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 기부 창업주’ 삼영산업, 16억 못 갚아 노동자 130명 집단해고?
‘1조 기부 창업주’ 삼영산업, 16억 못 갚아 노동자 130명 집단해고?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05 18:25
  • 수정 2024.02.05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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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부지·생산설비 창업주 장학재단에 기부하고 임대료 내던 삼영산업
전 직원 해고하고 부도 절차 밟아···노동자들, 삼영산업 규탄 나서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올해 1월 9일 폐업 결정을 한 뒤 일주일도 안 된 1월 15일 해고를 통보받은 삼영산업 노동자들이 “일방적 폐업 통보를 철회하라”고 사측에 촉구했다. 삼영산업은 지난해 12월 1일부터 전면 휴업 중이며, 16억 원어치 금융권 부채를 갚지 못해 지난 1월 31일부터 부도 절차를 밟고 있다.

한국노총 화학노련 삼영산업노동조합(위원장 서무현, 이하 노조)은 5일 오후 서울 (재)관정이종환교육재단(이사장 권영걸, 이하 재단) 앞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연이어 ‘삼영산업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열었다. 삼영산업은 1972년 설립된 건설자재 회사로, 타일과 포장재 등을 주로 생산했다.

이날 대회에는 90여 명의 노동자가 참석해 삼영화학그룹 소유주 일가를 규탄하고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했다.

노조가 재단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집회를 연 이유는 삼영산업 건물과 부지, 생산용 기계들이 재단의 기본재산으로 등록돼 있기 때문이다. 재단은 공익회계법인으로서 공익법인의 설립·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재산을 처분하거나 기부가 들어올 때마다 주무 관청인 서울시교육청에 신고하고 허가를 받아야 한다.

삼영산업은 2007년 본사 건물과 부지 전부, 공장용 부지 일부를 재단에 출연(기부)했다. 또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공시된 삼영산업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에는 순손실만 152억 원에 달했을 정도로 경영이 악화했음에도 생산설비인 125억 원 상당의 기계장치를 재단에 출연하고 이를 기부금으로 처리했다. 이후 삼영산업은 건물과 땅, 기계장치 임대료를 재단에 계속 지불해 왔다.

결국 삼영산업은 2022년 자산총계 201억 원, 부채총계 247억 원으로 회사의 자산보다 빚이 더 많은 상태인 ‘완전자본잠식’ 상태로 들어섰다. 이 가운데 지난해 9월 최대주주이자 창업주인 고 이종환 삼영화학그룹 명예회장이 사망하자 이종환 명예회장의 유가족인 삼영화학그룹 소유주 일가는 삼영산업 지분의 상속을 포기하고 폐업을 결정했다.

서무현 노조 위원장은 “삼영산업은 수십 건의 특허와 50여 년간 축적된 기술을 가지고 국내 최정상급 품질의 타일제품을 생산하는 기업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삼영화학그룹 소유주 일가는 경영정상화를 위한 어떤 노력도 없이 폐업했다”며 고의적인 부도가 의심된다는 의혹을 제기하기도 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 참가자들이 ‘삼영산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하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삼영산업 노동자 생존권 보장하라!’라는 문구가 적힌 손피켓을 들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노조에 따르면 삼영산업은 현재 금융권 부채 16억 원을 상환하지 못해 지난 1월 31일부터 부도 절차를 밟고 있다. 삼영산업 노동자 130명의 퇴직금 32억여 원은 해고된 날로부터 14일 이내인 같은 달 29일까지 지급돼야 했지만 현재 체불 중이다. 1월 급여와 해고예고수당 역시 아직 지급되지 않았다.

재단 앞에서 열린 1차 집회에서 현장 발언에 나선 조합원 A씨는 “130명의 노동자들은 오갈 데 없는 실업자가 됐지만 이석준 삼영화학 회장(고 이종환 명예회장 장남)은 재단 이사로 선임되면서 재산 규모 1조 7,000억 원의 재단을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물려받았다”고 주장했다.

또 A씨는 “재단은 ‘이종환 명예회장의 직계비속을 경영에 개입시키지 않는다’는 정관을 개정해 가면서까지 이석준 회장을 이사장으로 승인해 달라고 교육청에 요구했다”고 비판하기도 했다.

서울시교육청 앞 2차 집회에서 발언한 문창희 조합원은 “2020년부터 삼영산업의 재산 대부분이 재단에 기부돼 사실상 재단 소유의 기업이 됐다”며 재단 역시 삼영산업 집단 해고 사태에 책임이 있다고 지적했다. 문창희 조합원은 “우리는 우리가 노동하던 자리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라며 일방적인 폐업 통보를 철회하고 경영정상화를 위해 노력할 것을 삼영화학 소유주 일가에 촉구했다.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마친 서무현 화학노련 경남본부 삼영산업노조 위원장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5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열린 ‘삼영산업 노동자 정리해고 규탄 및 노동자 생존권 사수 결의대회’를 마친 서무현 화학노련 경남본부 삼영산업노동조합 위원장이 서울시교육청 관계자에게 항의서한을 전달하고 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서무현 위원장과 노조 조합원들은 이날 집회를 마친 뒤 서울시교육청에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재단은 이석준 회장의 이사장 선임 승인을 교육청에 요청한 상태인데 교육청에서 이를 거절해 달라는 취지다. 그러나 서무현 위원장은 “서울시교육청으로부터 ‘삼영산업 폐업과 임금 체불이 언론에 알려지면서 이사장 선임 승인을 일주일 가까이 미뤄왔지만, 법적으로 거절할 수 있는 명분이 더 이상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고 전했다.

노조 측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투쟁을 이어나가며 삼영산업 경영진과 삼영산업의 자산을 소유하고 있는 재단에 끝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결의했다. 아울러 노동권 생존권 사수와 해고 철회, 최종적으로는 삼영산업 경영정상화를 지속적으로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참여와혁신은 한기문 삼영산업 대표에게 퇴직금이 체불되는 이유와 향후의 대응 방안에 대해 묻기 위해 취재를 시도했으나 한기문 대표는 연락을 일절 받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