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의 애환,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카지노의 애환, 그들과 함께 울고 웃는 사람들
  • 정우성 기자
  • 승인 2009.10.01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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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겉모습과 다르게 정신적 스트레스 과중
딜러를 꿈꾸는 자들이여, 환상을 깨라

<매버릭(Maverick)>, <007카지노로얄>, <도신(賭神)>, <오션스일레븐>.

이들 영화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정답은 도박에 관련된 영화라는 점이다. 또한 그 배경이 카지노다. 이 영화 외에도 카지노를 배경으로 한 영화나 드라마는 무수히 많다. 술과 도박, 음악, 여자가 있는 그곳은 신천지와 같은 곳처럼 묘사돼 왔다.

왕국의 재원을 충당하기 위해 유럽에서 개설되기 시작한 카지노(CASINO)는 ‘작은 집’이라는 의미의 이탈리아어(語) 카자(casa)가 어원이며 사교용 별관을 뜻한다. 최초의 도박장은 도박 뿐 아니라 음악, 쇼, 댄스 등 다양한 오락을 제공하는 곳이었다고 한다.

이랬던 카지노는 현대에 와서는 도박과 같은 말로 불린다. 라스베가스를 ‘꿈의 도시’라 부르는 이유는 일확천금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단지 극소수만이 해당될 뿐이지만.

ⓒ 그랜드코리아레저
영화와는 다른 카지노 풍경

딜러(Dealer)는 흔히 거래를 연결해주는 사람을 의미한다. 카지노 딜러는 카지노 영업장에서 게임을 진행시키는 사람을 일컫는다.

카지노 딜러라는 직업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드라마 <올인>의 영향이 크다.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에 근무하는 강소연 주임은 “대학교 수업 중에 딜러 양성과정이 있었기도 하지만 TV에서 본 송혜교 씨의 모습을 보고 딜러란 직업에 매력을 느꼈다”고 밝힐 만큼 카지노 딜러 중 상당수가 드라마 <올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제복을 입고 외국인 고객을 상대로 게임테이블 위에서 현란한 손기술을 이용해 카드를 나눠주고 칩을 걷어 들이는 모습에서 우아한 백조가 돈이 오가는 치열한 전쟁터를 날아오르는 듯한 아름다움을 느끼기까지 한다.

그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 딜러들의 삶은 아름다움에 연속인지 확인하기 위해 카지노를 찾았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카지노 출입이 없었던 기자(분명한 사실이다)가 방문한 곳은 서울 강남에 위치한 외국인 전용 카지노 ‘세븐럭’이다.

서울지하철 2호선 삼성역과 연결된 오크우드 프리미어 코엑스에 도착했을 때까지만 해도 카지노가 어떤 곳일까에 대한 상상은 영화에게만 맡겨져 있었다. 특히 라스베가스 카지노. 그러나 현실은 항상 상상을 외면하는 것.

‘세븐럭’ 강남점은 기자가 생각했던 라스베가스 카지노에 비해 (영화에서 볼 때 보다) 작았다. 그러나 내부에서 들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표정은 영화와 똑같았다. 그곳에는 각종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외국인 고객과 딜러들의 모습이 보였다.

또한 영화에서처럼 덩치 큰 보안요원들이 기자가 힐끗 힐끗 테이블 사이를 지날 때마다 ‘저 놈은 뭐야’라는 식으로 ‘째려보고’ 있었다.

‘세븐럭’에서 진행되는 게임은 전 세계 카지노에서 거의 공통으로 하는 게임이라고 한다. 룰렛(Roulette), 블랙잭(Black Jack), 바카라(Baccarat), 캐러비안 스터드 포커(Caribbean Stud Poker), 다이사이(Tai-Sai), 텍사스 홀덤(Texas Holdem), 그리고 땡겨달라는 슬롯머신(Slot Machine)까지.

자세한 게임 내용은 여기에 적지 않겠다. 내국인은 들어갈 수 없다. 또한 굳이 권하고 싶지 않으니까.

카지노 안을 들여다보니

ⓒ 그랜드코리아레저
당연히 딜러들은 이 모든 게임을 완벽하게 마스터해야 한다. 게임의 룰을 정확히 인지하고 있어야 하며 어디서 콜을 하고 어디서 배팅을 중지시킬 것인지 분명히 해야 한다.딜러도 역시 고객을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이지만 기술이 필요한 고급 서비스업인 것이다.

이렇게 한 명의 딜러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어도 2~3년 정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현재 한국에서 카지노 딜러 양성을 위한 교육과정으로는 크게 전문대학 과정과 사회교육원의 교육과정으로 나누어진다. 이를 마쳤다고 하더라도 실습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 정도의 시간이 지나야 게임테이블에 설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된다.

이렇게 테이블에서 카지노 딜러 역할을 3~4년 했다면 ‘플로어 매니저(Floor Manager)’로 승진해 딜러의 뒤에 서서 딜링을 감독하게 된다. 이후 ‘카지노 수퍼바이저(Casino Supervisor)’, 총괄책임자인 ‘시프트 매니저(Shift Manager)’까지 올라가게 된다.

영업장 구경에 나섰다. 영업장은 크게 VIP룸과 홀로 나누어지면 홀은 또다시 게임테이블, 슬롯머신과 고객들에게 음식과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는 바와 환전을 해주는 캐셔로 나누어진다.

입구에서 맨 먼저 보이는 것이 바로 룰렛이었다. 큰 테이블 2개에 각각의 룰렛 기계가 돌아가고 있었으며 약 20여명의 외국인들이 이 기계를 유심히 바라보고 있었다. 반대편에는 젊은 여성 외국인들이 슬롯머신의 바를 당기고 있었다. 그 뒤쪽에는 블랙잭, 바카라 등 카드를 이용한 게임들이 진행되고 있었다.

카지노 딜러들은 각 테이블에서 능숙하게 게임을 진행하고 있었고 카지노 웨이터들이 손님들의 요구에 응대하고 있었다.

기자는 VIP룸을 들어가 보는 ‘행운’도 얻었다. VIP룸은 게임테이블이 가운데 놓인 가운데 카지노 딜러 2명이 앉아있었고 이들을 지원하기 위해 정장 차림의 플로어매니저가 옆에 자리하고 있었다. 양쪽 벽 쪽에는 휴식할 수 있는 소파가 자리잡고 있었고, 전체적인 공간은 아늑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내부 공기만은 아늑하지 않았다. 한 번에 약 1천만 원에서 많게는 5천만 원까지 배팅이 가능한 VIP룸은 긴장감으로 고객도, 딜러도 얼어붙어 있었다. ‘세븐럭’ 강남점에는 4개의 VIP룸이 있다고 한다.

이렇게 모든 테이블에서 하루에 거래되는 금액은 얼마일까? 카지노 관계자는 대략 하루에 적게는 10억에서 많게는 30억 정도라고 전했다.

카지노 딜러란 직업의 이중성

▲ 그랜드힐튼호텔 세븐럭 카지노 전경
외국인을 상대로 하는 카지노 딜러는 당연하게도 외국어에 능통해야 한다. 노동부의 직업소개란에는 카지노 딜러가 되기 위해서는 ‘토익 850점 이상, 일어능력시험 2급 이상, 중국어 HSK 8급 이상’이라고 되어 있다. 쉽지 않은 직업이란 느낌이 팍 든다.

이에 대해 ‘세븐럭’을 운영하는 그랜드코리아레저(주)노동조합 이성백 부위원장은 “조금 과장되어 있다”며 “신입사원 공채에서 딜러란 직업에 매력을 느낀 사람들이 많이 지원해 그 중에서 선발하다보니 외국어 능력이 그 정도 되어야 한다는 소리가 있는 것”이라며 웃었다.

카지노 딜러를 뽑는 공채가 실시되면 보통 1000:1은 기본이다. 그 만큼 선망의 직업이지만 실제 외국어 능력이 네이티브 수준일 필요는 없다고 이 부위원장은 말한다.

일단 공채로 선발된 인원은 1년간의 교육과정을 거쳐 초보 딜러가 된다. 그렇다고 바로 테이블에 설 수는 없다. 약 6개월 정도의 수습기간이 지난 후 카지노 딜러로서 테이블에 서게 된다.

그러나 신입딜러들에게는 시련이 많을 수밖에 없다. 고객들은 신입딜러를 못 믿는 경향이 있다. 카드를 돌리면서, 칩을 계산하면서 고객들의 상황까지 체크하는 것이 어찌 1~2년 경험으로 가능하겠는가.

그렇기 때문에 중견 딜러들은 약 5~6년 경력이 되어야 딜러로서 손색없는 기술을 보유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름다운 그들의 손재주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무척 고된 업무인 것만은 분명한 듯하다.

그렇기 때문에 연중무휴, 24시간 운영하는 카지노의 딜러들은 하루 3교대 근무시간을 철저하게 지킨다. ‘세븐럭’의 경우 오전 6시, 오후 2시, 오후 10시가 교대시간이다.

오전 6시 근무자의 경우 오전 5시까지 카지노로 출근해 5시30분부터 조회를 통해 전날에 있었던 사고나 주의사항을 듣고 5시50분경 이전 근무자와 교대한다. 이런 근무시간은 약 2달마다 교체된다.

그런데 테이블에서 고객들을 상대로 게임을 진행하다보면 하루 8시간을 서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그에 따른 피로도가 장난이 아닐 것 같다. 이에 대해 이성백 부위원장은 “과거에는 계속 서 있어야 해서 딜러들의 피로도가 높았다”며 “그러나 우리 업장의 경우 룰렛을 제외하고는 딜러들이 쉴 수 있도록 의자를 배치해 조금 나은 환경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밝혔다.

오히려 딜러들은 이러한 육체적 피로보다 더 큰 것은 바로 정신적 피로라고 말한다. ‘세븐럭’ 고재경 주임은 “돈 잃고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라며 “게임이 과열되면 돈을 잃은 고객은 이성을 잃게 되고 이들의 기분을 맞춰 딜링을 해야 하는 딜러들의 입장에서는 고객들을 신경 쓰느라 모든 신경이 집중된다”고 말했다.

고 주임에게 진상(?)인 고객은 어떤 고객이냐고 물어봤다. “돈을 잃으면 카드를 찢어서 딜러에게 던지는 일도 다반사고, 심지어 업장의 게임 매뉴얼이 있는데도 본인이 요구하는 딜러로 교체를 요구하거나, 딜러에게 일일이 카드는 이것을 써라, 손 모양은 이렇게 해라, 카드를 여기에다 놓아라 등등 본인이 다 지정해서 게임을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고 밝혔다.

영화에서는 그런 일이 발생하면 덩치 큰 보안요원이 고객을 진정시키거나 업장 밖으로 쫓아내던데? 이에 대해 고 주임은 “카지노는 고급 서비스”라며 “고객들의 요구를 모두 받아줄 수는 없지만 최대한 고객의 신경에 거슬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강소연 주임도 “고객이 돈을 잃었지만 웃으면서 ‘고맙다, 잘 놀다 간다’고 말할 때는 보람을 느끼지만 돈을 잃었다고 화를 내며 나가며 ‘딜러가 별로다’라고 이야기할 때는 속이 무척 상한다”고 딜러의 애환을 전했다.

반면 너무나 고마운 고객도 있다. 강 주임은 이러한 경험을 털어놨다. 외국 고객이 돈을 다 잃었으면서도 딜러에게 ‘즐겁게 잘 놀다 간다’며 웃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는데 다음 날 출국 전에 카지노로 선물이 배달됐다. 커다란 파운드 케익이었는데 그 외국고객이 강 주임에게 고맙다는 표시의 선물을 한 것이다. 원래 업장의 규칙상 고객의 선물은 받을 수 없지만 딜러들이 다 같이 나눠먹을 수 있는 케익은 고맙게 받았다고 한다.

“우리 고향에 플래카드도 걸렸었다”

▲ 강소연 주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우아하고 화려한 백조가 물 밑으로는 경박하게 발을 젖듯이 딜러도 화려한 겉모습과 달리 서비스업이 갖고 있는 애환을 모두 담고 있다. 그러나 세상의 시각은 이를 잘 모른다. 그저 <올인>의 송혜교인줄만 안다.

강소연 주임은 우스개 소리로 “제가 거제도 출신인데 딜러 공채에 합격하고 나서 고향에 플래카드가 걸렸었다”며 “고향의 어르신들은 무슨 떼돈을 버시는 줄 안다”고 씁쓸하게 웃었다.

옆에 있던 고재경 주임도 “다들 카지노라는 화려한 모습에만 관심이 있지 그 속에 일하고 있는 노동자로서의 딜러는 보지 못하고 있다”고 한탄했다.

그래도 좋은 점도 있지 않을까. 외국인 전용 카지노에서 근무하는 딜러들은 제2의 외교관으로서의 자부심을 갖고 있다. 한국을 방문한 고객들이 카지노에서 즐겁고 재밌게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대한 좋은 인상을 갖고 갈 수 있다면 그것만큼 보람 있는 일도 없다고 말한다. 또한 부수적으로 외화를 벌어들여 경제발전에도 기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한국의 카지노는 급성장하고 있다. 매년 매출이 2배 가까이 치솟고 있다. 이는 환율 영향도 있지만 한국의 딜러들이 외국 딜러보다 손재주가 좋고 서비스가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업계 관계자는 설명한다.

아시아 지역, 특히 중국과 일본 고객들의 한국 카지노 방문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한류의 영향도 있지만 뛰어난 딜러들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에게 제2의 외교관이란 호칭을 붙인다고 해서 그리 호들갑은 아닐 것이다.

여기에 하루 8시간의 고된 근무지만 8시간 이외의 시간에는 초과근무가 없다는 점에서 시간을 잘 활용할 경우 자신에게 이득이 된다고. 특히 외국인을 상대하다보니 외국어 능력에 대한 욕구가 계속되어 자신을 갈고 다듬어야 한다는 의지가 생기기 때문에 자신을 계속 발전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것이 딜러들의 설명이다.

딜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충고

▲ 고재경 주임 ⓒ 봉재석 기자 jsbong@laborplus.co.kr
경력 7년 이상의 강소연, 고재경 주임은 딜러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먼저 환상을 깨라고 충고한다.

“딜러란 직업은 TV에서 봤듯이 너무 멋지지만 않고 일반 직장처럼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똑같다. 자칫 영화나 드라마에서 묘사되는 딜러의 세계만을 생각한다면 오히려 이 바닥에서 견뎌내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강소연 주임, 사진 위)

“딜러는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이다. 외국인을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지속적인 외국어 공부가 뒤따라야 하고 고객을 상대하기 위한 자신만의 노하우를 계속 발전시켜야 한다.” (고재경 주임, 사진 아래)

그러나 이들은 딜러라는 직업은 확실히 매력적인 직업이라고 말한다. 전문적인 기술을 요구하는 서비스업은 그리 많지 않은 상황에서 카지노 딜러는 전문성을 살리면서 자신 또한 발전할 수 있다는 점에서 훌륭한 직업이라고 한다. 단, 환상에만 얽매이지 않는다면.

독자들은 카지노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 아는가?

시계, 거울, 창문이라고 한다. 시계를 보며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확인하지 못하도록, 거울을 보며 오랜 게임으로 핼쑥해진 모습을 보지 못하도록, 날이 밝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이 세 가지는 카지노에 없다고 한다.

반면 카지노에 있는 것은?

일확천금일 수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딜러들의 아름다운 미소와 고객 서비스에 대한 자심감이다. 비록 겉모습처럼 딜러들의 삶은 화려하고 우아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기자가 만난 강소연, 고재경 주임처럼 미소와 친절이 몸에 밴 사람들의 모습을 어찌 아름답고 우아하지 않다고 하겠는가.

24시간 돌아가는 카지노의 룰렛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그들을 즐겁게 하는 역할은 그리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박수를 보낸다.