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재보험 카르텔’ 애매···노동부는 제도 개편 추진
‘산재보험 카르텔’ 애매···노동부는 제도 개편 추진
  • 백승윤 기자
  • 승인 2024.02.20 14:21
  • 수정 2024.02.20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동부 20일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 발표
노동계, 제도 개악 반대“···대통령실·여당 허무맹랑함 입증만”
이정식 노동부 장관이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 고용노동부

정부가 이른바 ‘산재 카르텔’을 색출한다며 두 달간 벌인 감사는 ‘카르텔’의 실체를 명확하게 밝히지 못한 채 일단락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번 감사에 대해 산재보험 제도를 ‘개악’하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았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고용노동부는 20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산재보험 제도 특정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최근 5년간 산재보험 적용 대상 및 범위가 확대되면서 제도개선에 따른 산재 승인 신청 건이 급증했으며 업무상 질병을 중심으로 산재 카르텔, 보험금 부정수급 등에 대한 의혹이 지난 국정감사 및 언론 등에서 지속적으로 제기됐다”고 이번 감사를 시행한 배경을 알렸다.

과도한 수임료 수수 등 ‘노무법인=카르텔’?
추정의 원칙에 “현장 혼란”···산재병원 구조조정 시사도

이날 노동부는 △노무법인이 산재 환자에게 특정 병원 소개 및 편의 제공 후 과도한 수임료를 수수하거나 △변호사·노무사가 아닌 사무장이 산재 승인 업무를 수행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며 산재보험 위법 의심 정황을 추가 확인했다고 밝혔다. 노동부는 이 같은 정황을 토대로 노무법인·법률사무소 등 11개소에 대한 수사를 의뢰했다. 향후 수사 결과에 따라 공인노무사에 대한 징계, 노무법인 설립 인가 취소 등을 취할 계획이다.

부정수급액은 지난해 대통령실에서 밝힌 조 단위를 훨씬 밑돌았다. 노동부는 “근로복지공단 등 각종 신고시스템 등을 통해 접수되거나 자체 인지한 883건 중 486건(55%)의 부정수급 사례를 적발했다”며 적발 금액은 약 113억 2,500만 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대통령실은 지난해 11월 지난 정부에서 산재보험 지급이 증가한 것을 두고 “전 정부의 고의적 방기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는 정황을 포착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질병 추정의 원칙’ 등 산재보상 인정과 관련한 제도도 손본다. 이정식 장관은 “‘질병 추정의 원칙’은 법적 위임의 정도가 불명확한 상태에서 운영되어 그 적용에 있어 현장의 혼란이 있는 실정”이라고 했다. 질병 추정의 원칙은 노동자가 업무와 질병 사이의 인과관계를 보다 쉽고 빠르게 입증해 산재를 인정받을 수 있도록 도입한 제도다. ‘소음성 난청’에 대해선 청구권에 대한 소멸시효가 사실상 사라졌고, 산재 인정 시 연령별 청력손실 정도를 고려하지 않아 과도한 보상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6개월 이상 입원하는 장기요양환자를 줄이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최근 5년간 전체 요양환자 중 장기요양환자의 비중은 약 48.1%를 차지한다. 노동부는 △상병별 표준요양기간의 부재 △요양 연장을 위한 의료기관 변경 제도 이용 △저조한 집중재활치료 실적 △민간 산재병원 관리 부적정 등을 장기요양환자 유발 원인으로 보고 관련 제도를 정비할 계획이다.

산재보험 기금의 적립 방식과 규모도 개선 사항이다. 이정식 장관은 “고령화에 따른 수급자 증가 등으로 인해 연금부채가 약 55조 원에 달하는 만큼 현재 보유하고 있는 약 22조 원의 산재보험 적립금이 적정한지, 미래세대에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닌지, 기금 적립방식, 규모 등에 대해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했다.

아울러 “(산재보험이) 과잉 보상되는 부분은 없는지 진단해 개선할 필요가 있다”며 “지속 가능한 산재보험 운영을 위해서는 연령 특성, 일반근로자 등과의 형평 및 노후보장으로서 타 사회보험과의 연계 등을 고려해 합리적 보상이 되도록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건강보험공단과 산재병원에 대한 구조조정도 시사했다. 이정식 장관은 “공단 직영병원 경우 2017년 이후 코로나19 지원금을 받은 2년(2021~2022)을 제외하고는 경영 적자가 지속된 상황임에도 인력증원 등으로 인건비성 비용지출이 과도하며 산재 기금으로 고가의 의료 장비를 구매하고도 실제 사용을 적게 하는 등 장비 활용과 관련된 비효율도 확인됐다”고 말했다.

“조 단위 혈세? 대통령실·여당 허무맹랑함 입증”
“일부 부정, 전체 문제로 호도해선 안 돼”

양대 노총은 노동부의 이번 특정감사 결과를 규탄했다. 한국노총은 “이번 특정감사를 통해 분명히 알 수 있는 것은 ‘산재 카르텔로 조 단위 혈세가 줄줄 새고 있다’는 대통령실과 여당의 주장은 구체적 근거가 아주 빈약한 허무맹랑한 주장일 뿐이라는 사실”이라고 했다.

한국노총은 이번에 적발된 부정수급 사례 486건(부정 적발금 113억 2,500만 원)에 대해 “2023년 산재 승인 건수(14만 4,965건)와 비교하더라도 0.3% 수준에 불과하며, 같은 해 보험급여지출액(7조 2,849억 원)과 비춰 봐도 극히 일부에 해당한다”며 “부정수급은 철저히 조사하고 걸러내는 것이 맞지만, 과연 이 정도를 가지고 산재 카르텔이라고 주장할 만한 것인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은 “일부 노무법인의 사례로 마치 산재 부당신청이 빈발하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다”며 “과도한 수수료가 문제라면 수수료 체계를 정비할 문제이고, 오히려 노동계가 지속적으로 주장했던 국정 산재 노무사 제도를 도입할 문제이지, 산재가 아닌 것을 산재로 부당하게 신청 승인 받은 것처럼 호도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양대 노총은 아울러 ‘질병 추정의 원칙’ 등 산재보험 제도 개편 계획을 규탄했다. 한국노총은 “감사 결과에서 추정의 원칙 제도와 관련한 일말의 부정수급 사례도 적발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노동부는 현 정부의 친기업 정책 기조에 맞춰 추정의 원칙 제도 자체를 근본적으로 반대하는 경영계의 요구에 적극 화답하는 얄팍한 권모술수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민주노총은 장기요양 비율을 줄이기 위해 제시한 ‘표준 요양기간’ 제도를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6개월 이상의 장기 요양 비율이 높은 것은 산재 처리 절차의 까다로움으로 6개월 미만의 산재는 아예 신청을 포기하는 현실과, 산재처리 기간의 장기화로 요양기간이 증가하는 것이 원인”이라며 “개별 노동자의 조건, 질병별 특성이 다양한 산재 치료에 ‘표준 요양기간’을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고, 이 또한 이미 십 수 년 전에 가능성·타당성이 없다는 결론이 도출된 바 있다”고 밝혔다.

이정식 장관은 “지난 1월 발족한 ’산재보상 제도개선 TF‘에서 외부 전문가들과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개선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에 한국노총은 “전문가 TF 구성에 있어 노동계를 제외했을 뿐만 아니라 노동계에 전문가 추천 의뢰조차 없이 전문가를 구성했다”며 “정부와 사용자들의 주장에 우호적인 전문가들로만 선별해 산재보험 제도를 마음대로 주무르겠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