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로 회사와 조합원 설득한다
신뢰로 회사와 조합원 설득한다
  • 김관모 기자
  • 승인 2009.08.31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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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 쟁탈전이 아닌 만들기에 집중할 때
진정성과 실천으로 신뢰를 얻어야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 이건희 위원장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금융노조 신한은행지부(공동위원장 이건희, 이용규)의 역사는 다른 은행노동조합보다 힘겨웠다. 그것은 황무지에서 시작해 지금의 위치까지 올라온 신한은행의 모습과 닮아있기도 하다. 한때 노동조합과 관련됐다는 이유만으로 정리해고 되거나 인사 불이익을 받는 등 신한은행지부의 지난 역사는 투쟁으로 점철돼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신한은행 노사관계는 이전과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올해 4월 신한은행 노사는 전 직원의 급여 중 6%를 반납해 중산층과 중소기업을 지원하는데 동의했다. 또한 은행은 노조가 요구하는 인사 관련 사항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하고 실제경영에 반영하고 있다. 특히 노조 간부들은 이백순 신한은행장을 비롯한 경영진들과 수시로 만나며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누거나 토론을 갖기도 한다.

신한은행 노사관계가 이렇게 바뀐 이유는 무엇일까? 또한 급여반납과 같은 민감한 부분을 조합원들은 어떻게 큰 반발 없이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일까?

이에 대해 신한은행지부 이건희 위원장은 “노사관계를 바꾸는 것은 노동조합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며 “노동조합 간부들이 스스로의 능력을 키우고 변화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조합원들이 기대하는 것들이 많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노동조합이 과거보다 업그레이드 되다보니 조합원들의 기대심리도 높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런 부분을 노동조합이 설득을 못 해내는 것 같다. 그래서 저는 조합원과 눈높이를 맞추고 이야기의 톤이나 방향을 그들에게 맞춘다. 신뢰가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지 않나.

노동조합의 기대나 위상도 중요하지만 서로 간 신뢰가 있어야 평소에 집행부가 무엇을 해도 믿어준다. 평소에 서로 만나는 과정에서 진정성을 전달한다. 은행이 어려운 것은 어렵다고 이야기하고 노조 활동이 이것밖에 할 수 없다고 솔직히 이야기해서 공감도 얻고 조합원들을 이해시켜야 한다. 그리고 이 위기를 벗어나면 이러이러한 일을 하겠다고 하면 믿어주고 인정도 해주고.

중요한 것은 이슈가 있어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꾸준히 현장 활동을 하는 것이다. 그래야 힘들 때도 서로 뭉쳐서 쉽게 풀어갈 수 있다고 본다. 이런 활동을 많이 하기 때문에 조합원들이 내 행동이나 결단을 많이 이해해주는 것 같다.”

조합원과 한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

- 다른 노동조합 위원장들을 만나면 “현장 활동이나 방문을 할 때 자신이 뭔가 결과물을 가지고 가야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요즘처럼 힘들 때는 현장에 잘 안 가게 되고 그래서 결국 현장에 가는 것을 잊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신한은행지부도 어떤 결과물을 손에 쥐고 가는 것이 아닐 때는 조합원들에게 못 가게 되거나 만나는 것이 힘들게 느껴질 수 있을 것 같다.

“금융노조의 어느 지부든지 회사에서 3일 이상 집합교육이 있으면 그중 노동조합교육이 2시간씩 들어간다. 또 신입직원 연수 때 책임자 상견례도 있고, 1년 정도 보면 노조가 불특정 다수의 조합원과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많다.

노동조합 교육부분은 예전에는 위원장들이 외부강사를 초청 하거나 일반 간부들이 하기도 하는데 처음에는 내가 다했다. 그래서 처음에는 교육이 부담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자신이 붙어서 교육시간이 오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조합원들과 한 약속을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설령 작은 것이라도 반드시 실천해야한다. 진정성을 가지고 설명하면 다들 이해했고 어려움을 못 느꼈다. 그래서 최근에 곤혹스런 일을 당하거나 질타 받은 적도 없다.”

- 진정성 가지고 가려고 한다면 노동조합 간부들이 업무 등의 맥락을 놓치지 말아야 할 텐데 간부들이 업무 맥락과 전문성을 함께 가지고 이야기하기 힘들 때도 많다고 본다. 이 부분은 어떻게 채워가고 있나?

“기본적으로 노동조합 간부라면 법은 알아야 하지 않겠나. 헌법과 민법 총칙. 나아가서 노동법까지 알아야 한다. 저는 예전에 노무사 공부도 했다. 그런 것들은 기본이라고 생각한다.

또 금융권 노동조합이다 보니 경제문제에는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한다. 최소한 현 경제상황에 대해 논평 정도는 쓸 수 있을 정도는 돼야 할 것이다. 그러면 누구를 만나든지 충분히 설득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부분이 현재 많이 부족하다.

지금은 시간이 없어서 책을 보기도 힘들지만 신문을 읽으면서 일반시사의 맥락만 놓치지 않아도 될 것이다. 거기에 부족한 경우 특강 같은 것을 들어서 보충하기도 한다. 나는 주로 은행 기획부나 인사부 불러서 물어보기도 하고 토론도 많이 한다.

또한 노동조합이 변화를 타야지 뒤처지면 안 된다. 수로를 낼 때 물길을 탄다고 했다. 변화를 유리하게 가지고 갈 수 있는 지혜도 필요하다. 노조간부는 태생적으로 변화하기 싫어한다. 그래서 조합원과 이야기하다보면 뒤처지고 공감이 가지 않는 소리를 하다 보니 사람들이 노동조합을 우습게 보는 것이다.

간부들에게 조합원들과 술만 먹고 들어오지 말고 어딘가를 갔다 오면 뭔가 바뀌는 모습을 보여주라고 강조한다. 그렇지 않으면 노동조합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게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지주회사 되면서 노사관계 달라졌다

- 신한은행지부도 처음에는 은행 경영진과 많은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다보면 예전 노동운동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힘들었을 텐데 신한은행지부의 노동운동 패러다임은 어떻게 바뀌게 됐나?

“회사의 경영구조가 2001년 지주회사로 바뀌면서 달라졌다고 본다. 그 전까지는 별다른 지배구조가 없어서 얼마 벌면 행장 마음대로 돈을 풀어서 주고 대강 설득해서 배당하면 되는 구조였다.

감독기관을 강화해서 재무제표도 엄격히 해야 하는 부분도 있지만 여하튼 지주회사 형태로 진행하다보니 이제는 1년 목표치가 주주들을 통해 나오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주주의 지시에 따라야 하는 행장과 싸워봤자 답이 나오지 않더라.

그래서 경영계획에 개입하는 방법으로 접근했다. 노동조합이 질의서한을 통해 비공식적으로 비용교섭과 조정을 취하기도 했다. 또 목표의 80% 이상 나오면 5.8% 정도 성과급을 직원들에게 나누어주고, 어려운 상황이 있으면 목표를 깎는 방법을 택했다.

목표설정과 성과에 따라 상여금과 고용, 노동강도가 달라지다보니 개입 없이 자연스레 갈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은 직원들도 알고 있어서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 알려주면 상당한 신뢰를 받게 된다.

또 이야기하고 약속한 일은 명확히 실천이 되기도 했다. 아마 다른 조직도 이렇게 가고 있고 스스로도 알고 있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노사관계에 있어서 싸워서 요구를 더 얻을 수 있다고 하겠지만 실제는 그렇지 않을 것이다.

경영진한테 CEO의 전략이나 경영자 판단이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일반 직원은 그들의 판단을 따라갈 수밖에 없다. 예전에는 노동조합의 활동에 따라서 사용자에게 더 가지고 올 수도 있고 덜 가져올 수도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노사관계에서 서로 뺏고 뺏기는 관계가 아니라 종업원끼리 1년간 파이를 얼마나 만들고 나눌 것인지 결정되어 있는 상태다.

노동조합 지도부가 조합원을 선동해서 힘으로 사용자에게 무엇을 얻어내는 것보다 현재는 우리 스스로 파이를 만들어서 사용자에게 주는 것을 얼마나 줄이고, 그들에게 어떻게 많이 받아낼 수 있을까, 또 파이가 정해져있다면 어떻게 쉽고 빨리 만들 수 있을까의 고민이 지금의 노동조합활동이라 생각했다.”

회사와 연계해 사업하는 것 마다할 이유 없다

- 조합원들이 가장 바라는 것은 무엇인가?

“직원들의 요구사항은 직급과 연령에 따라 다르다. 고위직급이거나 나이가 많은 사람들은 고용안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하위직급의 경우 승진적체에 대해 불만을 토로한다. 이들의 고민을 어떻게 함께 만족시킬지가 노동조합의 고민이다.

그래서 요즘에는 조합원들을 만나서 설득하는 작업을 하고 있다. ‘직급끼리는 경쟁 상대가 아니다. 하위 직급이 승진요구하면 고위직급이 나가야 하고, 고위직급은 이익이 안 나는데 옛날처럼 하위직급들에게 일을 시키기만 하면 더 힘들기만 하다. 어차피 나눌 파이가 정해져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가 많은 자리를 차지하면 누군가 내놓아야 하니까 이해하고 배려하자’는 것이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 조합원의 요구가 많아지면 노동조합이 수용하고 담아내기 힘들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신한은행은 이것을 어떻게 풀어나가고 있나?

“노동조합 간부들이 자꾸 예전 것만 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어한다고 생각한다. 주5일제 이후부터는 조합원들의 주된 관심사는 여가선용이나 문화활동처럼 ‘가족과 함께’인데 지금은 노동조합이 그에 대한 대처 경험이 없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고민하고 판을 깔아주려고 노력하고 있다.

회사에 문화체육사업기금을 요구해서 은행사업추진팀과 같이 연계해 조합원들이 주말에 가족과 함께 하는 테마여행을 가거나 연말에 뮤지컬 공연을 관람할 수 있도록 주선하기도 한다. 이 행사는 공지를 올려놓으면 5분 만에 마감이 될 정도로 인기도 높다. 이런 노동조합의 행사와 사업에 대해 조합원들의 반응이 좋은 편이다.

요즘은 노동조합이 했다는 것을 표시내고 알려야 한다는 것이 주가 되고 있는데 수요층인 조합원이 원하는 것이 무엇이냐를 생각하면 굳이 회사와 연계해서 사업을 하는 것을 마다할 필요가 없다.

또한 이 일은 결국 노동조합의 조직력 강화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노조가 언제 어떻게 쟁의를 할지 모른다. 다만 은행 조직력은 평소 이슈보다 친밀감이나 참여로 모이는 편이다. 그래서 자연스러운 모임을 만드는 계기가 된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

-노동조합이 노사관계를 원만히 이끌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조합원들에게 신뢰를 얻을 수 있으려면 어떤 소양과 자세가 필요할까?

“노동조합 간부들은 조합원보다 도덕성도 엄격해야 하고 고민, 고생도 많이 해야 한다. 자기 스스로 ‘노조간부하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로 일하는 간부라면 자질이 있는 간부라고 본다. ‘노조일 하면서 편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노조간부로서 문제가 있는 거다.

용기도 중요한 덕목이다. 국가나 기업이 정책을 수립하는 데 80%의 정력을 소비한다. 결국 어느 집단이든지 정책을 만드는 것을 집행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 아닌가.

요즘은 어려우니까 모두 움츠려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잘하려고 행동하는 게 아니라 욕 안 먹으려는 마음으로 일한다. 국가경영하는 사람들도 매한가지다. 어려울 때는 때에 따라서 더욱 결단도 해야 한다고 본다. 평상시보다 더 용기 있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본다. 지금은 노동조합에도 용기 있는 사람들이 드물다.”

-신한은행이 성장과정에서 ‘헝그리 정신’이 있었다고 평가한다. 지금은 국내 굴지의 은행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내부변화에 관련된 내부충돌이나 저항이 심할 것 같다.

“당시 급여는 좀 더 주긴 했지만 잘 나가는 시중은행직원이 신한은행에 올 리 없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신한은행에 들어와서 의욕을 가지고 열심히 하면 잘 될 것이란 자신감으로 일을 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비범한 조직이란 말은 실제다. 그런 사람들이 행장을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최근에 들어서 은행 규모도 커지고 기업이 정체하다보니 그런 부분이 쇠퇴하고 있다. 기업이 발전하려면 직원들이 공유할 수 있는 비전이 필요하다고 본다. 다시 그것을 찾기 위해서 직원들에게 어떤 비전을 줄 것인가를 집중하고 있다.

인사부분도 투명한 편이었다. 직원들을 평가할 때도 주로 현장에서 영업하는 사람들을 좋게 평가하는 조직문화였다. 그러다보니 다들 현장에서 열심히 일했을 것이고 결국 또 조직이 발전되는 선순환이 일어났다.

그게 아니라 요즘처럼 본점을 우대하는 조직이었으면 계속 뒤처지게 됐을 것이다. 본점은 인원이 한계가 있다 보니 여러 줄을 세우며 자기 일과 상관없는 것들에 신경을 쓰게 된다. 하지만 현장은 무궁무진하고 그쪽을 우대했으니 구태여 직원들이 줄을 대거나 할 필요 없이 자신의 일에 집중할 수 있었다.”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서로 존중하면 문제 풀린다

- 인사권 경영권에 대해서는 노조가 자꾸 생색을 내다보니 거기에 대해 싫어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 이에 따른 경영진과의 마찰은 없나?

“최근에 강원지역의 태백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 곳에는 점포가 하나밖에 없어서 이동이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직원들은 태백에서 동해로 출퇴근한다. 게다가 직원을 뽑아도 그곳 출신이 아니고 중앙에서 뽑는다. 그래서 노동조합이 회사에 건의해서 창구도 고치고 직원들도 현지조달하게 만들었다.

이런 경우 대체로 노조에서 대안을 제시하면 모두들 고마워한다. 자신들이 바빠서 못 하고 있는 것을 대신 해줘서 긍정적으로 봐준다는 거다. 이것은 노사문제라고 본다. 예전에는 인사고충이 있을 때 노동조합을 통해서 해결했다고 하면 회사가 그 직원을 찍어서 관리에 들어가고는 했다. 하지만 노사관계가 좋아지고 난 최근에는 그런 일은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

중요한 것은 노동조합이 회사를 설득할 때 얼마나 객관적으로 상황을 보고 논리를 만들어내느냐다. 상황을 이슈화해서 누굴 공격할까 하는 자세로 나올 때 노동조합의 이야기는 논리에 맞지 않을 때가 많다. 그걸 사용자가 믿을 리 없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서로를 존중하는 태도다. 성명서 날릴 때도 내용 없이 단어만 강하게 해서 공격하지 않는다. 서로 악순환만 되풀이 될 뿐이며 직원이나 노동조합에게도 해가 된다. 행장과 노조대표자를 서로 존중하게 만들어야 한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지 과도하지 않고 적절하고 옳은 말을 한다면 자연스럽게 일이 처리될 것이라고 본다. 그래서 행장이나 인사부 책임자들과 만나서 난상토론하기도 하고 여러 이야기를 통해 요구사항을 전달하기도 한다.

현재 신한은행의 인력구조는 기형적이다. 인사구조도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 과거의 대립적인 노사관계라면 회사가 정리해고로 때리겠지만 노사신뢰가 바탕이 된다면 말로 풀어나가려 할 것이다.

결국 노조가 유연하면 회사도 유연할 것이고 그렇지 않고 대립적이고 경직된 노사관계라면 서로 법적수순을 밟게 된다. 노사관계가 원만하면 노동자에게 유리하게 된다. 하지만 그렇다고 쟁의가 유효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다만 쟁의는 유효하되 함부로 쓰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회사와 노동자 모두에게 치명타만 남기기 때문이다. 적절히 풀어나가는 해법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