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결, 단결, 단결? 노조, 이제 구호로만은 안 된다”
“단결, 단결, 단결? 노조, 이제 구호로만은 안 된다”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4.02.13 07:09
  • 수정 2024.02.13 07: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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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드’ 노조 간부가 말하는 노동조합 세대교체와 관성적 투쟁
채용 간부에게 ‘노동운동가 모습’ 기대하는 건 무모···서로 존중해야
보건의료노조 박노봉 전 부위원장(왼쪽), 이주호 전 정책연구원장(오른쪽)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민주노총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위원장 최희선, 이하 보건의료노조)에서 소위 ‘1세대’라 불리던 박노봉 전 부위원장, 이주호 전 정책연구원 원장, 방기원 전 교육위원회 위원장이 지난해 정년을 맞아 퇴임했다. 보건의료노조의 전신인 전국병원노동조합연맹시절부터 지금까지 노조의 기틀을 닦고 방향성을 설계했던 세 사람의 퇴임으로 조직에 여러 변화가 있을 것으로 보였다. 박노봉 전 부위원장, 이주호 전 정책연구원 원장을 지난달 17일 보건의료노조에서 만나 물어봤다.

교섭·투쟁·교섭·투쟁, 울고 웃으며
보건의료노동자와 흘러온 반평생

- 지난해 정년퇴임했다.

박노봉: 옆에 있는 이주호 원장, 방기원 위원장과 거의 반평생을 함께했다. 그런 동지들과 조직을 떠나는 외롭지 않아 다행스럽다. 개인적으론 단위 사업장, 지역, 중앙에서 다양한 역할을 수행해 조직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위로한다.

이주호: 우리가 작년에 정부를 ‘덕분에라더니’하면서 비판했다. 딱 그 단어가 떠오른다. 덕분에. 조직 덕분에, 우리 선배님, 동료들, 후배님들 덕분에 30년 동안 큰 과오 없이 무사히 마치고 정년퇴임한다. 한 조직에서 30년이 가능했던 건 자랑스러운 보건의료노조 덕분에다.

- 기억나는 장면도 많을 것 같은데.

박노봉: 많다. 지역에 있을 때는 두 개의 투쟁이 있었다. 2005년 성모자애병원(지금의 인천성모병원) 투쟁이 있었다. 5월 1일 노동절에 영양과를 외주화한다고 노동자들한테 해고 통보를 했다. 그 투쟁을 울면서 했다. 너무 슬프니까. 여사님들이 너무 분해서 눈물을 흘리니까 같이 싸우는 사람도 감정이 이입되더라. 132일 동안 싸워서 이겼는데 그게 잊히지 않는다. 그 다음엔 부천 세종병원 (노조탄압) 싸움이다. 치열하고 처절한 싸움이었다. 용역 깡패한테 맞아서 안경을 두 개를 깨먹었다.

이주호: 우리가 총파업을 두 번 했다. 크고 작은 파업은 많았지만 산별적인 요구를 걸고 공동투쟁으로 하는 파업은 2004년이랑 2023년 두 번이었다. 2004년 6월 고대 노천극장에서 그 더운 날씨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함께했던 조합원들, 또 이번에 빗속의 조합원들을 보면서 참 우리 조합원들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2007년도엔 우리가 정규직 임금 인상을 양보해서 비정규직 정규직화와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산별 교섭에서 합의를 했다. 그 때 중앙에서 교섭을 하면서 다 걱정을 했다. 현장 조합원들이 받아들일까. 조합원 찬반 투표에서 압도적인 지지로 합의안이 통과가 됐다. 한 지부장이 문자가 왔다. ‘보건의료노조인 게 너무 자랑스럽다’고.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전 부위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진주의료원 투쟁서 노조 정체성,
9.2 노정합의로 사회적 존재감 확인

- 지난 보건의료분야 노동운동 과정에서 전환점이라 느껴지는 지점이 있었나?

박노봉: 진주의료원 투쟁이다. 보건의료노조가 병원노련 시절부터 의료민영화, 의료민주화 이야기를 했다. 병실 안에 여러 작은 편의시설 문제부터 제기를 했었는데 병원 안 금연 운동, 보호자 침대 많이 마련하라는 것들이었다. 병실 안에 TV도 돈 넣고 보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 것들부터가 의료민영화라고 우리는 생각을 했다. 싸움을 쭉 해 오다가 2013년 진주의료원이 홍준표(당시 경남도지사)에 의해서 폐원돼 싸움을 굉장히 크게 했다.

- 왜 크게 해봐야 되겠다고 결정한 건가?

박노봉: 지자체가 공공의료기관을 세우고 보니까 돈 먹는 하마다. 그러니까 키워서는 안 되는 것으로 판단하고 없애는 거지 않나. 전국에 공공의료기관이 한 40~50개 정도 되는데 적자 난다는 이유로 폐원을 한다고 하면 다 폐원이 될 수밖에 없는 거다. 우리가 모든 걸 걸고 싸워야 되는 대상이라 상정하고 의료민영화 저지 투쟁을, 공익적 투쟁을 세게 한 거다. 그 때부터 우리 스스로도 우리가 움직여서 싸우는 게 국민들의 공익에 부합한다는 인식을 갖게 됐고 국민들에게도 보건의료노조가 사회 공익적 투쟁을 하는 노조로, 정체성을 확인시켜준 투쟁이라고 생각한다.

이주호: 이전과 이후가 달랐다고 느끼는 게 세 가지 정도가 있다. 2004년 주5일제를 내건 산별 총파업, 2019년 보건의료인력지원법 제정, 2021년 9.2 노정합의다. 2004년엔 총파업도 총파업이지만 이 총파업이 산별 교섭으로 이어졌다. 97년도에 산별노조를 만들었지만 교섭은 각자 했다. 조합원, 간부들이 총파업도 해보고 산별 교섭도 해보면서 아 이게 산별이구나 진정한 힘을 느꼈다고 생각한다.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은 2012년부터 발의를 시작해서 7년 동안 싸웠다. 보건의료정책에 사람이 있다, 사람이 제일 중요하다는 걸 법적으로 확인시켜준 게 보건의료인력지원법이었다. 9.2 노정합의는 보건의료노조의 사회적 존재감을 확인시켜줬다. 민주노총에서 부처 장관하고 노동조합 위원장이 사인한 노정 협약서는 거의 최초라고 할 정도다. 내용적 측면에서도 공공의료, 보건의료인력 처우개선 등 집대성했다.

보건의료노조에 불어오는
세대교체 바람에 조응해야

- 이 경험을 하지 않았던 노동자들이 보건의료분야로 진입한다. 노동조합은 이를 어떻게 대해야 하나?

박노봉: 걱정들을 많이 한다. 보건의료노조도 대투쟁도 노동의 역사도 모르는 상태에서 지금 세대들이 진입을 한다. 그런데 우리가 노동조합 시작할 때도 모르고 했다. 이런 역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교훈을 유지하면 된다고 생각을 하지만 그게 부족하다. 조직에서는 소위 교육이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정말 체계적으로 구체적으로 끊임없이 이어나가야 한다.

- 끊임없는 교육이 조합원들에게 와 닿아야 할 거란 생각이 든다. 또 노조 간부들의 세대도 교체되고 있다.

박노봉: 지금 세대에 맞는 교육 시스템이 빨리 도입이 되고 접목이 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도 영상 교육 시스템을 도입해서 조금씩 접목을 하고는 있다. 지금의 엄청난 영상물에 비해서는 약한데 그래도 많은 투자를 통해서 해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우리 교육실이 그걸 연구하고 최근에 영상 프로급 전문가를 채용했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 전 정책연구원장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이주호: 처음으로 위수사 집행부가 다 70년대 생이 됐다. 명실상부한 세대교체가 지도부부터 이제 된 거다. 현장은 이전부터 세대교체가 되고 있다. 20~30대 전임 간부들이 많다. 뭐라고 해야 하나. 새로운 인류가 등장한 거다. 주말 집회하거나 나이트 근무 순회 하면 젊은 간부들이 당연히 대체휴가를 가야 한다는 이야기를 자연스럽게 한다. ‘라떼’ 이야기 안 하지만 우리 올드 간부들은 노동조합 활동 자체가 희생과 헌신과 봉사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련회 가면 막 10명, 20명씩 비용을 절감하고 단결심을 높이기 위해서 그냥 한 방에 부대끼는 게 좋았다. 요즘은 2인 1실이냐 3인 1실이냐가 (화두다). 옳고 그르다 떠나서 새로운 가치와 문화에 조응하는 활동이 고민될 수밖에 없다. 이런 훌륭한 역사가 있으니까 너희들 열심히 따라 배우면서 그냥 하라고 하기엔. 다른 접근이 필요한 거 아닌가.

- 노동조합엔 현장에서 일했던 사람과 노동조합에 채용된 사람이 함께 일한다. 두 그룹이 시너지를 낼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박노봉: 소위 1세대 활동가들은 노동운동가라고 나는 생각한다. 최근엔, 시점을 언제로 봐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운동을 하러 (노조에) 들어오는 게 아니라 소위 직업으로 노조를 선택한다. 그분들에게 운동가로서의 모습을 요구하는 건 굉장히 무모한 일이다. 지금은 (노조에 채용되는 사람들이) 노동 전문가 정도의 위치로 전환해서 가는 게 어떨까 싶다. 나 같이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던 사람들과 활동가들이 같이 성장을 하게 되는 건데, 이주호 원장도 그렇지만 활동가들은 현장 출신이 아니니까 지도자가 되지 못하는 구조다. 나도 현장 출신이라는 이유로 소위 스텝을 한 적이 없다.

- 노조에 채용된 사람들에게 위수사 자리를 여는 게 맞다 생각하는 건가?

박노봉: 일부는 열어도 된다고 생각한다. 사무처장까지는 괜찮지 않나 싶다. (보건의료노조의 경우) 지역본부는 임원급인 사무국장까지 열었다. 중앙은 열려 있지 않다. 아직 정서상 현장 출신이 지도자를 해야 한다는 정서가 압도적이라 열기 어려운 상황이다. 지금은 진입 통로가 다른 두 영역이 서로를 잘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서열로 대상화한다고 하면 시너지는 파괴되는 거다.

이주호: 보건의료노조는 선출직과 채용직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돼 있다. 크게 갈등적 요인이 아니다. 나도 큰 불만 없이 역할 중심으로 왔는데 사무처장이든 부위원장이든 상징적으로 열어주는 것과 관련해서는 아마 이후에 새로운 조직문화에서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관성적 구호·투쟁···“같은 일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 기대하는 건 미친 짓”이라더라

- 앞으로의 보건의료노조, 또는 노동조합이 역량을 쏟았으면 하는 것은 무엇인가?

박노봉: 우리가 사실 미래 지도자 양성을 체계적으로 하지 않는다. 알아서 큰 지도자를 그냥 스카우트하거나 본인의 의지가 강한 사람들이 하는 형태인데 조직의 미래를 위해서는 목적의식적으로 지도자들을 양성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주호: 노동조합이라는 게 단결, 단결, 단결을 외친다. 구호로서의 단결만으론 안 된다. 다른 데도 마찬가지겠지만 세대, 성별, 직종 등 다양한 차이점들이 존재한다. 획일적으로 진보정당 지지도 안 되지 않나. 우리 안에 다양성들이 존재한다는 건데. 그걸 인정하지 않고는 단결이 쉽지 않다. 우리도 지부가 200개인데, 큰 지부가 있고 작은 지부가 있다. 특성별로도 다르고. 산별 교섭도 특성별로 다양성을 인정하면서 같이 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만들어야 한다. 무조건 산별 교섭 하는데 필요하다, 들어와라고만 해선 안 된다.

맨날 우리가 윤석열 나쁜 놈이라고 총파업, 퇴진 투쟁을 하는데 그것만으로 해결 안되는 많은 투쟁이 사실은 있다. 예를 들면 노동운동이 정치 활동을 하려면 더 도움이 되는 선거 제도가 있다. 그러면 우리가 연동형 선거제도 개편을 더 이야기해야 한다. 또 보건의료노조 같은 경우 공공의료 확충 의제, 총파업 큰 투쟁 밑에 중간 레벨의 투쟁이라고 하는데 산업·정책적인 투쟁들을 많이 잘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중앙은 너무 이념적이고 현장은 너무 실리적이다. 그 중간이 비어 있는 거다. 그것을 어떻게 채워갈 거냐가 한국 노동운동의 미래를 좌우할 거라 본다.

보건의료노조 박노봉 전 부위원장(왼쪽), 이주호 전 정책연구원장(오른쪽)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 노동조합이 해야 할 것이 많은 것 같다. 앞으로 보건의료분야 노동운동에 함께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은가?

박노봉: 보건의료노조의 현장은 의료 현장이다. 노조가 존재하는 한 국민의 건강권을 위해서 투쟁할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정책에 대한 개입은 노조가 가장 앞장서서 할 수밖에 없다. 또 하나는 우리 노동자 고유의 노동권이 존재하고 있기에 국민의 건강권과 노동자들의 노동권의 비중을 (활동할 때) 잘 유지하면서 가야 한다.

이주호: 한국에서 산별노조 체제가 가능한가를 가지고 논문을 쓰려 한다. 첫 마디를 뭐로 쓸까 고민인데 아인슈타인이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를 기대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라고 말했다 한다. 87년 때부터 외쳐왔던 여러 가지 주요 과제가 왜 계속 반복되고 해결이 안 되고 변화가 없을까, 이런 고민을 해야 할 시점이 아닐까. 민주노총이 만들어지면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산별노조 건설을 내걸었다. 그게 잘 안 되면 근본적인 고민이 필요하다. 또 노조는 1년 일정이 정해져 있다. 스케줄 투쟁이라고도 하는데. 그런 관성으로부터의 극복이 진짜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