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강 파워 제조연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막강 파워 제조연대, 다시 비상할 수 있을까?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07.07 11:02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04년 통합 추진 무산 이후 재결성
과거 영광 잊고 연대 의제 설정 과제
한국노총 제조부문 연대회의
한국노총 내 제조업 관련 연맹들이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한자리에 모여 화려하게 불꽃을 피웠던 제조연대를 다시 결성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지난 6월 1일, 한국노총 전국섬유유통노동조합연맹(위원장 권영덕), 전국화학노동조합연맹(위원장 한광호), 전국금속노동조합연맹(위원장 변재환), 전국출판노동조합연맹(위원장 이광주), 전국고무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조용수)의 위원장과 실무주체들이 모여 제조 업종의 현안에 대해 공동 대응하고 통 큰 단결을 이루기 위해 제조연대의 부활에 합의했다. 그리고 화학노련 한광호 위원장을 제조연대 의장으로 추대했다.


활동 속에서 자연스럽게 연대체 고민

현재의 제조연대가 갖고 있는 고민과 앞으로의 숙제를 논하는데 있어서 2000년부터 2004년까지 활발한 활동을 펼쳤던 과거 제조연대를 살펴보지 않고는 곤란하다. 당시 한국 사회 경제구조의 변화, 즉 산업생산이 점차 퇴조하고 서비스업의 생산이 증가하는 과정에서 노동조합의 위상도 점차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었다.

ⓒ 제조부문연대회의

이에 위기감을 느낀 제조부문 노동조합 연맹들은 실무진 차원에서 공동의 현안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진행하고 있었다. 2000년 1월 들어 임단투와 총선 방침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해 정보를 교환하던 화학노련, 금속노련, 섬유유통노련 실무진들은 제조부문 연맹들의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에 동의하게 된다.

2000년 8월, 화학노련과 금속노련 실무진들은 공동연대활동 모색을 위해 양 연맹 사무처장을 비롯한 6인 회담을 통해 실무협의회를 구성하고 합동정책세미나, 합동간부교육 등 실천사업을 하나씩 진행하게 된다.

2000년 12월 화학노련, 금속노련, 섬유유통노련, 출판노련, 고무산업노련 등 5개 산별 대표자들은 모임을 갖고 임단투를 비롯한 적극적 연대방침을 결정한다. 마침내 2001년 1월 16일, 한국노총 소속 화학노련, 금속노련, 섬유유통노련, 출판노련, 고무산업노련 등 5개 제조부문 연맹은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 모여 한국노총 제조부문 연대회의(제조연대)를 결성한다.

ⓒ 제조부문연대회의

이들은 출범선언문을 통해 “5개 산별노련은 30만 조합원의 고용안정 및 연대투쟁을 적극 실천하고, 나아가 한국노총의 강화발전과 전체 노동운동의 현안과제 해결에 선구적 역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금속노련 정책국장이자 제조연대 창설의 실무책임자였던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국장은 “활발한 활동력을 보여주고 있었던 제조부문 연맹들이 독자적으로 움직이다보니 정책 생산, 조직 확대 등에 어려움이 있어 제조부문 차원에서 공동 정책도 발굴하고 교육, 홍보 등도 함께 해 시너지효과를 내자는 것이 최초의 출발 지점”이라며 “여기에는 제조부문이 중심이 돼서 한국노총의 개혁을 선도적으로 견인해보자는 이유도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제조연대의 화려한 투쟁과 몰락

제조연대는 2001년 12.8% 인상이라는 공동 임금 가이드라인과 공동 임투 지침을 결정하고 교섭위원 공동교육 등 임단협 투쟁에 대비했으며 3월 23일에는 제조연대 소속 노동조합 대표자 400여명이 참석한 전국노조대표자회의를 개최해 2001년 임단투 승리를 위한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조연대를 돋보이게 했던 것은 2002년부터 2003년 전국을 뒤흔든 노동시간 단축 투쟁일 것이다.

ⓒ 제조부문연대회의

IMF 당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를 주장했던 노동계는 지속적으로 노동조건 삭감 없는 주 40시간 노동제를 주장해 왔었다. 2002년 5월, ‘노동조건 저하 없는 주40시간 노동제 쟁취를 위한 제조연대 전국대표자 결의대회’를 시작으로 9월에는 민주노총 금속산업연맹, 민주화섬연맹과의 연대를 통해 ‘양대 노총 제조업부문 노조 공동투쟁본부(제조공투본)’를 결성하기에 이른다.

제조공투본은 2002년 10월 27일, ‘근로기준법 개악저지 및 노동시간 단축 완전쟁취를 위한 전국제조노동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2003년 6월 4일 ‘전국 노조대표자 총력투쟁 결의대회’ 개최 등 각종 토론회, 기자회견, 대규모 집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정치권을 압박해나갔다.

ⓒ 제조부문연대회의

결국 이러한 활동을 통해 2003년 9월 15일, 1주간 법정근로시간을 40시간으로 단축하는 근로기준법을 통과시키게 됐다. 노동시간 단축 투쟁이 정리되자 제조연대는 연맹 통합이라는, 자신들이 꿈꿨던 대산별로의 로드맵을 정리하기 시작한다.

이를 위해 산별 건설을 이룬 외국 사례와 국내 사례를 검토하고 지방을 돌며 지역순회를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2004년 섬유유통노련이 먼저 연맹 통합 불가 입장을 천명하고, 화학노련과 금속노련이 두 연맹만의 통합을 주도하다 대의원대회에서 통합 불가 입장이 확정되면서 제조연대는 그 빛을 잃어갔다.

당시 상황에 대해 통합추진에 관여했던 한 인사는 “돌이켜보면 당시 너무 쉽게 생각했었다”며 “대산별로 가겠다는 목표에 비해 그것을 추진할 수 있는 내부의 의식이나 동력이 부족했었던 것”이라고 자평했다.

당시 통합이 좌초된 원인이 무엇이냐는 지금도 논란이 되고 있지만 현상적으로는 통합조직의 지도부 구성과 대의원 선출방식 이견으로 정리된다. 그 중 대의원 선출방식에 있어서는 양 연맹이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화학노련의 경우 작은 사업장이라도 대의원을 사업장당 1명씩 구성하지만 금속노련의 경우 인원수에 따른 대의원 구성이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어떤 연맹의 대의원 구성을 따를 것인지에 대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던 것이다. 이런 현상적 이유와 함께 당시 제조연대를 구성했던 대표자들 간의 알력과 대산별 체계에 반발했던 대기업 노조, 연맹 이기주의도 한 몫 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시작, 잘 될까?

2004년 제조연대 통합이 좌초되면서 시들해진 제조부문 연대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한 것은 올해 들어와서다. 특히 금속노련과 화학노련, 섬유유통노련의 위원장이 바뀌고 경제위기 심화로 제조부문 사업장에 대한 임금삭감, 구조조정이 가시화되면서 위기의식을 느낀 제조부문 연맹들이 다시금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연대를 모색하면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 제조부문연대회의

그러나 현재의 논의는 과거와 같이 제조부문 대산별 건설과 같은 목표를 설정한 것이 아니라 제조업종의 현안들을 하나씩 풀어보자는 의미 정도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이 실무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제조연대가 가지고 있는 파괴력이 만만치 않기 때문에 일부에서는 제조연대가 한국노총 내 세력화를 이루기 위한 것이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기도 하다. 이에 대해 화학노련 김기청 정책실장은 “현재의 논의는 전력요금 피크제 등 산업 현장에서 제조업에 불리한 규제나 정책 등을 논의해 산업 활성화 차원의 현안 문제들을 공동대응하자는 수준”이라며 “아직 집행위도 꾸려지지 않은 상황이라 실질적인 사업은 집행위 구성 이후에나 나올 것”이라고 조심스러워했다.

제조연대에 소속된 한 연맹 상근 간부는 “제조부문이 과거의 건강한 운동성을 찾아가는 아주 기초적인 단계로 보아야 할 것”이라며 “현재는 각 연맹 위원장들도 서먹한 관계라 일단 서로에 대해 이해하는 수준이며 어떤 목표나 종착지점이 확정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제조연대를 결성하고 있는 연맹들이 자칫 제조연대가 하나의 세력화로 비춰질 것에 대해 조심스런 입장을 표명하고 있지만 현재의 노동현안, 즉 비정규직, 복수노조, 전임자 문제 등 산적한 현안을 풀어내기 위해 노동단체들이 연대활동을 복구해나가는 것은 필수적이란 시각도 있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공동 교육, 공동 임투 등을 통해 현안을 해결해나가고, 특히 점차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는 조직화 사업에서 일정 부분 성과를 내기 위해서도 연대체 건설은 매우 중요하다”며 “다만 제조연대가 자신들의 울타리 내에서 만의 활동이 아닌 비정규직, 비제조부문들과의 연대를 더욱 공고히 해야 자신들의 위상도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고 충고했다. 이는 제조연대만의 의제가 아닌 제조연대 내부와 외부를 아우르는 연대 의제를 설정하고 그에 따른 실천 활동을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직 구체적인 사업방침도 결정되지 않은 제조연대에 대해 이러한 말들이 오가고 있는 것은 결국 과거 제조연대가 누렸던 영광이 오늘날에도 재현될 수 있을까에 대한 기대감 때문일 것이다.

단지 제조부문의 연맹들이 모여 자신들의 현안에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 더 나아가 비정규직, 전임자 문제 등 한국의 노동운동을 고민해달라고 하는 것이 주위 노동계의 암묵적인 기대다. 그 만큼 제조연대가 갖고 있는 상징성과 운동성은 다른 연대체와는 그 급을 달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제조부문 연맹들이 어떤 제조연대를 구축해나갈지 사뭇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