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업원지주제 과연 고용보장 대안 될 수 있을까?
종업원지주제 과연 고용보장 대안 될 수 있을까?
  • 권석정 기자
  • 승인 2009.08.31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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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업 위기 놓인 한국음향, 종업원지주제 시행여부로 논란
경영권 참여 없는 종업원 지주제는 허울 뿐…노사 간 신뢰도 문제

ⓒ 한국음향노동조합

 

지난 4월 30일 서울 금천구에 위치한 한국음향(주)의 직원들은 대표이사로부터 폐업을 통보받았다. 사측은 환율 폭등으로 인한 적자, 병환으로 인한 대표주주의 경영의지 상실, 그리고 비협조적인 노동조합 등을 폐업 이유로 설명했다. 결국 일본계 대표주주가 사업을 포기하고 자금을 회수하겠다는 것이었다.

폐업이 통보된 다음날, 고용불안에 휩싸여 있던 한국음향 직원들에게 대표이사는 ‘기업회생방안’으로 ‘종업원지주제’를 ‘갑자기’ 제안했다. 이러한 제안에 한국음향 직원들은 고용불안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일말의 희망이 싹 터 올랐다. 그런데 ‘종업원지주제’가 현재 상황을 벗어날 수 있는 대안으로 올바른 것인가라는 의문이 끊임없이 그들을 괴롭혔다.

‘섣부른’ 종업원지주제, 썩은 동아줄인가?

처음 대표이사가 종업원지주제를 제안했을 때 한국음향(주) 직원들 상당수가 이에 동의했다. 평균연령이 40~50대인 직원들에게는 무엇보다 ‘현재 일터에서의 고용보장’이 최우선이었기 때문이다. 그 나이에 다른 곳에 취직하는 것은 언감생심이었던 것.

이에 한국음향(주)에는 곧바로 과·차장급 이상 관리직을 중심으로 ‘종업원지주제 추진팀’이 꾸려졌고 그에 대한 세부사항이 논의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논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직원들 사이에는 종업원지주제에 대한 위험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한국음향(주) 사측은 처음에 종업원지주제를 제안하면서 직원들에게 “폐업 시 받게 될 위로금 전액과 퇴직금의 일부를 출자해 회사를 매입할 것”을 제안했다.

이에 대해 종업원지주제 추진팀은 한국음향(주)의 자산을 45억으로 추산하고 경영진 9억 출자, 앞으로 올 대주주 명의로 15억 차입, 그리고 직원들이 나머지 21억을 직급에 따라 1000만~4500만 원까지 출자해 회사를 매입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또한, 추진팀은 폐업 후 종업원지주제로 갈 경우 회사의 안정을 위해 환율변동에 따라 직원들의 상여금을 300~600%까지 삭감한다는 안을 내놨다.

이에 대해 한국음향노동조합(위원장 노윤철)은 “현재 진행되는 종업원지주제는 직원들에게만 희생을 강요하는 처사”라는 입장을 밝혔다.

한국음향노조 조미영 사무국장은 “폐업 후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하게 되면 생산직 직원들의 경우 상여금 삭감 뿐 아니라 그동안 받아온 복리후생 및 각종 수당 등을 보장받을 수 있을지도 미지수”라며 “말만 정규직이지 비정규직 대우를 받게 될 상황에 놓여 있다. 자리배치와 월급도 보장될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부른 종업원지주제는 썩은 동아줄”이라고 지적했다.

노윤철 위원장도 “사측의 종업원지주제 제안은 회사의 깔끔한 청산카드일 뿐”이라고 의구심을 제기했다. 노 위원장은 “사측의 말대로 폐업 후 받게 될 위로금 및 퇴직금으로 직원들이 회사를 매입할 경우 대표주주의 입장에서는 회사(설비 및 제반시설)를 깔끔하게 정리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며 “결국 직원들이 폐업 후 종업원지주제를 선택하게 되면 고용은 유지될지 몰라도 지금껏 누려온 권리를 빼앗기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를 표시했다.

 

ⓒ 한국음향노동조합

 

사라지지 않는 의혹

그런데 왜 일본계 대표주주는 한국음향(주)을 다른 업체에게 매각하지 않고 폐업만을 고집할까? 사측은 이에 대해 현재 환율 변동이 부품가격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 커 불안정하기 때문에 매입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는 기업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현재의 여러 정황상 한국음향은 많은 메리트를 보유하고 있다.

한국음향은 현재 현대·기아자동차, GM대우자동차 등에 카스피커를 납품하고 있다. 현대·기아자동차에 카스피커를 납품하는 회사는 경남의 에스텍(주)과 한국음향(주) 두 곳 밖에 없어 과점 상태에 있다. 특히 한국음향(주)은 현대자동차의 2010년 아반떼 물량에 대해 오더를 제의받은 상황이다.

즉, 한국음향(주)은 환율 폭등으로 최근 적자(올해 20억)를 보고 있긴 하지만 당분간의 판로가 확보된 상황으로 시장에서 충분히 매각이 가능한 회사란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미루어 봤을 때 대표주주 측에서 매각에 대한 의사 없이 무조건 폐업만을 주장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직원들이 의구심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노윤철 위원장은 “현재 사측이 주장하는 종업원지주제는 주주의 입장에서는 회사의 ‘청산비용을 최소화’하는 방법”이라고 말했다. 이어 “위로금을 준다고 하는데 결국 직원들이 그 돈으로 회사의 재고 및 설비를 매입하게 되면 대주주 입장에서는 회사를 정리하는데 손 안대고 코푸는 격”이라며 “경영진의 경우 직원들 구조조정과 복리후생 축소 등을 진행할 수 있는 명분을 얻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음향노조 측은 현 상황에 대해 “모양새는 폐업을 한 후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하는 과정에서 회사가 슬림화되면 대주주를 불러들이는 형태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들은 “법적으로는 위장폐업이 아니지만 실제 내용상으로는 위장폐업과 다를 게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노조 측은 현재 종업원지주제로 전환할 경우 위로금, 차후 설비 임대에 관한 문제, 그리고 회사 매입 후 직원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한 구체적인 내용들에 대해 교섭을 타진하고 있다. 하지만 사측은 “위로금에 대해서만 교섭에 응한다”는 입장이다.

한국음향(주)의 직원들은 고용을 유지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종업원지주제에 일정부분 동의하는 입장이다. 그러나 회사는 유지된다 하더라도 “자신들의 노동환경은 유지될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점 때문에 불안해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러한 의구심에 대해 ‘종업원지주제 추진팀’은 “아직 구체적인 제반사항이 확정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참여와혁신>과의 인터뷰에 응하지 않았다.

 

ⓒ 한국음향노동조합

 

무엇이 문제인가

한국증권금융 우리사주지원센터 전문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대전대 안병용 교수는 “종업원들의 경우 경영에 정식으로 참여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종업원지주제 이후의 상황을 우려할 수 있다”며 이에 대한 해결방안으로 “종업원들이 경영자적 마인드로 회사에 접근을 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경영진들이 종업원지주제로 전환하는데 있어서 경영의 득실에 대해 투명하게 드러내고 이에 관해 종업원들을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안 교수는 “주주가 된다는 것은 책임과 의무가 따르는 것으로 이를 회사의 사정에 맞게 분배하기 위해서는 서로 간의 소통이 중요하다”며 “이를 바탕으로 노사 간 경영 및 성과배분에 대해 구체적인 약정사항을 미리 확립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현재 한국음향(주)의 경우는 노사 간에 제대로 된 소통조차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는 현재 종업원지주제에 대한 교섭에 응하지 않고 있는 사측의 태도에 기인하고 있다. 사측은 현재 종업원지주제 이후 직원들의 경영참가에 대한 논의를 원천봉쇄하고 있다. 차후 경영이나 성과배분에 대한 논의가 될 리 만무하다.

이와 함께 현재 한국음향(주)이 안고 있는 또 다른 문제는 바로 생산직으로 이루어진 조합원들과 관리직 중심인 비조합원들 사이의 ‘정서적 괴리’이다.

관리직 중심으로 이루어진 종업원지주제 추진팀이 생산직 직원들의 요구사항을 제대로 수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인 관리직에 비해 계속되는 라인축소로 지속적인 인원감축을 경험한 생산직 직원들의 입장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종업원지주제의 주먹구구식 추진 이전에 한국음향(주)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먼저 서로의 입장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차후의 사안에 대해 ‘일방’이 아닌 ‘쌍방’으로 논의하는 것이다.

주먹구구식 종업원지주제는 NO!

현재 운영위기에 봉착한 여러 회사들 사이에서 종업원지주제가 대안으로 언급되고 있는 상황이다. 하지만 한국음향(주)의 사례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사 간, 그리고 종업원지주제를 추진하는 팀과 직원들 사이의 신뢰가 바탕이 되지 않는다면 종업원지주제는 허울 좋은 망상에 불과하다.

현재 성공사례로 꼽히는 종업원지주제의 사례들은 대부분 종업원들이 경영권을 확보(노동자 자주관리기업)하고 있는 경우다.

안정화 단계로 정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노동자 자주관리기업 우진교통(주)은 2004년 임금체불에 맞서 파업을 전개하다가 2005년 1월 회사로부터 체불임금 대신 50%의 주식과 함께 3년간의 경영권을 보장받고 노동자 자주관리형태로 전환한 경우다. 당시 우진교통(주)은 개인적인 지분처리를 방지하기 위해 50%의 주식을 개인에게 나누지 않고 회사차원의 공동소유로 묶었다.

그 뒤 우진교통(주)은 나머지 주주들로부터 차례로 지분을 매입해 경영에 안정을 꾀했다. 우진교통(주) 지희구 과장은 “당시 주식을 사들인 직원들은 ‘회사의 우호지분으로 소유할 것’을 조건으로 매입한 것”이라며 “추후 자주관리회사 유지를 위해 ‘개인적인 사유로 매각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각서를 썼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우진교통(주)은 주주총회 시 주식지분에 따라서 표를 행사하지 않고 종업원 누구나 ‘1인 1표’의 자격을 갖는 규칙을 명시한 ‘자주관리정관’을 채택해 2009년 1월 1일부터 시행중에 있다. 지희구 과장은 “전체구성원의 형평성 있는 권리와 의무 공동체 정신 구현을 위해 이와 같이 결정한 것”이라고 전했다.

우진교통(주)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종업원지주제가 당장의 경영상 위기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임시방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직원들이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구체적인 근거가 사전에 제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직원들이 가진 ‘지분’은 권리 행사의 도구가 아닌 뼈 빠지게 일해서 지켜야 할 ‘애물단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종업원지주제의 본래 취지는 바로 직원들에게 ‘회사에 대한 주인의식’을 도모함으로써 직원들의 책임 있는 자율성을 통해 이윤을 극대화시키는 것에 있다. 종업원지주제를 추진하기 이전에 그 취지의 본래 의미가 무엇인지 한국음향(주), 그리고 이와 비슷한 위기에 놓인 회사들은 반드시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종업원지주제란?
종업원지주제(Employee Stock Ownership Plans)는 종업원들이 기업의 자사주 취득으로 회사의 주주가 되어 기업의 경영 및 성과배분에 참여하는 것으로 국내에서는 2002년 1월부터 ‘근로자 복지기본법’에 근거해 시행되고 있다. 종업원지주제에서의 주식분배는 종업원이 증권시장을 통해 직접 주식을 취득하는 것과는 달리 저가격, 배당우선의 혜택을 받으며 공로주의 형태로 분배되기도 하고 회사의 방침에 따라 의결권 제한, 양도 제한 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 종업원지주제를 시행할 경우, 회사입장에서는 우리사주조합이라는 우호 주주를 확보하여 적대적 M&A에 대비할 수 있으며, 시장에서 거래되는 주식 물량을 감소시킴으로써 주가유지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종업원 입장에서는 주주로서 기업의 의사결정에 참여하고 주식배당을 받음으로써 업무성과를 높이는 동기부여로 작용해 기업이 최대의 이윤을 내게 만드는 원동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최근 종업원지주제는 고용안정을 도모하는 하나의 대안으로도 거론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