대의원대회를 열고, 조직 운영을 구체적으로 구상해 변화를 만들어 가고자 한다.
* ‘조직 지원 시스템 혁신’의 주요 내용은 △종합적인 조직진단 실시 △통합적 업무 지원시스템 구축 △전체 사업장 단위 대표자 회의 정례화 △중앙 사무처-현장조직 간 인사 교류프로그램 실시 △중앙-지역본부 간 사무처 역량 재조정 및 지역본부 역량 강화 프로그램 신설 등

엄길용 전국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민주노조운동 원칙 복원해야”
“대산별노조 전환하려면 ‘공동의 경험’ 중요”

- 후보 시절 스스로를 ‘원칙 있는 위원장 후보’로 소개했다.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으로서 엄길용의 원칙은?

민주노조운동의 원칙을 지키는 것이다. 민주성과 자주성은 기본이다. 여기에 투쟁력, 그리고 사회 변혁 지향성 등이 민주노조운동의 일반적인 원칙이지만 지켜 나가는 게 쉽지 않다. 어떻게 보면 이미 민주노조운동이 많이 후퇴됐다고도 볼 수도 있는데, 이를 복원해 내야 한다.

사업적인 측면에선 비정규직 문제를 핵심으로 본다. 노동조합은 자기 이익을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차별 없는 평등사회를 지향해야 한다. 우리 사회를 바꿀 수 있는, 즉 평등한 사회로 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고리가 비정규직 철폐라고 생각한다.

원래 우리가 목표로 했던 ‘비정규직 철폐’를 다시 명확히 해야 한다. 비정규직 투쟁은 그간 많이 바뀌어 왔다. 비정규직이 법제화되고 관련 제도가 만들어진 초기에는 ‘비정규직 철폐’ 투쟁을 했다. 지금도 비정규직 철폐를 외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처우 개선’에 무게를 두고 있다. 열심히 투쟁해서 고용 형태를 ‘무기계약직’으로 바꿔냈기 때문인데, 아직 형식적인 변화에 지나지 않는다. 여전히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대우를 받고 있다. 비정규직의 고리를 끊어내지 못하면 한국 사회는 지금보다 더 불평등해질 것이다.

- 선거운동 기간에 “현장 조합원과 현장 간부들에게 산별노조가 무엇인지 느낄 수 있는 산별 공동투쟁을 조직할 것”이라고 했다.

공공운수노조 산하 노동조합들이 공공·운수·사회서비스 등 산업별 총파업을 조직하는 게 산별 공동투쟁이다. 각 산별마다 동일한 의제를 설정해 쟁의행위도 교섭 타결도 공동으로 하는 방식이다. 말 그대로 ‘함께 갔다 함께 오는’ 투쟁이라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공공과 운수, 사회서비스라는 큰 틀로 묶으면 좋겠지만, 아직 그 정도 준비는 안 된 것 같다.

다만 의제별로 투쟁을 조직하는 공동투쟁은 올해부터 시작하려 한다. 공공운수노조는 이전부터 공동투쟁이라는 표현을 썼지만 실질적으로는 시기집중투쟁 정도에 그쳤다. 시기집중투쟁은 투쟁 의제도 방법도 다른 개별 사업장 노동조합들이 시기를 맞춰 투쟁을 전개하는 방식인데, 문제는 사업장별로 투쟁 시기가 분산돼 있고 전술도 일정치 않다 보니 투쟁의 효과가 크지 않다.

반면 공동투쟁은 여러 노동조합이 공동의 요구를 가지고 교섭부터 타결까지 함께한다. 정부를 상대로 하는 공공부문 노동조합이 주요 의제를 설정해 한데 모여 투쟁하면 노동조건 등을 개선시킬 수 있다고 본다. 예를 들면 공공기관은 정부에 의해 예산, 즉 총액인건비를 통제·관리 받는다. 그간 공공 부문 총액인건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해결하라는 요구는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투쟁한 적은 없다고 생각한다. 동일한 의제를 공동으로 요구하고, 단일한 지침에 따라 파업까지 염두에 둔 공동 쟁의행위를 한다면 시기집중투쟁보다 효과적일 것이다. 이 같은 경험을 축적해 산별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게 목표다.

- 앞서 위원장이 얘기했듯, 여건과 환경이 다른 노동조합이 시기를 맞춰 투쟁하는 것도 쉽지 않다.

규모나 범위는 다를 수가 있겠지만 다양한 의제별로 공동투쟁을 조직하는 것은 가능하다고 본다. 공동투쟁은 산별노조 체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추진해야 한다. 공공운수노조는 2026년까지 대산별노조로 조직 형태를 변경하기 위한 4개년 사업 계획을 지난해 대의원대회에서 결의했다.

대산별노조로 전환하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게 ‘공동의 경험’이다. 현장 조합원들이 산별 전환의 필요성을 직접 체험해야 산별 체제 완성이라는 목표도 이룰 수 있다. 2016년 박근혜 정권 때 성과연봉제 도입을 저지하기 위한 공동투쟁이 대표적이다. 공공 부문 노동조합들이 함께 투쟁한 끝에 결국 성과연봉제 도입을 막아냈고, 당시 파업에 참여한 조합원들은 ‘산별노조란 이런 것’이라고 체감했다. 산별노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확산한다는 측면에서도 공동투쟁은 중요한 사업이다. 함께 투쟁한 경험을 쌓지 않으면 산별 노조로의 전환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