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교육과 돌봄, 분리 가능한가?
학교 내 교육과 돌봄, 분리 가능한가?
  • 임혜진 기자
  • 승인 2024.03.18 13:59
  • 수정 2024.03.18 14: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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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정규 수업 집중, 돌봄은 지자체 등이 맡아 담당 주체 분리해야”
“이미 학교 안에서 교육과 돌봄 이뤄져···학교 인프라 활용한 돌봄 확대 필요”

교육부가 초등학교에서 방과후학교와 돌봄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제도인 ‘늘봄학교’를 올해 3월부터 전국 2,700여 개 초등학교에서 운영하겠다고 밝혔다. 2학기에는 전국의 모든 초등학교로 확대하고 늘봄학교 이용 대상을 2025년에는 초등학교 1~2학년, 2026년에는 초등학교 전 학년으로 확대한다는 계획도 내놓았다.

교육부는 다수의 학부모가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이후 저학년 시기의 돌봄 공백을 경험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학부모들이 퇴사 등에 따른 경력 단절, 돌봄 공백을 메우기 위한 학원 등록 등에 따른 사교육비 증가 등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을 들어 학교에서 돌봄을 책임지는 시스템을 마련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학교 현장에서는 학교가 돌봄까지 감당할 여력이 없고 교육과 돌봄을 분리해 돌봄은 학교 밖, 지자체에서 책임지도록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교사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반면 교육과 돌봄의 영역이 본질적으로 분리되기 어려운 점 등을 이유로 공교육 기관인 학교에서 돌봄을 맡는 것은 합리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교육과 돌봄, 개념적 분리 어려워
다만 교사는 정규교육에 충실하게 해야”

우선 학교 교사들은 교육과 돌봄을 개념적으로 분리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돌보지 않으면서 교육할 수 없고 아이들을 돌보는 과정에서 결국 교육이 이뤄지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다만 학교 내에서는 현실적으로 교육과 돌봄을 담당할 주체들의 역할 구분, 업무 분담 등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 윤미숙 수석부위원장
윤미숙 초등교사노조 수석부위원장 ⓒ 윤미숙 수석부위원장

윤미숙 전국초등교사노동조 수석부위원장은 “교육부 관계자 등을 만나면 ‘교사들이 왜 교육만 하려고 하냐’, ‘학생 수 줄고 학교 자체가 위기인데 교사가 교육만 해선 안 된다’라는 이야기를 듣는다”며 “물론 배움이라는 것은 목적성을 가진 교육이 아닌 일상생활이나 돌봄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공교육과 다른 면이 있다”고 말했다.

학교는 국가에서 정한 교육과정에 따라 교육을 학생들에 제공한다. 이에 따라 교사는 교육과정에 맞춰 수업 연구·준비·진행 등을 해야 한다. 학교 내로 돌봄이 들어오면서 교사들이 각종 행정업무 등으로 교육에만 집중하기 어려운 환경에 놓였다고 윤미숙 수석부위원장은 설명했다.

그는 “현재 돌봄은 돌봄전담사(늘봄전담사)들이 하지만 관련 행정업무, 아이들에 관한 민원 처리 등은 교사들이 하는 경우가 상당수”라며 “방과후학교도 마찬가지다. 방과후강사 인력 풀을 만들고 채용을 위한 서류 서식 작성, 강사 섭외 등을 교사들이 하며 수업 준비를 위해 투입되는 시간은 현실적으로 줄어들어 교사들이 회의감을 많이 느끼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교육은 교육 전문가가, 돌봄은 돌봄 전문가가 하면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도록 분리해 가야 한다”며 각자의 역할을 충실히 하고 관련 업무가 분담될 때 전문성이 담보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기백 전교조 대변인 ⓒ 이기백 대변인
이기백 전교조 대변인 ⓒ 이기백 대변인

이기백 전국교직원노동조합 대변인도 교육은 인간 생애 전체에 걸쳐 일어나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했다. 다만 학교에서 이뤄지는 교육은 명시적으로 수업 활동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있어 일반적으로 교사들이 교육과 돌봄(업무)을 분리해야 한다는 말 속의 교육은 달리 이해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기백 대변인은 “학교가 국가 교육과정을 운영하면서 최소한의 교육 질을 담보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요구되는 수업 활동이 있다”면서 “지금 공교육의 질을 제고해야 한다는 요구도 계속 나오는 상황에서 교사들은 수업을 마친 오후에 수업 연구 등에 시간을 써야 하지만 방과후학교, 돌봄 관련 업무 수행에 투입되는 시간이 너무 많다. 결국 교사들은 국가 교육과정의 수업 질이 악화될 것을 염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교육부는 교사들의 행정 업무 경감을 위해 늘봄 전담 업무를 수행할 인원으로 기간제 교사, 지방공무원 등을 따로 두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충분한 예산 지원 없이 각 학교 사정에 맞춰 운영될 여지를 남겨둬 실질적으로 교사 업무가 경감되기 힘들다는 현장 교사들의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따라서 학교 밖에서 지자체 책임 아래 돌봄이 운영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교육과 돌봄 분리 어려워···
인프라 갖춘 학교에서 돌봄도 이뤄져야”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 박민아 활동가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 ⓒ 박민아 활동가

다수의 학부모는 검증된 기관인 학교에서 교육과 돌봄이 함께 이뤄지길 바란다는 입장이다. 현재 초등학생 3학년, 5학년 아이를 키우고 있는 박민아 정치하는엄마들 활동가는 “학교에서 식사 예절을 가르치거나 공동체 의식을 함양시키기 위해 뭔가 활동을 하는 것 등은 돌봄의 영역에서 이뤄진다고 본다”며 “양육자 입장에서는 이미 학교라는 공간에서 아이들이 안전하게 머물고 생활할 수 있게 하고 있고 그 자체가 돌봄이라고도 보기 때문에 학교 밖에서 돌봄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잘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했다.

이어 “정규 교과과정을 학습시키는 것 외에 아이를 사회구성원으로 길러내는 것도 교육이고 교육 안에 돌봄이 포함돼 있다”면서 “교육과 돌봄을 분리해서 바라보는 것에는 돌봄에 대한 가치를 저평가하는 인식이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박민아 활동가는 아이 돌봄을 위해 학교와 지자체가 제공하는 인프라를 충분히 이용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교 밖에 돌봄 센터 등을 만들고 지자체 예산에만 돌봄 예산을 의존하게 하는 것은 우려된다고 밝혔다.

그는 “지자체별로 예산이 다르기 때문에 돌봄 인프라가 제각각이다. 학교와 거리가 꽤 되는 돌봄 센터는 아이들이 이동하기에 적합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며 “학교는 아이들이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이 이미 갖춰져 있는 공간이다. 운동장, 보건실, 도서관 등 인프라는 학생들을 위해 마련된 공간이다. 이를 아이들이 충분히 이용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만들어주는 게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사들이 돌봄을 지자체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이야기만 하지 말고 어떤 법적 근거로 예산을 마련해 학교 내에서도 돌봄이 이뤄져야 하는지를 같이 고민해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강선여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 ⓒ 강선여 조합원
강선여 학교비정규직노조 조합원 ⓒ 강선여 조합원

충북에서 늘봄전담사로 일하는 강선여 전국학교비정규직노동조합 조합원은 “학교 선생님들이 안전상 문제 등의 이유로 정규 수업 이후 아이들이 학교에 남는 것에 관해 부담을 많이 갖고 있다”면서 이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로 학교 안에서 돌봄을 맡는 게 합리적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강선여 조합원도 지자체마다 예산 차이가 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며 교육부 중심으로 예산이 편성돼 모든 지역의 아이들이 동등한 질의 돌봄을 받을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진영민 시도교육청공무원노조 위원장 ⓒ 진영민 위원장
진영민 시도교육청공무원노조 위원장 ⓒ 진영민 위원장

이와 관련해, 진영민 전국시도교육청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경남도교육청 경우 돌봄 거점 센터를 세 곳을 지자체와 협력해 운영 중”이라며 “각 시도의 사정에 따라 (교육청이) 충분히 할 수 있는 돌봄이나 방과 후 관련 정책에 공감한다. 그러나 교육부가 강압적으로 시도교육청에 정책을 던지는 식은 안 된다. 돌봄 영역은 복지부 등 다른 부처들과 협업을 통해 추진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교육과 돌봄은?

교육부는 늘봄학교를 추진하게 된 배경으로 저출생 극복, 돌봄 공백 해소 등을 꼽았다. 그에 비해 아이들이 늘봄학교를 진정 필요로 하는지, 즉 늘봄학교를 통해 아이들이 어떤 교육과 돌봄을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논의는 상대적으로 적다는 지적이 있어 왔다. 이에 아이들에 무언가 학습을 더 시키기보다 오후에는 놀이나 쉼이 충분히 이뤄졌으면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박민아 활동가는 “그간 초등돌봄 질이 낮다거나 아이들이 돌봄 교실에서 힘들어한다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는 주로 아이들이 교실 안에만 있었기 때문에 나온 지적이라고 생각한다”며 “운동장이나 강당에서 뛰어노는 등의 활동이 더 늘어야 한다고 본다. 저학년뿐 아니라 고학년도 신체활동을 통해 체력을 늘리는 것만 해도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양질의 돌봄이란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강선여 조합원은 “시골 학교의 경우 아이들이 특기·적성 관련 활동을 할 만한 교육 인프라가 부족하다. 아이들이 적으니 방과후강사도 부족한 편”이라며 “그러다 보니 저학년과 고학년이 같이 돌봄 교실에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러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게 학습지 푸는 것밖에 없다. 또 인지나 신체 발달 정도가 달라 아이들이 위험에 노출되기도 한다. 왜냐하면 저학년생들이 고학년생들처럼 위험한 행동을 하게 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선여 조합원은 “모든 학교에 늘봄학교를 적용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본다”며 시골의 경우 거점 학교를 선정해 비슷한 발달 정도의 아이들이 모여 양질의 교육과 돌봄을 받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서는 진영민 위원장도 공감하는 입장을 밝혔다.

이기백 대변인은 “학교 내 아이들의 안전사고가 발생했을 때 책임 소재가 불분명한 문제가 있다. 방과 후에 발생한 사고에 대해 방과후강사 외 담임교사가 민사상 책임을 지는 사례가 있었다. 이 때문에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아예 아이들의 놀이나 쉬는 시간을 줄이고 방과후 프로그램 시간을 늘려 편성하는 경우들이 있다”며 “방과 후에 안전관리를 책임질 인력 배치 등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윤미숙 수석부위원장은 “지난해 7월쯤 부산에서 초등학생 대상으로 원하는 돌봄 공간을 조사했을 때 1위가 가정으로 나타났다”면서 “학교나 지자체의 돌봄 영역을 골고루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필요하지만 개별 가정에서 아이들이 돌봄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노력도 이뤄져야 한다고 본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