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시장 유연성 높으면 위기 심하게 겪는다
노동시장 유연성 높으면 위기 심하게 겪는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9.05.06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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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위기 시대, 양질의 노동 어떻게 실현할까?
임금삭감은 성장잠재력 악화시켜

노동시장의 유연화와 규제완화 정책이 오히려 경제위기와 고용문제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또한, 한국의 경우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경기부양책 중 고용에 중점을 둬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국제노동협력원은 한국노총과 공동으로 4월 23일 서울 마포 가든호텔에서 ‘고용위기와 양질의 노동실현 방안에 관한 국제정책 세미나’를 개최했다.


노동시장 규제 강화하라

‘세계 경제위기 하에서의 양질의 노동실현 방안’에 대한 첫 번째 발제에서 모하메드 뫄마드징고 ILO노동자활동지원국 경제전문가는 “최근 경제위기의 근본원인은 금융시장에 대한 규제 부족과 노동시장에 대한 잘못된 정책, 세계화를 지향하는 불균형 모델이 지속된데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서 “각 국가들이 적극적인 경기부양책과 자국 통화의 평가절하, 통화정책 완화 등을 통해 위기를 극복하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세계 42개국을 분석해 본 결과 고용보다는 SOC투자, 감세, 기업지원 등에 치중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뫄마드징고는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유지하기 위해서는 임금의 하락을 막고, 노동자의 권익을 보호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ILO에서 권고하고 있는 다양한 국제노동기준들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각 국가들의 핵심 대응요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노동조합에 있어 현 경제위기는 도전이자 기회”라며 “노동조합은 경제위기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는 정책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으로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가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조언했다.

‘세계 경제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노동시장 규제강화’에 대해 두 번째 발제를 맡은 롤란드 슈나이더 OECD-TUAC(OECD 노동조합자문위원회) 선임정책자문위원은 “OECD 국가에 대한 사례연구 결과, 양질의 고용은 복지국가의 축소와 노동시장 규제완화 보다는 임금교섭제도와 거시경제정책, 사회정책의 효율적 조율에 의해 실현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며 “성공을 위해서는 강력한 노사조직과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며 합의가 이루어진 정치환경이 모두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노동시장의 유연성이 높은 국가가 경제 위기를 더 심하게 겪는다”며 “경제가 부채 디플레이션을 겪을 때 회로차단기가 필요하며 임금, 가격, 고용계약의 경직성이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슈나이더 위원은 “OECD 및 IMF 등 국제기구와 많은 경제학자는 실업과 경제 성장 둔화의 책임을 노동조합과 노동시장 유연성을 저하시키는 고용규제에 돌리고 있다”며 “반면에 임금, 고용, 사회보장의 경직성이 각 국가들이 현재의 위기에 잘 대처할 수 있게 한다”고 주장했다.

또,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전제조건으로 ‘노동시장 규제강화’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특히, 이를 위해 각 국 정부는 ▲핵심노동기준의 준수와 이행 ▲적정 수준의 최저임금 실시 ▲사회적 파트너들의 의미 있는 사회적 대화와 단체교섭을 위한 지원 ▲단체교섭을 통한 임금 디플레이션 방지 노력 ▲적절히 설계된 충분한 실업급여 제공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신자유주의 정책, 역효과 부른다

조원희 국민대 교수는 ‘글로벌 경제침체 속 한국경제의 위기’란 발표문에서 “공공부문의 민영화, 부동산 규제완화, 감세 등 현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이 부동산 거품과 유동성 폭발 등을 가져올 수 있다”며 “보다 장기적인 관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특히 “세계경제는 실물 부문이 살아나지 않는 한 다시 침체로 반전돼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다”며 “경기 회복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경기부양을 위한 과도한 정책 대응은 오히려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강조했다.

‘경제위기가 한국노동시장에 미치는 영향과 고용대책’에 대해 윤진호 인하대 교수는 “현재 경제위기를 진정한 위기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더 큰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며 “현 정부의 일자리 나누기 정책은 노동시간의 단축 없이 임금삭감을 전제로 한 것으로, 이는 경제위기를 틈타 임금삭감을 도모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그는 “임금삭감은 내수 확대에 부정적 효과를 가져 오고, 우수한 인력의 확보를 가로막아 성장의 잠재력을 악화시킬 수 있다”며 “위기 극복을 위해서 비정규직 특별지원기금 조성, 교대제 개선 등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실업대책 예산의 증액 등 실질적인 정부 정책과 함께 시장에 대한 적절한 개입과 규제, 친환경적 공공투자, 사회적 투자가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회안전망 대책 마련해야

토론자로 나선 노진귀 한국노총 중앙연구원장은 “경제위기로 인해 고용위기와 노동기본권의 후퇴가 우려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운동 방식에도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며 “총고용을 확대하고, 일자리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현 정부의 친기업적 노동정책을 억제하는 전략뿐만 아니라, 정책결정 과정에 노동조합이 참여함으로써 노조의 역량을 향상시켜 나가는 노력도 병행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노 원장은 “현 정부의 일자리 정책은 단기적인 효과에만 치중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며 “청년 일자리 문제와 일자리의 양극화 해소를 위한 장기적인 대안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인철 한국경총 경제조사본부장은 “시장경제의 발전과정 속에서 정부의 규제와 개입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명제는 인정해야 한다”며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수단으로 보호주의를 강화하고, 규제를 경직적으로 이어간다면 세계 경제가 더 침체에 빠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고용유발계수가 높은 서비스업의 경우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의 유연성이 확보되었다고 볼 수 있는 만큼, 고용의 유연성을 높이는데 주안점을 둬야 한다”며 “최저임금의 경우에도 노동시장 외부의 소외된 계층의 최소한의 생계유지를 위해서라도 인상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유진 노동부 노동시장위기관리대책단장은 “정부에서는 현재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써 고용보험을 비롯한 사회안전망을 통해 영세 자영업자와 청년층 일자리를 창출하는데 정책의 초점을 맞춰나가고 있다”고 밝히고 “이에 대한 부정적 평가도 없지 않으나 서구 복지국가들과의 단순비교보다는 우리나라의 노동현실에 맞는 정책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판단된다”고 말했다.

특히 그는 “발제문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 문제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으나 노동의 유연성이 고용안정을 저해하는 측면도 있겠지만 일자리를 창출하는 등 양면을 모두 갖고 있다”며 “정부에서는 다양한 정책과 제도들이 추구하는 목적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진 국제노동협력원 국제협력국장은 “현재 경제위기로 인해 한국내 외국인 근로자들이 직격탄을 맞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대책 마련과 ODA(공적개발원조) 확대도 검토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한국이 IMF를 겪는 과정에서 사회안전망의 중요성이 대두됐고, 그 중에서도 퇴직 후 노후보장에 대한 근로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최근 근로자들의 퇴직연금이 이번 경제위기로 인해 적지 않은 손실을 입었다는 해외의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이 부분에 대한 대책도 신중하게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리_ 국제노동협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