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땀이 호텔을 반짝이게 만든다
그들의 땀이 호텔을 반짝이게 만든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9.04.0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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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고, 치열한 ‘호텔’의 뒷모습
친절한 미소 뒤에 인내와 ‘열정’
가든호텔 ‘호텔리어’의 하루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호텔에 들어서면 스마트한 외모와 단정한 옷차림. 그리고 친절한 미소를 띤 그들이 있다.

입구에서부터 ‘그들’의 서비스는 시작된다. 차 문을 열며 정중하게 고개를 숙이는 벨 서비스, 반짝이는 샹들리에 아래 반질반질 윤을 낸 입구와 프런트를 거쳐 룸에 올라가면 먼지 한 톨 없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다. 짐을 정리하고 식사를 하러 내려가면 전문 웨이트리스의 친절한 서비스와 막 만들어 낸 요리를 맛볼 수 있다.

그들이 사는 세상

Take 1. 입구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손님의 차량이 들어서는 곳, 호텔의 입구는 이른 3월임에도 제법 쌀쌀하다. 바로 옆, 한 발만 더 떼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깨끗하고 푸근한 실내가 기다리고 있지만 그들은 차량이 들어오는 입구에서 눈길을 떼지 않는다.

추위에 어깨를 움츠리고 함께 대화를 나누며 서 있다가도 손님이 도착하면 곧 가슴을 펴고 여유롭고 친절한 미소를 띠며 정중하게 차 문을 열어 손님을 맞는다. 그들은 호텔 서비스의 ‘문’을 여는 벨 서비스를 담당하고 있다.

경비실에 근무하다 지난해부터 벨 서비스를 시작한 P씨는 “겨울에는 정말 힘들겠다”는 질문에 곧바로 “죽음이죠”라고 답했다. 특성상 고급 차량이 많아 한 순간이라도 마음을 놓아서는 안 된다. 자칫 경미한 사고라도 발생한다면 호텔 이미지는 물론이고 금전적으로도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술 취한 손님, 어이없는 해프닝으로 곤란을 겪기도 한다. 한 번은 ‘출구’로 들어온 손님의 차량을 제지했는데 ‘불같이’ 화를 내는 바람에 난데없이 봉변을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고객과의 첫 만남이기에 그는 오늘 역시 찬 바람 속에서도 얼굴 가득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Take 2. 체크인

로비에 들어서면 바로 체크인을 해야 한다. 프런트 데스크는 늘 신속하고 정확하게 일을 처리해야 한다. 이들의 실력은 요즘 환율 변동에 따라 원화가치가 떨어지면서 부쩍 늘어난 단체 관광객들을 맞을 때 더욱 빛난다. 유려한 외국어 실력과 상냥한 미소는 기본이다.

체크인을 마치고 방으로 들어서면 깨끗한 룸이 기다리고 있다. 이는 내가 들어오기 전 숙박객의 흔적을 완벽하게 지우는 임무를 맡은 룸메이드의 몫이다. K씨는 하루에 열 네 개의 방을 청소한다. 환기를 하고 바닥과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비치되어 있는 물품을 새 것으로 교체한다.

하루의 업무량과 시간, 그리고 업무강도를 결정하는 가장 큰 요인은 ‘손님의 성격’이다. “있었던 듯, 없었던 듯 깔끔하게 사용하시는 손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간혹, 정말 100분 중에 한 분 있을까말까 한 분들이 계세요. 온갖 물건들이 다 바닥에 팽개쳐져 있거나 마치 쓰레기를 흩뿌려놓은 것 같았던 적도 있었고. 특히 화장실이 힘들어요.”

K씨는 “제 노하우는 깨끗한 방에서 청소를 하면서 2~3분, 5분씩 남는 시간을 아껴서 오래 걸리는 방을 청소하는 거예요. 차근차근 순서에 맞춰 하나씩 끝내고 마지막 방의 문을 닫을 때 상쾌한 기분이 들어요”라고 설명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Take 3. 식사

이 호텔에서 이용할 수 있는 곳은 중식, 일식, 커피숍, 바 등이다. 오후 세 시의 중식당, 한차례 손님이 휩쓸고 지나간 곳에는 웨이트리스로 서브 업무를 맡고 있는 직원들이 테이블 냅킨을 접으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커피숍에서 업무를 하다 중식당으로 온 H씨는 베테랑 직원이다. 그녀는 “고객이 계실 때, 식사 시간에 필요한 모든 서비스를 다 하는 것이 저의 일”이라며 “하지만 그 외의 시간에도 이렇게 저녁 식사 준비를 하고, 음료를 정리한다거나 고객 관리, 콜 세일즈 등을 하느라 분주하다”고 전했다.

가장 속상할 때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술 한 잔 받으라’거나 무턱대고 반말을 하며 아래로 보는 손님들을 만날 때이다.

“처음 서빙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주스를 손님 무릎에 쏟는다거나 음식을 엎지르는 실수를 하면 정말 어쩔 줄 몰랐죠. 현기증이 날 것만 같고 무섭고. 나름대로 오랜 시간 동안의 노하우가 쌓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당황하지 않고 해결하는 법’을 익혔어요. 무엇보다 서비스를 할 때, 이것은 정말 중요한 것 중의 하나라고 생각해요.”

이렇게 식당 안에서 손님 준비가 한창일 때, 주방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가득하다. 각 파트별로 썰고, 다지고, 볶고 끓이며 저녁 식탁에 오를 음식들이 하나 둘씩 준비되고 있다. L씨는 주방에서 몇 안 되는 여성 요리사 중 하나다. 그새 손을 베어 붕대와 호일로 대충 동여매고 일을 한다.

“가장 힘든 점은, 저는 말하자면 전문직인데 사람이 부족하다 보니 ‘요리’ 외에도 할 것이 많다는 거예요. 마치 전쟁을 치르는 것처럼 일을 마친 다음에도 주방을 청소하거나 하는, 허드렛일을 시작해야 하는 거죠.”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Take 4. 안전과 시스템

직원 통로를 돌아 지하로 내려가니 난방 보수작업이 한창이다. 전기, 기계, 음향, 영선(도색, 목수 등)을 맡고 있는 시설 담당 파트 직원들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는 설비가 제대로 돌아가는지, 어디에서 가스나 전기를 어떻게 쓰고 있는지 한 눈에 볼 수 있는 점검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24시간 3교대로 일을 하며 혹시나 있을 위험에 대비한다. 호텔이 처음 들어서던 때부터 일을 해 왔던 C씨는 이제 눈을 감고도 호텔의 기계 설비가 어떻게 돼 있는지 그릴 수 있을 정도다. 그는 “때로는 높은 곳에 올라가 일을 하다 다치기도 하고 힘든 일도 있었지만, 큰 사고 한 번 없이 보살펴 온 곳이기에 이제는 내 집처럼 정이 많이 들었다”며 “내가 일할 수 있을 때까지 여기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전했다.

호텔 전체를 볼 수 있는 시스템의 불빛이 한 벽면 가득 반짝인다. 이야기를 하는 동안에도 그 불빛을 눈으로 쫓는 점검자 C씨는 ‘힘들지 않느냐’는 질문에 “호텔에서 일하는 사람 중에 힘들지 않은 사람이 있는 줄 아느냐”고 대답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일상의 반복, 그리고 ‘인내’

“호텔리어로 산다는 것이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처럼 화려하거나, 고급스러운 것은 아니에요. 아마 그런 생각으로 이곳에 들어온다면 한 달도 견디지 못 할 걸요. 오히려 ‘내가 이런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은 허드렛일과 ‘서비스’를 하는 사람이 아니라 아랫사람을 부리는 것처럼 생각하는 손님들을 만날 때도 있어요. 호텔이라는,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일의 특성상 평일에 쉬어야 하고 늦게까지 일을 해야 하니 사람들을 만나거나 자신의 시간을 쓸 여유가 없어 외롭기도 하고요. 늘 똑같은 일을 반복하다 보면 일상에 지쳐 일의 소중함이나 보람을 잊고 살 때가 많아요.”

H씨는 “사실 질 좋은 서비스나 호텔리어로서의 자세 같은 것은 일이 너무 많아서 생각할 겨를조차 없을 때가 많다”며 “다만 내가 인상을 쓰고 있으면 나와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나 고객, 그리고 호텔 이미지 모두가 나빠지기 때문에 웃으면서 하려고 한다”고 전했다.

같은 부서에 일하고 있는 P씨는 “겉에서 보기엔 단아하고 좋은 모습으로 보이지만 음식을 나르는 접시들이 굉장히 무겁다”며 “나를 무조건 낮춰야 하고, 내 의견이나 기분은 원래부터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야 하는 일”이라고 토로했다.

가든호텔노동조합 노종복 위원장은 “심했던 경우 식음료 파트에서 간혹 음식으로 타박을 하거나 실수를 했다고 해서 따귀를 때린다든지 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었다”고 전했다. 얼마 전에는 천만 원이 넘어가는 연회장 행사비를 후불로 해 줬다가 몇 달씩을 미뤄 책임자였던 주임의 속이 바짝 타 들어가는 일도 있었다고.

‘호텔리어의 삶’은 처음 일을 시작했을 때의 설렘도, 일하면서 쌓은 노하우도, 보람도 잊을 만큼 고달픈 일상 속에서 ‘인내’를 배우는 것이기도 하다.

동료의 어깨에 기대

“우리는 세 명이 조를 이뤄 한 층을 맡아요. 오늘 같은 경우에는 제가 맡은 방이 조금 수월한 편이었는데, 짝꿍이 안 끝났으면 침대 시트도 같이 싸주고 도와주면서 함께 일해요. 내가 빨리 끝났다고 해서 먼저 나가버리면 나중에 내가 힘들 때 함께 도와 줄 사람도 없는 거죠. 몇 년 동안 함께 일을 하고 있으니까, 그런 점도 손발이 맞아요. 그런데, 자기가 맡은 부분, 그 역할을 혼자 다 소화해 내지 못하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거잖아요. 그럴 땐 자신의 몫을 다 하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H씨는 오늘이 비번이다. 새내기 주부로 결혼하고도일에 치어 살림도, 제대로 된 신혼생활도 할 짬이 없었지만 특별히 바쁜 시기인 지금, 후배들이 쩔쩔 매며 고생할 생각을 하니 집에서 도저히 혼자 쉴 수가 없었다고 한다.

H씨는 “그냥 하루 하루 일을 하다 보니 어느 새 이 호텔에서 일을 시작한 지 8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며 “오히려 일에 대한 보람보다는 함께 있는, 웃으며 지낼 수 있는 선후배들이 있었기 때문에 오랫동안 하루처럼 일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조용하고 우아한, 호텔에는 그들이 산다. 분주히 뛰어다니는 복도는 어두컴컴하며 쉴 수 있는 공간은 초라하게, 그나마 제한돼 있다. 자부심을 가지려고 노력하지만 자존심은 무너지기 일쑤다.

룸메이드 일만 벌써 10년째 하고 있는 K씨는 “더럽다, 힘들다 생각했으면 아예 처음부터 이 일을 하지도 못했을 것”이라며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하니까 할 수 있다”고 전했다. 또한 “내가 땀 흘려 번 돈으로 가족들이 좀 더 행복하게 사는 데 기여를 하고 있고, 내 자식들을 키울 수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은 나에게 꼭 필요한, 값진 일”이라며 “하루하루 보람을 느끼고 살아야 내 삶이 행복해 지는 것”이라고 조언했다.

반짝반짝한 조명 뒤, 땀에 범벅이 돼 버리는 배우들처럼 넓고, 깨끗한 호텔을 만들어 가기 위해 늘 가슴을 펴고 미소를 지으며 아름다운 땀을 흘리는 호텔리어가 있다. 그 정겨운 땀 내음이 있기에 그들의 서비스는 호텔보다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