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
“민주노동당·노동계, 지금이 최고점일 수도”
공무원노조 김영길 위원장
“민주노동당·노동계, 지금이 최고점일 수도”
  • 승인 2004.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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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변화·정파 갈등 해소 못하면 퇴보 우려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 한 길 가겠다”

 

전국공무원노조 김영길(46) 위원장은 ‘청년’이다. 공무원을 천직으로 알고 살아온 그가 이른바 ‘노동운동가’가 된 것은 이제 4년 남짓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젊은’ 노동운동가는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또 명쾌하게 자신의 길을 가고 있다.

김영길 위원장을 처음 만난 건 4년 전이다. 2000년 4월 19일, 이 날은 경남도청 공무원직장협의회가 출범식을 가진 날이기도 하다. 그 날 경남 공직협 회장으로 뽑힌 김위원장은 기자가 내민 명함을 사양했다. 노동매체 기자 명함은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4년, 김위원장은 사람들에게 늘 그 얘기를 꺼낸다고 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지난 4년 세월에 대한 얘기를.

 

얼떨결에 떠맡은 경남공직협 회장직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으로 인해 세 번째 구속된 후 출감한 김위원장을 공무원노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위원장은 예의 열정적인 목소리로 공무원노조의 나아갈 방향, 그리고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 진영에 대한 고언 등을 쏟아냈다.
김위원장은 1981년 울산에서 5급 을(현재의 9급)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김위원장이 처음 공무원직장협의회 일을 맡은 것은 어떤 명확한 목적의식 때문은 아니었다. 99년 1월부터 공무원직장협의회를 설치할 수 있도록 법령이 바뀌었지만 그 사실 조차도 모르고 있는 상태였다.
“당시 경남도청 내에서 ‘다른 지역은 공직협이 생겼다는데 우리도 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여론이 있었고, 그래서 해 보자고 한 달간 준비해서 얼떨결에 회장직을 맡은 것이었다.”
하지만 기왕 시작한 일, 제대로 해보자며 매달린 김위원장은 단기간 내에 경남지역 20개 시군 직장협의회 조직을 끝내는 저력을 보여준다. 당시 다른 지역 공직협 간부들조차도 ‘김영길의 추진력’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정도였다.

 

현장 부조리 보며 ‘활동가 김영길’로 변신
그렇다면 “나중에 사무관 달고 고향에 가서 면장을 하면서 여생을 보내고 싶었던” 김위원장을 열정적인 활동가로 만든 요인은 뭘까. 김위원장은 현장에서 느낀 부조리와 불합리 때문이라고 말한다.
“공무원들의 직무를 분석해 보면 정말 바쁩니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누구를 위해 바쁘냐는 거지요. 국민을 위해 바빠야 할 사람들이 기관장을 위해 바쁘고, 또 그것을 당연시하는 분위기였어요.”
기관장에게 한 장 짜리 업무 보고를 하기 위해, 10번이 넘게 보고서를 쓰는 낭비를 강요받는 문제점을 바로 잡아 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그의 꿈은 소박한 데서 시작했다.
“어떤 기초단체에서 환경 문제가 발생했다고 하면, 가장 중요한 건 그걸 해결할 대안을 찾고 재발방지를 위한 대책을 세우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정말로 그런 일이 생기면 담당 공무원은 1년 동안은 자기 업무를 볼 수가 없어요. 1년 내내 감사만 받는 게 현실이거든요.”
자체 감사로 시작해서 광역단체, 행자부, 국무총리실에 국회의원들까지 대책을 만들기보다는 면피나 호통치기용 감사에 매달리는 현실을 바로잡지 않고서는 공직사회가 제대로 바로 설 수 없다는 게 김위원장의 생각이다.

 

계파갈등 민노당·노동운동에도 따끔한 일침
공무원노조의 지향점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처음부터 두 가지를 내걸었습니다. 부정부패 척결과 공직사회 개혁. 그리고 이 기반 위에서 사회개혁에 동참해야겠지요. 노동3권의 완전쟁취는 당연한 권리이자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수단이지 목표는 아닙니다.”
김위원장은 2002년 공무원노조 출범 당시와 연가 투쟁 때문에 이미 두 차례나 구속된 전력이 있다. 그런데도 올해 민주노동당 지지 선언으로 다시 구속됐다. 그건 경제투쟁에 머무르지 않고 정치적 영역을 통해서 명확한 목소리를 전달하겠다는 의지라고 했다. 그리고 공무원노조의 지지선언이 민주노동당의 약진에 도움이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 김위원장이 민주노동당과 노동운동에 대한 쓴소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김위원장은 계파문제가 심각하다는 점을 지적했다.
“올 4월 15일을 기점으로 해서 이전 50년, 그리고 이후 50년을 통틀어 민주노동당이나 한국 노동운동의 100년을 놓고 볼 때 지금이 최고점일 수도 있습니다. 그건 현재와 같은 정파 갈등을 극복하지 못한다면 이라는 전제가 있지만 말입니다.”
김위원장은 지역에서 공무원노조 활동을 하는 동안 노동운동 지도자급 7인과 만나면 늘 ‘7인7색’이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우리 조직 내에도 그런 조짐이 보이는데 앞으로 정파 개념은 철저하게 봉쇄하고 불식시킬 겁니다. 그걸 혁파하는 게 제 책무입니다. 나이 40이 넘도록 진보라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온 저는 결국 무정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정파 문제는 이대로는 안 됩니다.”

 

하반기 노동조건 개선·노동3권 보장에 집중
노동운동도 마찬가지라는 게 김위원장이 얘기다. 정파 대결 방식의 경선이 치러지고 나면 패배한 쪽이 현장으로 복귀하지 않고 주변을 맴돌면서 단지 ‘지도부의 외연 확대’라는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이다.
무조건적인 투쟁에 대해서도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투쟁이라는 건 무언가를 얻기 위한 것인데, 싸움을 위한 싸움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반드시 싸워야할 경우에는 물러서지 않고 싸우겠지만 그렇지 않은데 무조건 들이박는 게 투쟁이라는 인식은 이제 바꿔야죠.”
김위원장은 하반기에 공무원 노동조건 개선, 노동3권 보장 등에 집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공직 사회 내부의 불합리를 개선하고, 향후 10~20년을 내다보는 장기적인 정책을 수립해 나갈 수 있도록 9월중에는 정책연구소도 설립할 계획을 갖고 있다.
아직도 대중 앞에서 연설하는 게 제일 어렵다는, 그렇지만 매일 새로운 걸 배워가는 게 행복하다는 김영길 위원장은 지금까지 해왔던 대로 한 걸음씩 차분히 걸어 나갈 계획이라고 말을 맺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