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근무 장소·시간 미정’ 근로계약서 강요했나
서울시, ‘근무 장소·시간 미정’ 근로계약서 강요했나
  • 김온새봄 기자
  • 승인 2024.02.08 15:46
  • 수정 2024.02.08 15: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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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노동권익센터 이동노동자 쉼터 위탁계약 노동자들, 서울시 규탄 나서
지난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자 노예계약·임금후퇴 강요하는 서울특별시청 (노동정책과) 규탄’ 기자회견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지난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자 노예계약·임금후퇴 강요하는 서울특별시청 (노동정책과) 규탄’ 기자회견 ⓒ참여와혁신 김온새봄 기자 osbkim@laborplus.co.kr

서울노동권익센터가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의 노동자들이 불분명한 노동조건에 대한 동의와 임금 삭감을 강요받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노동자들은 “예산부터 사업 운영 지침까지 사실상 센터 운영의 모든 것을 통제하고 있는 서울시가 책임지고 노동조건을 보장하라”고 촉구했다.

공공운수노조 서울지부 노동민간위탁분회(비대위원장 김삼권)는 지난 6일 서울시청 앞에서 ‘서울노동권익센터 노동자 노예계약·임금후퇴 강요하는 서울특별시청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이하 센터)는 취약노동자 지원을 위해 서울시가 설립하고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에서 수탁 운영하는 기관이다.

노동민간위탁분회에 따르면 센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올해부터 센터 수탁 운영 기관이 변경되면서 새롭게 근로계약을 체결했다. 그런데 센터에서 운영하는 이동노동자 쉼터 5개소의 시설직들은 근무장소나 출퇴근 시간 등이 명시되지 않은 계약서를 받았다.

해당 근로계약서 사본을 보면 근무장소는 ‘서울시 소재 서울노동권익센터 쉼터’라고만 기재돼 있다. 시간 역시 “일 8시간, 주 5일 근무”로만 표시되고, 구체적인 요일과 시간 등은 ‘순환근무 스케줄표에 따라 배치된 센터 운영시간에 따라 전월 말 스케줄표로 통보한다’고 쓰여 있다. 시설직들은 지난해까지 특정한 장소·시간이 명시된 근로계약을 체결해왔다.

노동민간위탁분회 조합원인 김시운 노무사는 “계약서에 시간과 장소 등 노동조건을 구체적으로 특정하지 않고 포괄적으로 사전 동의를 받을 경우, 사측이 임의로 조건을 바꿀 때 노동자들이 최소한의 자기방어조차 할 수 없게 된다”고 지적했다.

임금 삭감도 쟁점이다. 김삼권 노동민간위탁분회 비대위원장은 “서울시에서는 해마다 민간위탁기관의 인건비 지급기준을 발표하지만, 이번 근로계약에서 센터는 시설직 노동자들에게 2024년 기준이 아닌 2023년 기준을 적용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복지시설종사자 인건비 지급기준’에 따르면 1호봉 기준 시설직의 기본급은 2023년 226만 원으로, 2024년 기본급인 234만 4,000원보다 8만 4,000원 적다.

김제하 서울지역공공서비스지부 조직부장은 ‘서울특별시 행정사무의 민간위탁 관리지침’에 따르기 위해 수탁기관이 이 같은 임금 체계를 채택했다고 말했다. 해당 지침에 따르면 서울시는 민간 위탁 추진 계획을 수립할 때 총위탁사업비 중 인건비의 비율이 50%가 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해당 근로계약서를 작성·배부한 한국노총 서울지역본부의 관계자는 “임금과 노동조건 등 근로계약서에 명시된 사항은 서울시 지침에 따라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노동자들이 어느 쉼터에서 일하게 될지 근로계약서에 명시하지 말라’고 서울시에서 지시했다는 설명이다.

또 임금의 경우 여러 직종의 임금 총합과 서울시의 지침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결과라고 했다.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올해부터 다른 3개 시설(감정노동종사자권리보호센터, 동북권·서남권 서울시노동자종합지원센터)과 통합 운영되기 시작했는데, 각 시설마다 임금체계와 인건비 총합이 달라 이를 조율해야 한다는 얘기다.

해당 관계자는 “센터는 사회복지시설이 아니고, 그간 ‘사회복지시설종사자 인건비 지급기준’을 적용해 온 것은 지침이 아닌 센터 내 관행”이라며 “인건비 지급기준을 (올해도) 그대로 적용하면 사업비의 50%로 규정된 인건비 상한선을 지킬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대신 고용승계 시 쉼터 노동자들의 호봉을 그대로 승계해 임금이 삭감되지 않게 하는 안을 서울시에 올렸다”고 밝혔다.

이어 “수탁기관인 서울지역본부는 예산과 인사권 등 센터의 운영 전반에서 서울시 지침을 따라야 하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이 관계자는 “노동조건 변경으로 노동자들에게 불이익이 가지 않고 노동자들의 요구를 서울시에 관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도 “이미 올해 예산이 시의회를 통과한 상황이라 한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한편 서울시청 노동정책담당관 노동권익팀 관계자는 <참여와혁신>에 “서울시는 지도·감독 권한만을 가지고 있고 노동자들과 계약하는 당사자가 아니기에 노동조건을 지시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라며 “수탁기관에 ‘근무 시간과 근무 장소를 특정하지 말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고, 민간위탁 관리지침 이상으로 관여한 부분 역시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