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관 꿈꾼다면? ‘이 노조’ 주목!
회관 꿈꾼다면? ‘이 노조’ 주목!
  • 강한님 기자
  • 승인 2024.03.14 07:22
  • 수정 2024.03.14 10: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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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보건의료노조 회관 준비 A부터 Z까지
보건의료노조, ‘독자건물추진위원회’와 ‘영혼불어넣기팀’ 꾸려
회관 구입·설계·셀프 인테리어 다섯 달 만 ‘전광석화’로 끝내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건물관리소장을 지난달 15일 보건의료노조 회관 1층 ‘보건 cafe 만남과 여유’에서 만났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사무실 임대료 연 3,000만 원, 관리비 4,700만 원, 숙소 관리비 500만 원, 장소 대관료 3,000만 원. 1년에 약 1억 정도가 ‘공간’ 때문에 사라진다는 것을 알게 된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가 “단순했지만 야무진” 꿈을 꾸기 시작했다. “조합비 아깝다. 독자 건물 만들어보자!”

이후의 과정은 전광석화였다. 2018년 1월 임원·실장회의에서의 상상이 2월 정기대대에서 통과됐고 곧바로 지부들이 기금 모금을 결의했다. 보건의료노조는 ‘독자건물추진위원회’와 ‘영혼불어넣기팀’을 구성해 회관 구입·설계·셀프 인테리어에 나섰다. 그 결과 보건의료노조는 약 다섯 달 후인 2018년 6월 지금의 보금자리인 서울 영등포구 버드나루로 16길에 무사히 이사할 수 있었다.

보건의료노조회관이 수많은 공정과 민원, 다양한 요구를 조정해 태어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을까. 독자건물추진위원회 단장을 맡았던 박노봉 보건의료노조 건물관리소장(전 보건의료노조 부위원장)을 만나 들어봤다. 회관을 추진하는 노동조합들이 알면 좋을 팁도 소개한다.

STEP1. 우리 어디서 살 수 있을까?

보건의료노조가 첫 번째로 맞닥뜨린 문제는 돈이었다. 각종 기금을 탈탈 털어 나온 돈은 16억. “그런 미니 건물이 어디에 있겠냐 싶었지만 작은 건물이라도 찾아보자”는 심정으로 영등포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당시 보건의료노조의 터전은 영등포에 위치한 우성빌딩(지금의 전국공무원노조 사무실)이었다. 전국공무원노조는 리모델링을 하고 들어갔다지만 보건의료노조가 지낼 당시엔 석탄을 떼서 난방을 했다.

대국회 사업이 많은 보건의료노조가 국회 근처를 포기할 수 없었다. 독자건물추진위원회는 투명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를 꾸려 약 20개의 건물을 살펴봤다. 그러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보건의료노조회관 건물을 만나고 “여기다!” 싶었다고 회상했다. “우리가 산별노조로 활동하기 가장 최적화된 곳을 기준으로 했어요. 여기서 보니까 구름다리가 하나 있어요. 의원회관 앞으로 떨어지는 다리에요. 여기다! 생각을 하고 추진한 거죠.”

건물 매입가는 37억 8,000만 원 정도. 여기에 리모델링 비용으로 약 6억을 잡으니 43억 8,000만 원의 예산이 필요하단 계산이 나왔다. 한참 모자란 액수였다. 예산 마련엔 보건의료노조에 조직된 지부들이 힘을 보탰다. “원래 빌리려고 했던 것보다 오히려 더 걷혔다.” 보건의료노조는 지부들에게 자금을 빌리는 대신 금융권보다 더 높은 금액의 이자를 매년 연말 지급하기로 약속했다. 그렇게 보건의료노조회관을 구입한 시점이 2018년 3월, 정기대대 결정 후 한 달 만이었다.

출판사 공간을 털어 만든 지금의 보건의료노조 회관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STEP2. 새로운 건물을 빚어내다

건물은 원래 출판사였다. 주로 창고와 판매 공간이었기에 보건의료노조가 필요했던 사무실, 강당 등과는 다른 용도가 많았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과 독자건물추진위원회는 구조만 남기고 “털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런데 어떻게? 건물 구조를 싹 바꾸려면 보통 공개입찰을 통해 건설사에 설계와 공사를 맡기는데, 그 비용이 또 많이 들었다. 공개입찰에 응한 건설사는 다섯 곳이었다. 이들이 제시한 금액은 10억에서 12억 사이. 독자건물추진위원회는 건설사들에게 설계를 보건의료노조가 하고 공사만 해줄 수 있냐는 제안을 역으로 했고 설득 끝에 하나의 건설사가 응했다. 보건의료분야에서 일과 노동운동을 해 왔던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이 건물을 설계해본 경험은 당연히 없었지만 “평생을 해 왔던 협상”이 건설사에게 통했다.

“모르는 설계 공부도 하고, 저는 이 건물을 영혼을 갈아 넣어서 세웠다고 생각을 해요. 아침 7시부터 밤 9시까지 주말 없이 풀로 시간을 투여했어요. 다른 임원들이 업무 일부를 감당해주고요.” 그러면서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내 모든 걸 총동원했다”고 했다. 지역에서 함께 활동했던 건설노조 간부들에게도 하나하나 조언을 구했다.

보건의료노조 건물은 지하, 1~4층에 야외 옥상이 포함된 구조다. 지하가 130평으로 가장 크니 회의 공간으로 써야겠단 생각을 했다. “그냥 강당으로 안 만들고 회의도 하고 교육도 하고 분임토의장으로도 쓸 수 있도록 칸막이도 세웠어요. 홀딩 도어라고 하는 게 있더라고요.” 1층은 회의장들과 작은 카페로 구성돼 있다. 원래는 회의장이 하나였지만 공간이 부족해 이후 수정했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우성빌딩 시절 쉴 공간이 없었던 게 못내 아쉬웠다고 했다. 보건의료노조 회관에는 1층부터 4층까지 모두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다. 그는 “우성빌딩에 있을 때 쉼 공간이 아예 없었다. 화장실 안에서 커피를 하나 끓이려고 해도 물 놓는 공간 자체가 없었다”며 “1층엔 여기서 일하는 사람들, 조합원들, 간부들이 편하게 쉬었다 갈 수 있도록 작은도서관처럼 만들었다. 2층, 3층은 사무공간인데 쉼 공간이 거기도 또 있다”고 말했다. 보건의료노조 2층엔 사무실과 위원장실, 임원실이 위치해 있고 3층엔 법규팀과 정책연구원, 서울본부 상근자들이 일한다.

4층엔 조합원과 간부들이 사용하는 숙소가 마련돼 있다. 본래 조합비를 아끼고 싶은 항목엔 숙소관리비도 들어가 있었다. 기존엔 우성빌딩 뒤 숙소를 여기저기서 빌렸다. 옥상도 쉬는 공간이다. 텃밭과 둘러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구성했다. 상추, 쑥갓 등 여러 야채를 길러 날이 풀리는 5월엔 보건의료노조 지도위원들에게 식사 대접을 한다. 그러면서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이 공간이 없으면 뭘 구워먹지를 못 한다. 지지고 볶고 할 수 없으니까. 이런 걸 끊임없이 할 수 있는 이유는 공간이 잘 확보돼 있어서”라며 자랑스러워했다.

보건의료노조 옥상은 나무 자재를 사용해 꾸몄다. 국회가 보이는 지점을 포토존으로 만들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STEP3. 건물에 영혼 불어넣기

건물 설계가 끝나고 공사가 진행되자 보건의료노조 영혼불어넣기팀이 가동됐다. 독자건물추진위원회가 건물 설계 등 하드웨어에 해당하는 부분을 맡았다면 영혼불어넣기팀은 공간의 명칭과 컨셉 등을 채워 넣었다. 셀프 인테리어를 한 셈이다.

강연·교육으로 국민과 보건의료노동자들의 생명을 살리는 지식을 확보하는 공간인 생명홀(지하 강당), 회의하면서 찾는 희망터(1층 회의장), 회관 코앞에서 마주하는 마중터(1층 회의장), 숙소에 들어가는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건강했으면 한다는 뜻을 담은 마음건강실(4층 숙소 공간) 등 보건의료노조의 바람이 담긴 이름들이 붙여졌다.

회관 색깔 컨셉도 고민 지점이었다. 전문가에게 색깔집을 받아 골랐다. 따뜻한 아이보리를 기준으로 잘 어울리는 색깔인 갈색, 짙은 초록 등을 포인트로 잡았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단상들 앞은 분홍빛이 나는 색깔들로 했다. 그렇게 배치를 하면 집중할 수 있다고 하더라. 나도 그 때 알았다”며 “한 층의 색깔을 결정하면 다른 층도 다 할 수 있다”며 웃었다. 인테리어를 별도 업체에 맡기지 않아 가구와 조명도 직접 골랐다. 회관 색깔에 맞게 아이보리와 연두, 우드톤을 주로 사용했다. 인테리어에 관심이 있는 지부장들의 도움도 받았다.

그 과정에서 다른 건물들을 참고하는 게 좋다고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조언했다. 그는 “나도 막 인테리어 감각이 뛰어난 사람은 아닌데, 예를 들어 로비를 구성할 때 비싼 대리석으로 하지 않아도 어떻게 하면 멋있어 보일까 생각을 했다. 우리 건물에서 들어올 때 가장 화려해야 하는 공간이라고 생각을 해서”라며 “다른 건물 사진을 계속 봤다. 괜찮다 하면 비슷하게 포인트를 잡는 것”이라고 했다.

더불어 보건의료노조회관에선 슬리퍼를 신기로 했다. 회관과 보건의료노조 사람들이 오래 건강했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처음에는 양말이나 덧버선을 신고 다닐까 생각을 하다가 그건 너무하다는 의견이 있어서 슬리퍼로 바꿨다. 현저하게 먼지가 적다”며 “여기 하루 종일 있는 사람들이 있지 않나. 훼손된 공기가 들어오는 원인이 신발이다. 그러니까 관리하기도 좋다”고 말했다.

ⓒ 참여와혁신 천재율 기자 jycheon@laborplus.co.kr

보건의료노동운동 산실로 만든
건물이 노조에 다시 희망 줘

건물이 만들어지기까지 우여곡절은 끊이지 않았다. 출판사 건물엔 세입자가 있었는데, 나가지 않겠다고 해서 더 좋은 조건의 공간을 직접 알아봐 이사를 도왔다. 공사 과정에서도 소음 민원이 계속 들어와 양해를 구하는 시간을 오래 거쳤다.

집을 지으면 10년은 늙는다는 말이 있다. 생각할 거리와 스트레스의 연속이란 의미다. 그래도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노동조합이 회관을 짓는다면 “누군가는 맡아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어디다 다 맡겨버리면 100만 원이었던 게 130만 원, 140만 원까지 간다”며 “누군가 틀어쥐고 책임지고 일을 하지 않으면 정말 끝도 없이 돈이 오른다”고 강조했다.

전 과정을 책임진 만큼 건물에 대한 애정도 깊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의 애정은 곧 노동조합에 대한 애정이기도 하다. “조합원들이 여기 올 때 ‘우리 노조다’하고 오잖아요. 그 전까진 그렇게 느끼질 못 했어요. 또 지난해 (공공병원 회복기 예산 회복을 요구하며) 집단 단식을 할 수 있었던 배경도 이 건물이 국회 가까이에 있잖아요. 단식자들이 걸어서 여기서 자고 가고 왔다갔다 할 수 있는, 투쟁을 할 수 있게 한 건물이에요.”

“이 건물이 주는 희망이 있는 거죠. 보건의료 노동운동의 산실로 우리는 이거를 만든 거예요. 그 기능을 진짜 잘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해요. 그래서 이 건물이 보건의료노조 운동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해요.”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회관을 앞으로도 잘 가꿔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박노봉 건물관리소장은 보건의료노조 회관을 준비하며 건물을 관리할 수 있는 자격증들을 모두 취득한 상태다. “내가 그렇게 소중하게 만들어놓은 건물이기 때문에 관리를 소홀하게 할 수가 없어요. 아주 세심하게 내 애인처럼 관리하고 있어요. 이 일 하는 게, 어떤 사람들에게는 잡일처럼 보일지 몰라도 하나하나가 내 애정과 사랑이 들어간 거라서 나는 너무 좋아요. 행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