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L클레무브노조 “관리자 괴롭힘 회사가 방관”
HL클레무브노조 “관리자 괴롭힘 회사가 방관”
  • 정다솜 기자
  • 승인 2024.02.14 20:17
  • 수정 2024.02.15 08: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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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 관리자 지속적인 괴롭힘 문제 제기했으나
증거 불충분 등으로 사측은 ‘괴롭힘 아니다’ 결론
신고자들 “2차 피해 우려”···최근 동성 간 성희롱 사건도 발생

HL클레무브의 어느 점심 시간, 중간관리자 A씨(리더)는 생산3팀 직원 ㄱ씨에게 배치전환 통보를 했다. 갑작스러운 통보에 ㄱ씨가 당황하자 중간관리자는 ‘표정 그런 식으로 하지 말고 할 말 있으면 해보라’고 언성을 높였다. HL클레무브뿐 아니라 다른 회사 직원들도 있던 식당엔 정적이 흘렀다. 금세 얼굴이 붉어진 ㄱ씨는 밥을 남긴 채 식당을 떠났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HL클레무브 한 직원의 진술서엔 “A씨가 ㄱ씨에게 모욕감과 수치심을 줬다. 똑똑히 기억한다. 이번 사건 말고도 더 악랄한 것도 많이 봤다. 보복과 진급 때문에 말하지 못하는 것도 많다”는 내용이 적혀 있다. 노동조합이 파악한 A씨의 직장 내 괴롭힘 혐의는 인격 모독, 부당노동행위(특정 노동조합 가입 강요), 부당 배치전환, 고과 평가 협박 등이다. 

참다못한 팀원 여러 명은 지난해 말 중간관리자들을 회사에 신고했지만, 증거 불충분 등을 이유로 직장 내 괴롭힘은 인정되지 않았다. 최근에는 같은 팀에서 동성의 다른 중간관리자에게 유두를 꼬집히는 등 성희롱을 당한 직원이 회사에 신고한 가운데 노동조합은 또 사건이 “흐지부지 마무리”될 것을 우려하고 있다.

ⓒ 에이치엘클레무브노조
인천 송도 에이치엘클레무브(HL Klemove) 인근에 노동조합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방관”하는 사측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 에이치엘클레무브노조

에이치엘클레무브노동조합(위원장 김경욱, 이하 노조)은 지난 13일 인천 송도에 있는 HL클레무브 인근에 ‘직장 내 괴롭힘 방관하는 사측! 2차 가해자는 사측’, ‘직장 내 괴롭힘에 이젠 직장 내 성희롱? 직장 내 괴롭힘 피의자는 우대! 피해자는 적대!’ 등의 문구가 적힌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HL클레무브는 자동차 부품사 HL만도의 자율주행·모빌리티 전문 자회사다. 

HL클레무브 생산3팀 중간관리자들의 직장 내 괴롭힘 관련해서 회사에 신고한 직원은 5명이다. 〈참여와혁신〉이 입수한 이 직원들의 진술서에 따르면 A씨의 언어폭력과 부당한 지시, 협박은 지속적으로 발생했다. 비슷한 혐의로 B씨(수퍼 바이저)도 가해자로 지목됐다.

신규 노조 가입 권하며···
“진급하는 거 도와줄 테니 생각 잘하라”

중간관리자들의 부당노동행위 등을 지적한 피해자 ㄴ씨는 진술서에 “(B씨가) ‘너 진급하는 거 많이 도와줄 테니까 생각 잘하라’며 복수노조 가입과 관련해서 인사권을 갖고 심리적으로 불안하게 만들었다”며 “(A씨는) 내가 리더고 협조(새 노조 가입)를 안 하게 되면 노조에서 할 수 있는 게 없다면서 무시와 조롱을 했다. 리더란 큰 인사권을 가진 사람이 특정 노조를 지지하고 회유하는 큰 압박이 들었다”고 밝혔다. 

이후 새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ㄴ씨는 “부당하고 강압적인 배치전환 통보를 받았다”며 “통보를 받은 다음 날 (A씨가) ‘너 (배치전환) 가는 거 문제 있어?’라고 물어보길래 솔직히 이유도 정확히 얘기해주지 않고 왜 저는 선택지가 없냐고 얘기했지만 ‘네가 간다 그랬잖아’라며 언성을 높이고 ‘왜 이렇게 말들이 많아 시X’이라며 욕설하며 온갖 수모와 고통을 겪었다”고 했다. 

아울러 ㄴ씨는 “(A씨가) 이 말 저 말 딴지 걸며 잔업을 통제시켜 잔업을 할 수 없게 된 상황”이라며 “최근 이사, 외벌이로 인해 금전적으로 많이 필요한 상황인 걸 아는 현장 관리자들의 악행이다. 가장으로서 깊은 자괴감과 무능력함, 우울감이 심한 상태며 복수노조에 가입 안 한 것이 이렇게 큰 잘못이 됐다는 자책감과 박탈감이 심한 상태”라고 이야기했다. 

“공개 망신에 보직 해임 통보”

ㄷ씨는 부당한 직책 해임 통보를 받았다고 했다. A씨는 지난해 초 수퍼바이저였던 ㄷ씨에게 한 사원의 라인 이동(1공장 SRR#2 라인→2공장 MRR#2)을 지시했다. ㄷ씨는 해당 사원이 면담에서 라인 이동에 부담을 호소했으므로, 희망자를 조사해 라인 이동 대상자를 다시 고려하자고 A씨에게 제안했다. 

그랬더니 “A씨가 해당 사원이 근무지 변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있으면 타팀을 지원하라는 강압적이고 무책임한 말을 하며 이런 라인 이동을 설득시키는 건 수퍼바이저의 몫이라며 팀 전체 메일로 공개적으로 망신을 줬다”며 “이 사건 이후에 수퍼 바이저 보직 해임 통보를 받았다. 금전적인 피해와 정신적인 피해를 지속적으로 받으며 회사 생활을 힘들게 이어가고 있다. 다른 피해자들도 많지만 겁이 나고 보복이 두려워서 나서지 못하는 분위기가 통탄스럽다”고 ㄷ씨는 말했다.

이런 진술을 바탕으로 피해자들은 △부당한 사유서 제출 요구 △부당한 직책 해임 통보 △단체 이메일을 통한 공개적 망신 △팀원 당일 연차 사용 관련 부당한 업무 처리 △업무 중 언어폭력 △노조 선택 자유 침해 및 압박 △부당한 잔업 통제 등을 이유로 들어 A씨와 B씨를 직장 내 괴롭힘 혐의로 지난해 말 사내 고충처리위원회에 신고했다. 

증거 불충분 등으로
사내 결론은 ‘괴롭힘 아냐’

회사 측은 ‘(A씨와 B씨가 신고받은 행위가)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노조에 따르면 사측이 고용한 노무사는 직장 내 괴롭힘 판단의 3가지 요건 중 ①(피신고인의) 행위의 우위성과 ②(신고인의) 신체적·정신적 고통 요건은 충족하나 ③업무상 적정 요건과 관련해 ‘업무상 적정 범위를 초과하지 않은 것으로 보이거나, 신고 사항을 증명할 증거가 충분하지 않으므로’ 이런 결론을 내렸다. 

노조는 “회사는 직장 내 괴롭힘의 3가지 판단 요인 중 증거가 부족하다 했으나 어느 직장인이 괴롭힘 상황이 일어날 것을 예상하고 항시 녹음기를 켜고 다니겠나”라며 “3가지 조건이 모두 동시에 해당되지 않는 이유로 무혐의 견책 처분을 받은 관리자 아래서 지금도 용기 내 신고한 직원들은 2차 피해를 예상하며 불안에 떨며 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A씨가) 오해를 살 만한 언행 및 관리자로서 태도가 부족하다는 등으로 직장 내 괴롭힘과 무관한 사유로 (회사는) 보여주기식 징계위원회를 열어서 견책이라는 징계를 했으며 사내 공지는 이뤄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HL클레무브의 사규에 따르면 견책은 징계의 종류 중 가장 낮은 수위로 ‘사규에 위반된 정도가 경미하다고 인정되는 자에 대해 시말서를 받고 장래를 훈계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HL클레무브 측은 “회사는 충분한 조치를 다 했지만, 추가적으로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 신고인들의 입장을 다시 들어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고용노동부에 사건 재조사 의뢰 등 추가 대응을 검토 중이다. 

에이치엘클레무브(HL Klemove) 인근에 노동조합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방관”하는 사측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 에이치엘클레무브노조
에이치엘클레무브(HL Klemove) 인근에 노동조합이 “직장 내 괴롭힘을 방관”하는 사측을 규탄하는 플래카드를 걸었다. ⓒ 에이치엘클레무브노조

1월엔 성희롱 사건도 발생

이 가운데 지난달에는 같은 팀에서 성희롱 사건이 일어났다. 남성인 ㄹ씨는 회식 자리에서 동성 C씨(팀장)에게 “‘포르노 배우 △△을  아느냐’ 등 계속 성적인 말을 들어서 자리를 이동했다”며 “회식이 끝나고 직원들과 볼링장을 가는 길에 C씨를 마주쳐서 같이 볼링을 치러 갈지 말했는데 C씨가 갑자기 손으로 내 가슴을 움켜쥐고 펴고를 반복하고 손가락으로 유두 부위를 간지럽히는 행동을 하며 ‘나는 볼링보다 이걸 잘 치고 좋아한다’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ㄹ씨는 “너무 수치스럽고 화가 난다”며 “경찰, 고용노동부, 국가인권위원회 등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모든 곳에 도움을 요청할 것이다. 회사에서도 강력한 조처를 내려야 한다”고 말했다. ㄹ씨는 지난달 23일 회사에 이 사건을 신고했다. 사측은 이 사건을 조사 중이다. 

일터에서 만연한 모멸··
법적으로만 풀 문제 아냐

HL클레무브의 해당 팀에서 노동자들이 증언하고 있는 모멸감과 굴욕감은 법적으로 증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만으로 사회적으로 간과해서는 안 될 문제다. 사회학자 김찬호는 책 《모멸감》에서 “모멸은 ‘정서적인 원자폭탄’이라는 비유가 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폭력이며, 평생을 두고 시달리는 응어리를 가슴에 남기기 일쑤”라며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한 기억은 세상에 대한 증오 또는 자기에 대한 혐오를 불러일으킨다”고 말하기도 했다.

노조는 HL클레무브 인근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지난해 11월 20대 직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을 언급했다. 당시 직장 내 괴롭힘이 자살의 주된 이유였다는 청원에 따라 근로감독한 결과 고용노동부는 삼성바이오로직스에서 괴롭힘과 성희롱이 만연했으나, 고인의 경우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할 만한 구체적인 근거는 나오지 않았다고 지난달 23일 발표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측은 재발 방지를 위해 적극 노력하겠단 입장을 밝혔다.

노조는 삼성바이오로직스 사건에 분노하며 “누구 하나 죽어 나가야 바뀌는 건가”라고 지적했다. ㄹ씨는 “이런 말도 안 되는 현실이 있으며 나는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멈추고 싶다. 이런 게 잘못으로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리나라에 직장 내 괴롭힘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