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도, 좋습니다
울어도, 좋습니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9.05.06 1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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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장 하승립 lipha@laborplus.co.kr
며칠 전, 오랜만에 짬을 내 고향 선후배들을 만나 술을 한 잔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세상사 온갖 얘기들이 오가다가 문득 한 친구가, 요즘 눈물이 많아졌다고 그러더군요. 물론 그 친구는 이 어렵다는 시절에 나름대로 튼실한 기업에서 책임자 역할 잘 하고 있겠다, 아이 잘 크겠다, 아내와도 잘 지내는데 대체 웬 눈물이냐는 핀잔을 들었지요.

그런데 이 친구, 자신의 휴대폰에 저장된,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아이 사진을 보면서도 눈가에 설핏 물기가 비칩니다. 무슨 가슴 아픈 사연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문제가 있는 것은 더더욱 아닌데 그냥 왠지 모르게 눈물이 흐르는 일이 잦답니다. 마흔이 넘어서면 ‘불혹(不惑)’ 하는 단단함이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사소한 일에 눈물을 비쳐 민망하다더군요.

가만 보면 이 친구만 그런 게 아닙니다. 지난 월초에 모임이 있었는데, 그 때 단연 화제는 피겨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놀라운 성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김연아 선수였습니다. 헌데 시상대에 올라선 그 어린 선수가 눈물을 보일 때 따라 울었다는 이들이 그렇게 많더군요.

가만 생각해 보면 그건 아마도 이 시절이 ‘위로’가 필요한 시절이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새벽별 보고 출근해서 아이들 다 잠든 한밤중에야 집에 돌아오는 일상을 반복하고도 언제 구조조정의 대상이 될지 몰라 전전긍긍하는, 정말 살아가기보다는 살아내기 벅찬 지금입니다. 겉으로 내색하지는 못하지만 누가 감성의 작은 부분만 툭 건드려도 꺼이꺼이 울음을 내뱉고 싶은 게지요.

예전에는 ‘이래도 안 울래’ 그러면서 대놓고 눈물을 강요하는 신파 드라마를 보고도 눈 하나 꿈쩍 안 했지만, 지금은 내가 뛰는 것도 아닌 운동선수들의 시합에 심박이 빨라지고, 믿지도 않던 신에게까지 의지해서라도 우리 선수의 승리를 기원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치 내가 이기기라도 한 듯이, 지난 날의 그 고통과 시련까지 공감하게 됩니다.

이렇게 ‘위로’가 필요한 분들에게 기운을 주고 싶어 프로축구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골키퍼 김병지 선수 인터뷰를 잡았더랬습니다. 그런데 하필 인터뷰 하기로 한 날 김 선수가 경기 중 부상을 입어 수술대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그는 결코 포기하지 않았고, 다시 일어섰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에 인터뷰를 다시 잡아 진행할 예정입니다.

66년생으로 프로야구 최고령 현역인 투수 송진우 선수는 ‘나이가 들수록 컨디션 조절이 쉽지 않다’며 당분간 시합에 집중하겠다고 인터뷰를 뒤로 미뤄줄 것은 요청했습니다. 송 선수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기에 그러기로 했습니다. 그는 지금도 24살이나 어린 겹띠동갑 선수들과 함께 그라운드를 누비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충분히,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가끔은 눈물을 보여도 부끄럽지 않을 만큼 그렇게 열심히 살아왔습니다. 그러니 그 눈물, 감추지 마세요. 가끔은, 울어도, 좋습니다. 진짜 힘에 겨울 때, 그 때는 저라도 나서 위로가 되어 드리지요. 토닥토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