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교육비 경감방안에 대한 전교조 입장
사교육비 경감방안에 대한 전교조 입장
  • 전교조
  • 승인 2009.06.04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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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교육당국이 발표한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정말 사교육비가 줄어 학부모들의 고통을 덜어주기 바란다. 교과부 발표대로 수차례의 간담회와 공청회, 토론회를 거쳐 확정한 것이라고 하니 그 동안의 노력에 위로를 보낸다. 그리고 몇 가지 방안은 일정 부분 사교육비 경감에 기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교육비 증가의 주범은 끝없는 경쟁교육

2007년 당시 교육인적자원부가 조사한 사교육실태조사를 보면 보육형 사교육이나 특기적성형 사교육은 20%정도에 불과하고, 초중고 모두 입시경쟁형 사교육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초 66.2%, 중 73.1%, 고 76.7%)

또한 통계청 조사 결과 성적상위 10%의 학생들이 하위 20% 학생들보다 2.5배 정도의 사교육비 지출을 보이고 있으며, 사교육 참여율도 36%(상위 10%는 87.7%, 하위 10%는 51.6%) 차이가 나고 있다.(통계청 2008년 사교육비 조사결과, 2009년 2월)

또 특목고 진학을 원하는 학생이 그렇지 않은 학생보다 34% 사교육비를 더 지출(71만원, 53만 4천원)하는 것으로 나타난 결과도 있다.(사교육걱정없는 세상)

이는 우리나라 사교육비 지출의 근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명확히 보여주는 것이다. 부족한 학습을 보완하는 보충학습의 사교육이 아니라 다른 학생과의 경쟁에서 이겨 입시병목을 먼저 뚫고 들어가 서열화된 고등학교나 소위 명문대를 진학하기 위한 사교육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기에 상급학교 진학을 위한 선발과 경쟁의 교육구조를 개선하지 않고서는 사교육 경감대책은 큰 의미를 두기 어렵다. 역대 정권이 사교육비를 절감하기 위한 수많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백약이 무효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이런 상황에서도 국제중학교, 자율형 사립고, 내국인 입학을 허용하는 외국인 학교 및 국제학교 등으로 학교서열화 정책을 강행하고 있으며, 전국의 학생들을 서열화하는 일제고사와 수능성적 공개 등으로 학부모와 학생을 학원으로 내몰고 있다. 이러한 정책은 새로운 사교육수요 창출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정부 스스로가 경쟁을 부추기고 사교육비를 증가시키면서 한편으론 사교육 경감대책을 발표하는걸 보면 정책의 혼선을 비판하기 전에 측은함을 느끼게 한다. 이런 현상은 이명박 대통령의 교육공약에서 기인한다. ‘사교육비 절반’과 ‘자율형 사립고 100개’는 양립할 수 없는 정책이다. 그럼에도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하는 정부의 입장이니 장관은 장관대로, 차관은 차관대로, 미래기획위원장은 또 자기대로, 당은 당대로 따로국밥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먹다 남은 식재료로 만든 정체불명의 모듬메뉴

오늘 교육당국이 발표한 사교육경감 종합대책을 보면 기존에 발표한 학교자율화, 교과교실제, 방과후학교, 사교육 없는 학교 등을 종합선물세트로 묶어 발표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추가된 것이라면 영어교육의 질 제고 정도인데 이 역시 이미 발표된 내용을 끼어 넣은 것이다.

이는 정부 스스로 사교육 경감이 정부 스스로의 노력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인한 것에 불과하다. 내놓으려 해도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사교육 대책안. 이것이 우리 교육당국의 현실이고 우리 교육의 위기인 것이다.

●학교자율화는 학교학원화의 포장지
학교자율화 확대는 작년 ‘415 학교학원화’ 조치 1년에 대한 평가도 없이 이루어졌다. 학교서열화 정책 속의 자율화는 획일적인 입시교육의 강화일 뿐이다. 입시교장을 위한 교사초빙권의 강화, 입시교장에 의한 일인체제인 비민주적 학교는 국영수 중심의 입시 과목 확대로 교육과정의 파행을 가져오고, 이를 위한 학교장의 권한 강화와 교장천국이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학교자율화는 학교학원화의 포장지에 불과하다.

●왜 수학, 영어, 과학 교과교실인가?
교과교실제는 그 취지의 긍정성에도 불구하고 3천억이라는 돈을 우선투자해야 하는 분야인가에 대한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수준별 수업에 따른 평가를 어떻게 할 것이냐에 대한 지적에 대해 어떤 답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과부가 발표한 안대로 수학, 영어, 과학이 왜 우선 교과교실제가 운영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답도 없다. 이에 대한 해명이 없으면 입시교육만을 위한 교과교실 운영이라는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목적이 변질된 교원능력개발평가
교원능력개발평가는 이 제도의 취지가 언제 사교육비 경감으로 변질되었는지 궁금하다. 애초 교원평가는 교원능력개발과 전문성 신장을 위해 필요하다고 교과부는 주장해왔다. 그런데 어떻게 왜 사교육비 경감대책으로 제도의 목적이 변질되었는지 해명해야 한다. 급하니까 아무거나 같다 붙인다는 비난을 받기 싫다면 말이다. 또 교과부 발표대로 현행 교원평가제도가 승진에 초점이 맞추어져 교원의 능력개발 지원에 도움을 주지 못한다면 현행 교원평가제도인 근무평정제를 과감히 폐지하고 승진제도를 개혁해야 할 것이다.

●있는 사람에게 지원하는 600억원
사교육 없는 학교 역시 학원 수요를 학교 안에서 해결하는 것이지 기본적인 입시경쟁구도를 해결하는 방안이 아니다. 사교육 없는 학교로 지정된 학교는 학원식 보충수업과 강제자율학습을 진행할 것이다. 그러나 3억 5천만원을 지원할 경우 어떤 근거로 사교육비가 절반으로 준다는 것인지 설명이 없다. ‘줄이고 싶다는 막연한 희망’과 ‘줄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기대’로 600억의 돈을 쏟아 붓는 것이 올바른 행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으며, 그 대상이 되는 소득이 상대적으로 높은 사교육이 많은 지역이 우선 지원대상인지도 비판의 대상이다. 대통령 임기 안에 대통령 교육공약을 달성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목표는 있으나 가치는 상실하고 구체적 경로는 없는 정책을 만들어 낸 것이다.

교과부 주장을 정말 믿고 싶기도 하다. 교과부 논리대로 한다면 400개 학교가 아닌 모든 학교에 1조 7천억만 지원한다면 사교육비 21조의 절반인 10조를 줄일 수 있다는 논리가 성립하니 아예 그렇게 하는 것이 나을 수도 있을 것이다.

●특기적성 NO!, 보충수업 YES!
방과후 학교 역시 마찬가지이다.
방과후 학교가 도입된 지 5년이 넘었지만 사교육비가 줄었다는 얘기를 듣지 못했다. 애초 방과후 학교는 학생들의 특기적성과 능력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방과후 학교를 통해 사교육비를 경감하겠다는 것은 교과부 스스로가 기존의 특기적성 프로그램은 폐지하고 입시과목 위주의 획일적 보충수업을 강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가 아니라
‘공교육이 경쟁적이어서 사교육을 시킨다’

입시경쟁을 위한 사교육비 지출은 크게 선행학습, 특목고 및 경시대회 준비, 내신 성적을 위한 지출로 구성되어 진다.
선행학습은 정상적인 학교교육과정을 파행으로 만드는 원인중 하나이다. ‘죄수들의 딜레마 게임’, 이른바 ‘옆집 엄마’ 효과는 끝없는 사교육 수요를 만들고 있다. 옆집 아이가 1년을 앞서가면 내 아이는 2년을 앞서가야 한다는 심리는 ‘공교육이 부실해서 사교육을 시킨다’가 아니라 ‘공교육이 경쟁적이어서 사교육을 시킨다’는 것을 입증해 주고 있다.

또한 이번 대책에는 특목고 입시로 인한 사교육비를 줄일 특단의 대책을 내놓지 못하였다. 외고입시에서 수학, 과학 과목의 가중치를 폐지하지도 못했으며, 동일계 진학을 강제하지도 못하였다. 중학교 교육과정 외의 문제가 출제되었을 경우 제재 방법 또한 제시하지 못하였다. 결국 고액사교육의 주범인 특목고 입시 개선은 맛만 보고 말았다. 수학, 과학 과목의 가중치는 폐지되어야 하며, 일부대학의 특목고 우대정책(고교등급제)은 엄격히 규제되어야 한다. 비동일계 전형의 경우 학교평가를 통해 특목고 지정을 재검토해야 한다.
내신 성적은 중장기 과제로 평가방식의 변화를 고민해야 한다. 이는 물론 대입제도 방식의 변경과 연계해서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

끝으로 학원 심야교습시간 제한 역시 국민들에게 김치국만 마시게 하고 결과는 시도교육감 협의회로 책임을 떠넘기는 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국민들의 70%가 지지하는 정책을 실행하지 못하는걸 보면 학원의 영향력이 강하긴 강한가 보다. 심야교습시간 제한은 사교육 대책이 아닌 학생 인권보호 차원에서 반드시 시행되어야 한다.

오늘 발표한 사교육경감대책을 보며 경쟁만능주의 교육정책과 사교육비 경감이라는 이율배반의 논리와, 더 이상 내놓을 것이 없는 재탕 정책으로 진정 사교육비 경감에 성공할 수 있을지 솔직히 회의가 든다. 혹 지속적인 경기침체로 국민들의 소득이 줄어 더 이상 지출할 사교육비가 없다면 자연히 줄어들 수도 있을 것이다.

교육 관료들에게 부탁한다. 이명박 정부안에서만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생각한다면 단기적인 극약처방에 집착하기 바란다. 그러나 진정 우리교육을 생각한다면 사교육비 발생의 원인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기 바란다. 그 원인이 정당한 것이라고 본다면 사교육비 경감 대책 따위는 내놓을 필요가 없다. 그것이 아니라면 원점에서 다시 고민하기 바란다.
교육당국의 건투를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