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그대가 된다는 것
누군가의 그대가 된다는 것
  • 안상헌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 승인 2009.04.02 14:11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화려한 말보다 작은 행동의 기쁨이 더 큰 감명
나는 누군가의 무엇이 될 수 있을까?

안상헌 제일기획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당신이 한 행동은 작은 일이지만 누군가에겐 큰 용기와 격려가 되고 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는 광고 한 편이 나왔다. 조용한 목소리로 우리를 응원하는 이 광고는 지금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있다.

잘 할거야 문자를 보낸 적이 있다
필기한 노트를 빌려 준 적이 있다
내리는 척 자리를 양보한 적이 있다
무거운 가방을 대신 들어준 적이 있다
추운 날 외투를 벗어 준 적이 있다
마지막 남은 만두를 양보한 적이 있다
진 경기에 박수를 보낸 적이 있다

우리가 한 번쯤 경험해 보았을 법한 이야기가 나오면 거리의 사람들은 그런 적이 있다고 손을 든다. 누구나 이 광고를 보고 마음속으로 손을 한 번 들어볼 때쯤 카피가 흐른다.

‘우리는 누군가의 박카스다!’

ⓒ 동아제약

소비자 스스로 느끼는 광고 카피

불황을 맞아 소비자들을 향해 ‘힘드시죠? 힘내세요!’라고 일방적으로 응원하는 광고들 속에서 이 광고가 유독 끌리는 이유는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 소비자 스스로가 답을 내게 하는 데 있다.

공감할 수 있는 경험들을 떠올리다 보면, 나도 힘들지만 나의 작은 행동이 누군가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가를 마음으로 느끼게 하는 데 이 광고의 매력이 있다.

그리고 여기서 등장하는 ‘누구’란 사전적으로 보면 잘 모르는 사람을 가리키거나, 가리키는 대상을 굳이 밝혀서 말하지 않을 때 쓰는 인칭대명사다. 내가 이 행동을 함으로서 어떤 대가를 얻겠다는 생각 대신 그저 마음이 쓰이는 대로 하는 순수한 행동의 대상이 ‘누구’라고 할 수 있다.

ⓒ 동아제약

‘누구’에게 힘이 되는 사람들

최근 인터넷에서 이렇게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의 모습을 담은 사진들이 입소문을 타고 번지고 있다. 사진 속의 주인공은 말 그대로 ‘누구’들이다.

지하철에서 슬리퍼를 신은 채 성치 않은 몸으로 구걸을 하고 있는 노파를 위해 선뜻 자신의 신발을 내어 주는 어느 아줌마, 전동 휠체어를 타고 천천히 거리를 달리는 장애인 뒤에서 그를 보호하며 주행하는 경찰관, 팔을 전혀 못 쓰는 누군가를 위해 입에 빵을 가져다주는 빵집 천사, 지하철 사이에 낀 누군가를 구하기 위해 힘을 모아 전동차를 들어 올리는 수백 명의 ‘누군가들’이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보는 이의 마음을 찡하게 만든다.

이들의 공통점은 결코 넉넉하거나 화려한 삶을 살아가지고 않지만 그저 자신보다 어려운 누군가에게 힘이 되어준다는 데 있다.

ⓒ 동아제약

‘누구’에게도 힘이 되지 않는 사람들

반대 의미로 쓰이는 ‘누구’들도 있다. 이들은 누군가에게 좋은 힘이 되어주기 보다는 힘을 얻기 위해, 힘을 이용하기 위해 행동하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들 중에는 기업체에서 거액을 받았다는 ‘누군가’도 있고, 말 한마디가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여권실세라는 ‘누군가’도 있고, 정치인들이 분명 만났지만 지금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발뺌 할 때 등장하는 ‘누구’도 있고, 큰 정치스캔들이 터질 때마다 성역 없이 수사하겠다고 하지만 끝끝내 밝혀지지 않는 ‘누구’도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내가 개인적으로 아는 사람이 아니지만 나를 불쾌하게 만든다는 데 있다.

ⓒ 동아제약

나는 어떤가

지하철을 타고 신문을 뒤적이며 퇴근 하는 길에 전동차 한쪽에 붙어 있는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당신이 단 한 사람이라도 누군가의 그대가 되면 당신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나는 오늘 하루도 성공하기 위해 출근을 재촉하고, 누군가의 남편으로, 누군가의 아빠로, 누군가의 직장동료로 살아간다. 요새 부쩍 피곤하다는 말이 입에 붙은 나, 나는 오늘 누군가의 박카스가 되어주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