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우먼은 필요 없다
슈퍼우먼은 필요 없다
  • 박완순 기자
  • 승인 2024.03.18 13:59
  • 수정 2024.03.18 14: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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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은 또 다른 유치원···여성만이 아닌 모두가 당사자인 문제
일·가정 양립이 가능한 일터 문화가 필요하다

[기획좌담] 금융노조 여성운동의 과거와 오늘, 그리고 내일

‘3.8 세계여성의 날’을 맞아 이한순 선생(전 금융노련 여성부장)과 김태희 금융노조 신임 여성위원회 위원장, 오단비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국장과 좌담을 지난 2월 서울 중구 금융노조 사무실에서 진행했다. 한국 여성운동의 상징적인 장면을 만들어온 이한순 선생의 과거 이야기, 김태희 여성위원장과 오단비 국장이 말하는 오늘의 이야기가 어우러져 차별 없는 내일의 세계를 엿볼 수 있었다.

(오른쪽부터) 이한순 선생 : 1968년도 조흥은행에 입행해 조흥은행 여성부장, 전 금융노련 여성부장을 지냈다. 김태희 여성위원장 : 2001년 전북은행에 입행해 현재 금융노조 전북은행지부 부위원장을 하며 올해부터 금융노조 여성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오단비 국장 : 2016년 기업은행에 입행해 현재 금융노조 기업은행지부 국장으로 여성 조합원들의 고충을 듣고 있다.

현실의 답답함과 안타까움
충분히 잘해도 승진 누락

- 여성노동운동을 시작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이한순 : 현실에 대한 답답함과 안타까움이 있었죠. 누구도 여성노동자의 문제를 당사자 문제로 느끼고 있지 않았어요. 일화를 하나 이야기하자면, 통근버스를 같이 타는 언니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언니가 남편분 사망 때문에 원호대상자(국가유공자)로 본부에서 근무했었어요. 어느 날 언니가 버스를 안 타서 알아봤더니, 시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거예요. 남편이 없으니 상주를 해야 하고, 상주 휴가가 15일이라서 제법 오랫동안 못 보겠거니 했는데, 당장 3일만에 출근을 했더라고요. 회사에서 여자라고 상주 휴가가 아닌 배우자 부모 사망 휴가로 적용한 거죠. 3일이면 상주 노릇도 제대로 못 하고 온 거예요. 그런 일을 목격하면서 노조에 관심을 가지고 됐고, 여성부장을 맡게 됐어요.

김태희 : 저는 2001년에 입행했는데, 당시 대부계와 본점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은 대부분 남성이었어요. 물론 여성도 있었지만, 담당업무가 달랐죠. 여성들은 사무업무만 했었어요. 많은 게 충격이었죠. 또 능력이 충분한 동료, 선후배들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승진에 어려움을 겪었어요. 오래된 이야기 같지만 최근까지도 이런 차별을 겪는 여성노동자들이 있었어요. 제가 몸담고 있는 전북은행의 경우 여성이 1급 승진을 한 사례가 작년이 처음이었고, 은행 임원이 된 것은 3~4년 정도밖에 되지 않거든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여성노동자를 위해서 무언가 해보자고 마음먹었죠.

- 일터에서 여성노동자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이한순 : 우리 때와는 또 다를 텐데, 요즘 현장 이야기가 궁금해요. 먼저 후배들이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어요.

오단비 : 여성의 경우 출산을 하면 육아도 해야 하고, 일도 해야 하고, 직무 관련 자격증도 따야 하고. 정말 슈퍼우먼이어야 하죠. 그러면서 승진도 아무래도 조금 늦어질 수밖에 없고, 각종 승진 관련 교육을 듣는 것도 어려워지고. 안타까운 일들이 발생하는 거죠.

김태희 : 제가 어렸을 때 봤던 선배님들에게 은행은 일을 하는 곳인 동시에 아이들을 돌보는 또 다른 유치원이었어요. 유치원에 맡긴 아이를 회사에서 받아 같이 야근을 하고, 저녁 10시가 되면 같이 집으로 퇴근을 하시더라고요. 당시에는 제가 결혼을 하지 않아서 선배님들도, 아이들도 서로 힘들겠다고만 생각했어요. 그런데 저도 아이를 낳고 보니 그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됐어요. 쌓여 있는 일을 내팽개칠 수는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집에 혼자 둘 수도 없으니 그런 선택을 하신 거예요.

지금은 직장 어린이집이 운영되는 곳이 늘어 일부 개선은 됐으나, 여전히 여성노동자들에게 육아 문제는 크다고 생각해요. 직장 어린이집들도 보통 저녁 7시까지만 운영하다 보니,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가 오후 5시쯤 아이들을 데려가요. 그러면 공동육아를 하지 않는 여성노동자들은 ‘우리 아이만 남아 있으면 어떡하지’라는 걱정이 생기는 거죠. 그래서 직장 어린이집 운영도 중요하지만, 일-가정이 양립할 수 있는 일터문화 조성, 육아 문제가 여성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족 모두의 문제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봐요.

오단비 : 저희 지부의 경우 최근 진행된 조합원 상담에서 가장 많이 공유되는 내용이 육아와 승진 문제였어요. 육아 때문에 승진에 꼭 필요한 연수를 못 받는 여성노동자들이 많은 거죠. 특히 지방에 계시는 여성 조합원들은 교육을 위해 서울까지 오셔야 해서 어려움이 더 커요. 육아휴직 사용도 많이 확대되긴 했지만, 육아휴직 기간이 호봉 산정에 반영이 안 되기 때문에 승진이 지연되는 문제도 생겨요.

이한순 : 제가 활동할 당시에 결혼퇴직각서 폐지, 여행원제 폐지 등을 하면서 여성노동자의 안타까운 현실을 개선해 나갔고, 방금 후배들이 말한 것처럼 시대가 발전하고 시대마다 여성노동자들의 노력으로 변화하고 바뀐 것들이 있지만, 여전히 현실을 바꿔가야 할 상황인 거죠.

육아·가사 문제는
여성노동자의 참여를 구속

- 앞으로 노동조합이 여성노동자 문제에 있어서 고민해야 할 지점은 무엇일까요?

이한순 : 육아휴직 활용 문제를 여성에게만 국한하지 말고 남성으로까지 더욱 적극적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봐요. 아이를 기르는 것은 부모 모두에게 주어진 것이잖아요. 여성, 남성 할 것 없이 같이 문제를 해결해 나가야 하는 거죠.

김태희 : 일과 육아를 함께 하는 여성노동자는 활동에 제약이 많아요. 그래서 지부에서는 행사를 ‘가족 참여형’으로 기획하고 있어요. 아이들과 같이 빵을 만들어 주변 이웃에게 나누고, 미혼모 가정 돕기 같은 봉사활동도 가족 단위로 진행했죠. 물론 이것도 한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더 다양한 활동을 고민해야 할 것 같아요.

같이 고민하고, 같이 해결하고
모두의 당사자성이 필요한 여성노동자의 문제

- 금융노조 여성위원회에 대한 고민과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김태희 : 올해 금융노조 여성위원회를 꾸리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소통’이에요. 서로의 어려움을 함께 해결해 나가는 밑바탕이 될 거라고 봐요. 이를 통해 여성위원회를 서로 의지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어요.

이한순 : 계속 공부해야 해요.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촉을 키워야 한다는 거죠. 여성노동자의 육아, 돌봄 문제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하는 측면도 있지만, 세상의 고민은 다 엮어져 있어요. 아까 말했던 것처럼 육아를 부모 모두의 문제로도 확장해서 봐야 하고, 동시에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정치적 방안도 고민해야 하죠.

그리고 노동조합 간부는 전체를 생각하고, 양심으로 지금의 문제를 고뇌하는 사람이어야 해요. 그런 의식을 가진 사람들이 노동조합으로 모이고, 함께 고민하면 노동조합이 할 수 있는 것은 상당히 많아요. 그리고 여성노동자만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노동자가 겪고 있는 문제는 아이의 문제, 배우자의 문제, 결국 가족의 문제로 모두들 당사자성을 가지고 접근해야 한다는 걸 또 강조하고 싶어요. 앞으로 후배들이 더 잘해 줄 거라 믿어요.

1970년대 은행은 노동자를 ‘행원’과 ‘여행원’ 등으로 구분했다. 행원은 남성노동자, 여행원은 여성노동자를 뜻했다. 그 중 여행원은 평균 재직기간이 4년에 불과했다. 여행원만 제출해야 하는 서약서가 주요 원인이었는데, 바로 ‘결혼퇴직각서’가 그것이다. 재직 중 결혼하면 자진 사직함을 서약하는 문서다.

결혼퇴직각서 폐지 움직임은 당시 금융노련 여성부장 이한순의 직장인 조흥은행에서부터 시작됐다. 은행 의무실 약사로 있던 여성노동자가 결혼을 하면서 사직서가 아닌 휴가원을 낸 것이 시발점이었다. 이한순 여성부장은 이를 놓치지 않고 ‘결혼퇴직각서’를 폐지하는 사례로 활용했다. 당시에는 해당 약사도 여행원으로 분류해 여행원에 준하는 급여를 지급했기 때문이다. 이를 시작으로 결혼퇴직각서 폐지 운동이 국책은행으로까지 확산됐고, 노동부는 1976년 10월 은행들에 결혼퇴직각서를 받지 말라는 지침을 내렸다.

두 번째로, 여행원제 폐지는 급여문제를 살펴보다 접근한 사안이다. 1976년 호봉제가 생긴 후 급여표에서는 은행원을 ‘일반직원’, ‘여행원’, ‘고용원’으로 분류하고 있었다. 그전까지 ‘여행원’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여성노동자를 지칭하는 말인 줄 알았으나, 급여체계에도 반영돼 불합리하게 운영되고 있었던 것이다. 여성노동자들은 이를 적극적으로 문제 제기했고, 여행원에서 일반직으로의 전직 고시를 이끌어냈다. 그러나 전직 고시를 거쳐야 했기 때문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었다. 계속해서 투쟁과 문제제기를 한 결과 남녀고용평등법이 생겼다. 노동조합 차원에서는 임단협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며 성별에 따른 임금 차별을 없앴고, 이 같은 상황이 종합돼 1992년 여행원제가 폐지됐다. 당시 과정을 주도적으로 이끈 것이 이한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