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 바꿨으니 이제 교육도 바꿔볼까?
도서관 바꿨으니 이제 교육도 바꿔볼까?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6.03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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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고 싶은 학교도서관 만든 열정의 평교사
교육변화 만들어가는 교육위원으로 변신
박종훈 경상남도 교육위원

억눌한 누명을 쓰고 투옥된 한 남자의 수십 년에 걸친 사연을 다룬 <쇼생크 탈출>이라는 영화가 있다. 여기서 주인공 앤디(팀 로빈스 분)는 교도소 내 낡은 도서관을 개조하기 위해 주정부에 매주 편지를 보내 지원을 요청한다. 이를 외면하던 주정부도 계속적인 편지공세에 지쳐 교도소에 도서관 지원금을 보내고 앤디는 낡은 도서관을 새롭게 바꿔놓는다.

<쇼생크 탈출>을 살짝 변형한 <입시지옥 탈출>을 현실로 만든 이가 있다. 창원 문성고에서 사회 과목을 맡고 있던 박종훈 교사는 학교 도서관 증축을 요구하며 줄기차게 창원시의 문을 두드렸다. 결국 두 손을 든 창원시는 2천만 원을 문성고등학교 도서관 시설개선비로 지원하게 된다.

이 지원금을 바탕으로 전산화 작업, 시설 보수로 새롭게 바뀐 도서관이 탄생하자 문성고등학교 학생들은 그간 외면하던 도서관을 찾기 시작했다. 책 읽는 문화가 자연스럽게 정착된 것이다. 감옥과 크게 다르지 않은 학교의 현실을 감안한다면 영화와 꽤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쨌거나 영화에서처럼 박종훈 교사는 학교를 ‘탈출’한다. 물론 ‘탈옥’은 아니다. 그는 자신이 재직하던 문성고 하나에 만족하지 못했다. “이럴 것이 아니라 도내 950여 개의 학교에 이런 도서관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으로 도 교육위원을 선택한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박종훈 교사는 벌써 재선에 성공한 당당한 평교사 출신 경상남도 교육위원이 됐다. 박종훈 교육위원을 만나 현재 경남 지역 교육현황과 그의 교육관에 대해 들어봤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학교도서관에서 시작된 ‘욕심’

- 평교사로 살아가다 교육위원에 나서게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교육위원으로 나서게 된 계기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2000년부터 학교 도서관 담당교사를 맡았습니다. 이전까지는 일주일에 이틀씩 점심시간만을 이용해서 책을 빌려주던 정도의 공간이었는데 제가 교무실에 있던 책걸상을 아예 도서관으로 옮겼습니다. 물론 수업은 교실에서 진행하고요.

그런데 도서관이 너무 낡았어요. 그래서 창원시에 가서 막무가내로 지원금을 요구했는데 2천만 원을 줍디다. 그 돈으로 전산화도 하고, 형광등도 갈고, 리모델링을 했어요. 그리고 나서 학교도서관에 아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을 보면서 나에게는 대단한 충격이었습니다. 어떻게나 좋던지.

그때 교육위와 교육위원이란 존재를 어렴풋이 알면서 ‘이것을 한 개의 학교로써 한정할 것이 아니라 교육위원을 하면 도내에 있는 전체 950개 학교의 학교도서관을 활성화시킬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하고 싶은 욕심 때문에 학교에 있을 수 없었습니다.

아, 물론 난관도 있었죠. 당시 교육위원이 급여가 없는 무보수 명예직이다보니 그때까지만 해도 3천만 원 정도의 연봉을 받던 평범한 교사가 그것을 포기하고 나온다는 것이 만만치는 않았죠. 물론 부부교사였기 때문에 ‘내가 없어도 굶어죽지 않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마누라를 설득하는데 6개월쯤 걸렸어요. 지금은 마누라도 내심 찬성한 걸 굉장히 후회할 겁니다. (웃음) 당장 경제적 문제가 부닥치니까. 그래도 활동비가 한 달에 120만 원 정도 나오니까 그걸로 근근이 꾸려가고 있습니다.

또 하나는 98년, 창원대에서 ‘사회적 합의와 노동정치’란 논문으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라는 것이 사회적 기여를 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사회적으로 기여를 할 것인가 고민하다 교육위원이 좋은 도구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제 학위 논문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사회에서 노사정이라는 서로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집단이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 한 단계 발전을 꾀하는 것처럼 우리 교육계도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다양한 집단들, 예를 들어 학부모단체, 교사단체, 교육청, 학생 등의 집단들이 교육적인 면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의사소통의 통로 역할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말하자면 심부름꾼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말이죠. 그 역할이 내가 교육위원을 하기 위해 학교를 뛰쳐나온 또 하나의 명분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학교도서관 한번 제대로 만들어보겠다, 그리고 교육계 안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는 심부름꾼 역할을 하겠다, 이런 욕심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학위 논문이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담고 있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98년 당시 노사정위원회를 다뤘는데, IMF가 터지면서 당선자 시절의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나라 노사관계가 지나치게 전투적이라고 규정한 것 같습니다. 대안으로 북유럽 쪽의 노사정위원회를 대안으로 생각하고 도입한 것이 노사정위원회였습니다.

논문에서는 “한국에서 사회적 협의기구로서의 노사정위원회는 실패했다”고 규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노동과 자본 서로가, 특히 자본이 노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실패의 원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사관계가 협력적으로 축적되지 못하고 갑작스럽게 동등한 대우가 된다는 것이 정서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노동이 정책결정에 공식적으로 참여하게 된 중요한 사례로서 노사정위원회가 적어도 노동이 정부의 정책결정에 참여하게 된 공식적 통로로 큰 의미가 있었고 향후 노동정치에 있어 새로운 대안으로서는 충분히 검토해볼만한 것으로 논문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도내 도서관 관리인원 1명에서 150명으로

- 교육위원 당선 이후 제일 먼저 하신 것이 각 학교 도서관 개량 사업이었습니다. 어떻게 진행됐습니까?

“학교 도서관 만큼은 일정한 성과를 냈다고 자부합니다. 도내 거의 모든 학교도서관에 각각 5천만 원을 투입해 리모델링을 거의 완비했습니다. 제가 처음 교육위원이 됐을 때 학교 도서관을 관리하는 인원이 도에는 딱 1명 있었습니다. 지금은 사서 교사가 35명 정도 되고 전담인력이 110여명, 합쳐서 150명 정도의 학교 도서관 전담 인력이 배치돼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갈증은 남습니다. 도서관에 전담인력 있는 것과 없는 것은 차이가 많습니다. 사람이 있으면 사람의 온기로 해서 아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습니다.

이와 함께 학교 도서관에는 3가지 요소가 갖추어져야 합니다. 도서관으로서의 공간, 그곳을 지키는 사람, 프로그램 등 3가지가 있어야 하는데, 이제 공간은 완비됐고, 사람은 아직은 아쉽지만 150여명 만들었지만 프로그램이 없다는 것이 문젭니다. 대표적으로 도서관 활용수업, 주민참여 프로그램이 있을 수 있는데 현재는 거의 초보단계 입니다.

지금 학교 도서관은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이용할 수 있지만 방과 후가 되면 아이들이 전부 봉고차에 실려서 다 (학원에) 가버리니까 빌 수밖에 없습니다. 도서관을 제대로 활용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 학습이 가능한 도서관 활용수업을 활용해야 합니다.”

- 도서관 활용수업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합니까?

“학교도서관 활용수업을 위해서도 3가지 요소가 있어야 합니다. 첫째가 종이로 된 책 등 문헌자료, 두 번째가 영상자료, 세 번째는 전자자료 입니다. 이 세 가지 자료를 한 곳에 집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학교도서관입니다.

그래서 교과 담당 선생님이 반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한 시간 동안 선생님이 과제를 주고 A그룹은 문헌자료를 가지고 답을 찾고, B그룹은 비디오, 동영상 등 영상자료를 가지고 답을 찾고, C그룹은 인터넷을 통해 여러 사이트를 검색해서 답을 찾습니다. 사전에 선생님이 책, 인터넷 사이트를 알려줘서 그곳을 통해 답을 찾도록 해서 나중에 세 그룹의 대표가 나와서 발표하고 선생님은 일정한 코멘트만 하는 방식, 이것이 도서관 활용수업입니다.

이때 ‘뭐 선생님은 시작할 때 절만 받고 마칠 때 코멘트만 하면 되느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선생님이 그 한 시간 수업을 설계하기 위해 적어도 1년 정도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 사서교사들의 주장입니다. 그렇게 수업이 꾸려지면 아이들은 자기 스스로 답을 찾아 움직이는 역동적이고, 자기 주도적인 수업에 참가해 학업에 대한 흥미유발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러한 프로그램 수립을 위해 노력하다보니 이 과정에서 제 뜻에 동감하는 많은 선생님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우리 도내에는 ‘학교 도서관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하 ‘학생사모’)’이라는 단체가 꾸려졌습니다. 이 단체에는 500여 명의 교사들이 참여해 그림책 읽기, 북아트, 동화 구연 등 자신들이 하고 싶은 영역을 찾아서 선생님들 스스로 매주 소그룹으로 모여 열심히 공부하며 아이들 책읽기에 혼신의 힘을 쏟고 있습니다.
그런 이유 때문인지 2008년 전국 학교도서관 평가에서 창원의 토월초등학교가 대통령상을 받았습니다. 당시 관련된 상이 15개 정도 있었는데 그중에 7개를 경남에서 가져왔습니다. 저는 이에 대해 ‘학생사모’로 모인 경남지역 선생님들의 노력이 상을 받을 수 있었던 백그라운드라고 생각합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독서인증제는 또 다른 숙제일 뿐

- 이번에 경남교육청에서는 ‘독서인증제’라는 것을 시행한다고 들었습니다. 권정호 경남교육감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독서인증제는 한마디로 책 읽기 숙제를 시키는 것입니다. 이미 부산에서 독서인증제를 시행해서 생기는 부작용, 문제점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노인과 바다>에서 바다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일상생활의 장’이라고 답을 쓰면 책을 읽은 것으로 해서 독서인증제에 통과가 됩니다.

또한 학생들이 독후감을 쓰면 이미 컴퓨터에 입력돼 있는 몇 개의 단어가 그 독후감에도 있으면 통과, 없으면 통과가 안 되는 식입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책을 보면서 이 책의 주제가 무엇이고 키워드가 무엇인지 사전에 생각하면서 읽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새 인터넷 들어가면 책 요약된 거 싹 다 있습니다. 그거 가지고 베껴서 내도 통과됩니다. 이것이 어떻게 독서의 즐거움이겠어요? 독서인증제는 아이들에게 거짓독서를 가르치는 것에 다름 아닙니다.

여기에 권정호 교육감은 전 학교에 독서인증제를 실시하고 매년 연말에 실적을 보고하도록 했습니다. 그럼 당연히 도서관 담당교사는 실적 올리기에 나서고, 도서관은 실적관리실이 됩니다.

너무도 즉흥적으로, 부산에서 하니까 “경남도 해라”하는 것을 보고 기가차서 제가 성명서를 내고 “절대로 아이들에게 책을 강제로 읽도록 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교육감이 마산 MBC에 출연해 아이들이 워낙 책을 안 읽으니까 필독서 10권은 강제로라도 읽히도록 하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이 인터넷 뉴스에 보도되면서 5월 12일 전국적으로 71개 독서관련 단체에서 반대성명을 냈습니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은 “내 책은 절대로 강제로 읽히지 마라”하는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게 하기 위해 저희들은 학교도서관과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환경조성을 통해 자발적으로 읽도록 유도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책읽기가 숙제가 되면 안 됩니다.”

서울 아이들 문화적 특혜는 특혜 아닌가?

- 위원님 말씀대로 책 읽기의 중요성, 자발적 책 읽기가 중요하지만 요즘 아이들은 학원 다니느라 책 읽기는 거의 불가능해 보입니다. 어른보다 더 피곤한 아이들인데 근본적으로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것에 이의를 달 사람은 없는 듯합니다. 위원님이 생각하시는 교육은 무엇입니까?

“내가 아무리 꿈을 꿔봐야 이 문제는 대통령이나 국회가 해결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것이죠. 대학입시라고 하는 중요한 이벤트를 우리가 꿈꾸는 방향으로 가도록 손질하지 않고는 아무런 방법이 없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현재와 같은 영미식 모델이 아리나 북유럽 쪽의 모델, 노르웨이, 핀란드 모델로 가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깊이 생각할 수도 없는 것이 하면 할수록 자괴감만 쌓입니다. 현재의 입시지옥을 깨뜨리지 않으면 한국교육은 앞날이 없습니다.

최근에 저는 전국의 학부모 25명을 모아 고려대를 상대로 창원지방법원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습니다. 작년 고려대 수시일반전형에서 특목고, 특히 외고 학생들에서 일방적으로 유리하게 꼼수를 둬서 일반계 고등학교 1, 2등급이 다 떨어지고 외고 5, 6등급이 합격되는 일이 발생했다는 사실 다 아실 겁니다.

이것을 가지고 고려대 총장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해놓고 있는 상태입니다. 이것이 그야말로 고교등급제입니다. 여기에 한 술 더 떠 대교협과 교육부가 앞으로 3불 정책도 포기하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본고사, 고교등급제, 기여입학제를 금지하는 3불 정책은 그나마 지방균형발전이라는 차원에서 중요한 교육 정책수단이었습니다.

이에 대해 함안종합고등학교 1등급과 대원외국어고등학교 1등급의 객관적인 학력고사 수준은 차이가 있는데 이들에게 같은 수준으로 점수를 주는 것이 옳으냐고 공격을 하는데 저는 이것이 정부의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대의에서 중요한 정책수단으로서 함안종고 아이들에게 1등급을 주지 않으면 지방교육은 다 죽어버리니까 지방교육을 살리기 위한 정책수단이지 특혜는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렇다면 서울 아이들이 받는 문화적 특혜는 특혜가 아닙니까? 그것은 특혜가 아니고 지방학생들에게 주는 문화적, 교육적인 소외를 만회하기 위한 점수 몇 점이 특혜라고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3불 정책 폐기 논의가 나오면서 저는 지난달에 혼자서 거창에서 진해까지 5일을 하루에 30km씩 걸으면서 도민들에게 ‘3불 정책이 폐지되면 지방교육 다 죽는다’고 호소했습니다.

결국 대학입시 하나만 바뀌면 고등학교가 완전히 바뀔 것입니다. 구체적 문제 중 하나가 토익, 토플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정책입니다. 이렇게 가산점을 주면 앞으로 지방 일반계 고등학교에서는 올해부터 학생들이 학교에서 하는 영어 교육에 별로 신경 안 쓸 것이 뻔합니다. 토익, 토플시험 치러 다 나가겠죠. 결국 정상적인 학교교육이 죽어버리는 것입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어떻게 대학입시를 꾸리느냐에 따라서 공교육이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지금 대학입시는 잘나가는 사립대학의 주문에 따라 교육부가 끌려 다니고 있습니다. 저는 대학 수능시험에 음악, 미술, 체육도 들어가야 고등학교 교육이 정상화된다고 생각합니다. 음악, 미술, 체육이 중요하지 않은가요?

그런데 만약에 고3이 체육시간에 땀 흘리고 수업시간에 졸았다고 하면 학교장은 학부모들한테 맞아 죽을 겁니다. 이렇게 대학입시가 어떻게 정상적으로 만들어지느냐에 따라서 고등학교가 정상화되고, 고등학교가 정상화되면 중학교도 정상화됩니다.

지금 초등학교 방과 후 교실을 보면 컴퓨터 교실이라고 해서 아침 7시에 아이들을 학교로 불러서 컴퓨터 가르치는 곳이 있습니다. 이것은 학교의 의사라기보다 외부의 메이저급 컴퓨터 학원에서 학교를 설득해서 컴퓨터를 무상으로 집어넣고, 학교에서는 의무적으로 학생을 공급을 해달라는 이야기입니다. 학교가 끝나면 다른 학원을 가서 아이들이 안 모이니 컴퓨터는 새벽에 가르칩니다.

이것은 결국 방과 후 학교가 상업주의에 휘둘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방과 후 학교가 대통령의 사교육비 절감이라는 단순한 생각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이미 메이저급 학원 그룹들이 정부, 여당, 대통령에 대한 로비를 통해 이루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또한 특목고를 가기 위해서 아이들이 사교육을 한다고 하니까 정말 생각 없는 대통령이 그러면 “특목고를 늘려라. 늘리면 되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하는데 일선 학교 선생님들은 그 말을 듣고 다 뒤로 넘어갔습니다.

특목고가 중학교 졸업생의 3%밖에 안 뽑으니까 중학생 학부모 10%만이 특목고를 가기 위한 사교육을 받는데 만약 특목고 정원을 중학교의 10% 정도로 늘리면 중학교 인원의 50%이상이 특목고 위한 사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그렇게 사교육이 늘어날 것이라는 생각은 안하고 “특목고를 늘리면 사교육 안 하겠네”하는 단세포적인 생각으로 어떻게 공교육을 살리겠습니까?”

무상급식 정책에 문제제기한 이유

- 교육계에서 주민 직선 교육감 선거는 또 다른 반향을 불러오고 있습니다. 경기도교육감 선거에서는 진보성향의 김상곤 교수가 당선됐고 현재 교육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상급식 등 너무 급진적인 정책이 수립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상곤 교육감의 정책에는 전체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런데 무상급식에 대해서는 고민이 많습니다. 지난 경상남도 교육감 선거에서 현 교육감이 무상급식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 제가 문제제기를 했습니다.

교육의 공공성 확보란 차원에서 무상급식이 의무교육의 일환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맞지만 우리 예산의 현실상 지금 무상급식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무상급식의 범위 및 비율을 조율해야한다는 주장이었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진영으로부터 “너는 왜 무상급식을 반대하느냐?”며 엄청 욕을 먹었습니다. 저는 무상급식을 반대한 것이 아니고 무상급식이 필요하지만 중앙정부 차원에서 돈을 주면 모를까 경남만 무상급식을 하면 경남교육청의 예산구조는 왜곡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교육위원으로서 예산에 대해서 너무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를 한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2008년에 경남 교육청의 예산이 3조원이었습니다. 그중에 인건비가 75%고, 학교기본운영비라고 해서 꼭 필요한 돈을 갈라주고 나서 우리 교육청이 융통성을 발휘해서 쓸 수 있는 예산은 3천5백억 원입니다.

그런데 초ㆍ중학교 무상급식 하는데 드는 돈이 1천8백억 원입니다. 3천5백억 원 중 1천8억 원이 무상급식에 들어가면 나머지 1천7백억 원을 가지고 사업을 해야 하는데 그러면 5년 넘은 컴퓨터가 학교에 만 대가 넘게 방치되어 있어도 못 바꿉니다.

무상급식이라는 것이 3천5백억 원 외에 돈이 더 주어지면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주어진 돈에서 1천8백억이 무상급식으로 나가면 결국 그것은 제로섬 게임이 됩니다. 하물며 학생 인원이 최대인 경기도는 어떻겠습니까? 쉽지 않은 문제일 겁니다.

우리 경남도 반은 교육청, 반은 지자체에서 내는 것으로 대책을 정리 했습니다. 현 교육감은 일단 무상급식은 한다고 했지만 내부적으로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1천8백억 중 900억은 우리 도교육청 예산으로 하고 나머지 850억은 지자체에서 지원하면 하고, 지자체에서 지원 못하면 못 할 수밖에 없지 않느냐하는 것이 현재 도교육청의 방침입니다.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 등을 만나 무상급식은 국고에서 지원을 하는 법을 만들어 달라고 부탁하고 있습니다. 저는 무상급식 자체에 대해서는 동의합니다. 100% 국고를 가지고 안 되겠으면 반은 국고 부담, 반은 지자체에서 의무적으로 내도록 법을 만들어달라고 말합니다.”

교원평가, 확실한 기준 있다면 받아들여야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김상곤 교육감이 당선되고 나서 기존 교육청과의 마찰이 문제되고 있습니다.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보수적인 교육조직을 장악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이는데 이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권력을 가지면 장악에는 문제가 없다고 보는데 대신 불협화음이 들렸다는 것 자체가 학부모들에게 불안감을 줬다는 게 좀 걱정입니다. 교육부 소속인 부교육감은 저항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밑의 사람들은 해당 교육청 소속이라 저항할 수 없는 것인데 언론에서 부풀린 듯 한 느낌도 듭니다.

김 교육감이 인사혁신, 탕평인사 이렇게 잘 포장해서 할 수 있는 것을 시작도 하기 전에 반발이 있는 것처럼 비추어진 것에 대해서 나는 인수팀에도 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뭐, 당연히 부교육감이 국장들을 들들 볶았을 것이란 예상은 됩니다. 자기는 상관이 없으니까. 그렇지만 처음이니까 가지는 시행착오라고 생각합니다.”

- 일제고사 문제로 교육계 뿐 아니라 사회 전체가 시끄러웠습니다. 경남은 어떤 상황입니까?

“학부모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것이지만 워낙 학부모들이 일제고사의 필요성에 대해 세뇌가 돼 있어서 경남지역은 전교조조차도 일제고사가 문제가 있다는 이야기로 그치지 거칠게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일제고사에 대해 학부모들은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제가 학교에서 치르는 사설 모의고사나 일제고사들이 지니는 비교육적 요소에 대해서 속속들이 이야기하면 일제고사 칠 필요 없다고 생각하는 학부모가 늘어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우리 애의 등수가 몇 등인지 아는 것에 너무 목을 매는 것이 사실입니다.

정부가 등수는 별의미가 없다고 설득해야 하는데 오히려 정부가 싸움을 붙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래도 참여정부나 김대중 정부 때만 해도 적극적으로 설득은 안 했지만 그렇다고 필요하다고 보지 않았는데 이명박 정부에서는 경쟁체제를 너무 좋아하니까…. 일제고사는 정리하자면 문제가 있지만 학부모들의 정서가 워낙 강하게 작용하니까 더 이상 액션을 보일 수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교원평가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처음부터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작년 초 교원평가가 현안으로 시끄러울 때 “선생님, 우리 평가 받으십시다”라는 제목으로 호소문까지 만들었지만 주위의 반대로 발표는 못했습니다. 저는 그때 차라리 매도 맞고 했으면 전교조나 진보진영이 학부모들한테서 지지도가 덜 떨어졌지 않았겠나하는 후회도 됩니다.

저는 평가의 척도와 기준이 문제인데 평가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오해받는 것은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잘못된 인식은 교사들이 계속해서 평가받아왔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이제까지 평가를 받아왔는데 다른 평가를 하나 더 얹겠다는 것에 반발한 것입니다.

문제는 아이들 수업 잘 하고, 잘 가르치고, 아이들 잘 부둥켜 않는 선생님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기준만 제대로 만들어주면 됩니다. 지금까지의 근무평가나 지금 교육부에서 제시하는 평가 기준은 손바닥 잘 비비면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기준을 정확하게 만들어서 아이들 잘 가르치는 사람들이 빨리 승진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전교조 선생님들이 잘 만들어진 평가기준에 따라 승진 빨리 해서 교장, 교감되면 학교가 통째로 좋아지고 그런 선생님이 10명이 되고 100명이 되면 경상남도 전체가 맑아질 수밖에 없는 것에 대해서 생각을 못한 것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현행 제도는 분명 잘못되어 있습니다. 오히려 학생들에게 열심히 하면 승진을 못합니다.”

다양한 목소리 듣는 데서 사회적 합의 시작된다

- 위원께서는 현재 경남교육포럼을 운영하며 다양한 정책수립을 해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경남교육포럼은 2004년에 처음 설립됐습니다. 사단법인화는 2008년에 완성했습니다. 현재 약 200여 명의 회원들이 회비를 모아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전까지는 1년에 두 번씩 교육정책포럼을 주관했습니다.

5월 26일이 제10차 교육포럼입니다. 이번 포럼의 주제는 학교 안에서 학생 휴대폰 관리 및 학생 통화권 확보에 관한 조례 제정 문제입니다. 지금 휴대폰이 사실은 아이들 학습 집중력이나 학습 활동에 심각한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래서 학교마다 나름대로 규제책을 마련하고 하고 있지만 상위법이 없다는 것 때문에 일부 학부모님들이 반발하는 것에 대해 학교가 대응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교육조례로 학생들 휴대폰을 학교에서 일정하게 관리하고 그 대신 아이가 바깥으로 통화할 일이 있을 때 통화권 확보차원에서 학교에 전화기를 최소 학생 수에 비례해서 몇 대 이상 설치하도록 한다는 조례를 만들어야겠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그래서 최근 한 달 정도 학생 1500명, 학부모 500명, 교사 300명 이렇게 설문조사를 했습니다. 그 설문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교사대표, 학부모대표, 학생대표, 교육청 관계자들 모여서 포럼을 개최합니다. 바로 이런 것들이 사회적 합의를 위한 공론화의 장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여름방학, 겨울방학에 작은 규모로 현안에 따라 좌담회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초등학생 영어교육 이대로 좋은가”같은 주제를 가지고 조기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과 역기능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들을 모아서 작은 규모로 토론회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포럼활동을 계속 해온 것은 언제까지라도 교육에 대한 공론화의 장을 만들자는 저의 소명이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해나갈 예정입니다.”

박 위원은 교육이 가지는 중요성과 아이들이 획일화된 교육에 무너지는 모습이 중첩되어 나타나는 한국사회에서 책 읽는 습관, 환경부터 변화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강조한다. 그의 활동 앞으로 경남 교육, 나아가 한국의 교육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지 지켜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